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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표지>
“꽃보다 友情여행”
2017.8.9.∼8.17. 7박9일
12쌍친구 동유럽 투어 글뒤풀이
최영록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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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속의 ‘중세’…동유럽 5개국 역사기행
먼저, 로마공화정의 정치가이자 문필가인 키케로(Cicero)의 ‘우정론(友情論)’ 한 대목으로부터 시작하자.
우정은 착한 미덕을 바탕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안정적이고 서로 믿음을 가질 때에만 가능하다. 좋은 글을 보면 친구와 나누고 싶고, 멋진 곳을 친구와 함께 보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친구가 먼저 생각나고, 슬픈 일이 있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친구가 아니겠는가.
우리 전라고 6회 동창들의 ‘회갑기념 동유럽 여행 프로젝트’는 ‘멋진 곳을 친구와 함께 보고 싶다’는 키케로의 ‘우정론’ 구절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다. 왜 있잖은가? 좋은 곳을 가면 ‘다음엔 꼭 아내와 아니면 친구들과 같이 와야지’ 다짐하던 기억, 한두 번씩 있으리라. 번번이 그 맹세를 지키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중국 관광의 백미(白眉)라는 장가계(張家界), 면산․태항산, 계림․양삭, 베트남․캄보디아, 오사카․교토․나라, 대만, 운대산․소림사, 백두산 등을 갔더란다. 많을 때에는 14쌍, 적을 때는 서너 쌍이 여름만 되면 몸이 들뜨기 10여 년, 2007년부터 시작된 ‘꽃보다 우정(友情)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동부인(同夫人)을 하니, 뒤탈날 일도 하나 없다. 친구 좋고, 부인 좋고, 일석이조(一石二鳥) 관광투어에 우리 모두 행복한 10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여행은 이렇게 친구들끼리 덩케덩케, 얼싸덜싸, 어우렁더우렁 다녀야 제격이 아닌가. 아무리 금실이 좋다한들 패키지투어에 끼워 둘이만 손잡고 다니면 무슨 재미랴. 그것도 한두 번이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2017 신년하례회’(매년 1월 첫 번째 토요일 저녁)때 ‘덕인회(德麟會․1973년 덕진동에서 74년 인후동으로 교사를 옮겼던 재학시절을 기념한 친한 친구 10명의 모임)’가 중심이 되어 동유럽 여행 제안이 있자, 순식간에 13쌍이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잡아놓은 날’은 기어코 오게 마련. 8개월 후가 까마득했는데, 어느새 8월 9일. 대망(大望)의 날이 밝았다. 우리는 인천공항 3층 출국장 A카운터 스타벅스 앞에서 9시 30분, 거의 오차없이 12쌍이 모였다(오호, 통재라. 1쌍은 한 달 전에 불가피한 사정으로 빠졌다). 광주, 전주, 군산, 용인, 판교, 서울 등에서 ‘코리아 타임’도 없이 모여들었다. 여기저기서 “오매, 존 거!” “오랜만이다. 잘됐다” “기대된다. 재밌겠다” 악수행진이 이어지고, 여행사 서연희 대표가 축하인사를 건넸다. 한 친구는 친구 부인과 손을 맞잡고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처럼 무릎을 연신 구부리며 “어이-최사장, 문사장, 방가방가” 인사를 하여 일행을 웃겼다. “만나면 좋은 친구” CM송이 따로 없이, 친구들은 언제 어디서든 만나기만 하면 좋기만 하고 정겹기조차 하다. 형수(친구의 부인을 무조건 ‘형수’라고 부르는 미덕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다)들도 대부분 아는 얼굴, 몇 번씩 여행한 경험도 있으니, 얼마나 이무러운가? 유붕자원방래 불역열호(有朋自遠方來 不亦說乎·멀리서 벗들이 와 만나니 이런 즐거움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 무엇보다 7박 9일, 이만한 삶의 일탈(逸脫)이 어디 쉬운 일인가? 어디 이런 모임, 이런 여행이 흔한 일일까?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스페셜 이벤트. 첫째날 한 친구는 건배사로 “(이런 모임) 흔치 않아” “흔치 않아” “흔치 않아”를 세 번 연창(連唱)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동유럽 5개국(체/폴/슬/헝/오) 순례는 시작됐다. 대한항공 육중한 비행기가 뜬다. 도대체 무슨 ‘재주’로 이 물체는 떠서 한밤중 ‘길 없는 길’을 찾아가는 걸까? 비행기 탈 때마다 드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이런 해외여행이 언제라도 가능하니, 대한민국, 참으로 좋은 나라다. 승객 314명 만석이란다. 평균 시속 1000km, 고도 1만여m, 현지와의 거리는 8000km가 넘고 시차 7시간. 비행시간 11시간. 휴우- 발에 쥐도 안 나고 과연 제대로 갈 수 있을까? 영화를 두 편 봐도 아직도 한참 남았다. 아이구두(頭)야-. 테마(主題)별로 환상의 7박 9일 이모저모를 되새김질하여 보자.
