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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박 찬 덕 선교사
저는 어젯밤에 창세기의 말씀을 보며 성령님의 뜻에 따라 감동함을 받고 이 말씀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제가 울었는지 몰라요 아~ 이래서 예수님이 돌아가셨구나
이래서 예수님이 오실 수밖에 없었구나 진리가 진리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행동이 진리와 일치가
되어야 됩니다.
어느 날 저의 이 말을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가 진리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삶이 말뿐만 아니라 그에 따르는 수반되어야 되는
행동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될 때 진리가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 됩니다.
행동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전하는 기별이 전하는 진리가 살아있는 능력을 발휘하지못합니다.
복음은 진리는 하늘의 일들은 절대 타협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피 흘리기까지 하시면서 믿음의 선진자들도 죽은 것입니다.
이 사탄의 반역이라는 것이 오늘 이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의 우상숭배하는 일로 인하여
멀리서 사단을 가리키면서 가슴 아파하고 통분해 하며 저는 이 말씀을 깨달으면서 그 하나님의 사람이
모든 이스라엘과 유대의 사람들에게 정말 큰 자극이 되고 큰 경고가 되기 위해서 사자에게 찢겨 죽이는
그 일을 당한 그것이 너무나 약하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저주받아서 백번 천 번 만 번을 죽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꼭 나 같아가지고 내가 될 수 있구나 여러분들이 될 수 있구나
이거 어떡하면 좋은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죽음에서 이 마귀의 이 시험에서 우리가
이겨 나갈 수 있나 하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은 자신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이 세상에 쫓겨나온 일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여러분 사탄이 하나님보다 더 우월한 것이 하나 있어요.
우월하다기보다는 하나님이 못하시는 것을 사단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여러분 그게 뭔지 압니까? 하나님은 거짓말을 절대 하실 수가 없어요.
그런데 사탄은 할 수 있어요 마귀는 하나님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할 수가 있어요.
그 할 수 없는 그것을 공격 무기로 하여 우리들을 지금 기만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들
거의가 다 넘어가고 있어요 그 편견과 고집으로 계명에 대한 중요성을 모르고
사단은 자신의 그 거짓됨을 입증하기 위하여 그 불법적인 일을 한 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인정받기 위하여 자기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한 것이 사실은 모든 피조물들과 모든 천사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그렇게 배도하는 행위를 했다고 지금까지 그렇게 주장을 합니다.
조금 아까 그 얘기를 했었는데 하나님이 할 수 없는 가지고 있지 아니하는 것을 마귀는
가지고 있다는 그것은 하나님은 결코 거짓말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요 사탄은 마귀는 언제든지 편의에 따라 거짓말과 허위를 언제든지 내어 쏟을 수가 있어요.
강력한 무기로 그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 사탄은 그 거짓과 기만과 허위라는 것을 가지고 진리를 대적하니 진리는
그 거짓과 허위 앞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인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사탄을 하늘에서 내쫓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겁니다.
진리가 진리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만이 이 세상에 드러나야 돼요
그것이 십자가에서 나타난 사건입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하늘나라 하늘의 정부에 이 법을 율법을 두신 것은 너무나 공평치 않다
자신들 피조물들을 속박하고 억압하기 위한 자신들의 온전한 굴복과 하나님 자신을 위한 계명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높임 받기 위해서 그 법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법을 지킬 사람들이
세상이 어디 있느냐 아무도 없다.
에덴동산에서도 그게 나타났고 하나님의 법은 지킬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자기가 그렇게 불법적인 일을 해놓고 그 일을 살짝 미화시키고 정당화시키고 합법화시키고 자기가
그렇게 한 일을 결코 나쁜 것이 아닌 것처럼 하늘의 온통 질서와 나라와 정부와 법들을 망가뜨리고
훼손시켜놓고 파괴시켜놓고 불화를 가지고 온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잘못인 양
하나님의 법이 잘못됐기 때문에 지킬 수도 없는 법을 만들어 놓고 우리를 옭아매려고 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자유를 주기 위하여 진정한 해방을 주기 위하여 그렇게 애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하여 불법을 행한 그 사탄이 벌려놓은 그 악의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를 인간 역사에 그대로 폭로시키기 위하여 지금 그 오랫동안 인간 역사가 6천 년이지만
하늘에서 쫓겨나온 그 사탄의 그 역사는 얼마나 길겠어요.
그래서 그냥 지금까지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옳은 것인지 아니면 마귀의 불법
불의가 맞는 것인지를 그대로 드러나게 해서 어떤 것을 선택하는 그 선택하는 것에 따라서 하나님의
진리가 참으로 옳은 것임을 세상에 알리고자 한 것입니다.
사탄의 주장이 사단이 제안했던 그 일들이 법을 변경해야 된다는 법을 바꿔야 된다는 그러한 일을
절대 허락하실 수도 없고 허용하실 수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죽으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율법이 폐지됐다고 얘기해요 아닙니다.
하늘 정부의 기초는 율법 그 자체 계명입니다 법이에요
예수님은 그 계명 자체가 되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조금이라도 한 티끌이라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
어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망가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진리를 고수하기 위해서 돌아가셨던 거예요
폐하여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폐하여 질 수 있는 것이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셔야 될 이유가 없는 거예요.
절대 결코 그리해선 안 됩니다 복음은 진리는 결코 타협될 수가 없어요.
타협될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죽으신 거예요.
이 하나님의 사람은 그걸 몰랐어요 그걸 타협될 수 없는 진리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조금이라도 변개되어선 안 돼요 십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주교에서 이 두 번째 계명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를 싹 바꾸어서 3번째 계명으로 대체하고
네 번째 안식일에 관한 계명도 없애고 5번째 계명으로 대체를 해놨죠
개신교 십계명
천주교 십계명
이 말씀들을 저는 깨달으면서 왜 계시록에
성도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자들 예수의 믿음을 가진 자들
증거를 가진 자들 그 자들만이 살수 있다고 (계시록 14:12)
왜? 왜? 예수님께서 왜 통분하면서 이긴 자가 되라고 그렇게 얘기하시는지
저는 지금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요
우리는 절대 조금이라도 단 한 발자국이라도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고 법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될 때 사단의 거짓과 불법적인
잘못된 일이 적나라하게 가면이 완전히 벗겨져가지고 그의 그 모든 하늘에서 행했던 일들 에덴동산에서
인간에게 행했던 일들이 너무나 잘못된 것임이 명명백백 온 세계에 하늘과 땅에 이지구에 드러나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이 세계에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모든 곳곳에 다시는 불법이 다시는 거짓이 하나님의 법이
조금도 훼손할 수조차 없는 그런 하나님 그 자체이신 법을 통하여 다시는 그러한 일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다시는 이 세상에 죄가 생겨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그 오랜 시간의 역사가 이 법을 지키는 자들 이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말씀 진리가 진리임을 알고 그 하나님의 계명들 때문에 죽고 사는 자들 죽어도 그 진리를 진리임을 알고 고수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마귀의 잘못된 것을 다 드러나게 하셔서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온 세상에 그분의 자비와 그분의 사랑이 그 법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가 그 하나님의 법
안에 하나님의 명령 안에 감춰져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알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숭배하라는 면에서
이러한 법을 지키는 자들 진리를 고수하는 자들이 세상에 나오기를 지금 간절히 간절히 찾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자들이 세상에 살면서 삶을 통해서 가족들에게 지인들에게 사람들에게 참 진리의
향기를 드러내면 그것이 마귀의 불법의 일을 나타내는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한 자들을 찾아야 예수님께서 오실 텐데 그런 자들이 아직까지는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사방 바람을 붙잡고 지금 오늘에 이르기까지 안 오셨지만
이미 때는 지나버렸습니다.
