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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불가능한 사랑 – 윤영한 목사
그 질문 중에 하나는 내 딸이 아파서 입원했는데 아주 고민하는 엄마 집사님이 저한테 그래요. 내가 젊었을 때 지은 죄 때문에 얘가 아픈 것 같다 그래요. 이런 유사한 질문들은 해마다 한 7~8건씩 그렇게 계속해서 제가 듣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이 특별히 교인들 중에 누가 사고를 나면 그들에 대하여 연대감을 가지구 막 극렬하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왜 그랬을까? 하는 아주 그 이유를 따져요 왜 사고났지 그 예배드리는 날에 왜 거기 가 있지 막 이래요.
그래서 하나님 뭐 한 것 아닌가 회초리를 든 게 아닌가라는 뉘앙스로 묻는 거예요. 목사님 이거 이렇게 했는데 이렇게 해서 저렇게 된 것 아니에요. 그래요. 우린 거의 고질에 가까워요 막 유전자에 그게 새겨져 있나 봐요. 하나님 사랑을 완전히 받았다. 느끼면서도 뭔가 나한테 뭐가 터지면 자꾸 나는 캥기는 걸 끌어올려서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예요. 오늘 이 30~40분의 시간이 그걸 다 제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오해를 푸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해불가 사랑입니다. 이 세상을 덮고 있는 어두움은 하나님께 대한 오해의 어두움이다. 하나님의 품성은 잘못 이해되고 그릇 해석되고 있다.
하나님의 품성이 널리 알려지게 해야 한다. 세상에 빛을 마지막 자비의 빛 곧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마지막 금율의 귀별은 하나님의 사랑에 품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해야 된다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우린 매우 겸손해진다. 우리는 그분의 무한한 사랑과 따뜻한 동정심에 대한 많은 증거들을 본다 그것은 불효한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자애보다 훨씬 큰 거래요. 지구에 있는 모든 엄마들 마음에 있는 모성애를 다 짜도 그쵸. 그게 한 방울이라면 하나님은 태평양 같다는 거죠.
다음 구절 인간의 마음의 통로를 통하여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온 아버지의 모든 사랑 사람들의 심령 속에 열려진 긍율의 모든 샘들은 하나님의 무한하고 다함이 없는 사랑과 비교해 볼 때 끝없는 대양의 작은 실개천에 불과하다 그것은 혀로도 붓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셔서 세상을 위하여 돌아가게 하신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결코 완전히 깨달을 수는 없다. 영원 그 자체로도 그걸 다 헤아리지 못한다는 거예요. 자꾸 엄마 얘기하고 가정 얘기 하는 건 그래도 근사하게 하나님 사랑을 조그맣게 반사하니까 들 예가 그거밖에 없어서 자꾸 드는 겁니다.
전쟁 때 부상병이 누군가 부를 때 이 부상병이 죽는 게 확실하면 누구를 부른다 그랬죠 엄마 엄마를 부른다고 했죠. 우리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 맨 끝에 부른 말도 엄마 같아요. 나같은 인간도 이 땅에 태어나서 그렇게 사랑을 많이 많이 받아본 건 엄마가 유일해요. 뭐 이상한 엄마들도 많지만 정상적인 엄마를 얘기하는 거예요. 나 같은 인간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준 분은 엄마밖에 없어요. 죄짓고 실패하고 버림받고 그래도 찾아가도 나를 따뜻하게 맞아줄 유일한 존재는 누구요. 엄마뿐이에요. 내가 아무리 버러지 같애도요 엄마한테 가면 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 돼요.
그리고 가장 많은 위로를 받고 내 말을 가장 잘 믿어주고 속아주는 유일한 사람이 엄마예요. 저는 30대 다니기 전에 다른 대학을 쭉 다녔는데 그때 신앙도 없을 때 엄마를 얼마나 속였는지 몰라요. 가난한 시골 엄마가 뭘 모르니까 이런 책 산다 이 전공책 산다고 그러니까 다 사주는 거야. 막 온갖 집안을 다 팔아서 애 공부시키려고 그렇게 하는 나중에 철들고 얼마나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엄마가 속아준 것 같기도 하구 학비 보내줘 기숙사비 보내줘 뭐 보내줘 책값 보내줘 그리고 또 없다. 그러면 더 다 보내주고 가난한 바닷가에서 그렇게 했는데 참 지금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엄마한테 엄마가 이거 안 보니까 괜찮겠죠. 아주 미안한 생각이 가득해요.
