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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를 향하여!!!
히말라야 캠프기 1 ~ 15 [2012년 8.12-8.26]
- 작성자 : 류 호 산
- 작성일 : 2012. 08. 30
-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 다녀와서/
1일차 [비행기의 날]
드디어 히말라야로 떠난다. 네팔, 히말라야, 그 중에서도 안나푸르나.
이번 여행은 이미 예비캠프를 진행했기 때문에 구성원들끼리 어색하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인천에서 광저우를 거쳐 카트만두로 가는 것이 일정이였다. 중국공항에서 어이없게도 현민이가 아이스크림 1개를 12달러에 샀다. (그 다음부터 현민이의 별명은 12달러가 되었다) 또 4명이서 조를 짜서 20달러로 끼니 떼우기를 했는데 난 같은 조원 아이들과 그냥 20달러 짜리 주먹 만한 치킨을 사먹었다. 당연히 간에 기별도 안갔다. 나중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조금씩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는데, 사먹은 것보다 얻어먹은게 맛도 더 있었고 양도 더 많았고 영양가도 더 높았다. ㅋㅋ
중국을 떠나 네팔로 출발! 처음 딛어보는 나라, 네팔. 심장이 두근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식욕이 불어나서 비행기당 평균적으로 기내식을 2.5개씩 먹었다. 드디어 네팔 도착! 도착했을 땐 이미 깜깜했다. 네팔공항은 실내가 벽돌로 되어 있었고, 벽돌기둥에 거울이 붙어 있고, 아주 규모가 아담했다. 바깥으로 나오자 우리들을 위해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기서 000씨와 XXX씨가 네팔 불량배들에게 '팁' 을 주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돈을 뜯긴 것이다. 나는 이때 웃었지만 훗날 더 큰 일을 당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봉고차는 도로를 달리고 달려 골목으로 들어가 계속 갔는데 사실 이때 너무 편안해서 숙소가 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생각보다 금방 도착한 숙소의 이름은 '조이하우스' 였다. 고아들과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모여 살고 한국 선교사님들이 운영하는 곳이였다. 숙소에는 침대 여러 개가 있었는데, 이것을 보고 '앞으로 바닥에서 자지는 않겠구나' 라고 예상되었다. 네팔은 영국의 영향을 받은 '침대문화' 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 관리자 12.08.31. 08:58
오! 우! 드디어~~~ 호산이의 순례기가 시작되었구나... 천천히 읽어볼께... 공동저자로 등록할 수 있겠군...ㅋㅋㅋ
*** 근석이 아빠 12.08.31. 22:00
기다리고 있던 호산이의 순례기가 올려졌네요... 근석이보고 호산이형처럼 멋진 글솜씨 좀 배우라고 했는데...
호철이도 호산이도 이다음에 아름다운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아저씨도 잘 읽어볼께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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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버스의 날]
오늘은 약간 오전을 헛되게 보낸 감이 있었다. 아침은 조이하우스에서 선교사님들이 만들어주신 한식! 소시지와 김 같은 음식들이 있어서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사실 이때까지는 기내식을 포함해서 배부르게 먹어 앞으로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ㅋㅋ
버스타고 시내를 관광하는 날 이였는데, 사실 네팔의 길거리는 세 글자로 표현하자면 '난장판' '쓰레기' '난리통' 이였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경적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고, 차보다 오토바이가 더 많아서 엔진소리도 엄청 시끄러웠다. 문제는 조금 후에 파악할 수 있는데 바로 차선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교통경찰도 단 한 명도 없었다! 교통사고가 안나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또 길거리는 더럽기만 하고 볼게 없어서 버스 안 인원들중 70%는 자고 (나도 그중 하나) 29.9%는 그냥 멍때렸다.
잠시 네팔의 부유층들만 간다는 슈퍼마켓에 들렸는데, 이 슈퍼마켓은 한국인이 시초라고 한다. 이 슈퍼마켓 건물은 겉모양부터가 네팔의 보통 건물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도 실내는 에어컨도 없고 조명도 별로 좋지 않은, 우리나라의 보통 작은 마트 수준이였다. 좋아보이는 건 에스컬레이터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도 네팔기준으로는 상당히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버스로 오는 길에 본 빈민촌은 말그대로 텐트치고 자는, 수십 명이 모여있는 곳이였다. 그런 곳들이 도로 주변에 아무렇지도 않게 널려있었다. 자본주의의 폐해와 빈부격차에 관련된 생각이 마구 떠올랐다.
잠깐 네팔의 서울대로 불려진다는 트리붓티(?)대학에 들렸다.잔디가 깔려있고 가방을 들고 좋은 옷을 빼어 입은 네팔 젊은이들이 캠퍼스를 오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간혹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도 보였다. 빈민촌의 모습과 이 모습이 다시 한번 겹쳐졌다. 또 한번 네팔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다시 조이하우스로 돌아왔다. 네팔 아이들과 축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조이하우스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이상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축구를 하려고 하는 네팔 친구들의 나이를 쉽사리 짐작하기는 힘들었다. 키도 한국 아이들보단 훨씬 작았고 얼굴도 외국인이여서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와 축구를 같이 한 친구들은 대부분이 고등학생이였다고 한다.
한국팀 대 네팔팀을 하면 우리팀이 질게 솔직히 뻔해보여서 적절히 섞어서 경기를 했다. 네팔인들의 축구실력은 예상대로 돋보였다. 특히 노랑색티와 파란색티를 입은 학생들은 그냥 개인기로보나 뭘로보나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우리 원정대원들도 선전했다. 다빈이나 민석이가 각기 팀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맡아서 해주었고 나도 여러 골을 넣었다.
한 두시간 넘게 축구를 뛴 것 같았는데, 조이하우스 앞마당에 농구 코트가 있는 것을 발견, 성현이형과 다빈이와 내가 네팔인 3명과 농구를 뛰었다. 난 지금까지 '농구는 키빨'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네팔인들은 평균 신장이 160도 안됨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드리블과 엄청난 스피드로 모두 키가 170을 훌쩍 넘기는 우리 한국팀을 압도했다. 물론 최종 스코어가 비슷하게 나오긴 했으나, 네팔인들의 운동실력은 정말 알아줘야 할 것 같다. 인도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그런데 왜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는 특별한 두각을 드러내지 않을까?
저녁은 조이하우스 급식실? 같은 곳에서 네팔 아이들과 같이 먹었는데 노란티와 파란티, 같이 농구를 한 아이들 등 거의 모두가 급식실에 모여 있었다. 메뉴는 딱딱한 치킨과 맛없는 치킨이 들어간 카레. 그런데 문제는 카레조차 맛이 없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먹었던 치킨커리는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날은 이상하게도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갑자기 변화한 음식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내일은 산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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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등산의 날]
새벽 5시경에 일어나 히말라야로 버스를 타고 출발!!! 어제 탔던 바로 그 버스였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에어컨과 선풍기는 장식이고, 창문은 잘 안열릴 뿐만 아니라 가만히 서있어도 자갈밭을 달리는 것 같은 버스였기 때문에, 정말 지옥행 버스가 따로 없었다.