지금 알곡과 쭉정이 쭉정이는 관심이 없어요.
그 알곡들만을 골라내서 하나님의 그 마지막 대쟁투 그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들을
통해서 이 하나님의 사람이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그만 세상과 타협하여
마귀와 타협하여 우상숭배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는 일에 동참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말씀이 하나님의 그 명령이 아무런 능력도 되지 않고 헛되게 돌아가는 오히려 하나님
조차도 인정해 버리는 어저께 사자 얘기를 하다가 말았는데 사자는 배고플 때 길에 내려와서
사람을 해치거나 짐승을 잡아먹는데 먼저 잡아먹어야 될 나귀는 그냥 건드리지도 않고 건드리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나귀는 무서운 사자가 곁에 오면 본능적으로 도망을 가게 되어 있는데 도망도 가지 않아요.
이것은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로 모든 세상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무거나 먹고
마시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예수 그리스도의 살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계명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그 어떤 것도 비슷하나 모두 다 가짜라는 겁니다.
비슷하게 다가와서 그 하나님의 법을 조금이라도 망가뜨리고 조금이라도 훼손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리의 모순되고 배도 되는 것이며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100% 진리라야 진리지 99.99%가 아닙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제가 없어서 이 본문 말씀은 전편에 읽었기 때문에 오늘은 읽지 않습니다.
전편 얘기는 그냥 밑바닥 얘기예요 어제 얘기는 중요한 얘기가 없어요
그냥 전체적으로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는지를 보여준 얘기인데 오늘 제가 생략하고 중요한
것만 골자만 얘기해서 이 말씀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니까 아는 것이 중요하니까
이 하나님의 사람이 보라~ 이러한 때에 13장 1절 말씀을 지금 제가 설명하는 겁니다.
보라 이러한 일들이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했는데 이렇게 이렇게 죽었다.
너희들이 이렇게 죽을 것이라는 얘기에요
아~ 이걸 어떻게 마음이 찢어지는 얘기고 이 성경에 소돔과 고모라성 얘기도 있고요
노아에 대한 얘기도 있고요 얼마나 무시무시해요 소돔과 고모라성 사람들이 다 죽고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전 인류가 다 멸절되고 멸절되는 일들이 이 성경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하늘의 사자로서 하늘의 기별을 가진 자로서 이 하나님의 사람은 우리를 전체적으로
대체하고 있어요 이 하나님의 사람이 죽는 것은 곧 우리의 죽음이에요.
이러한 마음을 지닌 자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 이렇게 먹고 마시는 일에 함부로 하는 자는
다 죽는다라는 얘기 이게 얼마나 무서운 얘기인지 모릅니다.
저는 이 성경 66권을 읽으면서 이렇게 저주스럽고 이렇게 무섭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화를 낸 적이 있었던가? 저는 본 적이 없어요.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한 그 이후부터 예수님 오시기까지(못알아들음)
이 사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저는 알게 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이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릅니다.
벧엘의 참 진리 참 기별을 전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왜 그렇게 멀리서 왔습니까 이 벧엘 이 북이스라엘에 참 진리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할 자가 없었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사람 우리를 대표하는 이 사람이
기별을 전을 전하러 옵니다.
늙은 선지자가 예전에는 하나님의 기별을 전했던 자인지는 모르지만 선지자니까 전했겠죠.
그런데 지금은 참 기별을 전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진리를 가진 자가 아니에요.
명목만 하나님의 사람이고 옛날에 하나님의 일을 했던 사람이지 지금은 아닌 것입니다.
만약에 그가 참 진리의 기별자라면 이 유다에서부터 벧엘로 내려온 하나님의 사람 대신
그가 일을 했어야죠 그가 일을 하지 않고 이 사람이 대신 보내졌다는 것은 이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얼마나 얼마나 이일이 중대하고 얼마나 엄위하고 얼마나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제가 이것을 사실은 여러분들에게 한 30분 40분 설명을 해야 되는데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생략하고 이게 열왕기하 23장 15절에서 22절까지 그대로 이 사건이 이루어집니다
15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16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묘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묘실에서 해골을 취하여다가 단 위에
불살라 그 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17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성읍 사람들이 고하되 왕께서 벧엘의 단에 향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18가로되 그대로 두고 그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19전에 이스라엘 열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의 노를 격발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20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단 위에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21왕이 뭇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22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열왕의 시대에든지 유다 열왕의 시대에든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요시야 왕 십팔 년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요시아 왕이 길을 가다가 이상하게 생긴 비석을 보고 저 비석이 뭐냐 아~ 이건 이렇게
이렇게 해서 옛날에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 사람이 북 이스라엘 왕인 여로보암 왕에게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산당에 세워놓고 분양하는 일로 인하여 이러이러한 일을
하다가 사자에게 찢겨 죽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하나님의 사람이 이러이러한 예언을 했죠.
그대로 그 일이 예언의 말씀이 하나의 가감 없이 그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을 통해서
이 일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셔야 되는지를
알리기 위한 또 하나의 말을 길게 열왕기하 23장 전체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는 재가 쏟아지리라 그렇게 말을 했는데 진짜 실제적으로 저놈 죽여라 하고
팔을 내밀었을 때 그 팔이 말라지면서 굳어진 그 왕 그때 단이 갈라지며 진짜 재가 단에서 또 예표가
아니라 실제로써 쏟아지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이렇게까지 보여주심으로 말미암아 이 일에 묻힌 영적인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한 하나님의 간절한 호소 호소라고 얘기해도 안 돼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눈물로 이 일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가 손이 말라지고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성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죠
온전한 원래의 모습으로 그 얘기를 통하여 이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그가 혹시 돌이킬지도 모른다는 그 마음에서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집요하게 왕은 우리 집에 와서 왕궁에 와서 쉬어라 얼마나 피곤하냐 먹지를 못하고
몇 날 며칠을 여기까지 왔을 텐데 쉬고 몸을 추스른 다음에 가라 내가 선물도 드릴 테니까
그것도 받아 가라고 했을 때 아니야! 그럴 수 없노라 왕이 나라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가지도 않고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도 않겠다.