★ 동유럽 5개국은 어떤 나라?
△체코: 체코공화국(The Czech Republic). 1989년 11월 벨벳혁명(무혈 민주화혁명)으로 소련 위성국가에서 민주체제로 전환됐으며, 93년 슬로바키아와 분리독립했다. 한반도의 1/3 크기, 인구 1000만명. 수도는 프라하(Praha․체코어로는 Prague). 중세(中世)도시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서부의 보헤미아․동부의 모라비아분지로 크게 나뉜다. 평지와 산악이 우리나라와 반대 7:3. 카를4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자 수도를 프라하로 옮겼다.
△폴란드: 한반도의 1.4배 영토에 인구 3800여만명. Poland는 폴스카, ‘낮은 땅의 나라’라는 뜻. ‘동유럽’이라고 하면 질색을 하니 ‘중부 유럽’ 이라고 불러달란다. 1989년 자유민주체제로 환골탈태. GNP는 1만 4천여달러이나 행복지수는 선진국 수준. 수도 바르샤바. 홀로코스트(holocaust․나치가 1933∼45년 12년 동안 자행한 대학살. 유대인 등 600여만명 희생)의 현장 아우슈비츠(폴란드어로 오시엥비침)가 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 지동설(地動說)의 코페르니쿠스, 노벨상 퀴리부부,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의 조국이다.
△헝가리: 한반도의 5분의 2 크기로 인구는 1000만명. 마자르인이 97%을 차지한다. 카톨릭국가, 1980년말 자유민주체제로 전환됐다. 수도는 부다페스트.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한다. 아름다운 다뉴브강이 부다와 페스트, 두 지역을 정확히 나눈다. 컴퓨터 엑셀파일의 엑셀, 큐빅을 고안한 큐브, 퓰리처언론상을 제창한 풀리처의 고국이다. 노벨상 수상자만 13명에 이른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가 1867년부터 제국을 건설하여 중부 유럽을 지배했다.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람스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배출한 음악의 나라. 인구 750여만명. 1955년 스위스와 함께 영세중립국으로 독립했으며 대부분 게르만족이다. 수도 빈(Wien, Vienna). 다뉴브강(10개국에 걸쳐 흐르는 2850여km의 국제하천. 헝가리는 몰다우강, 체코는 블타바강, 두나강)이 흑해로 흘러간다.
△슬로바키아: 중고교 시절 ‘체코슬로바키아’로 배웠으나, 1993년 국민투표를 통해 체코와 평화적으로 분리되었고,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체코, 폴란드, 우크라이나, 헝가리, 오스트리아에 둘러싸인 완전한내륙국가. 인구는 550만여명. 동구권의 ‘4대 용’으로 변신이 한창이다.
★‘줄줄이 사탕’ 세계문화유산 “어안이 벙벙”
△9일(수) 12시 30분 이륙. 11시간 비행 끝 체코 ‘바츨라프 하벨공항’ 착륙. 경유지인 체코 주요 도시 브루노까지 교통체증으로 5시간 걸려 밤 11시 도착. 4성급 호텔 석식을 놓치고 맥도날드의 햄버거로 대신. 다음날 호텔 조식은 괜찮았다. 특히 오믈렛이 먹을 만하다. 이런 정도라면 며칠간 호텔아침은 안도를 해도 되겠지만….
