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오르지 못할 나무에 올라갔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가능케 됩니다.
나는 복음작가의 길은 생각해보지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절대 오르지 못할 나무였습니다. 그런 내게 성령님의 은혜가 임하는 순간 복음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린시절 예수님을 믿었지만 더럽고 추악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늘에만 하나님이 계신 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런 나를 지켜보신 성령님은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
고전 13장4절부터 7절의 말씀에 첫번째는 사랑은 오래 참고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우리를 한없는 사랑으로 지켜보던 성령님을 생각하면 우리가 기도한 사람들에 대해 오래 참게 됩니다. 모든 일에 오래 참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에 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이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셋째, 우리 안에 크신 성령님의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분을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그분을 인정하면 이미 우리가 기도한 건 받았다고 믿게 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의인과 악인이 다른 점이 뭡니까? 의인은 오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룬 일곱 가지 속량의 은혜를 믿고 삶에 누립니다.
하지만 악인들은 자신의 땀과 눈물, 행위로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받으려 합니다. 더럽고 추악한 행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두 번 죽이려는 악한 행위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이스라엘 민족들이 물이 없다고 물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이 터지게 했습니다.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출 17:6)
그 뒤 또 이스라엘 민족들은 물이 없다고 물을 달라고 원망했습니다. 모세는 화를 참지 못해 반석을 두 번이나 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명령해서 물을 내라 했습니다. 행위가 아닌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 모세와 아론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건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민 20:7-11)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인 은혜,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는 구원에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가 뭘한다고 상을 주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 살 때 믿음의 상을 계속 주십니다.
나는 복음을 깨닫고 성령님을 믿고 살았습니다. 성령님을 내 남은 인생에 주인되심을 인정했습니다. 인격적으로 존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룬 복음을 믿음으로 누리고 전했습니다. 믿음의 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행복한 건 뭡니까? 믿음의 눈으로 우리 안에, 우리 앞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성령님을 보고 사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가장 복되고 행복한 것입니다.
다른 건 다 티끌 같은 것입니다. 성령님을 만남으로 시작되었던 뷸꽃튀기는 사랑 속에 독대의 삶, 산책하는 삶 속에 모든 게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