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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찬양대 은혜로운 찬양 감사합니다.
사도바울 일행이 데살로니카에서 3주간 사역을 마치고 다음 사역지인 베뢰아로 이동을 하게 됐습니다. 오늘은 그 베뢰아에서 있었던 일들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도착한 베뢰아는 어떤 곳인가? 10절에 보면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야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장에 들어가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베뢰아 성경에는 이 베뢰아와 비슷한 발음을 하는 지명이 또 나옵니다. 베레야 베레야 베레야 아주 헷갈리는 그런 지명이죠. 복음서에서도 베뢰야가 나왔는데 여기는 갑자기 복음서에 있던 베뢰아가 마케토니아 지방으로 갔는가 이렇게 헷갈릴 수가 있습니다. 한글 번역이 그래서 그렇습니다. 영어나 불어로 이 지역을 보면 확연하게 다릅니다. 베뢰야는 오늘 본문의 베뢰야는 베레야 요단 동편에 있는 베레야하고 완전히 철자가 다릅니다. 요단 동편에 있는 베뢰아 이곳은 사도바울 또는 예수님과 관계되는 곳입니다. 요단 서편은 크게 저 북쪽의 갈릴리 그리고 중간쯤에 사마리아 그리고 남쪽에는 유다라고 하는 큰 지방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요르단 강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가면 거기에는 이두매 대가 불리 그리고 베뢰아라고 하는 큰 지역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작은 도시 어떤 도시의 지명이 아니라 큰 지방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바울이 간 마케도니아 지방에 있는 베뢰아는 지방에 있는 도시예요. 오늘날 그리스에 있는 도시입니다. 데살로니카에서 남서쪽으로 80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저는 이번에 베뢰아는 가지 못했어요. 그러나 그 베뢰아 지역으로 가다 보면 만년설로 덮인 올림푸스 산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푸스산 우리는 그 산을 이렇게 차 속에서 지나가면서 사진도 찍고 이번에 보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이 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넓은 또 평온이 있어요. 농산물이 많이 나는 풍요로운 곳이라고 합니다. 먹을 게 많다는 거예요. 이 풍요로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인심도 좋습니다.
우리 말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어요. 쌀독에서 인심 난다. 쌀독이 비고 곳간이 비면 아무리 타고나기를 아주 좋은 인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자기 수양을 한 사람도 성격이 바뀌긴 마련입니다. 자기 주머니가 피고 은행이 비어 있고 생활이 궁핍하면 아무래도 마음이 작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넉넉히 은행에 수십억이 있고 고가에 먹을 게 많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어지간한 물론 노랭이가 있죠. 그건 좀 특이한 인간이죠. 그러나 보편적 인간을 얘기하는 거예요. 보편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은 이웃을 향해서도 넉넉하게 인심을 쓰고 또 그 삶도 그렇게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 이 지역의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베뢰아 사람들의 태도가 전에 80km 먼저 전에 있었던 테살로니카 사람들하고는 상당히 달랐다는 거예요. 11절에 보면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껴 있는 사람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
누가가 이 사도행전을 쓴 누가가 이 두 도시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또 비교하기도 좋아요. 금방 경험하고 온 터이니까 데살로니카에서는 얼마나 봉변을 당했습니까? 아주 여기 사람들은 바닷가 사람들이고 거친 바다 일을 하면서 그 환경에 영향을 받아서 내륙보다 좀 거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도 누가가 볼 때는 이 사람들은 거칠고 폐쇄적이다. 그것을 성경에도 기록을 했어요. 그렇게 표현은 직접 하지 않았지만 이 베레아 사람들은 데살로니카 사람보다 신사적이어서 우리 옛날 번역에는 그렇게 돼 있어 신사적이어서 오늘 본문에는 너그러운 사람들이어서 그 얘기는 바꿔 말하면 데살로니카 사람들은 비신사적이고 거칠고 여유가 없고 아주 매싱한 사람들이다 이런 표현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데살로니카 사람들은요. 누가를 그렇게 싫어한답니다. 진짜로 거기 있는 분들이 그래요? 여기 사람들은 누가 성경에 나온 인물 중에 누가를 싫어한대요? 꼭 그 말을 써가지고 데살로니까 저도 거기서 이틀을 잤는데 영 느낌이 꺼림찍해요. 이 사람들은 좀 비신사적이 좀 거칠다 그러니까 벌써 그 선입견을 가지고 그 지역을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오늘날까지도 약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왜 성경을 읽는 사람보다 되살려니까는 비신사적이야 거칠어 이런 느낌을 가지니까 그 사람들이 싫어한다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반면에 베뢰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에요? 신사적이다. 헬라어 원문에 의하면 유엔네스테롤이라고 하는 단어를 쓰는데 출신 성분이 좋다. 약간 이제 이북 용어기 때문에 좀 거세게 하죠. 가문이 좋다 고상하다 개방적이다. 친절하고 관대하다. 온갖 좋은 의미를 다 가진 단어입니다.