△10일(목) 오전 8시 출발, 4시간 걸려 폴란드 아우슈비츠(오시엥비침) 도착. 제1수용소 관람. 28동, 여기서 15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입구 정문에 독일어로 ‘ARBEIT MACHT FREI(일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라는 나치의 슬로건이 참으로 가증스럽다. 전무후무할 대학살의 현장을 온전히 보존하여 인간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있다. 연전에 다녀갔다는 착한 프란체스코 교황의 심정은 어땠을까? ‘오, 하느님, 저들이 죄(罪)를 모르나이다. 어찌 하오리까’ 하며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꼈으리라. 아무리 선전상 괴벨이나 아돌프 아이히만 등 독재권력의 앞잡이들이라고 하지만, 이럴 수가 있을까. 심히 믿기 어렵지만, 우리는 세계기록유산인 ‘안네의 일기’ 등 책으로, ‘쉰들러 리스트’ 등 영화로 진상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직접 눈으로 보니 목불인견(目不忍見), 외면하고 싶은 진실(眞實)이 거기에 있었다. 600만 명이라고 하지만, 그 숫자조차 의문스러운, 1천 만 명도 더 될 듯한, 무고하게 희생당한 그들은 누구인가? 유태인은 천형(天刑)의 인종이던가? 영문도 모르고 독가스에 희생된 사람들의 수만 개의 유품들(머리카락, 안경, 가방, 액세서리, 화장품, 신발 등)이 보관돼 있는 방을 둘러보는데 외면하고 싶다. “럴수, 럴수, 이럴수가?” 울화통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화가를 꿈꿨던 히틀러의 ‘나의 길’은 역사에 결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교도소장이 처형당한 교수대가 그대로 있다. 가스실을 들어가 보고, 화장굴뚝을 들여다보니 역겹기가 말로 할 수 없다(가스 1통에 400명이 죽어나갔다). 수용소는 3개가 있었다. 제2유태인수용소는 이곳에서 3km 떨어진 브레진카(독일식 표기는 비르케나우)에 있는데, 제1수용소의 10배 규모. 제2의 아우슈비츠로 ‘무덤없는 공동묘지’에 다름 아니다. 킬링필드의 현장이 따로 없었다.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도 국민 400만 명을 이유없이 죽였다. 대한민국 1980년 5월 어느 날, 광주에서도 백주대낮에 헬기에서 무고한 백성을 향해 기총이 불을 뿜었다. ‘택시운전사’ 영화에서도 고발하는데,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인면수심(人面獸心) 전두환 등 당시의 군발이들을 데려다 강제로 관람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는 어떤 경우로도 저런 처참한 비극(悲劇)은 생기지 않으리라. 역사(歷史)에서 교훈(敎訓)을 얻지 못하는 자는 살아남지 못하리.
△10일 오후. 현지식으로 점심을 든 후 일행은 크라카우로 향했다. 가득이나 기분이 우울한 데, 음식조차 엄청나게 짠 통에 먹는 둥 마는 둥. 중앙광장(유럽에서 이태리 베니스의 산 마르코광장 다음으로 넓다고 한다)의 성당을 보고 구시가지를 한 바퀴 도는 마차관광을 즐겼다. 저녁은 ‘샤슬릭’이라는 현지식을 먹는 가운데 폴카공연이 곁들여졌다. 우리 친구들도 덩달아 무대에 올라 실력 발휘를 했다. 공연은 괜찮았으나, 주식이 감자라는 샤슬릭은 도무지 짜서 먹을 수가 없다. 호박만한 빵에 모자형태의 뚜껑을 만들고(‘뚜껑 호박빵’) 그 가운데 수프라는 것이, 원, 도무지 한 입도 먹을 수 없다. 이것도 음식이라고, 쯧쯧이다. 그나마 돼지고기 꼬치로 입가심을 하여 다행.