그렇게 엄마를 속여 먹고도 뒤통수 쳐놓고도 또 방학 때 내려가면 그렇게 아들 왔다고 잘해 주세요. 실향민 엄마가 북한의 가족들을 나르고 내려왔는데 아들을 봤는데 이 아들이 전 재산이죠. 가족들이 정말 제 말은 곧이곧대로 속는 분이 저희 엄마셨어요. 그래서 무서운 조폭 깡패들도요 누구 앞에 쪼그려 앉냐면 엄마 무덤 앞에서 쪼그려 앉죠 그 깍꺼머리 무서운 깍두기들도 이렇게 막 문신하고도 그 무덤에서 누구 부르고 오는지 알아요. 어 엄마 엄마 그러면서 막 제림묘지에 갔더니, 아주 꼬부랑 하얀 머리 할머니하고 그것보다 좀 조금 꼬부랑 할머니라 딸 같애 손주까지 손 착착 무덤에 이렇게 서 있어요.
그랬더니, 나이 많은 할머니 그리고 딸 그 밑에 손주들이 이렇게 있는데, 그 나이 많은 할머니가 누구 부르는 줄 알아요. 어 엄마를 부르고 엄마 약하디 약한 그 엄마의 가슴에서 나온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져서 이렇게 나온 것이 자식들을 다 정복해요. 그래서 우린 때가 되면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묘 찾아가지 않아요. 누구 찾아가요 우리 엄마 묘지를 찾아가요 지금 우리가 읽었죠. 하나님의 사랑은 대양 같아요. 태평양이라고 생각해 근데 인간의 모든 사랑을 다 모아봐도 실개천이래요. 쉽게 표현하면 젓가락에다가 태평양 물 1방울 딱 묻었어요. 그 1방울을 톡 떨겼는데 엄마 사랑입니다. 저희 병원에 산후조리원이 있어요.
산후조리원도 1주일에 1번씩 예배드리고 뭐 코로나 때문에 이제는 없었는데 계속 꾸준히 제가 갔었어요. 엄마 약 300여 명을 제가 만났어요.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또 몇 가지 이렇게 묻습니다. 뭘 묻냐면 그 애기 엄마들이라고 봤죠 우리가 청년활동 하던 그 애들이 아가씨가 엄마가 된 거예요. 막 그렇게 지 몸 아끼고 막 화장하고 이러던 애가 화장도 안 하고 브라져도 앉히고 빨리 젖을 먹여야 되니까. 그리고 옷에 젖국물 지금 막 지저분하게 해서 상당히 반갑게 얘기하는데 그렇게 변했어요. 애를 낳고 나서 저 묻습니다. 야 그 애가 너무 이쁜데 그게 나한테 팔라고 진짜로 사고 싶어요.
근데 그 애기 엄마가 얘를 이렇게 안고 있는데, 그 엄마 눈에서 거룩이 뚝뚝 떨어져요 거의 뭐 신성이 번뜩이듯이 그 처녀 때는 그런 거 없었거든요. 얘를 위해서 죽을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서 얘를 쳐다보는 거예요. 팔으라고 했더니, 뭐하세요. 그런 눈빛에 1억 줄게 하니까 10억 하니까 왜 그러세요. 나중에 100억 하니까 잠깐 눈이 흔들리더니, 이내 정신 차리고 그래도 안 돼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또 하나 질문합니다. 마지막 질문 그러면 너는 이 애가 만약에 아파 심장이 아파 그래서 심장을 교체해야 돼 근데 엄마 거만 딱 맞대 그럼 넌 어떻게 할 거야라고 그 애기엄마한테 물어요. 금 애기 엄마들이 지체하지 않고 뭐라 그러는 줄 알아요. 내가 죽고 살릴 거라고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처녀 때 좋아하던 돈 아무 신경 안 쓰고 그렇게 처녀 때 좋아하던 자기 몸 하나 가꾸고 죽는 거 그렇게 벌벌 벌레 하면은 나와도 기겁하다 내가 자기 심장 떼놓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 두려움이 없는 거예요. 사랑은 이걸 다 뛰어 넘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전 지구적으로 지구에 환란이 닥칠 때 하나님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그 환란 때 우리를 어디서 시골로 보내고 이렇게 피해 주고 막아주는 게 아니에요. 환란을 없애주는 게 아니라 우리 각자의 마음이 사랑을 주는 거예요. 겁이 안 나요? 어마어마한 돈도 내 목숨 버리는 것도 아무것도 겁이 안 나는 그 사랑으로 죽음도 두려움도 어떤 어려움도 다 극복하기 때문에 마지막 때 하나님 우리 가슴에다 뭘 주신다 사랑을 부어주세요.
