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성수동 ‘바이닐 팩토리’. 2017년 6월 1일 공식 개장한 국내 유일의 LP공장이다. 기계 가운데에 검정 플라스틱 덩어리가 놓이자 금형이 내려와 넓게 펴면서 판을 따끈따끈하게 구워냈다. 공장 프레싱 기계에 ‘마장뮤직앤픽처스’ 마크가 선명하다. 칼럼니스트이자 음반 기획자로 활약하다 2016년 이 회사에 합류한 하종욱 대표이사와 이엠아이EMI 등의 음반사에서 일해 온 박종명 이사, 1세대 녹음 엔지니어한테 사사한 국내 아날로그 녹음의 1인자 백희성 엔지니어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메이드 인 코리아’ 기계다.
하종욱 대표이사는 집에 1만장의 바이닐을 갖고 있다. 그는 그동안 바이닐 생산을 통해 음악의 본질을 복원하고 싶은 생각이 컸다. 바이닐 레코드는 추억이다. 집에서 레코드 비닐을 벗기는 행위는 의식에 가까웠다. 해설서를 읽으며 기타와 베이스 연주자 이름을 익혔고 12인치 원형판을 전축 위에 올려놓고 소리가 울려나오기를 숨 참으며 기다렸다. 레코드에 새겨진 감상평은 그 시절의 일기이자 추억이다. CD가 나오던 시절에도 진짜 듣고 싶은 음악은 고가의 바이닐을 구입했는데, 그에게 바이닐은 음악 감상에서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마장싸운드’가 바이닐 공장을 준비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문으로 참여하면서 “돈 안 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조언’했지만 결국은 대표이사 자리에 앉았다.
2004년 서라벌레코드가 문을 닫으면서 국내의 바이닐 타이틀은 체코나 독일에 주문 생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2011년 김포에 세워진 공장은 조용필의 <헬로> 바이닐 등을 찍었지만 불량률이 높았고 곧 짧은 이력을 마쳤다. 새 기계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시장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바이닐 시장은 새로운 성장산업이다. 2008년 500만 장 규모였다가 2015년 3000만 장 규모로 늘었다. 10여년 전부터 타워레코드 등에서는 바이닐 매장을 새롭게 열고 있다. 2016년 영국에서는 주간판매에서 바이닐이 디지털을 추월하기도 했다. 한국도 느리지만 ‘10억달러 규모의 향수 시장’에 합류하고 있다. 지난해 전년 대비 15~20% 판매가 늘어 28만장 정도가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닐 팩토리에서는 하루 1000장의 생산이 가능하고, 전 공정에 3~4주가량 걸린다. 수입 주문 생산에 3~6개월 걸리던 과정이 짧아진다. 생산량이 적어 생산비는 아직까지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박성수 <스테레오사운드> 편집주간 겸 오디오평론가는 마장에서 만든 엘피에 대해 “안정감”을 장점으로 꼽았다. “소재와 금형 방법 등 기술 노하우가 하나로 합쳐서 소리를 만들게 된다. 마장에서는 결함이 최소화되어 안정화가 이루어졌다. 21세기 제조사들이 추구하는 최종 목적지는 옛 소리의 부활이 아니다. 최고의 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하 대표는 까다로운 가수 조동진이 자신의 최신작 <나무가 되어>의 제작을 허락해주었다는 것을 긍지로 삼는다. <나무가 되어>는 공장 공식 개장일 일반에 공개되었다. 음반 프로듀서로 활약하는 조동익 역시 <어떤날> 1집과 2집을 제작할 예정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요한나 마르치의 <바흐: 소나타 앤 파르티타> 등도 발매할 계획이다. 2016년 바이닐 시장의 부활을 이끈 아이돌 음반 발매를 위해 대형기획사와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하 대표는 LP로 들으면 좋을 음악 발매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좋은 음악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믿기 때문이다. 마장뮤직앤픽처스의 업훈은 ‘음악을 새깁니다’. (20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