중간에 휴게소를 들려 빵과 바나나 등으로 아침을 먹었다. 음식 중에 '찌야' 라는 게 나왔다. 인도에서 먹었던 '짜이' 와 흡사했다! 선교사님께 물어보니 이 둘은 예상대로 같은 음료였다. 같은 이름을 쓰지 왜 다른 이름을 쓰는 걸까?
드디어 히말라야 근처, '산마루 식당' 에 도착했다. 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된장찌개였다. 물론 이것도 감지덕지해야할 우리지만 하필이면 우리 뒤에서 다른 어른들이 三唊殺을 구워먹는 것이였다! 당연지사 냄새가 진동했고 우린 직접 먹는 것보다 삼겹살을 쳐다보는 것이 더 배가 불렀다. 우린 기필코 다시 산마루식당에 와서 삼겹살을 먹자고 맹세했다.
점심을 먹고 포터들과 같이 트레킹 시작! 우리들의 가이드인 텐디지 아저씨는 약 40살정도였다. 삼촌샘은 2년 전 호철이가 왔을 때도 만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외 포터는 텐징지, 링마, 징아 등 5명이였다.
히말라야는 뭔가 달랐다. 공기도 달랐고, 등산로에 당나귀와 닭이 지나다니는 것도 달랐다. 누군가가 "위를 봐!" 하고 소리쳤다. 그 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위를 보니?!!?!?!! 사진에서나 보던 만년설이 덮혀있는 봉우리가 그 자태를 드러냈다! 모두를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광경이였다.
우린 모두 최대한 위에서 더 좋은 경치를 보려고 온갖 별짓을 다했다. 구름이 걷히자 봉우리는 여러 개로 늘어났다.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삼촌샘의 말대로 저것을 본사람과 안본사람의 차이가 엄청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눈 덮힌 곳까진 올라가지 못해서 아쉽다는 느낌도 들었다. 히말라야하면 솔직히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눈인데....사실 포터들이 따라간다는 소리를 듣고 눈을 맞으며 가방을 매고 오르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저녁은 숙소 옆 작은 식당에서 우리가 가져온 짜장과 네팔식 볶음밥을 먹었는데, 짜장은 부족하고 볶음밥은 맛있었다. 여기서 다빈이와 나는 '뱃속에 거지가 든 사람' 으로 낙인찍혔다. 고추참치가 식욕을 돋우어 먹는걸 멈출 수 없었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중간에 점심 먹을 때 버스에 가방을 두고 내렸는데 누군가가 돈을 훔쳐간 것이다. 나만 당한게 아니라 다빈이도 20달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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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차[거머리의 날]
아침부터 컵라면을 먹고 산행을 시작했다. 생각만큼 힘들진 않았고 그늘도 많아서 오히려 어제보다 길이 쉬운 감이 있었다.
그러나 거머리와의 첫만남은 이번 여행을 가장 기억에 남게 만들었다. 난 한국에서 거머리를 본 적이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적다. 막연하게 기억하는 이미지는 검은색에 통통하게 생긴 이미지인데, 이번 네팔 거머리는 그것 이상이었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중간에 휴식하는 코너에서 아이들이 몰려있는 것이다. 뭐가 있나 봤더니 그냥 풀을 보고 '거머리, 거머리!' 이러고 있는 것이였다. 좀더 자세히 보니!!! 나뭇잎에 약 6마리 거머리들이 입을 붙이고 꼬리를 하늘에다 대고 흔들어대고 있는 것이였다. 거머리들은 윤기가 도는 갈색이며 약간 붉은빛이 돌기도 했다. 선교사님들은 이제부터 거머리가 나온다고 하셨고, 우린 그 후로부터 거머리에 엄청나게 시달려야 했다.
거머리 이외의 또다른 변수는 다름아닌 똥이였다. 초반에는 소똥만 나왔으나 갈수록 말똥, 염소똥 등 가지각색의 똥들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소똥이 왕중 왕이였다. 앞을 보고 걸을 수 없는 수준으로 그냥 땅만 보고 걸어야했다.
설상가상으로 숙소를 향해 가던 도중 비가 쏟아졌다. 우린 즉시 가장 가까운 건물로 피해 우비를 입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길의 특성상 발은 포기해야 했고 ,비가 워낙 거세서 그냥 쫄딱 젖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밟은 물이 다 똥물이였다. 으악!!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했는데, 씻고 좀 여유로워지자 play time이 되었다. 성현이 형의 주도 하에 마피아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기본적인 룰에 조금의 룰이 추가되었는데, '마피아 미션제도' 와 '스파이' 가 그것이였다. 스파이는 좀 나중에 추가되었고 마피아 미션제도는 밤 때 마피아가 미션을 확인하고, 아침에 몰래 미션을 하면 그 다음 밤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제도였다. 사실 밤마다 마피아가 죽이면 시민이 너무 불리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였다.
사실 태어나서 한 마피아 중에 이 캠프에서 한 마피아가 가장 재미있었다.
내일은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계단이 많다고 하는데, 두고 봅시다.
* 관리자 12.08.31. 23:29
호산이 글 대박날듯~~~ 베스트셀러되면 인지세 톡톡히 챙겨주마
빗물이 땅의 똥을 만났으니 똥물이 되겠지~ 우리가 밟은 흙도 사실 똥이 반절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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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차[계단의 날]
오늘은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 날이다. 엄청나게 계단이 많았고 약 300m를 올라가야 했다. 말이 300m지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 코스가 많아서 실제 걸어가는 코스는 엄청난 거리였다. 다행스럽게도 거머리는 없었지만 햇빛이 강렬해서 어린아이들은 모두 쳐졌다. 올라가다보니 구름이 점점 발 밑으로 가라앉았다. 어느새 고도는 1000m를 넘어서고 우리나라 산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들이 나타났다. 저 멀리서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산의 한 귀퉁이가 완전히 황토색이 되고 조그마한(?)돌멩이들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물론 가까이서 보면......우와!
점심 먹는 곳까지 가는 건 아주 힘들어서 우리들은 "이러고 또 점심 라면 주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라면이겠어?" "점심 라면이면 욕한다." 이러면서 갔다. 그런데 점심은 ...라면이였다. 그래도 볶음밥이 있어서 케첩을 뿌려먹으니 천상의 맛이였다!
내가 여기서 발견해낸 네팔 볶음밥+케첩의 조합은 앞으로도 엄청나게 인기있는 조합이 된다. 난 한 5인분은 먹었다. 은경이나 현민이도 케첩을 뿌려먹으니 정말 맛있다고 극찬했다.
여행 내내 느낀 것은 포터들이 너무나도 착하시다는 것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돈을 가져간 범인을 포터들로 의심한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그 이유는 바로 식당에서 우리가 ‘밥’ ‘물’ 반찬‘ 이라고 말하기만 하면 다 갖다주고 자신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종업원 역할을 도맡아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한국에서는 몰상식한 사람으로 오해받을만한 짓들을 많이 해버렸다. 접시를 들고 ’밥, 밥‘ 이러던가 지속적으로 물을 갖다달라고 한다던가.....한국에서 이런 행동을 하면 욕먹을만 하지만 네팔에선 통하는 것이다. 포터들의 이런 헌신적인 행동은 캠프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밥을 다 먹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비가 왔다. 비가 오는 관계로 식당에서 식탁에 그대로 앉아 마피아를 1판하고 숙소로 가는데 의외로 이야기를 하면서 가서 그런지, 아니면 실제로 거리가 조금 남아서 그런지 금방 도착했다.