그 사랑 근데 그 부모들은 지들 행복할라고 애 낳은 거잖아요. 지들 사랑해서 애 낳았지 생각하지도 않고 뭐 하다가 뭐 애가 낳아요. 금 애를 낳자마자 부부들은 부부 행복은 뒤로 쫙 빠집니다. 그리고 아이의 행복이 1순위가 돼요. 지들 결혼식 사진은 떨어지고 애 사진이 올라가기 시작해 그리고 그 아이한테 평생 종로를 타기 시작해요. 그렇게 노예처럼 살면서도 엄마가 처녀 때보다 더 행복해 하는 거예요. 마치 이 땅에서 작은 하나님처럼 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여기 계신 부모님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내가 정말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단 1번만이라도 우리 애를 이용해서 뭔가 나쁜 짓 해볼까 하는 생각 해 먹은 적 있으세요. 그런 생각을 쥐어먹은 적 단 하루만이라도 우리 애를 남의 애처럼 생각해 볼 수 있겠어요.
응급실에 애기 엄마가 애 들추업고 옵니다. 잘하는 간호사 목사님 좀 와주세요. 기도 좀 해주세요. 그러면 또 집에서 올라가서 옷 갈아입고 후루룩 내려가면 애가 경쾌한 거죠. 얼굴이 새카매져서 들어와요. 그러면 엄마는 얘가 죽는 줄 알아요. 그리고 엄마가 짐승처럼 비명을 지르래 그리고 애가 진정되고 조치를 해서 밤새 끙끙 앓다가 한 12시쯤에 그 아이는 늦게 잠들었어요. 늦게까지 막 쿵쿵 앓아요. 그 옆에서 엄마가 밤을 하얗게 치세요. 엄마는 물 한 모금 먹지 않더라고요. 마침 내가 열이 떨어지고 뭐가 정상이 되니까. 곤히 자게 되니까. 그때 엄마가 축 처져 시름을 다 데려놓고 그런 엄마들은 그런 사랑을 가져서 기분이 나쁠까요? 행복할까요?
엄마 목숨보다 아이의 목숨이 더 귀하고 엄마 행복은 뒷전인데도 왜 엄마가 행복한 거죠. 엄마들은 그렇게 마치 지가 하나님인 것처럼 그 아이에 대하여 그렇게 사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한테 줄 수 있는 가장 큰 저주가 뭔지 알아요. 내 새끼를 위해서 희생하지 못 하게 하는 거예요. 그것처럼 큰 저주가 없는 거예요. 어느 장모님이 여러 자식을 낳고 맏이를 잘 키웠어요. 대학도 공부시키고 뭐하고 사업도 하게 하고 그리고 손주도 다 봐주고 은퇴한 다음에 그렇게 다 했어요.
그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대학 공부 또 손주까지 봐줘 사업 밑천도 되죠. 다 됐어요. 결혼시켜 주고 다 해 그 아들이 사업이 안 됐어요. 장로님이 퇴직금 다 줬어요. 이거면 되겠지 또 안 됐어요. 마지막 집까지 다 줘요 돼요. 안돼요. 또 안돼요. 찾아가서 그래서 장로님 이것까지 하면 큰일 납니다. 장로님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요. 제가 조금만 더 대줬으면 내가 쪼끔만 더 있었으면 얘가 일어날 거라고 내가 돈이 없어서 지금 평생 모은 거 다 줬는데도 그렇게 퇴직금 내줘 사업 때문에 집 내줘 나도 지금 지하로 내려갔으면서도 그 집에서 그 얘기를 하는 거야. 아니 허구한 날 내 새끼한테 해주고 또 해주면서 이 부모는 왜 미안하고 왜 가책을 갖는 거죠.
