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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正德) 경진년(1570, 선조3년)에 무사 시험을 보아 천 명을 급제시키자,
호사자(好事者)들이 이를 두고 말했다.
무사가 소를 타고 가며 활을 쏘아 맞히지 못하자,
소를 멈추고 화살을 뽑아 다시 쏘았다.
시관소(試官所)에서저 응시자는 어찌하여 소를 멈추었느냐?'라고 전령하자 '소가 막 오줌을 누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때 묘당(廟堂: 의정부)에서 가장 꼴찌로 합격한 자를 불러 '지금 세상에서 무예가 너보다 못한 자도 있느냐?'라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다음 시험에서 장원할 자는 저의 재주보다 못할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모두 명대답이라고 하였다.
만력 계사년(1593, 선조26년)에 영유(永柔) 행재소에서 무사 200명을 뽑았다.
당시 나라의 금령(禁令)이 엄하지 않아 공사(公私)의 노비 가운데 시험에 응시하여 몰래 합격한 이들이 있었다.
판서 (判書)이항복(李恒福)이 집에서
손님과 앉아 있다가 종을 불러도 응답이
없자 말했다.
고약하구나!
이놈이 필시 과거 시험장에 갔을 것이다.
당(堂)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해 겨울에 지금 임금(광해군)이 동궁으로 황제의 명을 받아 전주(全州)에 나아가 있으면서 무사 500명을 뽑았다.
그때, 온 나라에 기근이 들어 굶주려 죽은 시체가 길을 가득 메웠으니,
남도(南道)에서는 과거 시험에 응시하는 이들이 쌀 다섯 되로 급제를 산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이래서 '고금소총'에서도 '경진년 무과 합격자'란 이야기가 나오는데,
맹인을 말로 밟고 지나가니,
맹인이 엎어져서 형색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묻자,
옆에 있던 행인이 붉은 옷에 칼을 찬 걸로 보아 무사 같다고 하자,
맹인이 실소하며 하는 말이 걸작이다.
틀림없이 경진년 무과 합격자일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