이번에 묵은 숙소는 지금까지 묵은 숙소들보다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컸다. 외국인들도 좀 있어서 이날 저녁은 시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놀이 금지령이 내려졌다!! 숙소의 저녁은 스파게티와 감자였다. 난 맛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스파게티는 이구동성으로 맛없다고 했다.
내일과 모레 산행이 클라이맥스다.
*** 근석이 아빠 12.08.31. 22:08
나의 잘못된 행동과 생각으로 인해 타인은 물론 내 자신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돈을 잃어버린 순간! 그 돈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로 전해지길 마음 속으로 빌어 줄때, 의심의 마음도 잃어버린 슬픔과 분노도 사라지면서 더 큰 무언가를 마음 속에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단다...(근석이 아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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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차[3000m의 날]
오늘 아침은 상당히 추웠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아침은 빵에다 잼과 꿀을 발라먹었는데 계란도 같이 먹으니 아주 영양가가 높은 음식이 되었다. 저번에 캐첩을 발라먹은게 후회될 정도로 맛도 있었다. 그 후 블랙티를 마셨는데 사실 이 블랙티라는게 난 처음에 그냥 콜라를 끓인건 줄 알았다. 냄새도 비슷하고.... 무슨 원리인지 고소도 막아주는 기능성 음료라고도 한다. 솔직히 블랙티보다는 밀크티가 더 맛있었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역시 성현이형이 맏형답게 대단한 체력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내 또래들 중에서 산을 나보다 잘 타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는데 성현이형은 달랐다. 중간에 물살 빠른 계곡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는 다리가 몇 개 있었다. 그곳은 상당히 위험해서 반대편에서 오는 다른 외국인들 일행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건넜다. 산을 탈 때에는,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서로 돕는게 예의인 것 같다. 사실 산을 탈 때 뿐만 아니라 항상 다른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도와야 하지만 말이다.
조금 걸은 것 같은데 약 3시간 만에 수백 미터를 올라와 2910미터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곳에는 스페인사람들 등 여러 인종의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과 축구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FC바르셀로나가 무조건 이긴다는 말을 하면서 웃기도 했다. 히말라야에서 외국인과 이런 문명적인 대화를 나누니 갑자기 한국이 그리워졌다.
게다가 그 식당에서 먹은 점심메뉴는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서 가장 맛없었다. 카레도 아닌 수상한 카레에다가 녹두죽을 먹었는데 그 수상한 카레의 맛은 정말 최악이였다. 포터 아저씨들에게 물어봐서 밝혀진 그 카레의 내용물의 정체는 바로 ‘죽순’ 이였다. 히말라야에서도 죽순이 자란다는 사실도 신기했지만, 이 음식이 고소를 예방해준다는게 더 신기했다. 처음으로 음식을 남길 뻔 했으나 한국의 음식, 고추장과 김, 자반 덕분에 겨우 먹을 수 있었다. 고추장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숙소까지 약 한시간을 더 가야한다고 했다. 우리들은 젓가락 등 여러 놀이를 하다가 한시간 뒤에야 출발했다. 그러나 늦게 출발한 것은 엄청난 재앙을 가져왔다. 비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뒤쳐졌고 결국엔 성현이형과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중간에 엄청난 물살의 계곡 위에 아슬아슬한 나무다리가 있어서 다른 등산객들의 도움을 받으며 건너가야 했다.
우리가 묵는 숙소는 3120m에 위치했다. 드디어 3000m를 넘긴 것이다. 그러나 3000m정도에 온다는 ‘고소’ 라는 건 오지 않았고 우린 멀쩡했다. 그런데 선교사님들의 말씀은 삼촌샘과는 반대로 “고소 그런거 안와.” 그 후에 좀 찜찜하게 덧붙히는 말은 “ 대충 산행하는 사람에게는 올 수도 있지.” 진실은 며칠 후에 밝혀졌다.
저녁은 볶음밥과 감자튀김이였다. 이 두 개의 음식은 모두 캐첩과 궁합을 이루는 요리가 아닌가! 금상첨화라는 단어가 딱 어울렸다.
내일을 기대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 관리자 12.08.31. 23:36
호산이에게 밥 대왕상을 주어야 겠구마..... 밥 먹은 양만큼 여행 중에 체력을 보강할 수 있다는 진리를 터득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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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차[정상정복의 날]
드디어 mbc를 거쳐 abc를 찍고 다시 돌아오는 날이다! 난 정말 이 날을 기대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이 캠프의 꽃이기도 했다. 무려 1000m를 올라갔다가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내려오는 아주 빡센 코스다. 처음에 날씨는 햇빛과 바람의 연속이였으나 올라갈수록 점점 추워지는 것을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길을 가다보니 계곡이 나와서 건너고 뒤를 돌아보니 눈이 얼어 만들어진 커다란 파도모양 조각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자연의 신비로움에 입이 딱 벌어졌다.사람은 그 옆에서 아주 작은 점으로 조그맣게 서 있을 뿐이였다. 자연과 비교도 되지않는 인간.. 눈을 이렇게라도 봐서 정말 다행이었다.
조금 더 앞에는 얼음동굴이 있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모양이 장관이었다. 그 거대한 몸체를 가느다란 기둥 하나로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란!! 그 기둥을 툭 치고싶은 짖궂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기둥이 부서지면 깔려 죽을테니 pass.
포터아저씨들은 그 높고 위험한 눈 언덕 위에 슬리퍼차림으로 올라가 기념촬영을 했다. 탠디지가 나보고 올라가보라고 권유했지만 난 차마 올라갈 수 없었다.
계속 올라가자 드디어 구름이 발 밑에 보였다. mbc에 도착해서 블랙티를 마시고 경치를 봤다. 구름이 점점 우리를 향해 올라왔다. 대단한 풍경이였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었다. ‘날씨가 흐려져 경치를 못 보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다. 정말 '이렇게 힘들게 올라왔는데 안개따위 때문에 경치를 못 보고 간다면 진짜 때려 친다.....' 이런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그런데 mbc에서 출발한지 조금밖에 안됬는데 abc가 보이는 것이였다. 최종목적지가 바로 보여서 우리들은 너무 쉽다고 생각했으나 올라가도 올라가도 도저히 보이기만하고 가까워지지 않았다! 나중에 은경이와 민종이는 대륙이동설이 아닌 '숙소이동설'로 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설명했다.
게다가 날씨도 점점 흐려져 한치 앞만 겨우 보일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막판엔 다빈이,근석이,내가 가장 앞에서 abc를 향해 달렸다. 그런데 문제는 머리가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마찬가지였다. 머리가 어떤 모자같은 것에 의해 조여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어지러운 것 같기도 했다.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느낌이였다.