하나님께서 내게 그렇게 명하여 이르셨기 때문이라는 진리의 기별을 그대로 받았어요.
아~ 그런데 이가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어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를 못했어요.
이 일의 중요성을 몰랐다는 얘기에요 그냥 말만 전하면 되는 줄 알고 알았다 라면
우리가 이러한 교제를 통해서 나처럼 또 여러분처럼 잠시 후에 알게 된 이 일의 비밀을
알게 돼서 어! 이런 것이었다고 한다면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절대 아니! 뭐 천하를 다 준다 해도
나라 전체를 준다 해도 선물을 준다 해도 먹고 마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늙은 선지자가 아무리 꼬시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에게 말씀했다 괜찮아 할지라도
그 시험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근데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충성심은 보였으나
진리를 전하는 기별자로서의 일을 하려고 하였으나 이 일에 숨어 있는 그 영적인 진리를 알지 못해서
죽음을 당하는 이 어리석은 이 마지막 시대에 이 일로 인하여 죽어질 자들이 너무나 많을 것입니다.
아! 그때 어떻게 해야 될까 저 사람이 죽어질 때 어떻게 될까라는 그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 왜 먹고 마시지 말라 나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 하셨다.
이런 얘기를 7번이나 계속적으로 반복하면서 왜 뭐 때문에 뭐 때문에 산당에서 금송아지를
두 마리 만들어놓고 하나는 단에 하나는 벧엘에 올려놓고 제사 지내고 또 제사장이 아닌데 여로보암 왕이
제단 곁에 서서 분양했기 때문에요? 아닙니다.
그 정도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이 진노하실까요? 아닙니다.
그렇게 알면은 성경을 정말 잘못 알고 있는 거에요
그렇게 우상숭배를 했다고 해서 분향했다고 해서 그러면 그 왕을 죽이면 끝나요.
그런데 왜 모든 세상에 이스라엘과 유대 나라에 경고의 표본으로 영원한 표본으로 절대
이 일을 잊지 말라고 사자를 보내서 찢어 죽였나요.
나귀는 도망가지도 않고 가장 먼저 먹어야 될 그 나귀는 잡아먹지도 않고 그리고 찢어 죽인
그 하나님의 사람은 왜 죽여만 놓고 왜 죽여만 놓을 이유가 뭐가 있어요.
배고파서 먹어야 될 일을 왜 죽여만 놓았느냐 짐승도 이 일을 아는데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런 타이틀은 가졌는데 이 사람은 몰랐어요.
먹고 마시는 일 먹고 마시는 일을 여러분들이 알기 위해서는 이 성경 전체를 알아야 되고
사실은 창세기도 알아야 되고요 계시록도 알아야 되고 특별히 에덴동산의 일도 알아야 되고
그전에 다니엘서에 있는 하늘의 전쟁 얘기도 마귀가 어디서부터 죄를 짓게 되었는지 죄의 기원에
대해서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지만 그것을 우리가 암시를 받아서 알아야 이 문제를
풀 수가 있어요.
옛날 과거 시대에는 이러한 말씀들이 진리로 빛으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이 시대에 이와
같이 빛이 나타나진 것은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 그렇다면 우리가 교제 나누는 지금 이곳에서만
이런 진리와 빛이 나타날까요? 아닙니다.
세상에 곳곳에 있어요 하나님의 의해서 숨겨지고 만들어진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저는 아직 한 번도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있다는 것을 저는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성령님께서 저에게 감동을 주시고
지시하시고 얘기할 때마다 알게 돼요 엄청 많습니다.
엄청 숨어 있는 자들 남은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열왕기상 12장 27절부터 29절까지 말씀 한번 읽고 다시 풀어 가겠습니다.
왜 먹고 마시는 일이 죽어야만 될 일이고 왜 온 세상에 대자보를 붙여서 경고의 경계의
표본으로 삼아야 되는지 이유가 나옵니다.
27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29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여러분들 이제부터 이 말씀을 왜 떡도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는 이 말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길래 그렇게 성경이 이렇게 강조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일이 무엇이길래 저주를 내리는 일이 생겼을까요 역사 이래도 개인적으로
이렇게 저주를 내리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앞으로 펼쳐질 이 일들에 대한 모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계로
본보기로 삼기 위해서 이 말씀을 기록해 두셨어요 왜 사자가 그 사람을 찢어 죽였는지
왜 유다에서부터 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까지 내려왔는지 그 문제입니다.
여러분들 잠시 전에 제가 얘기를 함으로 말미암아 해소가 됐을 것입니다.
예~ 벧엘에 참 기별 자가 없었기 때문에 없었던 그곳에 유다인인 이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배도하고 우상숭배하여 산당을 통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그 금송아지를 통해서
이거 바로 우리 조상을 우리 선조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야!
이 거짓된 예배의 방법 예배의 형식 이것을 탄핵하는 자가 필요했어요.
잘못되었다는 것을 경고 정도가 아니에요.
탄핵하여 그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라는 것을 알려줘야 될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을 이 선택된 민족 선민이 이스라엘과 유대의 나라를 통해서 폭로해야 될 드러나게 해야 될
진리가 빛이 환하게 펼쳐져야 될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 금송아지 그때도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십계명을 가지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야~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다~ 그렇게 했던 것과 똑같이 금송아지를
두 개를 만들어놓고 하나는 단에 하나는 벧엘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지금 이 말씀에 나오는 이 장소가 벧엘이에요 벧엘! 다른 곳이 아닙니다.
그럼 어떠한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여러분 벧엘 하면 무엇이 생각이 나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불러가지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갈 때
언약을 통해서 이 가나안 땅을 자신에게 준다는 것을 알고 이 세겜을 거쳐 이 벧엘로 들어와서
첫 번째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올려 예배한 곳이에요.
아브라함 이런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곳이죠
성경을 전체 읽어보고 알아야 이 성경의 의미를 알 수가 있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첫 번째로 예배를 드렸던 곳 제단을 드렸던 곳
그런 의미에서 여기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영적인 의미에서 엄청난 가치가 있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벧엘 무엇이 생각나요 야곱이 생각나잖아요.
