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예배 25일 오전11시 *집례/김진흥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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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즐거운 성탄절입니다 Date 2015.12.25
Text Lk 1,67-79
(67)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68)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69)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72)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74)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77)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1. 메~리 크리스마스! 지난 인생 생각하면 정말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감사할 일 중에는 몇 십 년 동안 해마다 성탄절을 즐기며 보낼 수 있었다는 것도 포함됩니다. 아마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난 성탄절이 있어 행복하였다.’ 누구에게 카드를 만들어 보낼까 생각하며 즐거웠고 경쟁적으로 더 예쁘게 장식한 성탄트리를 만드느라 행복했으며 성탄절 잔치를 준비하고 공연하며 설레었습니다. 로맨틱한 것과 거룩한 것이 함께 있는 성탄절만의 그윽한 분위기가 마냥 좋았습니다. 요즘은 이 성탄절의 거룩한 즐거움을 전부 돈벌이의 수단인 상품으로 대체하려고 해서 아쉽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이 성탄절의 거룩한 기쁨을 빼앗긴다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저는 꿋꿋이 성경적인 성탄의 의미도 되새기고 다양한 성탄장식과 성탄행사들을 하면서 죽을 때까지 성탄절을 메리 크리스마스로 즐기며 살려고 결심합니다.
오늘 말씀은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세례 요한이 태어났을 때 한 예언입니다. 이 예언에는 아들 세례 요한의 사역과 메시아에 대한 대망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예수님의 탄생이 기쁠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성탄절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려는 세상의 집중공격 속에서 억지로라도 기쁨의 이유를 찾고 또 누리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첫째, 예수님의 탄생은 정치적 의미에서 기쁜 일입니다. 68-73절 말씀인데 사가랴는, 메시아를 “구원의 뿔”이고 “우리의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을 하시는 분이라고 노래합니다. 메시아는 힘들고 어려운 세상의 현실을 이기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할 때부터 망가진 세상에서 타락한 존재로 살아야 했고 이 현실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고통은 생노병사로 나타납니다. 나고 늙으며 병들고 마침내 죽어야 하는 길을 걷는 동안 내내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으니 평강을 알 지 못하고 살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인생’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왜 기쁩니까? 인생을 이런 고통에서 건져주시려고 세상에 오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세상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만 제 자신의 인생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저는 정말 왜 세상에 태어나서 이 고생이지 하는 생각을 아주 어렸을 때에도 했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악악거리고 울어야 하는 세상에 뭣 하러 왔냐고, 축하해 주기 보다는 안 됐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인생이 주님을 알면서부터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자존감이 생기더라구요.
주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그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질병의 고통에 대하여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 늙고 병들어 죽는다 해도 부활의 소망과 더 좋은 천국의 소망이 있으니 조금도 아쉬워할 것이 없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주님은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천국 맨션 입주권을 주셨고 다시는 아프거나 눈물 흘릴 일 없는 세상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근래에 와서 개인적으로 정말 고맙고 감사한 것은 예수님 안에서 사는 저와 저의 가족들을 주님께서는 병들면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예 병원신세 한 번 안 지고 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오심을 기뻐하고 기뻐하십시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우리 인생길 다 가는 동안 만사형통하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탄생은 종교적 의미에서 기쁜 일입니다. 75-77절 말씀인데,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라는 말로 사가랴는 예언하였습니다.
인생의 참 진리와 구원의 길을 찾는 구도자들이 세상에 많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이렇게 참된 도리를 찾고 구원의 길을 찾는 구도자들의 노력을 우리는 종교라고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수많은 종교가 만들어졌지만 그 어떤 종교도 찾고자 하던 진리를 찾지 못하였고 얻고자 하던 구원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에 대하여 주님은 마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몽학선생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딤전6,3-5에서 성경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결국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만 하다가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고 마침내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혼돈과 어두움 속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진리의 빛이 되고자 오신 분입니다. 그러니 세월이 오든 가든 상관 없이 오로지 땅구더기처럼 세상 것만 바라보고 살지 않고, 적어도 참 구원의 길을 찾고 있던 사람이라면, 주님의 성탄은 기뻐할 것밖에 없지요.
주님은 인생의 발목을 움켜잡고 있는 죄의 사슬을 끊어주셨습니다. 어떻게요? 자신이 대신 십자가에서 인생의 죄를 갚아주심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신토록, 즉 인생길을 다 갈 때까지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대책도 마련하셨습니다. 히9,26-27에 나와 있는 대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셨고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한 번에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억 원까지 하는 굿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월대보름마다 제사 때마다 빌지 않아도 됩니다. 귀신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죽는 것까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만 붙잡으면 그냥 땡~입니다. 만사불여튼튼입니다. 성탄절은 그래서 기쁜 것입니다. 아멘.
셋째, 예수님의 탄생은 문화와 문명적으로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일입니다. 78-79절 말씀인데요,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마치 어둡고 그늘진 곳에 햇볕이 드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음습하여 곰팡이 피고 세균이 득실거리며 춥고 괴롭게 살던 인생이 문화적으로 문명적으로 잘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가끔씩 원시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 얘기가 TV에 나오는 것을 봅니다. 순수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저기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그렇게 오지에서 반 짐승처럼 사는 인생이 행복할까요? 좋게 봐줘서 조금 더 순수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것이 정답은 아니지요. 인생이 산짐승처럼 단지 생존을 위해 사는 존재가 되는 것을 바라십니까?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믿으십니까? ‘자연으로 돌아가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라’ 일정부분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들도 있습니다만 그런 구호에 속아 푹 빠지면 안 됩니다. 그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순수함을 잃지 않으면서 보다 나은 모습의 삶을 즐기며 누리는 삶을 지향하여야 하겠지요. 인격에서나 삶에서나 점점 더 좋아지는,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인격과 삶으로 진보해가게 하는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면 그 어두움이 물러가고 음지가 양지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문명화이고 차원 높은 문화입니다. 교회당이 세워지는 것은 단지 집 하나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당이 세워지고 거기에서 말씀이 선포되며 말씀으로 훈련 받으면 그 나라에 노예제도가 혁파되고 봉건주의가 무너지며 그 동네 그 가정에 악한 인습이 그쳐지고 자유와 민주와 평등과 평화가 만들어집니다. 저속하고 퇴폐한 문화를 음지로 숨게 합니다.
여러분, 이래도 주님의 오심을 기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성탄절을 그저 그런 날이나 귀찮은 날로 치부하시겠습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3. 오늘 말씀과는 별도로 정말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오신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 모든 것을 넘어 주님은 고통 중에 있는 인간과 함께 하시고자 오셨다는 점입니다. 축제분위기도 좋고 선물도 좋으며 주님이 하신 사역도 다 좋습니다만 나와 함께 있기 위해서 오시는 그분의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이 성탄절에 반드시 느끼고 알아야 하는 은혜입니다.
금맥을 찾아다니던 어떤 세 명의 사람들이 우연히 큰 금맥을 발견했습니다. 당장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 음식과 장비를 챙겨서 일주일 후에 그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금을 발견한 일에 대해서는 모두 목숨을 걸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답니다. 일주일 후에 그 장소에 모였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들의 뒤를 백 명의 사람들이 따라왔더랍니다. 아무도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답은 그 따라온 사람들 입에서 나왔습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당신들의 얼굴에 너무 큰 기쁨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필경 금광을 발견했기 때문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는 당신들이 떠나는 날만 기다려왔습니다.”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기쁨, 예수로 말미암아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