△11일(금) 오전. 유네스코에 1978년 세계문화유산 1호로 등재된 비엘리츠카의 ‘소금광산’으로 향했다. 세계 12대 관광지 중의 하나. 지하 125m까지 800여개의 계단을 걸어 내려간 소금광(鑛), 놀라웠다. 천일염 등 염전(鹽田)은 봤어도 염광산(鹽鑛山)은 금시초문. 압염(壓鹽)이라고 한다. 13세기부터 채굴을 시작했단다. 그 깊은 땅 속의 넓은 터에 광산노동자들이 만들었다는 ‘킹카성당’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지금도 주일마다 미사를 드린다 하니, 숫제 ‘오 마이 갓(Oh my God)’이다. 완벽한 예술품. 이 나라는 이 소금을 빼놓고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것 같다.
△11일 오후 슬로바키아의 자코파네로 향했다. 날씨까지 도와준다. 얼마나 쾌청한 초가을 날씨던지. 가이드도 감탄한다. 우리가 가는 길엔 “맑음”뿐이다. 왜 이런 속담도 있지 않은가. 잘되는 집안은 애가 우물에 빠져도 붕어를 입에 물고 나온다고. 반대로 안되는 집구석은 며느리가 집을 나가 씨도 모르는 애를 배고 들어온다던가. 2시간 소요. 산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평지에는 온통 ‘납작 해바라기’가 가득하다. 한 달 전쯤엔 해바라기꽃이 지천으로 피어 장관을 이뤘다고 했다. 오드리 헵번의 ‘선플라워’ 영화의 장면이 오버랩된다. 또한 눈길을 끄는 것은 끝없이 펼쳐지는 ‘키 작은 옥수수’밭. 논농사를 할 수 없는 환경에 고작해야 옥수수, 해바라기, 밀 종류가 주요 작물인 듯. 타트라산을 넘어야 헝가리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내일 일정이 조금 편하기 위하여 자코파네라는 곳에서 점심을 하고 케이블카(정확히는 케이블카는 아니다)를 타고 산 정상에 올라 주변을 조망하다. ‘유럽연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단 국경을 넘는데 별다른 제약이 없다는 것. 예전엔 여권 검색 등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고 한다. 나라간의 경계를 허물어 쌍방의 교류가 간편해진 것은 좋은 일이다. 더구나 단일화폐인 ‘유로(Euro)’ 가 통용된다는 것은 얼마나 편리한 일인가.
△12일(토) 타트라에서 ‘다뉴브강의 진주’라는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가는 데에는 인내(忍耐)가 필요하다. 장장 6시간 30분. 6시 기상, 8시 출발,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생리현상은 어디를 가나 심각하다. ‘쇼’를 다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무슨 놈의 나라들이 휴게소에서 오줌 한번 싸는데 돈을 받는가. 1인 유로 50센트(우리 돈으로 700원선), 잔돈 바꾸는 것도 신경 쓰인다. 호텔방 팁도 1유로인 마당에. 말로만 들었던 다뉴브강이 도시를 가른다. 부다(Buda)와 페스트(Pest)로 나누어진다. 우리 서울의 강남과 강북 같은 모양이다. ‘어부의 요새’라는 곳에 올라 전체 도시를 조망한다. 현지 가이드의 해설이 주저리주저리 이어지지만, 얼마나 머리에 남겠는가. 사실 그때뿐이다. 부다 왕궁, 마챠시 교회, 겔레르트 언덕, 국회의사당, 성 이슈트반 대성당, 영웅광장(헝가리 정착 1000년을 기념하여 1896년에 만든 광장) 등 한눈에 보아도 정말 대단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도시에 온 것 같다. 우리처럼 현대식 건물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도시계획을 어떻게 이렇게 잘할 수 있을까? 이건 숫제 ‘역사를 팔아먹고 살아가는 나라’인 것 같다. 이어지는 비엔나, 프라하 등 도시들도 마찬가지이다. 로하우스(row house), 건물들이 빈틈없이 줄줄이 이어져 골목이 없다. 하늘에서 보면 ‘ㅁ’자라고 한다. 한 블록이 끝나야 작은 골목들이 있고, 건물마다 보통 200년에서 300년이 되었다고 한다. 