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1.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영리하고 성실한 한 소년은 마을 사람들의 지지와 후원을 받고 신학교 입학을 위한 주시험에서 2등으로 합격한다. 국가가 모든 비용을 지원하는 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은 앞으로 그의 삶이 탄탄대로로 달려갈 수 있음을 약속하는 신호였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성공이 소년의 내면적 욕구를 포기하고 영혼의 목소리를 외면한 결과였다면 그것은 소년에게 행복이었을까? 오로지 정해진 틀 속에서의 일정한 형태의 삶만을 기대하는 어른들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 소년에게 만족감을 부여했을까? ‘교육’은 인간을 성장시키고 인간의 나쁜 점을 교정하여 사회가 원하는 인간을 형성한다는 기본적 관점은 과연 올바른 교육관이었을까?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독일 사회를 지배했던 교육, 시험을 통한 경쟁과 기숙학교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관찰한 세계가 아니라 그가 직접 체험하고 고통받았던 현실이었기에 아픔의 강도는 더 강하고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2. 한스 기벤라트는 특별한 총명함과 성실함으로 마을과 학교에서 주목받았고 주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 또한 미래의 대한 호기심과 다른 사람에 대한 우월감 그리고 성공에 대한 희망으로 어린시설 누렸던 모든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기억을 포기한 채 시험준비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시험에 합격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신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로의 진출이 항상 원래의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세속적 성공을 꿈꾸던 소년은 시적인 감성과 반항적 정신을 지닌 친구의 영향을 받아 그 또한 반항적인 인물로 바뀌었고 이제까지 순응하던 교사와 어른들의 위선과 허위를 깨닫게 된다. 그의 태도가 변해가자 교장은 그에게 충고한다. “기운이 빠져서는 안 돼. 그렇게 되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고 말거야.”
3. 기숙학교로 운영되던 신학교에서의 생활은 오로지 교사들이 요구하는 과제를 반복하고 규율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자연에 대한 감성적 움직임과 세상에 대한 비판적 풍자 그리고 친구들과의 진실한 우정은 오히려 금지의 대상이었다. 규정된 틀 속에서의 생활은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들의 삶을 압박하였다. 그런 부담감은 많은 학생들을 중도에 탈락시켰으며 때론 자살로 학교를 탈출하려는 심각한 사태를 야기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소설 뿐 아닌 실제 독일의 현실이었다. 반항적인 친구가 학교에서 쫓겨나자 한스 또한 무력감에 휩쓸렸고 급기야 정신적인 문제를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한스 또한 학교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4.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는 자연과의 만남과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조금씩 정신과 체력을 회복하게 되고 새로운 일에 대한 계획에 돌입한다. 세속적 성공 대신에 공장일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육체적으로 약한 몸이지만 거칠고 약간 과장된 노동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그는 즐거움과 새로운 기쁨을 경험한다. 또한 우연하게 만난 여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한스를 성숙한 어른으로 변화시킨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그 또한 이제 과거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자각하여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침몰의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난 그의 조각배는 새로운 폭풍과 위험한 암초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이끌어주는 사람 없이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길을 찾아야 했다.”
5. 하지만 소설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 공장 동료들과 가졌던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로 물에 빠져 죽게 된 것이다. 자신의 희망이 아닌 타인의 욕구 특히 아버지와 교사들의 탐욕과 명예의 희생양으로 살았던 삶에서 본격적인 자신의 삶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멈춰버린 것이다. 여성과의 가슴 떨리고 짜릿한 연애의 순간도, 새롭게 만난 동료들과의 인간적인 만남도 중단된 것이다. 한참이나 떠돌다 스스로 찾은 행복의 가능성이 무너져버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영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없었다. 그가 죽고 나자 한 마을 사람이 안타깝게 이야기할 뿐이었다. “우리 모두 이 아이에게 소홀했던 검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6. 순수했던 영혼을 가진 한 소년은 자신이 사랑했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박한 일의 즐거움을 어른들의 욕심에 의해 빼앗겨야 했다. 때론 외부의 욕구에 따라 두통에 시달리며 책을 읽고 고전어를 배우며 학교의 규율을 준수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고 그들의 고민과 아픔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들의 따뜻한(?) 충고는 험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부추기는 말이었으며 ‘수레바퀴’라는 생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혼에 대한 무관심과 진정한 욕구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가 결국 아이를 ‘수레바퀴’ 속으로 몰아넣어 그의 죽음을 가져왔다. 어쩌면 그의 공허와 무력감을 벗어나게 해줄 수 있었던 여성과의 만남도 사라져버렸다. 인간이 청춘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상실한 채 삶이 종결된 것이다. 그것은 청춘의 소중함을 무시한 왜곡된 인식의 결과였으며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현실의 무감각 속에서 살아가던 어른들의 무능 때문에 일어났다.
7. <수레바퀴 아래서> 속 이야기는 작가 헤세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있다. 헤세 또한 엄격하고 강압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었으며 학교를 그만두고 시계공 견습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런 경험이 젊은이들의 정상적인 성장을 압박하는 교육의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게 하였으며 다양한 개성 특히 정서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였던 것이다. 소설 속에서 모범생이었던 한스는 학교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긍정한다. “선생님들이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의무는 아이들의 거친 본능을 누르고 국가가 원하는 평화롭고 절제된 이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한스는 학교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어떤 고려도 없이 학교의 목적과 역할을 너무도 강제로 개별적인 학생들에 강요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다. 학교는 ‘계획된 훈련’을 통해 학생들을 사회의 바람직한 일원으로 교육시킨다. 그러나 아이들이 지닌 개별적인 정서와 영혼에 대한 이해가 없이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결국 수많은 희생자들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8. <수레바퀴 아래서>는 전체적인 계획을 통해 진행되는 사회적 프로젝트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유용성과 실용적인 지식만이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교육은 아이들이 지니고 있는 각자의 가능성이 최고의 형태로 발현시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사회적 편견과 압박 때문에 몰락해야 하는 젊은 영혼의 모습이 안타깝다. 행복은 사회적 기준과 외부의 시선에 따른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하는 기쁨과 희망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각자 행복에 대한 기준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분위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는 추구해야만 하는 공통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개인들이 지닌 개성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개인을 파멸시키는 사회적 목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첫댓글 -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환경, 상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옛날 이야기가 아니고, 먼나라 이야기도 아니다. 지금 자라나는 우리들의 아이들도 격랑의 세월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덜 고통스럽기를 바랄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