야곱이 거짓말 한 죄로 말미암아 에서의 그 무서운 죽음을 피하고자
정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멀리 이국 땅 그 어머니의 고향 땅으로 돌아감에 있어서
이게 정말 낯설고 물 설은 그곳에 혼자 봇짐 하나 둘러매고 하늘을 지붕 삼아 얼마나 마음이 슬프고
얼마나 마음이 낙심과 절망에 빠졌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얘기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아~! 세상에 내가 이러한 처지에 이러한 상황에 빠졌을 때 우리 선조 우리 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가
만나고 섬겼던 그 하나님 약속하셨다는 그 하나님이 어디 계신 거야? 이럴 때 나타나서 나를 도와주고
나에게 안내해 주고 나의 삶을 보호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했을 때 꿈에 사닥다리를 통해서 바로
그러한 처지에 있는 자들을 돕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하늘에 있는 그분이 땅에 이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서 구속하신 다음에는 땅에 있는 자들을 반대로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일이 천사를 통해서 성령님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을 통해서
이룬다는 것을 보여주므로 말미암아 오! 하나님이 이곳에도 있었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네! 임마누엘
하시네! 여기가 바로 이곳이 바로 내가 돌배개하고 반석 되시는 그 돌베개와 함께 잠을 청하고 그 예수님과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닥다리를 통해서 그 반석 되신 예수님을 희미하게 알아봤던 그는 그나마
여기가 바로 하나님의 집이구나 오! 하나님의 전이야!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구나! 야곱이 이랬던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전인데 자신의 믿음의 조상들이 예를 드리고 섬기고 하나님의 집이라고 일컬어졌던
그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 금송아지가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이게 말이 됩니까?
절대 말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경고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그 여로보암 왕과 이 산당에서 벌어지는
그 일들에 5절에 예조대로 단이 갈라지며 재가 단에서 쏟아진 일을 통해서 산당에서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그 분양하는 모든 것이 거짓된 것임을 하나님께서 절대 받으실 수 없는 가납되실 수 없는 불가한
것임을 완전히 불가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단이 갈라지고 재가 단에서 막 쏟아져 내립니다.
이래서 그렇게 됐을까요.? 아니에요. 큰 잘못이긴 하지만 그것도 엄청난 죄이긴 하지만
진정한 죄는 어떤 것이었냐 하면 바로 이 12장 30절부터 33절 요 끝에 있습니다.
이 벧엘 얘기 벧엘 얘기만 하는 요 세 절에 얼마나 많은 벧엘 얘기가 나오는지 몰라요
읽어보세요 12장 30절부터 33절 이게 답이에요.
그래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잘못된 복음을 받지 말라 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도 조금도 미혹해서 속여서 조금이라도 받으면 너희는 다 죽는다는 얘기입니다
계명을 얘기하는 것이고 절기를 얘기하는 것이고 안식일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읽어보세요.
30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31저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팔 월 곧 그 달 십 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 33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 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33절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8월 15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산당에 올라가서 분양하였더라 이 말씀이 해답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라는 그 엄위하신 말씀의
무엇인지 왜 그렇게 경고를 하셨는지 왜 그렇게 산당에 제사를 드린 제사장들이 나중에 그 사람들
모든 뼈를 무덤에서까지 다 파헤쳐 져서 다시 또 한 번 죽음을 당하게 되는 이 영원한 이 둘째 사망을
경험하듯이 이러한 일들이 이러한 저주가 하나님께서 이 어떤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일을 행하심에 있어서
이렇게 분노하시고 이렇게 엄위하시게 아주 조금도 추호도 남김없이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드러내 보이신
성경의 많은 부분들이 있지만 이 성경이야말로 하나님의 그 말 할 수 없는 탄식과 말할 수 없는 분노와 화가
얼마나 극대한지를 보여주는 아주 그러한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저는 처음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이 레위 자손들이 보통 제사장으로 일들을 했는데 이 레위 자손들이 없어요.
다 성전이 있는 유다 나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제사장들을 찾을 래야 찾을 수 없고 부르고 해도 없기 때문에
일반 보통 백성들로 제사장을 삼고 급기야는 자신이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양하는
일까지도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잠시 전에 12장 27절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다 나로부터 떠나겠다 날 죽일 수도 있겠다.
이 나라가 파괴되는 것은 둘째치고 나까지도 목숨이 이거 죽을 것이구나
이러한 마음속에 큰 불안감이 왜? 성전이 유다에 있고 자기의 나라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짜로 비슷하게 맨 꼭대기 헐몬산 그 유역의 맨 아랫부분에 맨 꼭대기 북쪽이죠.
그쪽에 하나 만들어놓고 유대 나라의 가장 가까운 국경지역 근처인 벧엘이라는 곳에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위와 맨 아래에 만들어 놓음으로 말미암아 그 산당을 통해서 보아라~
하나님이 여기 계시는데 굳이 유대 나라에 가서까지 예배드리고 제사드리고 경배하고 섬기고
이렇게 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 백성들의 마음을 회유하고 사로잡고자 산당을 만든 것입니다.
거짓 산당이죠 참 산당이 아니죠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 사람들이 왜 그럼 이 여로보암 왕이
왜 이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염려하고 그러느라고 이때가 되고 절기가 되면 반드시 그 절기 때에
절기를 지키고자 유다 나라로 그 가족들을 다 이끌고 자신의 백성들 수많은 백성들이 그곳에 갔다가
우리가 섬기는 참신 하나님이 여기에 있구나라고 해서 돌아오지 않을까 봐 국력이 약해지고 돌아온
사람조차도 자기의 말을 잘 안 듣고 마음이 하나로 종교적인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그 나라가 성립이 되고
중지가 모아져야 되는데 그만 제사드리는 이 성전에 대한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대체 수단으로 보아라 애굽에서 인도했던 그 하나님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유대 나라의
성전에서 섬기는 그 하나님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단에서도 있고 벧엘에서도 있지 않느냐라고 이 산당을 성전을 만들 수 없게 산당을 만들어두고
그곳에 금송아지 한 마리씩을 두고 섬기게 했던 것입니다. 이해가 좀 되시나요.
그래서 마음을 유대 나라로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문제가 발생돼요 어! 절기 때 유대 나라에는 유월절도 있고요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을 상징하는 또 일주일 동안의 무교절 죄 없이 사는 삶 그것도 있고요 또 요제절 바로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3일 날 지금은 일요일이죠.
또 하나님께 첫 열매로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 요제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부활하신 것을 상징하기 위해서 요제절을 드리는 그 의미도 있고요
또 오순절도 있고요 그런데 유대 나라의 그 달력은 성력이라 우리나라의 기후와 어떤 온도 이런 것이
좀 차이가 있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도 이 달력을 짧게 해가지고 그 우리나라에서 비가 올 때는
전혀 안 오고요 거기 비가 올 때 우리나라는 또 비가 안 옵니다.