동유럽의 건물은 1층은 모두 상가이고 2, 3층에 사는데, 그 이유는 17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를 절멸시킨 페스트(흑사병)의 영향이라고 한다. 전염병 감염원인인 쥐를 막기 위해서란다. 오후엔 오직 이 도시를 조망하려고 달려왔다. 저녁 에는 도나우강 유람선을 1시간여 탔다. 주변 풍광이 한마디로 죽여준다. 이 천변풍경도 세계문화유산이라 한다. 정말로 볼만하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일행들은 모두 서울 한강의 야경(夜景)과 비교를 한다. 한강 주변은 거개가 초고층 아파트단지여서 야경이 이에 못지는 않지만, 궁전과 국회의사당 그리고 뾰족탑 성당의 야경은 황홀하기조차 하다. 저녁은 ‘거위의 간’이라는 푸아그라와 굴라시라는 현지식에 인심쓴 듯 내놓은 토카이 와인 한 잔이다. 현지식을 쳐다보지도 않은 것은 점심이 그나마 한식이어서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한국사람은 역시 한국음식을 먹어야 몸과 마음이 개운하고 살 수가 있다. 와인은 괜찮은 맛이다.
△13일(일) 그 유명한 ‘왈츠의 도시’ 오스트리아 비엔나(빈)을 찾아가는 길이다. 부다페스트에서 4시간이 걸린다. 가이드의 쉔부른궁전(로코코양식)과 정원 해설이 현란하다. 한 시절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품격과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여름 별궁이다. 방이 1400개가 넘는다던가. 쇤부른은 ‘아름다운 우물’이라는 뜻.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는 16명의 자녀를 낳았고, 프랑스대혁명때 교수형에 처해진 마리 앙트와네트가 막내딸이다. 그와 관련한 화제가 무궁무진하다. 재밌는 세계사 공부를 한참 하다. 1996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국립 오페라극장과 슈테판성당, 케른트너거리를 눈에 담으며, 면세점에도 들러 ‘악마의 발톱’이니 전립선 특효약이니 생필품 등을 사다. 이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비엔나 왈츠 체험. 아무래도 어색하기가 짝이 없다. 이 문화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얼쑤-” 하며 탈춤을 추면 몰라도. 1시간여 실습을 하니 수료증까지 준다. 처음으로 아내를 껴안고 스텝을 밟는데, 왜 그렇게 엉키기만 하는지. 발을 잘못 밟았다며 티격태격하는 커플도 있고, 제법 폼이 갖춰진 부부도 있다. 크루즈여행에 대비해 한 달을 배웠다던가. 그런대로 재미는 있다. 저녁은 ‘호이리게(다양한 종류의 고기와 소시지, 감자요리)’라는 현지식. 이것도 영 파이다.
△14일(월) 여행은 이제 절정(絶頂)으로 치닫고 있다. 내일모레면 프라하에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 음악의 나라 ‘진짜 고향’을 찾아 나선다. 그보다 먼저 모짜르트의 어머니 고향(그러니까 외가)인 짤쯔감머구트의 ‘장그트 길겐’을 가기 위해 건너편 마을인 세인트 볼프강에서 하차. 유람선을 1시간여 탄다. 아름다운 강에 오락가락하는 알록달록한 요트들의 행진이 장관이다. 한없이 한가롭다. 눈을 지긋이 감으며 바람의 내음을 맡기도 한다. 스쳐가는 마을마다 그림같다가 아니고 ‘그림 그 자체’이다. 붉은 벽돌색의 ‘ㅅ’자 지붕의 집들은 대개 베란다가 있는 3, 4층. 베란다에는 제라늄 등 생화가 가득하니 보기에 얼마나 좋은가. 꽃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나쁜 이 없을 터이니, 선한 사람들만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는 듯, 동화마을이 따로 없다. 이윽고 길겐 도착, 처음엔 우리가 왜 모차르트 생가면 생가이지, 그의 외가마을까지 와야 하느냐고 불만이었으나 역시 와 볼만한 곳. 시청사 옆 오래된 식당에서 점심을 하다.