대체 자식들한테 무슨 약점을 부모가 잡혔길래 부모가 무슨 잘못을 크게 했길래 왜 자식한테 질질 매어서 이렇게 애절복절하게 사냐는 거예요. 그 정도 해줬으면 됐지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어도 애가 불행해지는데 왜 같이 불행해지냐고 왜 맨날 부모는 자식한테 죄처럼 사냐 누구 닮은 거예요. 하나님의 형상 고대로 닮은 거예요. 저라는 영화 시나리오인데 집에 강도가 들었죠. 사무실 같은 집인데 엄마가 그 강도랑 실랭이를 벌이다가 쓰러졌어요. 팡 하고 정신이 가라 가물가물한데 이 엄마가 쓰러지면서 생각한 거야. 아무래도 이 강도가 뭘 쓰고 왔는데 이상해요.
우리 애 같애 그래서 막 이렇게 하다가 살점을 뜯었어요. 손톱에 이 엄마가 의식이 잃어 가면서 생각하는 나중엔 경찰이 와서 내 손톱에 있는 살점을 갖고 어떻게 하면 얘가 잡히지 않을까? 그래서 그 엄마가 그 살점 어떻게 한대요 먹잖아요. 먹는데 채 삼키기 전에 숨이 끊어졌어요. 나중에 경찰에서 살펴보는데 아무리 봐도 뭐 오리무중년 증거를 못 찾아 맨 끝에 어떻게 엄마가 입을 허 벌리고 돌아갔는데 혀 밑을 살짝 들었더니, 거기 그게 그래서 우리는 생각해요. 그리고 확신하는 겁니다. 엄마한테 이런 사랑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은 결단코 우리를 버리지 않을 뿐임을 우리가 확신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그 1방울 모성애들로 고 1방울 가지고도 엄마는 애 땜에 죽고 못 사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그러는 거지 얘 이놈아 니 새끼를 니가 그렇게 사랑하면 니 가슴에다 이 사랑을 준 나는 오죽하겠냐 하는 거예요. 니들이 아무리 못돼먹고 니들이 아무리 죄가 많아도 니 새끼를 위해서라면 양심까지 팔아먹고 온갖 짓 다 하는데 그 가슴에 그걸 내 넣어준 나는 뭘 못하겠냐는 거예요. 찌질한 니들도 죽어 시원찮은 마음으로 자식의 모든 걸 다 바치고 살면서 나는 그렇게 안 할 거냐는 거예요. 내가 우주를 거덜내서라도 우주 있는 것 다 팔아서라도 독생자 예수를 죽여서라도 온 우주의 행정력을 다 동원해서라도 우리를 구원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 사랑을 누가 제일 가장 잘 아냐면 오늘 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제일 잘하는 존재가 누군지 알아요.
사단이에요. 사단 그러니까 사단이 하나님한테 대주는 거예요. 그 한낮 피조물 루스벨이 하나님한테 대드는 거죠. 하나님 마음이 어떤지 아니까 하나님이 자기 때문에 어쩔 줄 몰라하는가? 아니까 그깟 피조물이 대드는 거예요. 성경 1구절 볼래요. 엄마 이게 왜 안 되냐 아유 목사님 다리도 불편한데 죄송합니다. 그다음 없습니까? 요나가 매우 싫어하며 성내며 원컨대 날 죽여달라 그 얘기예요. 유명한 요나사 사장의 말씀이에요.
요나가 하나님을 매우 싫어하고 화를 냈대요 성경은 점잖은 책이어서 매우 싫어했다면, 정말 싫어합니다. 아주 부드럽게 번역했는데 이 정도야 정말 할 말 못할 만 하나님한테 다 쏟아부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요나사 사장 보면 3번이나 자기 죽여달라고 그래요. 하나님한테 엘리야도 힘들 때면 하나님한테 찾아가 가지고 죽여달라고 그랬죠 왜 하나님한테 와서 죽여달라 그래 이세벨 한테 가서 죽여달라면 바로 죽여주거든요. 꼭 왕이 못 돼갖고 그러니까 누구한테 찾아와요. 하나님이 지 안 죽이는 거 아닐까 와가지고 하나님을 죽여달라 그래 선지자들은 걸핏하면 하나님한테 와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선지자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 생명을 얼마나 아쉬워하는지 하나님이 나 없으면 못 산다는 것 다 알아 그리고 자기를 죽여도 금방 살릴 거 다 알아 이 성경절은 딸이 친정엄마한테 대들고 싸우는 구절하고 똑같은 거야. 여러분 친정엄마한테 대든 적 있어요. 나가 죽어 이년아 그럼 엄마나 죽어 막 이런 사람 뭐 이런 거야. 그럼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 누구라 그랬어요. 친정엄마예요. 의붓아버지예요. 그 하나님은 엄한 분으로 생각하니까 이번에서도 툭 하면 찾아서 애가 계속 안 나니까 내가 지은 과거 죄 때문에 우리 남편이 저렇게 된 거라고 요번 사업 안 된 것도 우리 애가 뭐 한 거고, 이번은 내가 죄져서 이렇게 된 거라 내가 아프거나 자식이 아프면 왜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벌 받는 거라고 왜 이렇게 쉽게 얘기를 하죠.