어디 사람들이 베뢰아 사람들이 데살로니과 사람들과는 완전히 딴판이고 아마 누가는 그게 너무나 인상적이었을 거예요. 거친 사람들을 만나다가 아주 메시한 사람들을 만났다가 이런 사람들 만나니까 이게 더 크게 보였겠죠. 그래서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사람들을 이웃으로 두거나 우리가 인생을 걸어가면서 만난다는 것은 축복이에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우리가 인생의 사막을 걷다가 거친 사막을 걷다가 이런 사람을 만나면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바울 일행도 아마 여기서 그런 것들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안식일날 늘 하던 대로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유대인들이었을 거예요. 그 사람들도 신사적이었습니다. 예외 없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신사적이었어요. 그들의 반응이 매우 좋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겁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것이 그러한가요? 날마다 성경을 상고함으로 온갖 좋은 단어를 다 쓰네요. 이런 교인들과 목회를 하는 목회자는 행복하다. 어지간히 죽을 쓰지 않으면 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것이 그러한가 하여 상고하고 실천한다.
이런 교인들과 목회를 하는 목회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우리 교회 교인들이 정말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아주 말씀을 잘 듣고 사모하는 물론 개중에 간혹 그렇지 않은 분도 혹시 있겠지만 오늘은 회개하고 변화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아마 그런 여유가 있어서 여러 가지 소양도 갖추고 공부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읽을 수 있는 그런 소양을 갖춘 어느 정도 학력을 갖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꼭 말씀을 잘 듣는 건 아니에요. 조금 가방끈이 길면 더 안 듣는 사람이 있어요.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도 하겠네 그런 사람은 한 1년 막 대놓고 시켜봐야 돼. 그게 쉬운 일이 아닌데 저기 앉아가지고 나도 하겠네. 그러면서 그러고 무슨 숫자나 예화가 나오면 금방 핸드폰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설교 중에 핸드폰을 갑자기 찾는 사람을 보면 제가 내가 뭘 숫자를 잘못 얘기했나 겁날 때가 있어 그래가지고 요즘은 숫자를 얘기 안 합니다. 몇 년도를 잘 얘기 안 해 이게 요즘 가짜 뉴스도 많고 그래가지고 그리고 검색하기가 너무 좋잖아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오히려 자기가 배운 그런 학문이나 자기가 그동안 쌓아놓은 경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듣도록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해요. 그래서 공부를 안 한 사람보다 많이 한 사람들이 성경을 더 잘 이해하고 설교를 더 잘 흡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교회에 가서 다른 교회도 가보고 집회도 해보고 이렇게 하다 보면 딱 들어서서 설교를 시작하려고 딱 하면 오늘은 말씀이 흡수가 되겠구나 아니구나를 초반에 느낄 때가 있어요. 벌써 딱 앉아 있는 눈빛과 태도를 보면 여기는 막 튕겨나가는 곳이구나 여기는 스펀지구나 또 개인도 마찬가지네.