이런 어떤 다른 현상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칠월을 그 성력 그 달력의 마지막으로 하여
세 번째 아주 큰 절기를 지키고 있는 것이 있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7월 1일 날 빰빠밤 하고 울림으로 말미암아 자~ 이제 10일 후에는 우리들이
1년 동안 살면서 하나님 앞에 알게 모르게 지은 죄 알고 지은 죄 마음속으로 지은 죄 이런 죄들이
엄청 많은데 이 죄들을 다 속죄해야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볼 수 있고 그 잔치에 함께 우리가
참여할 수 있다는 장막절을 15일 날 갖게 됩니다.
그러니 7월 1일은 나팔을 불어서 경고의 메시지로 10일 후에는 이러한 죄를 속하게 되는 날이 오니까
너희들 마음에 준비를 하고 죄를 속하기 위해서 그날을 예배하라 라고 나팔을 전쟁의 때에만 울려 퍼진
그 나팔을 이때에도 막 길게 일곱 번을 막 울려 퍼지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10일이 지난 다음에 이 나팔을 불게 된 의미가 대속죄일이 있죠
그 하루에 하나님께 완전히 속죄함을 받고 이게 야곱의 환란입니다.
이것을 받고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흠과 점도 없이 책망받을 것도 없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그 깨끗함을 입으라 라는 말씀처럼 이날을 위하여 7월 1일에 나팔절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디모데전서 6:14)
14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베드로후서 3:14)
그리고 이 하루에 그 죄의 문제를 죄를 가지고 있던 그 문제 모든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완전히 자유함을 얻기 위하여 대속죄일 날의 경험을 7월 10 일 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여러분 잘 모르시죠 그냥 한번 읽고 한번 지나갈까요?
레위기 23장 23절부터 34절까지 2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4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찌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25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찌니라
2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7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28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29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30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31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32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찌니라 3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34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 것이라
자 여기에 보면 대속죄일을 중심으로 나팔절이 있고요 대속죄일을 했으므로 말미암아 빰빠방 하고 울렸어요 대속죄일 날 죄를 속함 받기 위한 일입니다 그 죄의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아~ 1년 동안 내가 지은 모든 죄가 하나님께 사함 받고
용서함 받았다 그자들은 마음이 어떨까요? 얼마나 기쁠까요? 얼마나 즐거울까요?
마음의 짐이 다 벗어진 겁니다.
그러니 이다음에 그 자유함 가운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이게 뭐냐면 이 하늘에서의 우리가 누려야
될 일들을 순서적으로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들이에요.
이 속죄함을 받은 대속함을 받은 자들은 너무나 좋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텐트 속에 장막 속에
초막절을 지키는 거예요 장막절 초막절 똑같은 얘기예요.
장막절에서 그 텐트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성전에서 같이 누린다는 즐거움을 같이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하는 일들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는 일을 초막절 장막절 때 일주일 동안 갖는다는 것입니다.
7월 10일 날 속죄일은 하루예요 하루 그 일은 끝난 다음에 3~4일 동안 열심히 잔치를 준비합니다.
먹고 마신 후에 죄가 사함 받았기 때문에 와~ 이제 주님과 함께 우리가 이 성전에서 하나님의 집에서
함께 식탁에서 먹고 마시는 거다 하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잔치를 여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40절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얼마나 아름다운 내용입니까 너의 하나님 앞에서 7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죄를 사함 받은 일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하고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즐거워서 먹고 마시자
이게 7월 15일 초막절 장막절 때 대속죄일은 뭐예요? 죄를 사해주기 위하여 스스로 괴롭게 하는 날이에요.
이날은 가슴을 찢으며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1년 동안 살면서 얼마나 많은 죄를 생각도
안 날 정도로 그러한 죄를 졌는데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하고 자기 자신을 괴롭게
아니! 괴롭게 하고 금식하고 막 그런 사람이 먹고 즐길 수 있습니까?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팔절에 먹고 마실 수 있어요? 아니 대속죄일을 준비하고자 나팔을 빰빠밤 부는데
부어라 마셔라 할 수 있나요 없습니다
나팔절에도 아니고요 대속죄일은 더더군다나 아니고요 먹고 마시는 일은 죄의 문제가
완전히 끝난 다음에 5일 후에 7월 15일 날 이 장막절에 초막절에 이런 일이 벌어져야되는 것입니다.
다시 열왕기상 12장으로 돌아갑시다
그런데 32절에 보면 이 여로보암은 보면 이게 답이에요 이 말씀이 답이에요 이게 해결입니다.
왜 먹고 마시면 안 되는지 여러분들이 이제 이해가 돼요 아~ 이래서 그런 거구나
32 팔월 곧 그 달 십 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
대속죄일은 며칠이었었죠. 7월 10일 그리고 5일이 지난 그때까지 잔치를 7월 10일 날 대속죄일은
하고 마음 아프게 하고 막 죄 생각나는 거 다 고하고 회개하고 용서함 받고 12,13, 14 3일 동안이에요
12, 13, 14 그렇죠 잘 들으세요. 7월 10일은 대속죄일로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에요.
그리고 그다음 날 11, 12, 13, 14 4일입니다 이 4일 동안에 열심히 잔치를 준비하는 겁니다.
이 잔치를 준비하고 새로운 그 하나님과의 식탁의 날을 가질 날이 15일부터예요.
15일은 죄를 용서함 받은 자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고 식탁에 참여한다는 기쁨을 가지고
잔치 속으로 들어가서 먹고 마시는 일이 이게 7일 동안 완전하게 누리는 삶의 시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팔월 곧 그달 15일 아니 장막절이 제가 아까 며칠이라고 그랬죠
7월 15일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8월 15일 뭐가 다르죠 한 달이라는 시차가 있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왜 그러냐 이유가 있어요
유다 백성들이 자기네들 단과 벧엘의 아브라함이 이곳에서도 예배를 드렸지 않느냐
벧엘에서 야곱도 이곳에서 돌배기를 베고 사닥다리 꿈을 꾸고 하나님을 만난 집이 아니냐라고 했지만
산당에 불과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유다에 솔로몬 왕이 지은 성전으로 화려하게
지은 정말 그럴듯한 하나님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그곳으로 막 가는 겁니다.
근데 벧엘은 야곱의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지만 그냥 산당으로 만든 그 속에 금송아지를 놓고 있기
때문에 뭔가 머리가 깨인 사람들 뭔가 종교심이 있는 자들은 다 그 벧엘에서 이 여로보암이
8월 15일 날 절기를 정하여 우리도 지키자는 그 절기 아닌 유다 나라의 솔로몬 왕이 만들고 세워놨던
성전에 가서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절기를 지키는 겁니다.