△14일 오후. 이제야 말로만 듣었던 짤쯔부르크, 모차르트 생가를 찾았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 창가로 스쳐 지나가는 풍광이 모두 영화 찍기엔 최상이다. 줄리 앤드루스가 일곱 남매를 데리고 ‘도레미송’을 부르며 뛰노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보일 듯하다. 실제로 사철 온갖 꽃으로 뒤덮인 ‘미라벨 정원’은 커튼을 잘라 만든 옷을 입고 신나게 뛰어다니던 곳이다. 볼트 디트리히 주교의 순애보가 애틋하다. 평민인 살로메 알트를 사랑하여 10명의 자녀를 낳고, 궁전을 지었으나 고독한 죽음을 맞이했단다. 후대의 주교들이 그 흔적을 지우고자 궁전과 정원의 이름을 ‘미라벨(아름다운 전경)’이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한국의 큰아들에게 엄마-아빠 기념사진을 보내니 “다 가본 곳이지롱” 문자로 초를 친다. 이어 세기의 작곡가이자 음악의 신동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생가(노란색의 6층 건물), 짤쯔부르크 성당, 쇼핑거리로 ‘모짜르트 초콜릿’이 유명한 게트라이드 거리(구시가지)를 돌면서 쇼핑을 하다. 생가 옆 카페는 1700년대부터 영업을 해온 고색창연한 건물이다. 서유럽이나 북유럽도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가는 나라마다 몇 백 년 된 성당건물이 사람의 기를 죽인다. 우리의 120년 된 명동성당이나 전주의 전동성당은 아예 명함조차 꺼내지 못할 정도로 카톨릭 국가의 전통과 역사는 그 나라의 역사, 그 자체인 듯하다. 한마디로 놀랍다. 점심은 ‘슈니첼(얇게 저민 살코리. 돈까스와 비슷한 오스트리아 대표음식)’이라는 현지식. 또 짜다. 중국식 저녁은 가져간 고추장, 김, 통조림 깻잎 등 밑반찬으로 쌀밥이라도 실컷 먹어 불행 중 다행이다.
△15일(화) 오전. ‘할슈타트’의 ‘할’은 소금이라는 뜻. 오스트리아의 세계문화유산답다. 어찌나 아름다운 마을인지, 아내는 언젠가 꼭 다시 와 1박을 하자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실현 불가능할 소망이 아닐까. 캐나다 밴쿠버의 재스퍼나 밴프마을처럼 앙증맞고 깜찍한 ‘동화마을’이다. 알프스산맥의 거친 암반으로 이뤄진 산과 깨끗한 호수가 만들어낸 환상적인 자연경관, 완벽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짤쯔감머구트의 진주’라 하나보다. 전망이 좋은 성당에 올라보다. 우리 부부는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찍지 않을 도리가 없다.
△15일 오후 여행은 정말 막바지다. 할슈타트에서 3시간여를 달려 체코의 ‘체스키 크롬노프’라는 작은 마을을 가다. 체스키크롬노프城과 클림트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에곤 쉴러’의 기념관을 둘러보다. 이곳도 동화같은 ‘중세의 도시’이다. 21세기 문명의 혜택을 일부러 전혀 받지 않고, 조상들이 남긴 과거와 그 유산에 안주하며 사는 듯하다. 어쩌면 그렇게 앙증맞는 마을을 유지할 수 있을까? 동굴식당의 현지식. 역시 짜다. 망할! 흰 쌀밥에 목이 메인다. 이제 프라하로 향한다. 또 거의 3시간을 타야 한다. 프라하의 야경이 기다리고 있다. 다리품을 너무 팔아 지친다. 하지만 카를다리 등 야경을 안볼 수야 없지 않는가. 그래도 단체로 한잔은 해야 하지 않을까. 호텔 인근의 ‘쿠바 비어’에서 일제히 건배를 하다. 밀맥주와 흑맥주가 동이 나다. 힘든 하루가 끝났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한다.