누가 복된 사람이냐?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질 때 그걸 스펀지수처럼 흡수하는 사람 그 사람이 복된 사람이에요. 베뢰아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전한 말씀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도바울이 말씀씨가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그 내용을 자기가 받아서 이해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받아서 그것이 그러한가 하여 상고하고 상고했다고 하는 것은 실험한다 판명한다.
그냥 우리가 보통 어떤 분들은 은혜만 받고 말아요. 오늘 참 좋은 말씀이네. 거기다가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마음의 터치가 있으면 마음에 찡하는 게 있고 눈물 한 번 찍 흘리고 그러면 굉장히 은혜를 받아 나가면서 그날은 악수할 때 손에 힘이 다릅니다. 은혜받았다고 거기까지는 좋아요. 근데 어디까지 베뢰아 사람은 어디까지 갔느냐 그 말씀을 상고했다. 그 말씀을 실험했다는 거예요. 생각하고 그 말씀이 진짜가 아닌가를 자기 삶에 실천해 보는 거예요. 그 결과를 보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었다. 저와 여러분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 공부하고 그냥 묵상하고 느낌으로 끝나면 안 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한번 해보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는 씨앗이라고 믿는다면 그 들은 말씀 읽은 말씀을 한번 땅에 심어보는 거예요. 마음의 밭에 심어보고 내 인생의 밭에 심어보고 나서 그것이 싹이 나는가 열매가 잎사귀가 맺히는가 열매가 생기는가 한번 보라는 거 얼마나 재밌습니까?
농부들이 늘 씨를 뿌리는 이유는 뭐예요? 뿌렸더니 나더라는 거예요. 나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나중에 그 열매를 거두는 기쁨이 있기 때문에 봄에 씨를 뿌리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농부 이상의 믿음을 가져야 돼. 그 말씀이 진짜 그러한가 하여 그 말씀을 한번 붙들고 묵상하고 내 삶에 실천을 해보시라 이거예요. 그래야 영적으로도 성장하고 그렇게 하면 우리 삶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기적이 넘쳐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실이다. 우리가 증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 생활은 이런 자세가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미신과 달라요. 미신 샤머니즘은 우리하고 다릅니다. 샤머니즘의 핵심은 뭐냐 하면 정성을 다하는 거예요. 정성을 다해 어느 정도로 정성을 다하냐 우리 조상 우리 저희 할머니 저희 할머니도 나중에 믿으셨어요 그러니까 그분들은 옛날에 다 신을 섬겼는데 귀신을 섬긴 거예요. 근데 그분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그 추운 겨울에 찬물로 씻고 정성을 드리는 거예요.
여러분 그 정성 그 정성이 새벽부터 일어나고 찬물로 씻을 정도의 정성이니까 얼마나 감동스럽습니까? 그래서 하늘이 감동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성이면 감천이다. 이게 원래는 우리 기독교 용어가 아닙니다. 샤머니즘 용어예요. 지성이면 감천이에요. 우리 교회에서는 함부로 쓰는 건 아니에요. 지성을 들이면 하늘이 감동을 하는데 이제 특정한 신이 없으니까 무슨 부트막신이든지 뭐 광신이든지 집신이든지 무슨 신이든지 그냥 감동해서 내 문제를 해결해주고 복을 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분들이 하는 것은 오직 정성을 다하는 거예요. 맥시멈 하는 겁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근데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생각해 보세요.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 응답받으려면 새벽에 찬물로 목욕하고 새벽부터 기도해야 된다 그러면 아마 신앙생활 제대로 할 사람 별로 없을 거예요.