7월 15일부터 일주일이면 21일 날 끝나겠죠. 15일 날까지 치니까 15, 16, 17, 18 19 20,
21일 그리고 여기서 바로 또 끝나자마자 오는 어떤 사람은 급해서 가족들 보고 친지가 멀리서
오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 우리 잔치 연 김에 우리 친구들도 모여서 회식을 베풀자는 의미에서
여러 예루살렘 성전도 여러 가지 궁전도 막 구경하러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그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가서 절기 일주일 그리고 노느라고 또 한 일주일
14일 그리고 또 집에 오느라고 또 며칠 피곤하고 그러니 그들이 혹시 유대 나라에 가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러 갔을지라도 충분히 돌아와서도 자기네 절기를 자기가 열어놓은 그 산당에 금송아지
갖다 놓고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자 라고 얘기해도 그들이 그 절기를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날짜를 충분히 여유를 두어서 한 달 뒤에 8월 15일 날 이 초막절 축제인 장막절을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자! 먹어라 마셔라 기쁘다 그런데요 뭐가 빠졌어요. 대속죄일이 빠졌잖아요 대속죄일이 없이
그럴듯하게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법을 약간 변형시킨 것처럼 쪼금 아주 거의
이 킹 제임스 성경을 읽어보면 같게 보였다고 쓰여있어요.
여기는(개역성경) 비슷하게 보였다고 쓰여있어요.
그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제대로 돋보기 현미경을 통해서 보지 않으면 차이를 모를 정도로
가짜 중국산과 진짜 한국 산을 분별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모조품이 오히려 진짜처럼 보여요
그러나 거기에는요 왜 먹고 마셔야 됩니까 왜 종려나무와 버드나무 가지와 왜 초막절에
그렇게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우리 이 집에 함께 우리와 함께 거해서 같이 먹고 마신다는 것이
왜 이렇게 됐어요. 속죄일 때문이에요
이 장막절이 있게 된 것도 속죄 일 때문이고 속죄일에서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에
이 기쁨의 잔치를 여는 것인데 대속죄일은 싹 빠뜨렸어요 그리고 날짜도 싹 바꿔놨어요.
그리고 그냥 부어라 마셔라 하라 자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가 잔치를 열자
그러니 이 하나님의 사람이 만약에 이 잘못된 예배 형식 잘못된 예배 시간 이 시간에
동참을 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벌어지는 것이죠.
하나님의 명령은 뭐예요? 먹고 마시지 말라고 왜? 그곳에서 이 하나님의 사람이 단아 단아라고
저주를 내리고 그들이 지금 산당에서 금송아지를 놓고 우상숭배하는 것은 둘째치고 절기까지
살짝 바꿔놓고 마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듯하게 예배를 똑같이 드리는
것처럼 해놓고 백성들의 중지를 모으기 위해서 드렸는데 그 왕이 꼬시고 늙은 선지자가 미혹하여서
먹고 마시는 일을 벧엘 속에서 벧엘 안에서 하게 되면 왕이 불법의 일을 행한 사단이
저지른 그 불법의 일을 마치 여로보암을 통해서 하는 이 일들이 합법화되는 겁니다.
정당화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람이 그 잔치에 먹고 마시는 일을 함께 즐기는 일을 이 식탁에서
먹는다는 것은 그 일을 인정해 주는 꼴이에요.
하나님께서 그 배도하는 일 그 패역한 일을 탄핵하기 위해서 진리가 아니라
비진리다 오류다 그건 옳은 것이 아니라 불의다 잘못된 것 거짓된 것임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했는데 그가 먹는다면 진리의 그 기별을 전한 그 참 빛이 무력하게 되는 겁니다.
아무런 효력이 없는 거예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인정하는 것이구나 봐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서도
먹고 마시지 않았느냐 너희들 봤지 나랑 같이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서 하루 동안 이틀 동안 3일 동안
나랑 같이 먹고 마셨다.
봐라 우리가 드린 산당의 그 예배 산당의 제사 하나님께 드린 것이 하나님의 사람도 먹고
그 하나님의 사람이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흠향하고 받았다는 것이다. 봐라
이해가 되나요. 그래서 먹고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이거는 그 명령을 지키고 안 지키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진리는 가졌는데 빛의 비췸은 받았는데 이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이 지시하신 명령은
받았는데 이 잘못된 예배 형식을 타파하려는 탄핵하고자 하는 완전히 쌓아둔 바벨탑을
무너뜨리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혹시 하나님이 먹으라 했다 할지라도 먹지 말아야 돼요 이럴 때는
하나님이 친히 이렇게 명령을 하여서 그의 생명을 보존시켜주기 위한 하나님의 그 의도를 알지 못하고
속임에 의해서 나라나 권력이나 총칼이 아니었어요.
그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너무 피곤하니까 떡 먹고 물 마시게 하도록
나를 들어서 이렇게 뒷바라지하라고 했어요.
여호와의 사자 천사가 나타나서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는 그 거짓된 말에
현혹되어서 너무나 배가 고팠죠 너무나 갈증이 낫죠 왜 가느라고 오느라고 가지고 갔던
모든 떡과 물이 다 어느새 동이 나버리고 이제는 몇 날 며칠 굶었는지도 알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무리 목 말라도 경제적으로 아무리 어려움을 당해도 우상에게 절을 하면
안 되는데 이런 일들이 666 종교 세력 그 1260년 동안을 통해 믿음의 사람들을 탄압하고 탄핵하고
죽이고자 했던 로마 교황권 그 일들이 지금 또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먹고 마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진리와 말씀과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진리 그것만 우리에게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 그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모든 것들은 단 하나라도
모순되거나 뭔가 지저분하게 하거나 부정하게 하거나 훼손하게 하는 일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그렇게 모순 되게 하는 모든 일들은 다 아무리 비슷하게 보이더라도 아무리 99.9% 그렇게 나타나고
그렇게 보일지라도 32절에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합니다.
8월 곧 그달 15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여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 넘어가는 겁니다 안 넘어가는 자들이 없어요.
30절에 보면 이 일이 죄가 되었다고 거짓 하나님에게 숭배했다는 얘기가 30절이에 나옵니다.
12장 30절에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여러분 복음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절대 그 어떤 한 티끌 만이라도 희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법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사단은 이것을 변개하고자 변경시키고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렇게 변개해야만 자기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을 배도 한 일이 불법적으로 천사들을 미혹하고 기만하여서 전쟁을
일으킨 그 일이 정당화되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그 법을 조금이라도 파괴시키고 훼손시키고자
모든 사람을 죄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어요.