하나님을 혼내는 시아버지쯤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왜 자식이 아프면 부모가 지은 죄 때문에 아프다는 생각을 어디서 그거 누가 시켜서 하는 거예요. 아니 우한이 닥치면 그 우환이 내 죄 때문에 왔고 그거 벌 받는다는 생각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일까요? 이상한 존재가 주는 생각일까요? 이사회에서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리라며 그가 상하믄 우리의 죄악을 그가 징계를 받고 이렇게 했다고 나온다구요. 이 말씀대로라면 나 대신에 어린 양 예수님 내 죄를 다 뒤집어쓰고 돌아가셨는데. 그것도 하나님이 스스로 원해서 이렇게 모든 질고 질병과 고통을 주고 고통 당했었는데 왜 내가 뇌젯값을 가지고 아프고 우환히 울고 벌을 받습니까?
아니 에덴에서 어 아담과 하오가 죄 지었으면 아담과 하오가 죽어야지 왜 어린 양이 죽어요. 생각해 보세요. 내죄 때문에 내가 벌을 받는다면 예수님은 왜 돌아갔어요. 내 죄를 내가 갚는다면 하나님이 할 일이 뭔데 도대체 왜 죽으셔요 하나님 무슨 용왕님이에요. 이무기예요. 왜 재물을 갖다 바쳐야 되는데 그래서 기독교의 악은 진짜 살인 강도 뭐 도적질 이런 게 아니에요. 기독교의 악은 뭐냐면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는 내 아이가 죽는 겁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악은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 내 자녀가 죽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의 핵심은 이렇게 죽게 된 아이를 이유 불문하고 하나님이 책임지고 건져내는 게 기독교의 핵심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요청도 안 했는데 알아서 십자가 달려서 그 책임을 다 지시고 돌아가신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 이렇게 이해하면 우리가 더 악해져요 내가 믿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우리 더 망가지고 타락하나요? 오히려 가슴을 치고 또 하나님께 밭도 나가게 되고 또 그 좋은 분 앞에서 변화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게 아니에요. 하나를 사랑에 젖으면 져줄수록 우리 몸은 당연히 더 건강해지는 거 아니래요. 저도 죄도 많고 못된 인간인데 20대 때 병원 앞에 뭐 대학이 있어요. 그 시골 올라와서 그 대학을 다니는 2학년 때입니까? 방학에 고향에 내려갔더니, 서울에서 전도 다녀왔어요.
저는 그때 데모만 하고 그랬는데 양복 입은 성경 등 청년들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정치에 관심 하나도 없고 사회문제 아무 관심도 없는 36대생들이 온 거예요. 얼마나 점잖고 우린 찢어진 청바지에 막 이렇게 엉망으로 해서 얘네들은 너무 교인들이라 거기서 매력을 제가 느껴서 서울 올라오면 교회로 오래요. 토요일은 수강이 없으니까 토요일날 그 교회 갔어요. 계속 댕기면서 신앙을 생각하게 되고 늘 죽음 문제로 고민했는데 서서히 해결해지는 것 같앴어요. 대학에서 나오면 청량리 그 떡정교 가면 시조사라는 데가 있어요. 고 앞에 동조관 앞에 서야 되는데 수업 끝나면 막 뛰어가 가지고 대쟁도 사고 시대 소망도 사고 제일 먼저 산책이 정로의 계단 번역이 이름이 여러 가지인데 아무튼 생애 그 책을 샀어요.