우리는 미니멈 하잖아요. 그죠? 미니멈 어느 정도 미니멈이냐 여기서부터 너 더 안 하면 이거 지옥 가는 거 아니야 하나님한테 세례 맞는 거 아니야 그 정도를 면하기 위해서 미니멈해 주일도 매주 지키면 좋은데 또 너무 안 지키면 그러니까 껄쩍지근하니까 우리가 그런 정도 아닙니까? 회개해야 돼. 귀신을 섬기는 사람만도 못하다는 거 만약에 우리가 정말 미신을 섬기는 그 사람들의 열정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면 주의 일을 감당한다면 우리 삶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나라의 그 새벽 기도를 만든 분이 길선주 목사님인데 그분이 원래가 도사였다잖아요. 도를 닦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새벽 2시부터 일어나가지고 도 닦다가 어느 날 예수 믿어가지고 그게 이제 이어진 게 뭐냐 하면 새벽 기도요. 그래가지고 새벽 잠 많은 사람들 특히 목사 중에 새벽 잠 많은 사람은 정말 힘듭니다. 그분 때문에 그분은 그분은 그게 순리였어요. 그냥 그 돌을 닦던 분이니까 기독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공부하는 거예요.
미신에는 경전이 없어요. 공부가 없어요. 그러나 기독교는 경전이 있어요. 그리고 이 말씀을 공부하면서 그 말씀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묵상하고 그것을 내 삶에 한번 심어보는 거예요. 그것이 그러한가요? 그리고 그 열매가 나타난 걸 가지고 증언하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삶입니다. 그래서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해라. 성경 일도 학교도 하라고 그렇게 하는데 실제로 한 분들은 맛이 들어가면 이제 그다음부터는 계속하게 됩니다.
근데 처음이 어려워요. 우리 제자 훈련도 우리가 한 15년 동안 했는데 코로나 이후에 하지 못했어요. 이제 또 다시 시작해야 되겠죠. 그런 성경을 배우고 또 아니면 주제별로 또 배워가지고 내 신앙의 틀을 만들어야 돼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한가여 내 삶에서 경험하는 역사가 있어야 우리가 성장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사색하고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고 내 삶의 아젠다를 만들고 그리고 말씀의 기적이 일어난 것을 체크하고 얼마나 재미있어요.
여러분 성도의 삶은 그런 기적으로 넘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예배해 주셨어요. 내가 안 할 뿐이에요. 아마 베뢰아 사람들은 그런 일을 했을 것입니다. 베뢰아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2절에 보면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믿는 사람이 많았다. 큰 부흥이 일어난 겁니다. 이런 마음 밭을 가지고 있을 때 큰 부흥이 일어나요. 우리가 2주 후에 이제 반태현 목사님 초청 부흥회를 하는데 누가 은혜받냐 마음이 너그러워서 신사적이어서 이번에 정말 그분이 오셔서 하나님께서 우리 강사님을 통해서 어떤 말씀을 전하실까 기대하고 이번 집회를 통해서 특별히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까 기대하고 기다리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부흥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곧바로 바울 일행은 신라와 디모데를 거기에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13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데살로니카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려하에서도 전한다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이제 여기서 이제 부흥이 일어나서 사도바울이 이제 다음 지역인 아테네로 가게 되는데 가게 되는 그 과정에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 데살로니카에서 사도바울을 공격하던 유대인들이 여기까지 달려온 거예요. 거기서 바울을 잡지 못하니까 분노에서 엉뚱한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다가 이제 바울을 공격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악마는 부지런하다는 말이 있어요. 악마 노릇도요. 근면해야 합니다. 여러분 마귀가 얼마나 부지런한지 아세요? 우는 사자처럼 잠도 자지 않고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또 악한 사람들도요. 선한 사람보다 부지런하다는 사실 아십니까? 아무나 나쁜 짓 하는 게 아니에요.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밤낮으로 악을 생각해야 돼요. 묵상하고 계획하고 자기들끼리 모이면 또 그 얘기를 하고 나가서 실천하고 돌아와서 자랑하고 나 이렇게 했다.
그게 악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회가 되면 모든 일을 젖혀놓고 그 일을 합니다. 마귀가 그렇고 악한 사람들이 그러고 지금 유대인들이 그러고 있어요. 80km를 달려왔어요. 여러분 80km가 꽤 먼 거리입니다. 걸어서 차를 타고 가도 힘들어. 그런데 바울 하나 괴롭히겠다고 이 사람들이 80km를 달려온 거예요.
