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
윤 상 근
‘저 나가요.’
던지듯이 한 마디하고는 누가 쫓아 올세라 얼른 방문을 닫는다. 그러면 현관 중문을 열기도 전에 어머니가 머리만 내밀고 말씀하신다. ‘얘 그 옷은 너무 칙칙하다.’ 아니면 ‘그 모자는 안 쓰는 게 낫겠다.’ 그럴 때 나는 요즈음 애들 말로 뚜껑이 확 열린다. 아니면 뒷목을 부여잡아야 한다. 칠십이 다 된 나이에 이런 참견을 듣고 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어머니의 말을 무시한다고 하면서도 현관에 걸린 거울을 보고는 기분이 잡쳐 옷을 바꾸어 입거나 모자를 벗고 나선다. 여자가 모자를 쓸 때는 멋으로 쓰기도 하지만 내 경우에는 머리가 엉망일 때 쓰는데, 썼던 모자를 벗고 헝크러진 머리를 하고 그냥 나서려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어머니에게는 아무 말 못하고 씩씩거리며 집을 나서서 생각한다. 노인이 좀 노인답게 어리숙하고 당신을 내세우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걷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지하신 지 2년이 되어간다. 다리 힘이 점점 약해지니 이제는 휠체어에 혼자 올라가는 것도 힘에 겹다. 그래도 식사시간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 혼자 휠체어를 타고 스스로 밀면서 식탁까지 오셨다. 정신이 명료한 것은 여전했다.
93세의 겨울이었다. 요양사가 어머니 가슴 밑에 무엇이 났다고 한다. 살펴보니 대상포진이 분명한 발긋발긋한 발진이었다. 평소 어머니가 다니셨고 지금도 복용하는 약을 처방해 주는 의사에게 증상을 얘기하고 약을 지어왔다. 그런데 약을 드신 지 하루 만에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 사흘 동안 이미 돌아가신 분을 찾고, 또 누구를 만났다고 헛소리를 하신다. 칠십여 년 동안 처음 겪는 일에 혼비백산했다. 구십이 넘으셨으니 돌아가실 때도 되었다는 말은 완전히 머릿속의 생각일 뿐, 실제로 위독하다고 생각되니 덜컥 겁부터 났다.
약을 바꾸고 사흘이 지나자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생에 대한 변함없는 관심과 애착은 돌아왔으나 몸은 가끔씩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혀가 말려 올라가듯이 말이 안 나온다고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하신다. 요의를 느끼고 화장실에 가기 전에 이미 옷을 적시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면서도 기저귀를 차는 것은 꿈도 꾸지 않으셨다. 당신은 그런 사람들과 다르다는 일말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을 볼 때마다 새삼 늙음에 대한 연민이 차오른다.
‘기저귀를 찰 정도가 되면 집에서 못 모셔요.’ 일 년 전 이 말을 처음 했을 때만 해도 언제 일지 모르는 미래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일 년을 못 넘기고 실제상황이 되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굉장히 애를 쓰시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육체의 몰락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이 반복되니 요양원 이야기가 나왔다. 요양원은 정신이 맑았던 어머니에게는 이 년 전만해도 금기어였던 단어다. ‘안 간다.’ 요양원 소리를 처음 듣고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그냥 이 집에서 죽을란다.’
나는 일 년을 버티고 망설이다가 고관절 수술을 받기로 했다. 내 몸도 주체하기 어려울 테니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수술 날짜가 다가올수록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칠십 평생 한 몸처럼 살았던 어머니의 존재를 내게서 떼어놓겠다는 생각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토록 원했던 벗어남과 자유를 갑자기 얻게 되면 어떨까. 상상 속에서는 간절했던 마음이 실제가 된다고 생각하니 달려드는 해일 앞에 마주 서있는 느낌이다. 실감이 안 되는 두려운 일이었다. 요양원 앞에서 안 들어간다고 발버둥치는 어머니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예약한 수술 날자가 한 달여 남은 어느 날 아침. 화장실에 가신 어머니가 나를 부른다. 문을 여니 변기에서 내려 와 계셨다. 그리고는 ‘내가 못 일어나겠어’라고 하신다. 내 생애 처음으로 어머니의 눈에서 애원의 눈초리를 보았다. 119를 불렀다. ‘몸이 너무 쇠해지셨으니 영양제 주사라도 맞자’고 해서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집 근처에 있어서 이것저것 알아본 요양원에서 필요한 서류를 말해 주었고 여러가지 검사를 했다. 코로나 19 검사까지 몇 시간에 걸친 검사를 끝내고 콜 밴을 기다리는 사이 요양원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싫다는 표현을 하셨지만 휠체어를 탄 몸으로 저항은 하지 못했다.
침대가 있는 콜밴을 타고 누운 채로 요양원으로 갔다. 차에서 내리자 그대로 침대를 밀고 요양원 2층으로 올라가 요양원 침대에 앉혀드렸다. 걷지 못하니 그대로 요양원에 갇히셨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남편과 도망치듯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 집을 지었을 때부터 어머니가 계시던 방이 빈방이 되었다. 나는 가끔 ‘에미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어본다. 빈 동굴 같은 적막한 기운이 내 등골을 훑는다.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인 방에 어머니만 없다.
* 윤상근; 고려대학교 국어문학과 졸업
수필문우회, 한국문협, 양평 문인협회, 양평수필사랑 회원
<저서> 『나를 찾아서』 『이지적 인간 감성적 인간』 『꿈 속의 꿈』
『영원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어두움을 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