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화 핑크허니
부모님과 헤어진 우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수현이가 이상한 꼬드김에 넘어간 것이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가만히 수현이 얘기를 들어보니 어중이떠중이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아니었다.
국내 3대 엔터테인먼트 회사 중 한 곳인 뮤즈 엔터테인먼트.
수현이가 대체 어떻게 뮤즈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간 거지?
3년 전, 암 치료를 위해 숲으로 향할 때, 수현이는 풋풋한 고등학생이었다.
자연치유를 한다는 이유로 외부와 연락을 단절하는 바람에 몰랐지만, 수현이네 고등학교에 ‘울려라! 골든벨’을 진행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네가 울려라! 골든벨에서 출연했었다고?”
“응. 비록 울리진 못했지만···. 그날, 뮤즈 엔터테인먼트에서 신인 아이돌이 초청 가수로 왔었거든?”
“뮤즈 엔터테인먼트면···.”
“오빠가 군대에서 괴성을 지르며 좋아했었던 걸그룹 케이라가 뮤즈 소속이잖아.”
“케이라···.”
퍽퍽한 군 생활 속에 한 줄기 희망이었던 케이라. 골반 흔들기 춤이 정말 끝내 줬···. 흠흠. 벌써 100여 년 전 얘기지만, 그때의 황홀경은 여전했다.
얼굴이 살짝 상기되는 것을 본, 수현이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날, 뮤즈 엔터테인먼트에서 명함을 줬었어. 혹시 연예계 쪽에 관심 있으면 연락 달라고.”
한마디로 캐스팅을 당했다는 소린데···. 수현이가 못 생긴 건 아니지만, 연예인 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고개를 갸웃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현이와 날 힐끔 쳐다봤다. 그들은 우리를 지나치며 숙덕거렸다. 들리지 않으리라 생각하겠지만···.
다 들리거든?
- 저 여자 몸매 봤어?
- 쟤들 뭐야? 연예인인가?
- 저런 사람 본 적 없는데···? 지망생들인가?
지망생들? 수현이야 그렇다 치지만, 왜 나까지 거기에 포함되는 거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우선 수현이의 외모에 깜짝 놀란 후, 꼭 날 평가대 위에 올려 잘근잘근 씹었다. 특히 남자들이 유독 그러했다.
- 저 남자는 뭐야? 기생오라비처럼 생겨서···.
- 돈 많은 재벌 집 자제인가 보지.
- 돈도 많은데 심지어 키도 크고 잘생겼다고? 세상 참 불공평하네···.
아무래도 난향초접밀을 먹고 변한 외모 덕분인 것 같다. 내가 봐도 연예인 뺨치게 변하긴 했지.
그나저나, 생각보다 사람들이 수현이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영 신경이 쓰인다. 수현이가 이토록 주목받는 외모였던가? 그렇지 않았다. 내 눈에는 아직도 어리광부리는 코찔찔이 여동생일 뿐이다.
나는 타인의 시선이 불편해 죽겠는데, 수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덤덤하게 서 있었다. 마치 익숙하기라도 한 듯 말이다.
“수현아. 괜찮아?”
“응? 뭐가?”
수현이는 덤덤한 표정으로 날 빤히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늑대들의 웅성거림이 귓가에 또렷이 들려왔다.
- 뭐야. 저 목소리는?
- 가수 지망생?
- 미친 새끼들. 응, 뭐가? 라고 한마디 했거든? 그런데 무슨···. 어휴.
그래도 정신 제대로 박힌 놈들이 존재하긴 하는군.
“사람들이 널 계속 쳐다보는데?”
“그래?”
수현이는 전혀 몰랐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남자들은 수현이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술래잡기도 아니고, 수현이의 시선이 지나가면 그들은 다시 빤히 수현이를 쳐다본다.
저 새끼들 눈깔을 뽑아버릴까 보다!
나도 모르게 진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근처에 있던 남자들이 갑자기 흠칫 놀라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지금이야, 내가 함께 있으니 별문제가 없다지만, 수현이가 혼자 있을 때 질 나쁜 새끼들이 엉겨 붙는다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내가 매번 이렇게 붙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돈 벌어야지.’