이런 복합적인 요소가 합쳐져있는 상황에서 abc 앞에 있는 마지막 돌 계단이 보였을 때 우리들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상상이 갈 것이다. 갑자기 힘이 나서 계단을 막 뛰어오르고...... 머리는 어지러워서 쓰러질 것 같고 말이다. 사실 며칠 전에는 내 한계를 보고싶어서 ‘고소한번 걸려보고 싶다’ 라고 장난삼아 말했었는데 고소는 아니지만 머리가 아프니 진짜 장난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abc에 도착하고 우린 그냥 쓰러졌다. 보리샘의 누우면 안된다는 말이 있었으나 솔직히 앉아있는게 머리가 더 아팠다. 삼촌샘이 산소스프레이를 나눠주셔서 산소를 마셔보기도 했는데 솔직히 별 맛도 안났고 별 효과도 없는 것 같았다. 호철이는 맛있댔는데......
전에 들렀던 숙소식당에 눈이 덮혀있는 abc사진이 걸려있어서 눈이 있을 줄 알았지만 눈같은건 없고 바깥은 그냥 안개 투성이여서 아무것도 안보였다. 곧 이어서 일행들이 다 도착했고 abc에서 어김없이 밀크티를 마신 후 기념사진을 찍으러 출발했다. 경치는 안보이고 무슨 탑같은 것이 있어서 가보았는데 산사태로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탑이였다. 안경이나 사진 등 유품들을 보니 솔직히 좀 슬퍼졌다. 행복했던 사람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다니....... 한국사람처럼 보이는 분들 사진도 몇 장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정상을 찍었는데도 별 감흥이 없었다. 이 느낌에 다른 사람들도 동조했다. 나중에 삼촌샘이 말씀하셨지만 이 여행은 정상찍은게 끝이 아니라 아직 한참 길이 남아있고 정상을 찍은 건 그냥 일정의 일부일 뿐이였기 떄문에, 별 감흥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오기 시작해서 최악의 상황이였다. 비는 갈수록 많이 오고 안개 때문에 앞도 안보이는데, 우리들은 필사적으로 1000m를 내려갔다. 중간에 민석이가 비오는 길가에서 일을 봤다. 올라오면서 봤던 경치를 다시 보며 내려가는데 뭔가 허무했다. 가장 많이 드는 감정은 물론 '힘듬' 이였다.
숙소에 도착하자 바로 우린 곧바로 포커를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바로 자라는 삼촌샘의 명령이 있었다.
내일은 목적지에 도착하고 '무한한 자유'를 준다고 하셨는데...? 정상도 찍었고 빨리 내려가서 놀고싶은 마음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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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석이 아빠 12.08.31. 22:30
산은,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이, 산이 우리를 품어준다는 사실에 감사해야할 따름이다... 거만하고, 오만한 인간들이 나름 뽐내면서 산을 오르고, 자연에 도전한다는 맘이지만, 거대하면서도 말없이 품어주는 대자연의 넓은 아량에 진정으로 고개를 숙일 때, 자연은 인간에게 또다른 것을 선물한다고 생각된다..
* 관리자 12.08.31. 23:42
호산이가 정상에 가면 뭔가 있을줄 알고 큰 기대도 했던거 같구나.... 실은 정상이란, 허공뿐이란다. 그 허공을 향해 달음질하는 우리 인간의 진면목을 깨달았다면 그것으로 족한거겠지... 그래도 안나푸르나의 장엄한 광경을 안개로 인해 볼수 없었던 건 호산이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아쉬움이 있었을듯 해. 정상? 별거 아니지... 이번 여행은 정상이 목표가 아니라 과정 그자체 전부가 목표였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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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차[노는 날]
아침 6시쯤 일어나 짐을 챙기고 5일차쯤에 묵었던 곳으로 쭉 내려갔다. 아침에 묵상말씀을 들었다. '내가 누구인지 잘 생각하고, 우리는 모두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각자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왔다' 사실 뭔가 '깨달음' 을 얻은 사람들의 말은 다 공통된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스티브 잡스도 '우린 우주에 흔적을 남기러 태어났다' 라는 말을 했고 말이다.
날씨는 좀 흐렸는데 약 1000m를 내려가는 것이여서 어제보단 훨씬 쉬울 것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코스가 길었고 아침을 <네팔식> 팬케이크로 떼웠기 때문에 배가 너무 고팠다. 하지만 그 '배고프다는 집념' 덕분에 가장 처음으로 점심먹는 곳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몇 명의 아이들과 휴식을 취하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진짜 점심먹을 곳은 30분을 더 가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겨우 도착한 곳은 반갑게도 한국음식을 파는 전설의 음식점이였다! 우린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선교사님들이 말씀해주신 엄청난 비극의 사실. 지금은 비성수기이기 때문에 아주 기본적인 음식 재료만 구비해 두고 가을같은 성수기에만 한국 음식을 판다는 것!
-완전 멘탈이 붕괴되다 못해 폭파될 지경이였다. by 현민.
남은 사람들이 안와서 선교사님들과 합의한 결과 밥을 먼저 먹고 빨리 가기로 했다. 그러나 밥을 다 먹을 즈음에 삼촌샘과 다른 일행들이 도착해서 우리를 멈춰 세웠다. 다 같이 간다는 것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뒷사람들은 라면을 사먹었다고 한다. 먼저 온 사람들은 뭔 죄야!!!!
다시 밥을 다 먹고 가려고 하는데 비가 쏟아졌다. 다시 비옷을 입고 민종이, 은경이와 동요를 탐구하면서 산길을 첨벙첨벙 갔다. 길가엔 똥과 거머리 천지여서 똥물을 찰방찰방 밟고간 셈이 되어버렸다. 결국엔 완전 똥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저번 산행엔 거머리에 한 번도 안 물렸는데 이번엔 엄청나게 많이 거머리에 물려 있었다.
대망의 저녁시간이 돌아왔다. 메뉴는 <백숙>이였다. 조이하우스 이후로 제대로 먹는 고기였다. 닭국물이 끝내줬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배고파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주 대단한 맛이였다!!! 남기는 것은 사치였다. 엄청난 만찬을 먹고 포커를 하다가 방에 들어가서 오늘 이익을 계산해 봤는데 이익이 약 10달러고 손해가 8달러였다.ㅋㅋ
백숙덕분에 행복한 밤이었다.
* 이 녀석들!!! 성스러운 히말라야에 와서까지 카드놀이를 하다니..... 니들이 히말라야 원정 도박단이냐? 장난이었겠지? 그래, 충분히 이해한단다....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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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차[호텔의 날]
아침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는데 팬케이크와 계란이였다. 아침조회시간에 들었던 장로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우린 지금 14일간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터널은 지나면 바로 끝나고 바깥이 보이는 것처럼 살면서 여러 개의 고난과 역경, 즉 터널을 보내기만 한다면 한순간일 뿐이기 떄문에 그것들은 모두 경험이 되고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뭐 이런 내용의 말씀이셨는데 이 캠프도 금방 지나갈테고, 앞으로 겪게 될 수많은 고난과 역경들도 지나가면 모두 경험이니, 잘 버텨내자는 요지의 말씀이신 것 같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리라.
산행을 시작하자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제보다는 안 힘들다고 하지만 그건 지도상으로 길이만 볼 때에 한정된 것이고 부수적인 요인이 더 추가되었다. 그것은 바로 거머리와 소똥이다. (뭐 빠지는 날이 없어!)