△16일(수) 오전. 비가 간간히 뿌린다. 프라하는 ‘북부의 로마’라고 칭할만큼 도시 전체가 옛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기내에서 보았던 다큐멘터리의 한 구절이 뇌리에 스친다. “The past is always present” ‘과거는 언제나 현재’라는 뜻이리라. 딱 그 말에 안성맞춤의 도시다. 1년에 최소 1억명의 관람객이 찾는다한다. 하루평균 30만명.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현재 대통령궁으로 쓰인다는 프라하성과 프라하성곽 안에 있는 성 비투스성당은 체코의 랜드마크.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뾰족탑이 100개나 있다하여(정확히 106개) ‘백탑(百塔)의 도시’라고 했다 한다. 탑높이 100m, 건축이 시작된 게 1344년이고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게 1929년이니, 무려 600년이 걸렸다. 참으로 대단하다. 색색깔 스테인드글라스는 또 어떠한가? ‘서양 건축의 80%는 성당과 교회’라는 말이 실감난다. 카를4세를 기념하는 다리도 명물이지만, 그보다 더 1437년에 제작되었고, 지금도 오차가 전혀 없다는 ‘오를로이 천문시계’을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천동설에 기초한 두 개의 원이 나란히 돌아가며, 매시간 예수의 12제자가 창 안쪽으로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진 후 시계의 위쪽에 있는 닭이 운다. 건물은 2차대전때 폭격으로 반파됐다지만, 시계가 붙어있는 건물벽이 온전한 게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트램을 타고 바츨라프광장으로 나섰다. 마지막 코스이다. 바츨라프는 10세기경 보헤미안기사들과 함께 국난을 극복한 체코의 영웅, 그의 기마상이 서있다. 체코 민주화의 상징인 ‘벨벳혁명’을 기억하시리라. 소련에 대항하던 수많은 젊은이들, 지난해 우리의 촛불시위가 그러했을까? 길이가 750m에 이른다. 우리의 광화문광장 모양이다. 자유시간 1시간여 동안 마신 체코맥주는 확실히 맛이 좀 달라 맛있다. 구시가지광장의 오래된 식당에서 등갈비로 동유럽 마지막 점심을 때우다.
*‘우리나라의 세계문화유산’ 특강
날마다 버스 최소 대여섯 시간을 타는데 지겹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모두 마음을 허(許)하는 친구들이기에 그나마 덜 지루할 수 있었다. 형수들은 형수들대로 ‘쓸데없는’ 수다 떨기에 바쁘다. 인솔자의 청산유수(靑山流水) 설명과 해설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일행 중에 인문학특강을 하는 친구가 ‘재능기부’를 해줘 교양과 상식을 좀 넓혔다는 후문이 있다. 짧은 특강의 요지(要旨)를 소개한다.
동유럽 국가들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들을 순례하면서 혹시라도 ‘우리나라는…’하면서 기죽을 필요는 없다. 물론 성당 등의 스케일이나 역사를 보면 놀라기 마련이지만,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대로 이 나라들이 흉내낼 수 없는 세계문화유산과 기록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얼마든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우리나라만큼 기록(記錄)에 충실한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드물다. 왜냐하면 세계기록유산이 13종이나 등재되어 아시아에서 1위(중국 10종, 일본-베트남 5종)이며, 세계적으로 공동4위(1위 독일 21종, 영국-폴란드 14종, 한국-러시아-오스트리아 13종)이다.
세계문화유산도 12종이나 등재돼 있다. 자, 리스트를 보자.
<석굴암·불국사(1995), 해인사 장경판전(1995), 종묘(1995), 창덕궁(1997), 화성(1997), 경주역사유적지구(2000),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2000), 조선왕릉(2009), 안동 하회마을·경주 양동마을(2010), 남한산성(2014), 백제역사유적지구(2015)>에 이어 세계자연유산인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2007)이 있다.
더불어 세계기록유산도 기억해 두자.