승용차를 한 대 뽑아줘야겠다.
지하철에 오른 후에도 이런 반응은 계속 이어졌다. 수현이 미모에 대한 놀라움이 대부분이었다.
- 연예인 아니야?
- 그런 것 같은데? 누구지?
간혹 삐딱한 반응도 있었다. 특히, 여자들이 더욱 날을 세웠다.
- 피부에서 광이 나네. 얼마나 돈을 처발랐을까?
‘어머니의 유전자를 받은 거랍니다. 원래 피부가 좋아요.’
- 얼굴 다 뜯어고친 거지 뭐. 나도 돈 들이면 저 정도는 껌이지.
‘네 얼굴은 견적도 안 나와.’
- 그냥 평범하네! 뭐.
‘넌 거울부터 보고 얘기하자.’
대놓고 말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반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정말 수현이가 그렇게 예쁜가?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했지만,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종합해보면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수현이의 미모가 대단하다는 것···. 정녕, 이 코찔찔이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수현이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오빠, 이제 다 왔어.”
“어. 그래.”
수현이가 날 부르는 순간부터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날아와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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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수현이는 뮤즈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큰소리로 인사했다. 덩달아 나도 고개를 숙였다.
“수현이 왔구나. 오늘은 연습 빠진다더니?”
“오빠가 연습실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왔어요.”
“아, 이분이 행방불명됐다던 오빠···?”
데스크에 여직원이 수현이와 얘기를 주고받다 말고, 고개를 돌려 날 보더니, 눈을 크게 뜨며 말끝을 흐렸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다.
“안녕하세요. 수현이 오빠 임수찬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데스크 여직원이 황급히 수현이의 팔목을 잡아끌더니, 속삭였다.
속삭여도 소용없다. 다 들린다.
“정말 네 오빠야?”
수현이가 고개를 끄덕였고, 여직원은 깜짝 놀라며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수현아. 너희 오빠, 연예인 해볼 생각 없데?”
여직원의 말에 수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에이, 우리 오빠는 벌 키워요.”
“벌?”
“꿀!”
“꾸, 꿀···?”
여직원이 당황하는 사이 수현은 미소 지으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수고하십시오.”
수현에게 끌려가면서도 난 여직원에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 수현이 회사 직원이며 누구든 잘 보여야 하는 법 아니겠나.
예의 바른 인사를 받은 여직원은 붉게 상기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와. 수현이 가족 유전자가 우월한 거였어. 오빠도 장난이 아니네···.
등 뒤로 들리는 여직원의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가족 칭찬은 뭔들.
수현의 손에 이끌려 지하 연습실에 도착했다. 귀를 때리는 비트가 심장을 울렸다. 순간적으로 이번 미션이 뇌리를 스쳤다.
[비트에 몸을 맡겨라.]
‘흠. 수현이와 관계된 것일까?’
미션을 유추해보며, 비트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방이 유리로 된 연습실에 3명의 소녀가 춤을 추고 있었다. 수현이 또래거나 좀 어려 보인다.
“하나, 둘. 턴!”
가장 앞에서 춤을 추는 소녀가 구령을 외치자, 칼 군무가 펼쳐졌다. 보기만 해도 얼마나 연습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걸, 수현이도 한다고?’
믿을 수 없었다. 수현이는 몸치인데 저런 춤을···.
소녀들이 머리칼을 흩날리며 물결치는 듯한 웨이브를 끝으로 무대 가운데로 모여 포즈를 취했다. 엔딩 포즈인 것 같다.
수현이도 저런 웨이브가 가능하다는 거지?
‘말도 안 돼’
고개를 가로젓는데 수현이가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소리쳤다.
“얘들아!”
“수현 언니!”
“언니이이이!”
“안 온다더니 왔네?”
반응이 가지각색이다. 펄쩍 뛰며 반기는 아이, 과장된 몸짓으로 달려드는 아이,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덤덤하게 말하는 아이···. 쟤는 수현이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동갑인가?
괜스레 경계하는 마음이 들어서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수현이와 인사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 멤버들은 흔히 볼 수 있는 발랄한 소녀들이었다. 수현이가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제과점에서 사 온 빵을 들고 연습실로 뒤따라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인기척을 느끼자, 수현을 제외한 멤버들이 정색하며 소리쳤다.