오늘도 어제처럼 거머리가 엄청나게 달라붙었다. 물론 피도 엄청나게 났다. 거머리와 모기의 차이점과 공통점. 거머리는 물리고 나서 아물 때 가렵지만 모기는 계속 가렵다. 거머리는 피가 나지만 모기는 피가 안난다. 거머리는 안떨어지지만 모기는 쉽게 떨어진다. 결론은 둘 다 짜증난다.
다른 사람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비도 오고 똥도 많아서 똥을 안 밟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힘든(더러운) 코스였다. 중간에 거의 기적적으로 도착한 점심식당에서는 야채라면과 볶음밥을 먹을 수 있었다. 우비에 거머리가 엄청 붙어있어서 밥 먹을 때 물리기도 했지만 밥은 맛있었다. 식당에는 재가 담긴 그릇이 구비되어있어 거머리들을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었다. 거머리에게 통쾌한 복수전(?)을 펼쳤다.
점심을 먹은 후 조금 더 가니 숙소가 나타났다. 저녁메뉴는 <수제비>였다. 텐디아저씨가 직접 만들었다고 했는데 환상의 맛이었다.텐디아저씨가 갑자기 열 배는 더 좋아졌다. ❤
* 정말 소똥과 거머리 때문에 고생 많았구나... 그런데 각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소똥과 거머리가 이번 여행에서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거야..... 세상 살다보면 그 이상의 더한 경험도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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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차[호텔의 날]
오늘은 산을 내려가고, 내일 전망대를 갔다가 쭉 내려가는 일정의 초반인 날이다. 한마디로 오늘보단 내일이 일정상으로는 훨씬 중요했다. 하지만 오늘은 의외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애플파이로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최종목적지는 고레파니이고 약 6시간 소요 예정이였다. 난 신발이 작살난 관계로 포터아저씨의 신발을 빌려 신었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정말 고마웠다. 한국에 가면 이런 신발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을 먹을 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출발해서 쭈욱 가는데 중간에 풀과 꽃으로 덮히고 말들이 풀을 뜯어먹는 푸른 언덕이 나왔다. 그런데 주변에 구름이 쫙 깔려있어서 하늘에 떠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히말라야에는 의외로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눈덮힌 곳이 아니여서 그럴지는 몰라도 인간세상에서는 볼 수도 없는 모양의 예쁜 꽃들이 만발했다. 양귀비까지 있었다! 무궁화처럼 생긴 분홍 꽃도 있었고 노랑, 보라, 빨강 등 색깔도 가지각색이였다. 카메라를 안가져온 게 후회되게 만드는 첫 번째 장소이기도 했다. 정말 넋을 놓고 보게 만드는 광경이였다.
조금 더 가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번 목적지의 광경이 좀 특이했다. 지금까지는 산장처럼 덩그마니 건물 1개만 있었다면 이번 목적지는 여러 호텔과 가게가 많이 몰려있어 마치 마을처럼 보였다.(마을인가?)
우리가 묵는 호텔은 그 마을 중에서도 가장 위쪽에 위치했다. 계단을 엄청 올라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도 엄청난 계단을 겪은 것은 처음이었다. 얼마나 가팔랐는지 진짜 고소가 걸릴 지경이였다.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그 곳에서 포터들이 게럼이라는 도박을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포켓볼과 비슷한데 규칙은 이랬다.
-약 1m*1m 나무 정사각형에 모서리에 구멍이 있는 판을 사용한다.
-돌은 팀당 5~7개, 검정과 하양이다.
-빨간돌은 퀸(코인)인데 상대돌을 1개 남겨놓고 퀸을 넣은 다음 바로 상대돌을 넣어야 승리한다.
-치는 돌을 넣거나 자신 돌을 넣으면 상대의돌 1개가 부활한다.
-자신의 모서리에서만, 자신의 영역에 있는 선에 닿는 한에서만 돌을 칠 수 있다.
뭐 이정도인데 아주 재미있어보였다. 바닥엔 석회가루대신 커피 프림을 뿌렸다. ㅋㅋㅋ 저렴하지만 아주 재미있어보였고 착하게만 보였던 포터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녁에 하려고 시도했으나 이미 치워져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 후 일행들 몇 명과 삼촌샘의 권유로 포켓볼을 치러 갔으나 자리가 없어서 실패하고 마피아를 하다가 치킨커리를 저녁으로 먹었다. 네팔에서 먹은 커리치고는 맛있는 편이였다.
7시경에 모여서 각자 느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를 좀 더 잘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힐라샘이나 장로님같이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너무나도 좋은 경험이고,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캠프였다고 말씀하셨다. 또 우리가 이 어린나이에 이런 캠프에 올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부모님께 감사드리라고 하셨다. 특히 힐라샘은 큰 깨달음을 얻으신 것 같았다. 삼촌샘은 우리가 모두 하나이고, 정말 우리 모두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하셨다. 역시 공동체는 멋지고 중요하다!
그 후엔 다시 마피아를 저녁식탁에서 하다가 무서운 이야기를 좀 하다가 잤다. 산을 슬슬 내려오니 여유로워진 것도 같다.
*** 근석이 아빠 12.08.31. 22:35
깨달음을 논하기는 나이도, 경험도 아직 부족할텐데, 호산이의 철학적 사고로는 충분히 논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깨달음에 다가갈 수록 혼돈이 올 수도 있기에 좀 더 많은 경험과 지혜를 쌓아가면 혼돈을 줄일 수 있고, 좀 더 확실한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하는데... 아저씨도 오십이 다 되는 나이인데도 깨달음에 다가가는 것인지 다가갈 수가 없는 것인지, 수행의 길을 걸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한단다..ㅠㅠ
* 관리자 12.08.31. 23:57
역시 지존이야!!! 니 타짜될 소지도 다분하다..... 호산이 글을 읽으며 다시한번 우리가 하나되어 무사히 성공적으로 순례길을 마쳤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고마워, 호산아... 진심으로 사랑하고 ... 대견할 따름이야... 우리가 간 30대 40대의 길을 저희들은 10대때 20대때 가도록 하렴.... 그것이 사회발전이고 인류진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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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차[좋은 날]
아침부터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삼촌샘의 이야기를 들었다. 초능력이 있거나 몇백 년을 살아도 사랑이 없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중요한 사실 세가지가 있었는데,
1.하던 일을 멈춘다.
-인간의 생활패턴과 몽상을 멈출 수 있어야 참된 내가 될 수 있다. 또한 일을 멈춰야 정신과 몸이 하나가 된다.
2. 말하지 않는다.
- 우리들의 말이 진심으로 울려나오는 말이라면 하루에 몇 마디 안 된다. 보통은 그냥 목구멍에서 나오는 짧은 언어이다. 말을 계속하면 무조건 자신 말이 옳은 줄 안다. 즉 말을 멈추고 상대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
3. 잘 듣고 한다.
