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초상집을 다녀오면서 대전시 고산사와 경기도 칠장사를 방문하였습니다
천년고찰 전통사찰 고산사와 칠장사 겨울 인대도 두 사찰은 신도들이 많히 모여 기도를 하는 소리를 듣는 내 마음도 편안한 마음으로 사찰을 나섰다.
대전시 고산사
법장산 법장사라는 이름을 가진 고찰, 고산사는 대전의 동남쪽에 있는 식장산의 남면에 서남향 하고 있다. 고산사는 나름대로 오랜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절집이다.
이렇게 천년 고찰 고산사는 특히 주변 경치가 아름다운 명승지로 유명하다. 고산사 주위에는 기암괴석이 솟고 맑은 물이 바위 사이를 흐르며 또 노송 고목이 울울창창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산사 가운데에는 훌륭한 법등과 승방 등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어서, 자연과 고찰이 어우러진 풍경이야말로 명승 중의 명승이라 하겠다. 꽃피는 봄이나 녹음이 우거진 여름이나 단풍이 물드는 가을, 그리고 백설이 쌓이는 겨울 등 4계절을 두고 아름답지 않을 때가 없어 언제나 대전시민의 소풍객이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고산사는 도심에 위치한 사찰의 특징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시내에서 언제나 접근하기 쉽고,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잘 조성된 등산로를 따라 대전시민들이 친근한 벗을 찾듯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러 마음편히 올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런 사찰이어서 권위적이지도 위압적이지도 않게 주위와 어우러져 있기에 시민들이 자신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부처님과 나누고, 고통을 함께 덜어내고,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부처님의 참 법에 다가가려 하는 것이다.
잎사귀에 움이 트고 자그마한 꽃이 피는 봄에도, 녹음이 우거져 시원한 그늘이 깊은 여름에도, 알록달록 단풍색으로 갈아입는 가을에도, 가지마다 흰눈이 내려 설국을 만드는 겨울에도 고산사는 항상 대전 사람들이 찾아 쉬면서 불법의 오묘함에 젖어들게 할 것이다.
고산사에는 진도개 보살님이 묵언 수행중입니다
1) 위치
고산사는 대전시 동구 대성동 산 3번지에 식장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2) 교통편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남대전 톨게이트로 나오면 17번 국도와 연결이 된다. 17번 국도로 주행하여 개천을 타고 1.5km정도 주행 하면 좌측에 대전 운전면허 시험장이 보이고 시험장에서 다시 1.5km정도 주행하면 우측에 산내 농협이 있다.
농협에서 조금더 주행하면 대성 삼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바로 우측으로 고산사 이정표가 보이고 이정표 자리에서 우회전하면 좌측으로 삼익 세라믹 아파트가 보이고 아파트 담을 타고 1.3km 산길을 타고 올라 가면 식장산 고산사에 도착하게 된다. 체육공원 시설이 되어 산행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대전역에서 금산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옥계동과 산내동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하차하시면 고산사 안내판이 보인다.
칠장사(七長寺)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현산(七賢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절을 처음 지은 것은 신라 자장(慈藏)로 전하고 있으나 본격적인 역사는 고려 초 혜소(慧炤) 국사가 머물면서 시작되었다. 그때 혜소국사는 지금 비각 자리에 있던 백련암(白蓮庵)에서 수도할 때 7명의 악인이 찾아왔는데 이들을 교화하여 7인 칠현(七賢)이 되었고 한다. 이로 인해 산 이름도 칠현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절 입구에 있는 철당간지주는 고려시대 작품인데 청주 용두사지(龍頭寺址)와 갑사(甲寺)에만 있는 드문 당간이다. 풍수상 칠장사의 형국은 행주형(行舟形)이므로 이 당간으로 배의 돛대를 상징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고려 말 왜구의 피해가 극심할 때 충주 개천사(開天寺)에 있던 사서(寺書)를 이 절로 옮겨서 보관함으로써 소실을 면한 일도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선조의 비인 인목대비와도 인연이 깊은데 그녀는 광해군에 의해 서궁으로 유폐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복위된 해인 1623년에 칠장사를 중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찰 터가 명당이란 이유로 인해서 세도가들에게 산을 빼앗겨 절이 비는 등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지금도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부속암자로 명적암(明寂庵), 극락암(極樂庵), 백련암이소속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