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그림은 내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예술가의 초상)'
Vincent van Gogh

기차역을 개조한 미술관이라 층 구별이 좀 애매하지만, 오르세는 크게 세 개 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원래는 미술사적 순서대로 1층에 이전 시대 작품들을 놓고 차차 올라가 3층 꼭대기에 이 미술관이 자랑하는 인상파 작품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배치가 바뀌고 있다. 원래 3층 끝에 있던 반 고흐의 그림들은 몇 년 전 모두 자리를 옮겨 이제는 2층에 '반 고흐의 방'이라는 공간을 따로 차지하게 되었다. 명성에 걸맞게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이 방에서도 유독 인기 있는 작품이 지금 소개할 이 '푸른 자화상' 일명 '예술가의 초상'이다.

"자기 스스로를 아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자기 스스로를 그리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어렵고 불편한 일이다." 반고흐는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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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자화상은 현재 마흔세 개 정도가 남아 있다. 같은 네덜란드인이며 그가 존경했던 렘브란트처럼, 반 고흐도 자화상을 통해 도달하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 단순히 그림 연습을 위해 자신의 얼굴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의 글에서 보이듯이 본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이었다는 판단이 든다.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해 내는 고단한 과정. 그렇기 때문에 정신병원에 갇혀 스스로 좌절한 시점에 그려진 이 그림은 마주한 우리에게도 그의 감정들을 느끼게 해 준다.
(*아래 삽화들은 2019.12. 개봉된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발작을 일으킨 초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구속당했다가, 조금 뒤에는 작업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자신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 속에 그림에만 열중하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다 이 그림이 그려졌을 즈음엔 이제 평정을 되찾고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모든 과정을 제어할 수 있음을 보여 줘야 했던 때였다.

언뜻 단색화인가 싶을 정도로 전체를 푸른 색이 지배하는 이 자화상에서, 고흐 자신이 남부 지방의 섬세한 푸른색이라고 불렀던 이 푸른 색깔은 밝고 선명하다. 요동치며 움직이는 뒷부분의 공기가 파란 색깔로 표현된 가운데 피부마저도 파란색의 혼합이 일어나 전체적으로 이 그림은 그의 생각대로 선명한데, 경쾌하지 않고 무거운 것은 우리들이 그 눈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 듯하다.

고흐는 이 그림에 만족했고, 파리 화랑에서 일하던 동생 테오에게 보여 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눈빛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에 비해 얼굴은 상당히 안정적이고 침착하다." 자기 이야기인데 남의 말을 하듯이 얘기한다. 또 자화상의 이 시선이 베일에 덮여 있는 것 같다고도 이야기했다. 이 그림에서 확신을 가지고 분명하게 그려 넣은 것은 자신의 모습 뒤 배경에 수없이 많이 회전하고 있는, 소용돌이 같은 문양이며 그 붓 터치다.

같은 표현이 '사이프러스나무' 연작에도 나타나고, 무엇보다 '별이 빛나는 밤'의 하늘에도 채워져 있다. 생레미 드 프로방스에서 그려진 그림들이다.

화가의 눈빛 뒤로 격렬하게 움직이는 뒷배경을, 우리들은 노란 해바라기만큼이나 익숙하게 화가의 특징으로 기억하고 있다. 고흐는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까.

1890년 마침내 정신병원을 떠나 파리로 올라왔을 때나 머지않아 오베르쉬르우아즈로 거처를 옮겼을 때도 반 고흐는 이 그림을 가지고 다녔다.

오베르쉬르우아즈라는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에 거처를 정한 뒤 대략 두 달의 시간 동안 작업을 하면서 불태운 마지막 열정은 지금까지 우리 기억에 남은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그곳에 살며 예전부터 여러 젊은 화가들을 지원해 주던 의사 가셰 박사는 이 그림을 무척 마음에 들어 구입하기에 이르렀고, 자신의 초상화도 그려 달라고 청했다. 이 자화상 못지않게 가셰 박사의 초상화도 고흐가 마지막에 몰두한 작업의 하나로 유명하다. 비록 본인은 이 자화상을 두고 흐릿하고 불분명한 눈빛이라고 했다지만, 뒷편의 소용돌이만큼이나 강렬한 그의 정신 일부분은 의심할 여지 없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오르세 (미술관)의 이 그림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좀 더 거리를 줄여 가까이에서 그림을 감상한다.
- 안현배, '안현배의 예술수업 1', 민음사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