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깊어 지자 토론토의 날씨는 한국과 달리 비가 오지 않았다. 오더라도 땅 속까지 적시지 못하고 가랑가랑 하니 지렁이의 작황이 즐어들 수밖에 없었다. 지렁이 가격은 올랐지만 작황이 줄다 보니 수입은 전만 못했다. 거기다 토론토가 워낙 위도가 높은 지역이라 낯의 길이가 턱없이 길어졌다. 그러니 지렁이를 잡을 밤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반갑게도 미스터 리가 영주권이 나와 제대로 된 공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활달한 성격의 미세스 리는 남편의 취직자리 하나쯤은 문제도 아닌 듯 했다. 그러면서도 주말이면 부부가 함께 차를 타 부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말은 놀이삼아라지만 배운 도둑질이라는 게 바로 그런 거였다. 스타트 라인을 떠나 정상 궤도로 들어가고 있는 미스터 리의 모습은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활기 차 보였다.
그 동안 차 안의 분위기는 박씨 아줌마가 타면서 많이 바뀌었다. 도사급이 아닌데도 아줌마 패거리를 따라 왔다가 아예 주저 앉았다. 박씨 아줌마는 설치기도 했지만 이민 생활이 십년을 훨씬 넘는 축이라 신분이 금방 알려졌다. 한 때는 꽤나 자리를 잡았던 남편도 있고, 딸들도 여럿이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은 혼자 따로 나와 산다고 했다. 이혼을 전제로 한 별거라고 본인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남편은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박씨 아줌마에겐 <병신같은 거>로 비하 되었다. 밉상은 아니지만, 좌우를 귀찮게 할 때가 많아 밉상으로 보였다. 오락회도, 노래판도, 흥이 날 때 얘기지, 박씨 아줌마는 허구한 날 피곤한 사람들을 깨워 노래를 시키고 말을 붙였다.
“ 혼자 사는 과부년이…...”
박씨 아줌마는 말끝마나 이 말은 훈장처럼 달고 다녔다. 왠지 그 말이, 생각 있는 사람 줄 서라, 로 들렸다. 그녀는 별로 우습지도 않은 얘기나 노래에도 손벽을 치며 깔깔거렸다. 그러다가는 저도 모르게 하는 것처럼 옆자리 남자의 허벅지를 가볍게 때리며 스리슬쩍 더듬기가 일쑤였다. 작위적으로 그러는 게 눈에 보였다. 한 번은 내 옆에 앉아 사추리를 슬쩍 슬쩍 스치는데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무리 예비 과부라지만 오십 근처의 여자가 그러니 닭살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재수 좋은 과부는 쓰러져도 가지밭에 쓰러진다고, 때를 맞추어 최 대령과 젋은 형제 녀석들이 이틀 간격으로 나타난 것이다. 최 대령은 차에 타자마자 좁은 좌석을 일일리 비집고 다니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는 <잘 부탁합니다> 를 연발했다. 마지못해 두더지 꼴이 되어 땅바닥을 기는 처지에 뭘 부탁하고 자시고가 있을까, 우스꽝스러웠다. 그래도 나이 대접이 있어 그냥 깔아 뭉개기가 뭣했다.
이 최 대령이란 인물은 번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첫 날부터 뭐가 그리 궁금한지 지렁이는 언제부터들 잡았으냐, 몇 마리나 잡느냐, 돈은 어떻게 계산하느냐, 천 마리인 줄은 어떻게 아느냐……등, 두서없이 물어 왔다. 정형과 내가 비교적 정직하게 번갈아 가며 현재 우리의 입장을 얘기해 주었다.
“ 괜찮군. 괘찮은 데요! 아, 그럼 괜찮고 말고요…...”