보세요! 우리가 죄를 지은 것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것이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법은 지킬 수 없는 것인데 왜 그렇게 만들어놓고 골치 아프게 합니까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죠.
하나님 정부의 기초가 되는 그 법이 오히려는 내 생각이 더 낫지 않을까요 라고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계획과 자기의 마음을 천사들에게 다니면서 감언이설로 꼬아놓은 그 일을
하나님은 그런데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 허위와 거짓 기만 하나님은 그러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허위와 거짓말을 통해서
이리저리 다니면서 하는데도 하나님은 긴 세월 긴 역사 6천 년이란 역사를 통해서도 하늘에서까지
말할 수 없는 그 유구한 긴 오랫동안의 세월을 통해서 하나님은 침묵을 통해서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의와 사랑이 나타나서 그 사랑과 공의를 보고 법을 지키는 자 하나님의 법은 옳아요.
거기에는 공의가 있고요 옳고요 진리가 있고요 신실하고요 우리들을 살리는 거고요
생명을 주는 것이고요 얼마나 자비와 은혜가 있는 것인지 몰라요 나는 목숨을 버려서라도
그 법을 지킬 겁니다 라는 그들이 나타날 때에야 이제서야 하나님의 마귀로 말미암아 훼손되고
더럽혀진 그 명예가 오해가 우리들로 인하여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품성이 되어야 되고 예수님이 그 계명 자체가 되신 것처럼
그 하나님의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에는 두 돌판 두 돌비가 들어 있어요.
그 마른 지팡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인성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고
하늘의 양식인 만나도 상징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계명이 있다는 거예요.
십계명 그것은 불변한다는 겁니다
근데 그 불변한다는 것은 세상은 마귀는 지금 살짝 비슷하게 만들어놓고 아니야 이건
이렇게 된 거야 해서 하나님이 옳지 않음을 예수님이 그것 때문에 오셔서 죽었는데
그 법 하나를 하나도 훼손되면 안 되는 것임을 알기에 돌아가셨는데 피를 흘리고 그런데
그 두 번째 계명 우상에게 절하는 거 아유! 그거 괜찮아 안식일 아! 그거 일요일 날로
대체되었어 성경 어디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까? 전 본적이 없습니다.
원래 1260년 동안에 과거 500년 전부터 지금까지 1500년 동안에 유구한 역사를 통해서
그렇게 돼왔기 때문에 그렇게 비슷하게 만든 법이 고착화되고 굳건하게 되고 단단해지고 콘크리트가 돼서
우리가 믿고 따르고 그렇게 안 하면 더 이상할 정도로 오히려 손가락질 당하고 오히려 눈총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변개될 수도 없고요 하나님의 법은 바뀌어질 수도 없고요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그분의 역사는 바뀌어지는 것이라면 애초에 바뀌어지는 법으로 만들었어야죠 그리고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왜? 그것을 부활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왜? 그 법이 바뀌어진 것은 사단의 음흉한 여로보암과 같은 이러한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해서 그 전체 백성들 전체 거의 다를 끌어모으기 위한 불법에 의해 기만 당하고
넘어지고 실족 당하는 이런 일들 때문에 사자가 그를 찢어 죽이게 하는 일을 통해서 나귀를 잡아 죽이지 않고 먹지도 않고 사람도 먹지도 않고 곁에 지키게 함으로 말미암아 13장 24절에 그 말씀이 있죠.
13장 24절에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저를 만나 죽이매 그 시체가 길에 버린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섰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섰더라
왜 이 말씀을 써놨어요.
사자가 배고파서 사람들 가까이 내려왔다 라면 짐승을 잡아먹기 위해서 나귀가 탐이 나서 먹고자
했다면 사람을 죽였든지 나귀를 죽였든지 둘 중 하나를 죽이고 잡아먹었어야 되잖아요.
왜 사자가 먹지 않았어요? 나귀조차도 사람도 왜 먹지 않고 가장 먼저 먹어야 될 본능에
의해서 가장 먼저 침을 흘리면서 맛있게 먹어야 될 나귀가 왜 곁에 섰고 죽음을 당하지 않았나요.
사자도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먹고 마시는 것이 어떤 것임을 이 우둔한 짐승까지도 알았는데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 돼가지고 그걸 몰라 그러니 이 여로보암 나라에 왕을 위해서 그 나라에
이 사람도 벧엘 사람이기 때문에 늙은 선지자는 이스라엘에 속한 자예요.
그리고 어떻게든지 먹고 마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실족하게 만드는 일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나쁜 사람이에요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옛날에 과거 젊은 시절에 선지자 노릇을 했다면 그러면 안 됐어요.
오히려 그곳에 가서 탄핵했어야지 그러지 못한 그가 그 사람을 쓰러뜨리고 넘어뜨립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아니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느냐
아니 기별이 없는 자 빛이 없는 자 기회주의 자로서 그곳에 가서 왕에게 탄핵하지도 않고 왜냐하면
볼 쌍스러운 일을 자기가 경험하게 될까 봐 명예는 지키고 인정받고 그러나 그곳에 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자기 이름을 세상에 드높이고 그런데 왜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죠
그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이 기별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종으로서 기별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반대하기 시작했어요 좋았어요 너무나 좋았어요 박수 쳐줘야 돼요
그런데 먹고 마셨네요 그 절기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대속죄일을 빼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빼놓고 벌려지는 그 먹고 마시자 대속죄일 죄를 속하는 것이 중요해요
일요일 날은 부활만을 얘기하고 있어요 부활만을 얘기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준 것이에요.
그 죄를 용서해 준 그 대속죄일의 경험 거기에서 사함 받은 거 그것 때문에 지금
즐거워하고 기뻐하자는 얘기거든요.
그래서 잔치를 열었는데 그거는 싹 빼놓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먹고 마시자는 그 잔치에 참여한
하나님의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빛이 없는 그 늙은 선지자보다도 오히려 자기를
하나님의 일을 어그러지게 하고 망가뜨린 자보다도 못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 타락한 이 늙은 선지자보다도 오히려 배도하고 우상숭배하여 비슷하게 절기를 지키고
있는 그 절기의 그 축제에 참여하지 말아야 되는 사람인데 그 일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은근히 자기도 하나님까지도 덤터기로 그 일에 동참하게 하여서 여로보암이 하는 일이 맞다
맞지 않느냐 봐라 유다 나라에만 성전이 있는 게 아니야 여기에 하나님의 사람이 인정하잖아
하나님의 사람이 잔치에 참여했잖아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까지도
다 무효가 돼 버린 겁니다.
