「신(信)」이란 글자에 관하여 중국 천태종(天台宗)의 개조(開祖)인 천태대사(天台大師)는 『법화문구(法華文句)』에 「무의왈신(無疑曰信)」, 즉 ‘의심 없음을 신(信)이라고 한다.’고 해석하셨습니다.
또 어법주(御法主) 니치뇨상인(日如上人) 예하님께서는 무의왈신(無疑曰信)에 관하여 「마음에 조금도 의혹이 없는 상태」이고, 그리고 「절대신(節對信)이란 의혹을 섞지 않은 무의왈신(無疑曰信)의 신심」이라고 어지남 하셨습니다.
즉 무의왈신(無疑曰信)이란 절대신(節對信)을 뜻합니다. 「절대(節對)」란 다른 것과 비교하여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唯一) 최상(最上)의 입장에서 다른 것을 하열(下劣)하다고 판정하는 것이므로, 이를 종합하여 생각하면 대성인님 불법은 여러 교상판석(敎相判釋)으로써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가 바로 정(正) 중의 정(正)임이 증명되고, 또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도달한 정점(頂點)을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본불님으로 받들고, 어떠한 것과도 비교하지 않고 유일한 성불도(成佛道)이다라고 하는 신(信)이 바로 절대신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절복되었을 당시 이러한 법문(法門)을 듣고, 납득하시고, 입신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련정종에 있어서 「신(信)」은 사의사종(邪義邪宗)의 교의(敎義)에서 흔히 말하는 ‘신(神)을 의심하지 마라’라든가 ‘교조(敎祖)의 말에 절대복종’따위의 이른바 맹신(盲信)과는 다릅니다.
‘맹신(盲信)’은 목적지로 향하여 가는데 코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 속에서 실제의 길과는 다르게 잘못 표시된 지도를 가지고 그것만 믿고 의심 없이 나아가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임에 비해, 무의왈신(無疑曰信)의 절대신(節對信)이란 분명히 목적지도 보이고 지도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표기와 실제의 길이 일치하고, 지도가 올바르다는 것도 제대로 확인된 후 목적지로 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야말로 ‘의심하지 않는다’고 하여 똑같이 들리더라도, 그 의미하는 바는 천지운니(天地雲泥)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심은 머리가 좋고 교학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안되는가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석존의 십대제자 중 한 사람, 가장 머리가 좋고 지혜제일이라고 불린 사리불(舍利弗)조차 지혜가 아니라 신(信)으로써 성불하였다고 합니다.
법화경(法華經) 『수량품((壽量品)』에서는 「질직의유연(質直意柔軟)과 유화질직자(柔和質直者)」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유화(柔和)’란 마음이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상대에게 들은 말에 어디까지나 따르는 자세입니다. ‘질직(質直)’이란 그 사람의 성질이 올곧다, ‘순수’, ‘정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마음과 생각이 매우 온유(溫柔)하고, 부처님의 설법을 순수하고 올바르게 믿는 자세와 그러한 제자를 의미하는 말로 나타내셨습니다.
어은존(御隱尊) 닛켄상인(日顯上人) 예하님께서는 일찍이 「질직유연(質直柔軟)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믿는 것이 중요한데, 이때 비로소 부처님의 진실무상(眞實無上)의 공덕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라고 어지남하셨습니다.
단단하게 굳어져 형태가 정해져 버린 돌 등은 그릇의 형태에 따라 들어가거나 들어가지 않기도 하지만, 부드러운 물은 어떤 형태의 그릇에도 따라 넣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신심하는 데에는 우선 그 가르침을 자신에게 적용시켜 순수하게 따르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해야 진정한 공덕을 받을 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 총본산 제26세 니치칸상인(日寬上人)님께서는 『당류행사초(當流行事抄)』에 「유화질직(柔和質直) 어찌 신심이 아닐쏜가」라고, 단적으로 유화질직이야말로 진정한 신심자세라고 교시하셨습니다.
대성인님께서는 『형제초(兄弟抄)』 에서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신편어서 p.987)고 하시며, 마음 즉 자기의 감정이나 아의아견(我意我見)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교시하시고, 또 『사이렌보어서(最蓮房御返事)』 에서는 「일체(一切) 법화경(法華經)에 그 몸을 맡기고 금언(金言)과 같이 수행(修行)하면, 틀림없이 후생(後生)은 말할 것도 없고, 금생(今生)도 식재연명(息災延命)하고 승묘(勝妙)한 대과보(大果報)를 얻으며,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마저도 성취(成就)할 것이니라.」(신편어서 p.642)고, 이 몸을 법화경에 바치고 아의아견을 버리고 수행하면 대공덕을 받을 수 있다고 교시하셨습니다.
신심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지남이나 지도보다 세법적(世法的)으로 더 효율적인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그런 때일수록 더욱더 순수하게 지도에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찍이 예하님께서는 「순수한 신심이야말로 공덕이 갖추어진다.」는 취지의 어지남을 하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순수하지 않은 제멋대로의 신심으로는 공덕이 없으며, 겉보기에는 같은 행동이라 해도 지도를 받은 행동과 자기 판단에 의한 행동과는 공덕에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처럼 사람으로 태어나 만나기 어려운 진실한 불법(佛法)을 만났으므로 대성인님 가르침대로 순수하고 의심 없는 신심으로 더한층 실천행동에 정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