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도 모르는 잡것들은 아니길....
일부 축구 대표선수들이 야구 금메달을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개인 홈페이지에 남겼다가 된통 당했다. 최근 막을 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 직후 축구 대표선수인 오재석(20)과 김승규(20)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동메달 후기를 담은 글을 올렸다.
오재석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부와 명예를 좇는 것만이 성공적인 삶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김승규도 비슷한 시기에 미니홈피에 “정말 노력해서 딴 동메달을 당당히 걸 수 있다”며 금메달보다 자랑스런(?) 동메달을 자화자찬했다.
그 정도야 물론 애교로 봐줄만 했다. 첫 경기 북한 전에 닭짓이나 준결승전 우즈벡과의 경기에서 재현한 또 다른 닭짓, 그리고 3-4위전 이란과의 전반전까지 3연타석 닭짓에도 불구하고, 3골이나 내준 채 끌려가던 경기를 대역전으로 마무리하면서 중동 징크스를 떨쳐낸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용서해줄만큼 한국 축구팬들은 아량이 넓었다. 아니 어쩌면 늘 반복되는 뻔한 네버엔딩 스토리에 식상했다가도 다시금 열광을 보내며 헤헤거리는 축구팬들이야말로 닭대가리였는지 모른다. 닭짓을 하는 국대에 ‘닭대가리 팬(?)’들의 어울리는 궁합이랄까.
하지만 아무리 닭짓을 해도 잊어버리고 용서해야만 했던 닭대가리 팬이라 해도 도저히 용서할 수도, 아니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진짜 닭짓’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오재석 선수는 자화자찬성 글 말미에 “눈앞에서 매일같이 햄버거에 피자에 콜라를 먹으면서 아주 간단하게 금메달 목에 걸고 가는 선수들도 있더라. 참으로 깊은 실망감이 밀려왔지만 그럼에도 (우리 대표팀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승규 역시 “금메달? 경기 와서 피자? 햄버거? 콜라? 그냥 매끼마다 다 드시고 실력이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날 정도로 좋으셔서 결승전까지 쉽게 이기셔서 금메달 따 가신 분들 기분이 좋으시겠습니다^^? 그 금메달 보단 저희 동메달이 좋네요”라고 썼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대한 지독한 폄하와 함께 자뻑에 가까운 자화자찬까지 동원하여 금메달보다 더 좋은 동메달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화려한 연금술이었다. 이 같은 글은 올라오자마자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퍼지면서 논란을 낳았다. 네티즌들은 여러 가지 정황에 비춰보았을 때 이들 선수가 야구 대표팀 승리를 내리깎으려고 적은 글이라며 비난을 가했다. 현지 음식이 맞지 않아 햄버거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기사와 결승전까지 비교적 약체인 국가와 겨뤘다는 점 등 야구 대표팀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는 거다.
야구팬들은 해당 글을 퍼 나르면서 "같은 운동선수로서 독려는 못해줄망정 망언이나 한다"면서 분노했다. 비난을 이어지자 김승규는 글을 일부 수정했다가 아예 삭제해 버렸고 오재석도 해당 글을 볼 수 없도록 미니홈피를 닫았지만 논란은 잠재워지지 않았다. 29일 현재도 스포츠 관련 커뮤니티에는 이들이 남긴 글이 캡처돼 나돌고 있다.
야구팬들뿐만 아니라 축구팬들로부터도 "경솔했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온오프라인의 비난은 축구팬 야구팬을 떠나 한 목소리를 이루었다. 한 네티즌은 "다들 고생했고 실력으로 이긴 거다. 남들이 이룬 것은 쉬워 보이고 자신들이 이룬 것만 어렵게 생각되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TV보면서 축구 대표팀을 응원했는데 이 같은 글을 접하니 참 어이가 없다. 차라리 비인기 종목 선수가 남긴 글이라면 이해를 하겠다"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오재석이 야구 대표팀의 추신수와 함께 촬영한 사진을 올리며 ‘면제 부러워요’라고 적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동메달 따서 (군)면제 못 받으니 상대적으로 쉽게 금메달 따고 면제받은 야구선수가 부러웠냐"며 "그러게 축구하지 말고 야구를 하지 그랬냐"고 비꼬았다.
물론 이들은 자신들이 지적한 대상이 야구 대표팀이 아니라고 했다. 오재석 선수측은 "오재석이 남긴 글은 야구 대표팀을 겨냥해 한 것이 아니다. 젊은 혈기에 남긴 경솔한 발언 때문에 지금 굉장히 후회하고 있다"고 전했으며, 김승규 선수측도 "식사 조절을 해야 하는 등 통제를 받아야 하는 선수의 푸념이지 특정 종목을 겨냥해 적은 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둘 다 이번 논란이 야구 대 축구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것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야구팀이든 아니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야구팀이 아닌, 그보다 더 쉽게 금메달을 딴 종목이라 해도 그들이 한 무책임한 말이 용서될 가능성은 단 1%도 없기 때문이다. 한 네티즌은 "다른 사람의 땀과 노력도 존중하고 격려할 줄 알아야 한다. 선수 이전에 사람이 돼라"고 말했다. 이런 비판적 분위기는 축구팬이라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축구 커뮤니티의 한 네티즌은 "금메달 놓친 것에 대한 분함으로 해석해 주자"면서도 "잘못을 무작정 덮어주기보다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지적해주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적었다.
게다가 야구선수들은 햄버거를 먹는 것에 대해 볼멘 소리를 했다는 기사도 있는데 난독증도 아니고 무슨 햄버거 타령인지, 야구선수들이 축구선수더러 하얀 니밥에 고깃국 먹으면서 동메달 밖에 못딴 주제에 뭔 말이 많냐고 하면 뭐라고 할 것인가. 각설하고, 그렇다면 축구팀은 세계적 강호들을 상대로 혈전 끝에 동메달을 땄지만 군면제도 못 받게 된 마당에 야구팀은 어린애 팔 비틀기식으로 금메달을 쉽게 따서 군면제도 받았다고 시샘하는 것이 과연 사실관계에 가깝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축구 대표팀이 마지막 3-4위전 말고 뭘 그렇게 잘 했고, 뭐 칭찬받을 했는지 스스로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이란과의 3-4위전도 극적인 역전이 주는 흥미진진함과 그 대상이 중동의 이란이었다는 것 말고는 졸전 그 자체였고, 특히 그 스펙타클한 역전극의 빌미를 제공한 골키퍼가 김승규 선수였다는 점에서 본인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어야 했다. 하긴 뭐 오재석도 축구팀이 금메달 땄더라도 그렇게 기여도는 높지 않았을 것 같으니 그저 묻어서 병역면제 받는 행운아로밖에 기억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역시 유구무언이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