그러니 그런 자는 지금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늙은 선지자
진리의 빛이 전혀 없는 그 자보다도 오히려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늙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서 그가 잔치 축제에 참여해서 배도 한 자와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을 업신여기고 그 무리와 함께 어울려 먹은 그 사람에게 이 늙은 선지를 통해서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그 사람보다도 못하다는 거예요.
그 사람보다도 훨씬 못하기 때문에 그에게 까지라도 말씀이 임하여서 그의 실수와 잘못과
왜 죽음을 당해야 되는지 후세들인 우리들에게까지도 경고의 메시지로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 말씀이 그렇게 그에게까지 임하여서 그는 저주받아 마땅한 자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 너무나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실족 당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죽은 것처럼 죽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말씀을 이가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깨달았다면 이 하나님의 명령이
너는 가서 왕과 함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하여 9절 말씀입니다.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의 교제를 나누는 우리처럼 알았더라면 먹는 일이 있었을까요.
마시는 일이 있었을까요.
여호와의 절기와 비슷하게 부어라 마셔라 먹고 즐기자 예배만 갖자 구원만 있다.
속죄함은 없어요 죄 사함은 없이 대속죄일의 그런 경험은 갖지 못하게 하는데
부어라 마셔라 기타 치고 가수를 동원해서 예배를 드리고 막 그냥 온갖 이상한 거룩함을
유지하고 신성을 유지하고 신의 거룩한 성품을 가진 그 교회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손뼉을 치면서 마치 시장 바닥처럼 죄를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는 그 일이 아니라
그 일을 싹 빼놓고 하나가 되자 사랑으로 하나가 되자 모이자 교제하자 먹고 마시자
하나님이 그것을 볼 때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겠습니까 대속죄일의 문제예요.
대속죄일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나팔절도 있고요 그 일을 가졌기 때문에 초막절 장막절도
있는 것인데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죄를 사함 받은 자가 하나님과 함께 식탁에 참여하여
기쁨의 잔치를 연다는 면에서 먹고 마시는 일이 있는 것인데 그것을 빼놓고 그것은 가지지 않은 채
그것은 보이지 않은 채 슬쩍 비슷하게 예배를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는 것처럼 여로보암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예배를 그렇게 비슷하게 똑같이 하고 있는 교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부어라 먹고 마셔야 될 일은 장차 누림 후에 물론 매일의 삶에서 그 안식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야곱의 환란 대속죄일의 경험 마지막 1년에 한 번 예표로서 보여준
1년에 한 번 이지만 이건 매일매일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이 일이 내 속에서 이루어져야만
주님과 함께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여기까지 아셨죠 여러분들 이제 좀 이해가 되셨나요 전편을 말씀드릴 때 이해들을
잘 못하신 것 같은데 어떤지 모르겠네요 지금은 이해가 잘 안될지도 몰라요 그러나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서 몇 개월 또는 몇 년 후에라도 깨닫게 되신다면 여러분의 영이 많은 성장을
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 먼저 말씀을 정리를 하면서 느낀 점을 올리기 전에 말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부탁의 말 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아직 이런 말씀을 정리하는데 미숙하고 오타 수정이나 이런 것이 하느라고 하지만
종종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선교사님께서 해주신 대로 메시지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최대한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리를 해 나갑니다.
그래서 읽다가 오타가 있거나 하시면 댓글로 보내주시면 제가 즉시즉시 수정을 하고 다른 분들이 볼 때에도
흠이 없도록 도움을 부탁드리고요 은혜받으신 거 있으시면 댓글도 좀 달아 주시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겠지만 저도 힘이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정리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성경이 몇 번의 개역을 하면서 수정되고 다듬어진 것이
킹 제임스 성경과 가급적 선교사님께서 비교하시면서 말씀을 풀어 주시는데 그때마다 느꼈던 것은 그리고
오늘 정리한 이 말씀을 보더라도 뭔가 자꾸 보기 좋게 모양을 바꾸고 비슷하게 변개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지를 알 것 같습니다 보기 좋게 고쳤다고 하지만 선교사님께서 상황 설명을 안 해 주시면 도무지
뭐가 뭔지 알 길이 없을때가 너무 많아서 성경 말씀을 읽기를 포기할 때가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지금부터는 이 말씀을 정리하면서 느낀 점은 하나님의 법의 중요성과 계명을 준행함에 있어 조금의 티끌만큼이라도 섞여진 것은 하나님께서 가납하지 않으신다는 것과 안식일과 절기에 대한 중요성 대속죄일이 가장
중요함에도 대속죄일이 없는 장막절을 열어서 먹고 마시고 하는 그래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이런 일에만
치중하는 것을 볼 때 아~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외롭고 탄식하시고 슬프시고 화가 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편에 선교사님께서 말씀하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씀을 따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바뀌는 장면마다
따라다니면서 하나님께서 안타까워하실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하나님께서 분노하실 때 같이 분노 해지고 마지막 부분에 그 늙은 선지자에게 임하셔서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으셨을 때는 너무나 슬프고 하나님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임하심과 빛의 비췸을 그렇게 받았음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그렇게 받았음에도 그 나라에 특사로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는 자로 파견되었음에도 지치고 허기진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을 저버리고 망각하고 헤아리지 못하고 그만 떡을 먹어 버린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기대를 하셨을 텐데 그 기대를 저버리는 아~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실 수밖에 없으셨음을 한 티끌이라도 하나님의 계명을 훼손하지 않으시고 온전히 지켜 내신 예수님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럼으로 이 말씀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고 더욱 조심하고 늘 교만하여 지지 않으려고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릴 수 있는
자가 되기를 그래서 일치를 이룰 수 있기를 늘 기도합니다.
성령님의 지혜로 분별을 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어떤 일에 순종해야 하는지 어떤 일에는 대적해야 하는지
어떤 일에 인내해야 하는지 어떤 일에 단호해야 하는지 예수님처럼 베드로가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였으나 하나님의 일을 막으려 할 때 단호하게 꾸짖으셨던것럼 저는 늘 세상 사람의 위로를 바라고 살았고 하나님 보다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 노력했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과연 그런 상황에서 그 여로보암 왕의 청을 거절할 수 있었을까 그 늙은 선지자의 꼬드김에 안 넘어갈 수 있었을까 하나님에 대한 저의 마음을 돌아 볼 때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넘어갔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이 은혜로 다가오는 것은 고린도전서 10장 11절 말씀처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이렇듯 경계로 삼을 말씀을 주심에 너무나 감사하고 선교사님께서 전해 주시는 이 말씀이 너무나 고귀하고 저에게 생명이 되고 있음에 감사하고 날마다 말씀을 정리할 수 있게 항상 붙들어 주시는 성령님께 감사와 찬양 올려 드리며 날마다 숨 쉬고 호흡하며 씻겨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