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입의 힘을 안다
◆#26-1005》몰입과 명상의 층위
by여유시간
Oct 5. 2026
몰입은 나를 성공시켰지만, 몰입을 경계하게 만들었다
나는 몰입의 힘을 믿는다.
그것은 책에서 배운 믿음이 아니다.
내가 직접 사용해보고, 실제로 결과를 만들어본 뒤에 생긴 믿음이다.
70이 넘은 나이에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을 때도 그랬다.
늦은 나이에 왜 글을 쓰느냐는 생각보다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에 집중했다.
배우고, 생각하고, 쓰고, 고치고, 다시 쓰는 일을 반복했다.
다른 일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한동안 글쓰기에 나의 시간과 생각을 모았다.
그리고 10일 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때 나는 몰입이라는 것이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몰입은 흩어진 정신을 한곳에 모으는 고도의 집중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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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명상을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많이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명상의 중요한 한 형태는 오히려 생각에 끌려가지 않는 것이다.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그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의식을 현재의 호흡이나 감각 등에 머물게 한다.
생각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끌려가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훈련이다.
몰입과 명상은 목적과 방법이 다르지만, 의식을 함부로 흩어지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닮은 부분이 있다.
둘 다 평범한 집중과는 다른 수준의 자기조절이 필요하다.
나는 이런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작동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수많은 자극 속에서도 한 가지 문제를 붙잡고 끝까지 파고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한다.
그것이 몰입의 힘이다.
─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몰입의 힘을 제대로 경험하고 나서야 몰입을 경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몰입하면 좋은 줄만 알았다.
집중하면 성과가 나오고,
깊이 파고들면 실력이 생기고,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결국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상당 부분 맞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 상태에서 몰입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올바른 방향을 향한 몰입은 나를 앞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몰입하면 어떻게 될까?
나를 앞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더 멀리 데려갈 수도 있다.
─
사람은 자신이 믿는 것을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하기 쉽다.
특히 시대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더욱 그렇다.
자기가 가진 경험과 몇 가지 지식을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 해석과 맞아떨어지는 것에는 크게 반응하면서
맞지 않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생각을 확인해주는 것만 눈에 들어온다.
내가 옳다는 증거는 계속 찾고,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증거는 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확증편향적 사고가 작동하는 모습이다.
정치적 판단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연구되어 왔다. 기존의 정치적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를 더 찾거나,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특정한 한쪽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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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하는 사람들을 볼 때도 이런 인간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국민을 위한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좋은 말이다.
그런데 처음의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자신의 신념과 결합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국민을 위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국민을 위한 행동이라는 명분 아래에서도 자신이 믿는 방향에 맞는 것만 보고, 반대되는 목소리는 무시하게 될 수 있다.
처음의 목적과 나중의 행동 사이에 커다란 틈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인간의 문제다.
─
나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깊이 파고들면, 나도 모르게 그 생각에 유리한 것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몰입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몰입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깊이 들어갈 줄 아는 능력이 있다면
가끔은 밖으로 나와야 한다.
내 생각과 반대되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과거의 지식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사람들의 관계가 예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지금 깊이 파고 있는 것이 정말 옳은 방향인가?’
─
나는 이제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한다.
한 우물을 깊게 파는 것은 좋은 능력이다.
하지만 우물 하나를 깊게 판다고 세상을 모두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물 안에 들어가면 우물밖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파고 있는 우물의 깊이는 알 수 있지만
다른 곳에 어떤 우물이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새로운 물이 솟고 있는 곳이 있는지,
내가 놓친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세상이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깊이는 얻었지만 시야를 잃을 수 있는 것이다.
─
그래서 나는 몰입을 버릴 생각이 없다.
오히려 앞으로도 필요할 때는 강하게 몰입할 것이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생기면 깊이 들어갈 것이다.
끝까지 생각하고, 배우고, 확인하고, 답을 찾아낼 것이다.
다만 이제는 중간중간 빠져나올 것이다.
고개를 들고 세상을 볼 것이다.
사람을 볼 것이다.
시대를 볼 것이다.
내가 믿고 있는 생각도 다시 볼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내가 파던 우물에서 나와 다른 우물을 찾아볼 것이다.
─
생각해보면 이것이 내가 몰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인지도 모른다.
몰입의 반대는 산만함이 아니다.
몰입의 반대편에는 환기가 있어야 한다.
몰입은 나에게 깊이를 준다.
환기는 나에게 넓이를 준다.
몰입이 나를 한곳으로 데려간다면
환기는 내가 그곳에 계속 있어도 되는지를 확인하게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몰입을 이렇게 생각한다.
깊이 파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를 파고 있는지 아는 능력이다.
잘못된 신념에 몰입하면
확신은 깊어질 수 있다.
그러나 깊어진 확신이 곧 진실은 아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더 깊게 파는 것보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채 깊이 들어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짜 몰입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몰입으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몰입을 통해 또 하나를 배우고 있다.
깊이 들어갈 줄 아는 사람은,
언제 밖으로 나와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오늘은 일부러〈암살자(들)〉영화를 한 편 봤다.
이유는 책을 읽지 않고 독후감을 쓰는 사람처럼, 영화를 보지 않고 ‘배웠다’는 엘리트들이 논평이나 평론을 하는 것을 너무 많이 듣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보러 갔다.
이 영화는 12세부터 관람이 가능하다. 그 정도면 눈으로 보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에 관람가로 정한 영화일 것이다.
그런데 방송 패널들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볼 가치도 없고 뻔하게 증명된 역사 왜곡 영화라고 말하면서 비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 시대의 배경을 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유선전화만 있던 시대.
언론 탄압과 공갈, 협박이 난무하던 시대이다.
지금은 정보도 많고 방송 채널도 많다.
폰 하나 손에 쥐면 유튜브와 각종 미디어를 통해 한 사람이 하나의 채널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뇌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면 헛짓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뇌가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몰입과 매몰의 차이는 매우 크다.
내가 보는 일부 정치인이나 방송 패널들은 12세가 안 된 것 같다.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면서 결국 몰입이 매몰로 바뀌게 된다.
최소한 영화를 보고 비평하고, 비난하고, 논평했으면 어떨까 한다.
난 영화를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잘 보고 왔다.
진실을 찾아 헤매다가 증명도 못 하고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를 보면 폭력적이고 암흑의 시대였다는 생각이 든다.
궁금하다면 영화를 직접 보고, 자신이 본 느낌으로 말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한다.
◆1프로의 삶#26》AI수정·협업》관찰작가 여유시간은 삶에서 이런 원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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