그 책을 사가지고 수업 끝난 다음에 제가 부천에서 왔다갔다 청년까지 했는데 방에 들어가서 그 책을 보는데 제1장 둘째, 페이지 중 하나님의 사랑편 있는데, 뭐가 막 마음에 물컹하면서 뭔가 확 뭔가 따뜻한 어떤 액체물체 같은 뭉글몽글한 게 저한테 확 임했어요.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큰 분이 제 뒤에서 저를 꽉 매일 이렇게 술하고 뭐 하고 데모하고 막 이러던 애가 갑자기 뭔가에 뒤집어 써 가지구요. 제가 거기서 엉엉 울었어요.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 것 같애 이런 거 있을 수 없는 거거든요.
그리고 나서 1~2달 지난 다음에 침 내놓고 모든 걸 다 끊었어 이렇게 하던 거 이렇게 하려고 뭐 다 끊었잖아. 미련 하나도 없이 다 하나님의 사랑에 임한 거 같애요. 그게 저도 모르게 막 저를 바꿔버렸어요. 그러다가 군대 끌려가고 데모하면 잡혀 가니까 또 갔다 와서 대학을 바꿨어요. 그래서 이 자리에 선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거예요. 어느 목사님 사모님이 예전에 병원에서 선고를 받았어요. 그 사모님 소원은 1가지였어요. 제발 우리 딸의 생일날에 내가 죽지 말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어.
간절히 왜요 앞으로 수십 년 살 딸아이 생일날마다 엄마가 생각나면 애가 힘들잖아요. 애가 슬퍼할까 봐 하나님 마지막 소원이 있습니다. 해마다 제 딸이 자기 생일에 슬프지 않게 은혜를 내려주세요. 은혜를 내려주세요. 다행히 사모님은 그 기대대로 딸 생일이 다 지난 다음에 떠났어요. 나중에 이 이야기를 딸 애가 듣고 어떻게 됐을까요? 실신하는 거죠. 실신하는 죽어 가면서까지 딸을 걱정한 엄마의 사랑을 생각하고 그래서 호세아 4장 육조 같은 데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내백성이 이것 때문에 망한대요 우리가 착하지 않고 못돼 먹고 품성이 안 좋아서 망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몰라서 이런다는 거예요. 십자가 강도가 예수님을 봤어요. 법정에서부터 갈바리로 올라오면서 비아돌로라사 그 길을 쭉 같이 올라오면서 예수님 보니까 이 파렴치한 강도의 마음에 살인마의 마음에 이런 마음이 밀려왔어요.
내가 쭉 올라오면서 보니까 저분을 보니 내가 지은 죄가 아무리 크고 많아도 저분은 내가 지은 죄와 상관없이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을 그 올라오면서 심지어 자기 죄가 그렇게 크고 흉측한데도 그 예수라는 분 앞에 딱 서면 그 죄가 요렇게 작아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작아보일 만큼 큰 사랑을 본 거야. 야 저런 사랑이라면 나같이 죽어 싼 인간들도 용서받을 수 있겠구나 저분의 사랑이라면 나를 다 덮고도 남겠구나 이런 생각을 한 거예요. 이 사랑을 느끼니까 얘가 용기가 생긴 거예요. 그 무서운 살인마가 정말 염치도 없이 부탁을 하는 거예요. 예수님 저 같은 것도 천국 갈 수 있냐고 감히 묻는 거 공개 청앙 당하는 사형수들이 맨 마지막에 누구 부르는 줄 알아요.
엄마 불러요 엄마 내가 무슨 죄를 쳐도 내가 아무리 최악의 인간일지라도 내 편이 되어주고 나를 감싸줄 엄마를 부르는 거죠. 강도가 지금 엄마를 부른 거예요. 십자가에서 하늘 엄마 사랑을 보고 엄마하고 부른 거나 마찬가지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지요 그 반면에 유다는 예수님의 마지막 눈빛도 저버리고 자기 속에서 울리는 사단의 음성을 들어요. 사단이 계속 속삭이거든요. 얘놈아 니는 하나님의 아들을 팔았다고 니가 무지한 자를 팔아서 죽게 했으니 넌 죽을 죄이냐 그리고 뭐라 그래요.