우리는 교회가 조금만 멀어도 잘 안 나오잖아요. 물론 가까이 있어도 나오기 어렵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바울을 괴롭히기 위해서 80km를 달려온 거예요. 그 열정에 반만 있으면 우리가 파리를 뒤집어 넣습니다. 아마 이 유대인들의 반만 우리가 그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 프랑스 유럽 아프리카 브로커는 그냥 뒤집어 놓을 거예요.
근데 10km 가기가 어려워 우리도 그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바울은 그쪽으로 가고 이 유대인들은 이제 이곳으로 달려왔어요. 바울이 그 사람들이 무서워서 피했을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바울에게는 그들과 다툴 시간이 없었어요.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복잡한 인간관계에 꼬여서 시간을 허비하고 에너지를 소비할 때가 있어요.
저도 30대 40대는 그게 정의로운 줄 알았어요. 50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래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막 그걸 해결하고 막 이겨야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돌아보면 어리석은 일이에요.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에요. 물론 어떤 부분은 내가 맞서서 해야 되기도 하지만 그런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은 빨리빨리 제끼고 정말 해야 되는 일, 인생의 소중한 일 거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인생이 길지를 않아요. 요즘 들어서 특히 더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공식적으로 이 사역을 할 날이 정해져 있어요. 계속 하루하루가 줄어드는데 복잡한 일들하고 자꾸 얽혀 있으면 거기에 에너지를 쏟아야 돼요. 특히 무슨 인간관계 안 좋은 관계에 자꾸 빠지면 그거 얼마나 잠도 안 오고 그거 생각하면 다른 일도 못하고 빨리 잊어버리는 훈련을 해야 돼요.
근데 그걸 하다 보니까 진짜 빨리 잊어버리십니다. 내가 가서 해결하고 팍 붙어서 하면 모든 시간을 다 보내는데 딱 잊어버리고 다른 일을 하면 좋아요. 그럼 자연스럽게 그것도 해결이 돼요. 그리고 이 여러분들 잊어버리는 훈련을 하면 그게 또 되더라고요. 그래서 한 이틀 지나면 이름도 잊어버려 시원합니다. 딱 그 그러니까 쓸데없는 에너지가 소모가 안 되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있어 어떤 사람은 너무 인간관계 복잡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좋은 인간관계 아니고 나쁜 인간관계 누가 밉고 누가 이런 소리를 했고 저 사람은 이래서 싫고 막 그걸 묵상하고 메디테이션 생각하고 막 가슴속에 담고 그러니까 심장병 걸리고 뒷골 당기고 괴로운 거예요. 빨리 정리를 해야 됩니다. 하여튼 사도바울은 빨리 끝내고 그 사람이 오든 말든 아테네로 가서 다음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신라와 디모데를 남겨뒀다. 바로 탄생한 세 교회를 돌보도록 남겨두었습니다. 14절에 보면 형제들이 곧 바울을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신라와 디모데는 거기에 아직 머물렀더라. 바울이 누가와 함께 아테네에 도착을 했어요. 그리고 이제 바울을 바래다 준 사람들이 가는 길에 빨리 신라와 디모데가 빨리 일을 마치고 와라. 바울도 인간이니까 동역자가 필요해요. 새로운 도시 특히 이 아테네라는 데는 굉장히 중심적인 철학의 도시 아닙니까? 그러니까 옆에 그런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지 급히 오라고 했는데 일이 많아가지고 오지를 못했어요.
사도바울이 사역을 다 마치고 고린도로 갔을 때 이 사람들이 내려와서 좋은 소식 데살로니까 교회 마케도니아에 있는 교회들이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소식을 전해주고 바울은 아테네에서 지친 마음을 그 소식을 듣고 회복을 합니다. 그래서 편지를 쓴 게 데살로니가서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최초의 선지서입니다. 베레아 사람들처럼 우리도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설교를 들을 때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것이 그러한가 하여 상고하고 삶에서 한번 실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살아계심을 세상에 증언하는 그런 삶이 된다면 얼마나 우리 인생이 풍요로울까 영적으로 풍요로울까 우리 파리 사는 장로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