-이렇게 하면 성공이 확실하다. 보통사람들은 듣는 훈련이 잘 안되어 있다. 잘 듣는만큼 성공하고 잘 듣고 따라한 만큼 성공한다. 듣지 않으면 거만해지고 교만해진다. 조금만 듣는다면 그것만큼밖에 보지 못한다. 매미소리나 풀잎소리까지 모두 귀기울일 수 있다면 그것은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3가지를 기억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정말 중요한 말같다. 꼭 기억해 둬야겠다.이어지는 '성공' 의 정의. 또 성공의 의미. 요즘은 비정규직, 계약직 등 고용의 의미가 사라져가고 물질자본주의 세계이다. 또한 그동안은 성공하는 것이 승진이었다면, 앞으로 우리시대는 존중하고 포용해주는 사람이 성공한다. 성공이라는 것은 거대한 부나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어떤 위치, 어떤 직장에 있더라도 스스로를 존중하고 행복할 수만 있다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건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성공의 의미와 비슷해서 귀에 쏙쏙 들어왔다.
아쉽게도 비가 와서 일정이 약간 변경되었다. 전망대를 가지 않고 4~5시간 코스만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실 전망대를 안 거친다면 우리가 내려오는 코스를 바꿔서 빙 돌아올 필요가 없었는데!!!!
아침은 토스트에다가 계란이였다. 오랜만에 토스트를 먹어서 아주 맛있었다.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걸었다. 중간에 길가에 있는 식당에서 네팔 노래가 나와 삼촌샘이 춤을 추면 egg noodle soup을 준다고 해서 모두가 춤을 추고 결국엔 모두가 계란라면을 먹었다. 라면에 토마토가 들어있다는 것을 빼면 모든 것이 완벽했다.
초등학생들의 사소한 다툼을 뒤로 하고 계속 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길가에 서 있던 큰 나무에 붙어있던 커다란 나뭇잎으로 머리를 가렸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나뭇잎에 알러지 성분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텐디지는 나뭇잎을 버리라고 권고해 주셨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보리샘은 완전 맨붕이였다. 몸이 아파서 그런 것 같기도 했지만 완전 머리를 풀어헤치고 비틀비틀. 숙소에 왔다고 우리가 소리쳐도 계속 비틀비틀 걸었다. 환자(?)들을 뒤로하고 삼촌샘이 축구를 하자고 하셨다. 그래서 먼저 포터들을 앞세우고 근처에 있는 네팔학교에 갔는데 가는 길이 군대 훈련길 수준이였다. 중간에 엄청나게 기다란 지렁이를 봤는데 거머리덕분에 지렁이가 귀여워 보였다!
겨우 도착한 네팔학교에는 운동장은 커녕 공도 없었다. 2층 베란다에서 우리들을 째려보는 네팔 일진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돌아선 우리는 결국엔 근처 집의 마당을 빌려 양말 여러 개로 만든 공으로 축구를 했는데, 골대는 네팔식으로 나뭇가지로 하고 포터들도 같이 했다. 그런데 비가 쏟아져서 막장이 되었다. ㅋㅋ
치킨볶음밥+일본라면(?)을 먹고 마피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래층에서 네팔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일명 '광란의 밤' 이였다. 결국엔 우리도 껴서 박수치고 강강술래를 했다. 네팔아줌마와 1:1 춤을 춰보기도 했다. 솔직히 대부분의 우리 일행들은 어색해해서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다. 상당히 황당한 경험이었다. 그 후 조금 무서운 이야기를 하다가 잤다. 대단한 날이었다.
*** 근석이 아빠 12.08.31. 22:46
성공의 의미는 좀 더 시간이 지난뒤에 논하기로 하고, 아니지 다음에 논하자고 뒤로 미루면 언제가 될런지 모르니... 우선 성공에 대해서 참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말들을 해주고 있는데.. 아저씨가 보기에는 요즘에 성공을 자기 만족의 수준과 남이 나를 바라보는 수준에서만 보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된단다...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좀 더 다른 시각에서 생각하고, 잘 정리해야만 다음에 사회에 나가서 성공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과 잣대로 흔들리지 않고 생활해 갈 수 있다고 생각된단다...
* 관리자 12.09.01. 00:04
고마워~~~ 매일묵상을 통해 전달된 많은 메세지 중에 단 한가지라도 단 한명이라도 기억할 수만 있다면, 이번 지구여행학교는 성공이라 생각해... 호산이가 그 성공을 이루게 해준것 같아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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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차 [해방의 날]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오늘이면 산을 모두 내려가는 날이다!
개운하게 일어나 아침모임을 가졌다.삼촌샘이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지 않고 남의 잘못만 찾아서 따지는 일이 전쟁이나 불행을 일으킨다.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면 일만 더 커질 뿐‘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추억이 담긴 호텔을 아쉽게도 떠난 후 계속 걸었다.햇볕이 아주 쨍쨍했다. 게다가 앞뒤로 당나귀들이 있어서 아주 길이 막혀져 있는 상황이었다. 네팔아이들과 같이 등교를 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지금 한국에서는 같은 반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ㅋㅋㅋ
점심먹는 곳에 도착하니 개 3마리와 잡상인 3명이 붙어 물건을 파려고 하는 것이었다. 상당히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는데 탁 펴지는 촛대, 돌리면 소리가 나는 그릇, 이상한 돌 화석 등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끝까지 사지 않았다.
점심을 녹두죽과 밥, 감자로 먹고 (또!) 점점점 걷는데 자동차들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고, 공기가 탁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는 버스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오르막길 위에 버스가 그 자태를 드러내고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버스로 달려갔다. 버스에 앉는데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우린 버스 안에서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는 등 여러방식으로 자축했다. 포터들과 껴안기도 했다. 지옥행버스가 이번엔 천국행버스로 탈바꿈한 것이였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였다!
버스를 타고 쭉 가서 전번의 포카라의 <산마루>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어진 '저녁밥의 자유' 시간에 나, 현민, 준환, 성현이형은 일단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는데 솔직히 볼 게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순전히 호기심으로 인터넷방을 약 1시간 동안 사용했는데 최악이였다. 네이버 로딩이 약 5분이고 웹툰 1개 로딩이 5분, 한 컷에 1분이었다. 결국엔 세계 살인마 순위 검색하고 지뢰찾기 하다가 나왔다. 한마디로 시간낭비를 한 것이다.
진짜 하이라이트는 저녁이었다. 우리 4명이서 산마루로 가 삼겹살 6인분과 김치찌개 2개, 냉면 1개, 공기밥 7개에다 각종 음료까지 해치운 것이다. 천국의 맛이었다. 두 번째 날부터 지금까지 묵힌 숙원을 푼 느낌이였고, 지금까지 케첩뿌린 볶음밥을 맛있다고 한 내 자신이 한심했다.ㅋㅋ 배가 불러서 못움직일 정도였다! 네팔 돈으로 따지면 몇 달 월급을 한순간에 다 쓴 셈이다.