그는 손가락을 펴서 <이삼은 육>, <이오는 십>, 하며 부지런히 손가락 계산을 해 나가더니 <곱하기 삼십 하면> 이라고 끝을 맺으며 자기가 오늘 당장 그런 수입을 올리기라도 한 사람마냥 단정을 내렸다. 이런 사람이니 박씨 아줌마와 짝패가 안 맞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틀 후에 탄 <형제>는 스믈 예닐곱의 나이가 고만고만해 보이는 데도 하나는 형님, 하나는 아우, 하며 하도 의리를 다지는 통에 그냥 편하게 형제라고 불러 주었다. 싸가지도 없어 보이고, 말투도 불량했다. 그들이 지껄이는 언행을 가만히 듣다 보면 마치 독립투사에다 육이오 사변은 물론, 월남전에서까지 무공을 떨친 무용담을 듣는 것 같았다. 무슨 녀석들이 홍길동 뺨 치게 붕 붕 날아 다녔는지 모를 일이었다. 요컨데, 칼을 든 놈이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놈이고간에 한 방이면 안 나가는 놈이 없었다. 그것도 일대 일은 직성이 안 풀리고, 최소한 네댓 놈은 되어야 몸을 좀 풀 맛이 난다는 거였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또래 하나가 탔었다. 그런데 그 녀석은 정 반대로 얼띠고 겁먹은 표정이 몹시 궁색해 보였다. 안 돼 보여 간식을 권했더니 분명 때를 거른 사람으로 허겁지겁 먹었다. 초보가 사나흘 잡은 지렁이 값이 얼마 되랴마는 사정이 급한 것 같아 구 사장에게 넌지시 귀뜸을 해 주었다. 가불 좀 해 주라고. 한데 다음 날 아침, 녀석이 감쪽같이 없어져 버렸다. 벗어 놓았던 알량한 옷가방마저 남겨둔 채였다. 나중에 목격자가 나타났다. 나오다가 경찰차를 보고 정신없이 반대 쪽으로 뛰더란다. 구 사장이 가불해 주려고 사족 없이 <이따 좀 보자>고 언질을 준 상태에서 의례적인 순찰차가 골프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도망쳐 버린 것이다. 영주권이 없는 사람을 잡으로 오는 경찰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녀석이 버리고 간 헌 가방은 잘 보관했는 데도 녀석은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나타나지 않았다. 돈도 한 푼 없어 보이는 녀석이, 더구나 하루를 걸어도 대중교통수단은 나타나지 않을 까마득한 벌판에서 어디로 간 것일까. 혹시, 숲속을 헤매다 어디에서 지쳐 죽을 건 아닐까 해서 주의 깊게 신문 기사를 살표 보았지만, 여름이 가도록 그런 기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형제는 의외로 지렁이 잡는 데 도사들이었다. 그 동안 다른 지렁이 차를 탄 경험도 많은 것 같았다. 돈을 받는 날이면 다른 지렁이 차에서의 지렁이 가격을 빠끄미로 알아 조금이라도 낮으면 즉시 따지고 들었다. 지렁이 값이라는 게 광고 치며 정해지는 것도 아닐 터여서 우리는 구 사장이 주면 주는 대로 그런가보다 하고 받을 뿐이었다. 그런데 구 사장이 그 동안 어물쩍, 다른 곳보다 가격을 낮게 계산해 온 모양이었다. 구 사장은 입맛이 썼겠지만 우리는 마음 속으로 짝짝짝, 박수들을 쳤다. 사람은 누구나 다 쓸모가 있다는 말이 맞았다.
그들은 어딘지 모르게 일을 저지르고 도망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말과는 달리 주위를 둘러 보는 눈초리도 늘 불안해 보였다. 하지만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탔다가는 슬그머니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좀 별나게 보인다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질 처지도 아니었다. 오히려 잘못하다 시비라도 걸릴까 봐 의식적으로 무관심한 척 하는 분위기였다.
<저러다 며칠이나 갈려구…...> 하고 생각했던 최 대령은 의외로 끈질기게 나왔다. 그런 점에서는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친형제가 아닌데도 지렁이나 돈을 함께 계산했다. 꼭 무슨 거사자금을 마련하느라 혈안이 된 사람들 같았다. 박씨 아줌마는 이들과 어울리느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통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덕분에 피곤한 사람들은 이들이 떠들고 깔깔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도 붙일 수 있었다. 좌석의 제일 뒷 줄은 아예 이들 차지로 비워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