하나님도 너를 버렸을 거라고 속상해 그리고 너는 이제 하나님한테 저주를 받을 거라고 유다가 자책을 도와줘 야 내가 메시아를 팔다니 세상에 나 같은 놈을 누가 좋아할까 나 같은 건 뭐 해야 돼 죽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죽어야 된다고 근데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우리가 나 같은 건 죽어야 돼 죽어야 돼라는 생각을 할 때 그 생각은 내 생각이에요. 하나님 생각이에요. 엄마는 언니밖에 몰라 나는 공부도 못하고 나 같은 건 죽어야 돼 이건 작은딸 생각이에요. 엄마 생각이에요. 유다가 자기 같은 건 죽어야 된다는 생각을 할 때 그 유다 엄마 입장에서도 얘가 죽을 애예요. 내가 아무리 천하고 엉망진창해도 우리 엄마가 보기엔 내가 천해요. 절대 아니잖아요. 죄 많은 인간 엄마도 이 정돈데 하나님이 오죽하겠냐고 근데 이 바보 같은 유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요.
이제 하나님이 나를 버려서 나를 저주해서 두려운 형벌을 받겠지 하나님이 내린 두려운 형벌이 너무너무 겁나고 떨리니까 무서우니까 내가 먼저 죽어야지 하는 거예요. 얼마나 끔찍한 오해를 해요. 하나님 가슴이 터질 만큼 오해를 한 거 아니에요. 미국에서 미주 한국일보에 나온 기사죠 미국 사람들도 곰 쓸개즙을 이렇게 먹나 봐요. 그래서 엄마 곰하고 새끼곰을 잡았대요 근데 새끼곰 여기다가 쓸개 빨대로 꽂은 거라 그러니까 얘가 아프니깐 계속 칭칭 대고 우니까 옆에 있던 엄마가 못 견딘 거예요. 엄마가 막 발버둥치다가 이 묶은 걸 다 끊었어요. 피 흘리면서 그리고 심지어 문을 뿌시고 밖으로 나갔어요. 그리고 새끼가 있는 데로 들어갔어요.
들어가서 애를 막 땡기니까 애는 이게 안 되잖아요. 안 빠지는 거 엄마가 알았어요. 그 새끼 곰 어떻게 했게요 가슴에 폭 안고 질실사시켰어요. 죽였어요. 애가 너무 힘드니까 그리고 엄마가 어떻게 하는 줄 알아요. 자기 머리를 벽에 박고 죽은 호세야 13장에 하나님이 곰에 빗대서 말씀해요. 하나님 마치 새끼 잃은 암콤처럼 우릴 찾아오셨다고 말씀해요. 여러분 이 사랑에선 누가 우리를 끊겠어요. 이 무지막지한 사랑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나갈 때 하나님이 부르잖아요. 그리고 양 1마리 부르잖아요. 가죽옷 입히잖아요. 그 양 가지고 예수님 가죽 아니에요.
아담과 하와야 일로 와봐라 그리고 어떻게 고개를 푹 숙이더니, 엄지발가락 이렇게 칼로 열십자 그리더니, 거기서부터 껍데기를 예수님이 쭉 벗겨서 온몸을 흘러도 쫙 뺏기는 껍데기라 그거 가지고 아담과 치마를 옷을 입혀주고 내가 이렇게 죽어서 너 살릴 거니까 너는 엄마만 믿으라 엄마만 믿어 하고 하나님이 죽으신 거예요. 우리 죄를 그치게 하는 건 이 사랑밖에 없지 않아요. 회개는 그 사랑을 받은 만큼만 회개하는 거 아니래요. 우리의 성품이 좋아지는 비결은 하나님이 내게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를 경험하는 만큼만 좋아지는 것 아니에요. 주의 영께서 사랑의 연께서 우리 가슴에 그런 큰 사랑으로 임해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나를 가장 사랑해 준 그 어떤 사람보다 수천억만 배 수천억만 배 더 나를 사랑하시고 끔찍히 위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그렇게 경험하는 은혜가 날마다 날마다 저와 여러분의 가슴에 바람처럼 임하기를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그 사랑에 여러분 젖어 살게 되길 간절히 바라며 말씀을 마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 속에 자식을 위해 죽고 못사는 마음을 넣어주신 아버지 하나님 혹 저희가 하나님은 인간 부모보다도 못한 사랑을 가진 분으로 오해했다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아는 지식이 날마다 넓어지고 깊어지고 높아지도록 저희의 심장을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