보리샘이 '바비큐' 를 미끼로 배불러 터지는 우리를 삼촌샘과 몇몇 아이들이 있는 야외 식당으로 데려갔다. 라이브 네팔 춤공연! 정연하고 몰입해서 볼 정도의 공연은 아니였지만 중간에 정전이 되는 등 몇 가지 흥미로운 사건은 있었다. 역시 네팔이였다. 정전이 되어도 손님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었고 우리일행만 약간 웅성거릴 뿐이였다. 조금 후 불이 다시 들어오자 아무렇지도 않게 공연 재개. 우리나라에서는 관객들이 물건 집어던지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ㅋㅋ
그 후 밤에 삼촌샘, 현민이, 준환이와 함께 바깥에 나갔는데, 따라오려는 은경이를 보내고 (아직 초등학생이니까.)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busy bee'라는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은 밴드가 여러 락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포켓볼대였다. 드디어 포켓볼을 칠 수 있게 된 것이였다. 한판에 50루피라고 하지만 한 5~6판을 치고 150루피만 내고 나왔다. 그 사이에 삼촌샘과 민석이는 맛있어 보이는 생선요리를 먹었다. 숙소로 다시 돌아가서 잠을 청했다. 자유를 얻은 날,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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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차 [이동의 날]
드디어 카트만두, 즉 조이하우스로 가는 날이다. 아침도 어제 저녁처럼 따로 사먹는 것이여서 시원이, 현민이와 산마루로 갔는데 난 왜 그 때 짜장면을 시켰는지....아직도 후회된다. 결국 김치전만 먹고 짜장면은 조금 밖에 못먹었다.
-산마루에서 짜장면을 절대로 먹지 마세요. by 호산
아침을 먹고 나태하게 뒹굴뒹굴 하다가 어느새 점심먹을 때가 되었다. 이번엔 돌솥비빔밥을 단체로 먹었는데 이것도 삼겹살처럼 맛있었다. 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로 가는데 바깥 경치와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네팔인으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아 할 일없이 멍때리고 있거나 잠을 자고 있거나 어딘가로 걷고 있었고, 내 또래의 청소년들은 땡볕에 서서 뭔가 대화를 하고 있거나 게럼같은 도박을 하고 있었다. 네팔은 학교 가는 아이들이 전체 아이들 수에서 몇 퍼센트나 되려나? 정말 이럴 때만 한국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무언가 할 게 있다는 것에 감사해진다. 버스는 계속 달리다가 중간에 잠깐 멈췄다. 세 번째 날에 바나나를 아침으로 먹었던 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뷔페식이었지만 이미 한식에 익숙해진 나의 혀는 네팔음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치킨카레여서 만약 산이였더라면 옳다구나 하고 먹었을 음식인데...ㅋㅋ
다시 버스를 타고 쭈우욱 이동했다. 어느새 어두워지고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조이하우스 가는 길의 그 오르막길에 온 것이었다. 포터들도 없어서 우린 그 무거운 짐을 들고 낑낑대며 올라가야했다. 몇 명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중간에 내가 밑창이 뜷린 화장실 슬리퍼를 신고 똥을 밟는 불상사가 있었으나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 조이하우스에 다시 도착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처음 조이하우스에 도착했을 때는 뭐 시설 별로네? 이런식으로 생각했으나 다시보니 침대도 많고, 방도 넓고, 화장실도 좋고, 전기도 잘 들어오는게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다.
바로 쓰러져 잤다. 내일 드디어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날이다! 만세!
*** 근석이 아빠 12.08.31. 22:54
인간의 간사스런 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였구먼..ㅎㅎ 내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낀 것 같은 표현이다 ㅋㅋㅋ
* 관리자 12.09.01. 00:10
완전 글쟁이~~~ 간디작살이다.... 그 길로 가라. 그 길이 너의 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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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차 [마무리의 날]
오늘 아침은 조이하우스에서 상쾌하게 일어났다. 이불도 따뜻하고 침대도 좋아서 더 자고 싶었으나 아침을 먹어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 난 솔직히 조이하우스에서의 아침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냉장고가 우리가 갔다 오는 동안 고장 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김치찌개와 계란후라이로 아침을 먹었다. 냉장고가 고장나지 않았더라면 고기를 먹었겠지? 왜이렇게 고기타령만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고기에 뭐 한 맺혔나......역시 히말라야를 한번 다녀오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은 맞는 말인 것 같다.
그 후 할 일이 별로 없어서 바깥으로 나가 우리끼리 농구를 하다가 네팔인들이 이상하게 쳐다봐서 그냥 들어왔다. 사실 우리들의 농구실력은 네팔인들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드디어 시내관광을 하고 공항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오체투지라고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사랑합니다' '평화를 빕니다' 이러면서 절을 하는 것이였는데, 저번에도 했었지만 이번에는 웬지 느낌이 남달랐다. 왜냐하면 절하면서 하는 말 하나하나가 정말 진심으로 해야 할 말이였기 때문이였다. 여행을 하면서 있었던 모든 미안하고 고마운 일들을 이 오체투지로 깨끗하게 만들어버린 느낌이였다. 오체투지를 하고나니 마음이 정말 깨끗해지고 비워진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기념품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몇 명은 저녁을 먹을 식당숙소에 남고 몇 명은 삼촌샘과 함께 관광을 하러 가게 되었다. 하지만 또다시 깨닫게 된 일이 있었다. 바로 무엇보다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바가지라는 것이다. 인도나 필리핀에서도 그랬지만 역시 예상대로 네팔에서도 바가지가 대단했다. 현민이가 해골모양 팔찌를 200루피에 샀는데 바로 옆에서 100루피에 파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민종이와 내가 별것도 아닌 반지를 2개 합쳐서 500루피에 사는 사건도 발생 했다. 사실 그건 반지를 파는 가게가 좀 고급을 파는 것 같아서 그랬고 처음에는 한 개에 600루피였다. 삼촌샘은 흥정의 대가였다. 원래 200에 부른 팔찌를 내가 150루피로 깎아 산 팔찌를 바로 100루피로 샀을 뿐만 아니라 조그마한 열쇠고리를 한 개에 30루피로 깎아서 우리들이 엄청나게 많이 살 수 있게 해주시기도 했다.
현지인들의 음식을 사먹기도 하고, 현민이, 시원이, 민석이는 부모님에게 드릴 술을 사기도 했다. 내가 최종적으로 얻은 것은 열쇠고리 2개, 해골목걸이 2개, 해골팔찌 2개, 반지 2개였다. 나름 잘 샀다고 자부할 순 있다.
6시쯤에 우린 처음에 모였던 식당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대망의 저녁시간! 알고보니 한식당이였다! 물론 우리는 only 삼결살이였다. 2인분이여서 그런진 몰라도 6명이서 그 고기를 3분만에 해치웠다. 그러나 고기는 다시 주문되지 않았고 결국 우린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로 배를 채워야 했다.
공항으로 가야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망고, 바나나, 빵 등 여러 간식을 사서 대망의 공항으로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드디어 공항으로 가는구나....정말 산을 타면서 공항에 가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했었는데 막상 공항에 가니 아쉽고, 서운하고, 시원하기도 한 여러 마음이 교차했다. 따분한 입국심사를 거치고, 광저우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의 그 편안함이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드디어, 한국으로 간다!