“안녕하십니까! 핑크허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주입식 교육이 이렇게 무섭다.
근데 핑크허니? 그룹명을 누가 만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손이 오글거리는 작명 센스다. 요즘 걸 그룹명은 죄다 이런 식인가?
생각해보니 누굴 나무랄 처지가 아니다. 열려라 참깨, 벌침 톡톡이라는 주문을 만든 누군가도 있으니 말이다.
“예. 반가워요. 빵 좀 드시고 연습하세요.”
“감사합니다!”
수현이의 친구들쯤으로 생각했는데, 가까이 다가온 핑크허니 멤버들 각각 비주얼이 장난이 아니다. 걸어오는 멤버들 뒤에 후광이 느껴진다. 이것이 연예인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 찰나, 수현이가 멤버들에게 날 소개했다.
“우리 오빠야!”
“아, 그 행방불명 됐다던 오빠?”
행방불명이라는 꼬리표는 언제쯤 땔 수 있으려나···.
후광이 비추는 멤버들과 달리 수현이는 그냥 내 동생이었다. 쟤가 무슨 연예인을 한다고···. 한 유명한 남자배우의 어머니가 이런 말을 했다.
“강릉 시내만 나가도 너보다 잘생긴 애 널렸다.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 줄 아냐? 헛소리 말고 공부나 해!”
극히 공감 가는 말이다.
“핑크허니의 리더, 제이나예요.”
아까 수현이에게 반말을 하던 아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살짝 찢어진 눈매 때문에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외모였지만, 몸매의 볼륨감 때문에 묘한 관능미가 풍겼다.
“반갑습니다. 우리 수현이 잘 부탁합니다.”
의례적인 인사지만, 늘 필요한 법이지.
제이나가 살짝 물러서자, 다를 멤버들도 자신을 소개했다.
“라니라고 해요! 핑크허니의 랩퍼이자, 댄서에요.”
“메인보컬 주리라고 해요.”
성형외과에서 양산된 인조인간들이 아니라, 다들 개성이 살아있는 미인들이었다. 라니는 귀엽고 깜직한 마스크로 생글생글 웃었다. 베이비 페이스지만, 또 몸매는···. 댄서라 그런가? 군더더기가 없다.
주리는 첫인상부터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어머니가 독일사람이란다. 어쩐지 할리우드에서나 볼 수 있는 미모라 깜짝 놀랐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누군가 지하로 내려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음악 소리와 멤버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그들의 말소리를 잡아내기 힘들었지만, 집중한 끝에 겨우 엿들을 수 있었다.
- 다음 주가 파이널 점검이지?
- 네, 실장님. 그런데 수현이가 걱정이네요. 사장님도 계속 걱정하시고요.
- 수현이도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자네도 알잖아.
- 알죠. 하지만, 사장님께서 수현이는 항상 2%가 부족하다고···. 이번에도 데뷔 미루자고 하실까 봐 조마조마하네요.
-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이번엔 잘 될 거야.
그들은 대화 끝에 깊은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쉬었다. 내 심장도 땅에 툭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다.
수현이가 2% 부족하다는 대목에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이대로 두고 볼 내가 아니다.
‘수현이가 뭐가 부족한지 좀 봐야겠네.’
아무래도 이번 미션의 주인공은 수현이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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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에게 빵을 나눠주며 기다리고 있으니, 곧 연습실 문이 열리며 남성 둘이 들어왔다.
“어, 수현이도 있었네? 그런데 누구···?”
“안녕하세요! 우리 오빠예요.”
수현이가 환한 얼굴로 인사하더니 내게 속삭였다.
“실장님과 매니저야.”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수현이 오빠, 임수찬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실장과 매니저의 표정이 살짝 굳어있다. 수현이로 인해 데뷔가 또 미뤄질 수 있는 상황에서 친오빠인 내가 썩 반갑진 않겠지.
수현이가 부족하다는데···. 너희가 무슨 죄냐.
‘솔직하게 말해 봐. 그래야 꿀 처방전을 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