* 관리자 12.09.01. 00:14
아~~~~ 감동이다... 고생 진짜 많았다 호산아! 성현이 형을 비롯해서 호산이가 중심을 참 잘 잡아줘서 동생들도 행복했던 것 같아... 동생들이 널 따르는 이유가 그런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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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차[도착한 날]
자고 일어나보니 중국이다. 저번에 네팔 입국할 때 들렸던 바로 그 공항이었다. 시간이 좀 일러서 그런지 저번에 사기당했던 레스토랑도 문이 닫혀 있었고 사람도 별로 없었다. 중국공항에서 축 늘어져서 몇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졸리고 특별히 할 것도 없어서 우린 단체로 비행기에서 가져온 담요를 덮고 공항 바닥에 (다행히도 털양탄자 같은 재질이였다)누워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일어나 보니 탑승시간! 중국에서 한국까지의 비행은 별로 기억나지 않지만, 비행기 안에서의 한국말 안내방송은 영어나 중국어와는 차원이 다른,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대한민국 도착!!! 역시 대한민국의 공항은 중국이나 네팔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였으며, 입국수속도 네팔이 2G라면 한국은 LTE였다. 정말 엄청난 속도로 바깥세상을 향해 나아갔는데 짐을 찾고 마지막 관문을 가는 도중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네팔에서 조우리와 민종이가 기념품 칼(한 20cm정도 되는)을 샀는데 그걸 빼앗긴 것이였다. 삼촌샘도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였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쿨하게 버렸다. 칼집은 가져가도 되었지만 그냥 버렸다. (칼집이 더 날카로웠음) 칼은 짐칸에 넣어도 반입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그렇다면 도대체 외국인들한테 왜 판거야?
마침내 바깥으로 나와서 우리를 맞이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외국도 자주 간 편이라 이제 웬만하면 별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엄청나게 반갑고 기뻤다.
기념촬영을 하고 항상 하는 말. 다음에 또 보자.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말로 할 수 있었다. 나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히말라야 캠프가 끝나가고 있었다.
*** 근석이 아빠 12.08.31. 23:03
인생의 전환점은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네.. 삼촌샘이 정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표현 처럼... 이번 여행을 통해서 좀 더 앞으로 전진하는 인생을 가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단다... 그동안 천천히 걷던 인생이라면, 이번 여행을 통해서 좀더 힘차게 걷는 인생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전환점이라고 하면, 많이 망가진 인생이나, 바닥을 경험하는 인생 뒤에 표현되는 거라고 생각되지만, 아저씨는 그 조차도 뒷걸음 질 치던 인생을 다시 앞으로 걸어가는 인생이라고 표현하고 싶구나...
┗ 관리자 12.09.01. 00:19
그래도 우리 호산이 참 대단하네요.... 전 감탄의 감탄입니다. 우리가 그 나이때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표현력들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더욱 더 내려가는 훈련들을 인생살이 속에서 배우게 되겠지요.
┗ 산성아줌마 12.09.01. 00:59
호산엄마입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호산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어요. 아니 늘 바라는 것이었을거예요.
삼춘샘 표현대로라면 ' 머리에서 가슴으로 더 내려가기'
미미하지만 호산에게 그 공부가 시작된 듯 합니다.
호산이의 좀 더 힘차게 걷는 인생을 위하여~
┗ 근석이 아빠 12.09.01. 07:47
호산이, 호철이의 글을 보면 항상 살아 움직이는 표현이 너무 감동적입니다.. 이 다음에 두 형제는 어디서든 뜻깊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거라고 감히 장담하네요 ㅎㅎㅎ... 법전에 적혀있는 그대로의 잣대가 아닌 인간적인 고뇌를 갖고 판결하고 변호하는 판사나 변호사가 될 수도 있고,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해 발로 뛰고, 마음으로 그들을 대변하는 기자가 될 수도 있고, 남들이 생각할 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선행을 베풀며, 세상의 아름다운 인재를 많이 키우는 선생님으로도 큰 보람과 뜻을 이룰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쪼록 우리의 아이들이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세상을 밝게 만들어가길 기원합니다..^0^
* 관리자 12.09.01. 00:23
호산아! 글 정리하느라 고생많았다.... 너의 동생 호철이의 지난번 글들과 함께 네 글은 팽생 여러 사람들 가슴속에 아로새겨질 것 같아... 보고서 책자 나오면 함께 그 역사를 간직하자꾸나.... 정말 고생 많았단다..... 그러고보니 호산이 한테 만큼은 삼촌샘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준 기억이 없구나.. 항상 근엄하고 엄격하게만 대한것 같아 미안하구나... 이해하길 바래... 본심은 그렇지 않거든....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며 매일같이 기도하고 있단다.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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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히말라야캠프에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자연의 위대함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멋진 광경을 한 번에 많이 본 적은 없었다. 백두산 천지를 직접 봤을 때보다 더했다.
캠퍼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산행을 마치면 산 밑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우스워 보일 것 같다." 사실 구름과 함께 산을 올라가고 엄청난 물소리와 벌레, 새소리를 들으며 산행을 하는 길에서는, 나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뭔가 더 '높은 경지' 에 있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물론 만년설이 쌓이고 구름 위로 우뚝 솟은 히말라야의 여러 산맥들은 말이 필요 없다. 그냥 '진리' 였다. 이 광경을 평생 못 볼 사람들도 많을텐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난 정말 축복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축복받은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삼촌샘과 여러 선생님들, 또 같이 2주를 동거동락해준 모든 일행들 덕분이다. 매 아침, 저녁마다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무슨 삶을 살고 있는지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또 같이 산행하고 놀 수 있었던 일행들이 있었기에 서로에게 힘과 도움이 되어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슴에 깊게 다가왔던 것은 포터들의 친절함이다. 여행기간 내내 우리들을 도와주고 같이 산행을 해주신 탠디지와 항상 우리를 한참 앞서가서 우리가 묵을 숙소를 알려주는 탠딩지, 그리고 그 외 신발을 빌려주시고 무거운 짐을 들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식당에서 우리를 헌신적으로 도와주신 포터들에게서 진정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캠퍼들, 선생님들, 선교사님들, 포터들, 그 외 우리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비행기 조종사님까지!)에게 정말 너무나도 감사하고, 미안하다.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비는 마음으로 이번 히말라야 기록문을 마친다. 피스~
*** 근석이 아빠 12.08.31. 23:14
호산이가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표현까지 하면서 이번 여행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함께 했던 원정대원 모두가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고 말씀하실 만큼, 대자연의 엄청난 기운을 가슴에 담고 돌아온 것 같구나... 물론 다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시간들이지만, 자신이 숨쉬고 있는 이 순간순간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좀 더 멋진 세상을 너희들이 만들어 갈거라고 아저씨는 믿고 있단다... 너희들이 앞으로 만들어갈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하면서.
* 관리자 12.09.01. 00:27
이젠 하산하여라~~~~ (더이상 ... 가르칠게 없음!) 한수 배워야 겠군....저 해탈의 경지, 통찰의 비명, 확철대오!!!!
** 우리원이 12.09.02. 02:49
원이에게는 자세히 듣지 못한 리얼 스토리 ㅎㅎ 감동적으로 잘 읽었네. 형님 글 좀 보고 다시 히말라야를 되새길 수 있도록 울 원이에게 읽어보라고 해야겠다. 사진과 이 글을 보면 안다녀온 사람도 반은 갔다 온 거 같은 기분이 들것 같아. 글 솜씨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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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호산이 글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모아보았습니다. 다른 글들도 밀리지 마시라는 조치이기도 하죠.. 댓글 다시 시작합니다. 많은 많이 의견 남겨주세요. 공짜로 보고가다간? 똥 밟을 수 있음....
어머나~~ 정말 생생 여행기네요~~
감동입니다^^
시원이가 이렇게 멋진 호산이형과 함께 여행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