<훈민정음 해례본(1997), 조선왕조실록(1997), 승정원일기(2001), 직지심체요절(2001), 해인사 대장경판(2007), 조선왕조의궤(2007), 동의보감(2007), 일성록(2011), 5·18민주화운동기록물(2011), 난중일기(2013), 새마을운동 기록물(2013), KBS 남북이산가족상봉 기록물(2015), 유교책판(2015)>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금속활자를 최초로 만든 나라이고, 500년 이상 유지돼 온 왕조의 모든 기록을 남긴 위대한 기록의 나라이다. 석굴암이니 조선왕릉 40기의 의미를 축소해석할 필요는 눈곱만큼도 없다. 동유럽이라고 한 나라에 문화유산이 우리처럼 10개가 넘을까. 프라이드를 갖자.
★“seven nights” 4성․5성급 호텔 순례
일곱 밤의 밤을 자야 하기에 자연히 4성, 5성급 호텔순례를 하게 된 셈. ‘여행은 잠자리가 편해야 한다’는 말처럼 세계적인 체인점 ‘인터컨티넨탈 호텔’과 ‘힐튼호텔’ 2곳, 메리오트호텔 등 모두 괜찮았다. 다만, 아침밥이 뷔페라 해도 우리 입맛에 맞지 않고 쌀밥이 없어 베이컨이나 소시지, 계란후라이로 대충 때울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까웠다. 방에 있는 텔레비전들이 모두 LG 제품이어서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어떤 곳은 얼마 안되는 식수조차 돈을 받는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숙박계를 쓰라는 곳도 있다. 칫솔, 치약, 면도기 등은 한 곳도 없었고, 슬리퍼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참고하시길.
체코 현지가이드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체코어에는 ‘짜다’라는 뜻의 단어가 없다고 한다. ‘깊다’라는 단어가 ‘짜다’라는 말을 대신한다니 알쪼다. 참 별난 일이다. 왕소금맛이 깊다는 그네의 미각(味覺)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하루이틀 익숙하다보니, 이들 나라의 자연풍광(自然風光)도 솔직히 그게 그거다. 말하자면 심심하다. 한 달을 살라하면 못살겠다. 산이 없이 한없이 펼쳐진 지평선, 그림같은 주택가, 너른 초원, 영토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나라가 많은데 인구라야 고작 1000만명, 그만큼 인구밀도가 낮으니, 청정지역이 따로 없다. 게다가 미세먼지나 황사 등이 전혀 없다보니 오염될 일도 없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필요없으니, 건물 어디에서도 실외기를 발견할 수 없다. 묘(墓)들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다. 이들은 묘지를 마을입구에 아담하고 예쁘게 만들어놓고 항상 생화(生花)를 바친다고 한다. 바로 집 옆에 모시고 늘 고인을 추모하려는 뜻이리라. 비엔나도, 부다페스트도, 대도시의 건물은 우리처럼 최첨단 고층건물이 거의가 아니고 하나도 없다. 어쩌면 그렇게 중세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까? 어떻게 도시계획을 하면 이렇게 완벽하게 ‘중세도시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것일까? 시내 관광을 하다보니, 우리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의 한 도시, 한 국가를 구경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신기할손!
★잊을 수 없는 해프닝들
△“병은 소문을 내야” : ‘병은 소문을 내야 한다’는 말은 여전히 진리(眞理)인 듯. 첫날부터 목디스크로 목을 제대로 못 가누던 한 친구는 이번 여행에 마치 대통령이 된 듯했다며 흐뭇해 했다. 의사선생님인 친구 부인이 매일 아침 엉덩이를 까고 진통주사를 놓아준 것. 좀 민망할 일이다. 그뿐인가. 또한 친구의 부인은 긴 버스여행(보통 3∼4시간) 중에 웃통을 벗기고 1시간여 저주파 물리치료를 여러 번 해주었고, 찜질기를 빌려준 친구도 있었다. 또 한 친구는 졸지에 발병(통풍)이 나 걷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여행 끝나기 이틀 전이어서 다행이었고, 한 친구가 통풍(재발성 류마티즘)에 직방으로 낫는 약을 갖고 왔기에 한숨을 돌렸다.
△“이역만리 부부싸움”: 미라벨정원 자유시간 때 만나기로 한 장소에 모두 5분 정도 빨리 모여 모짜르트 생가를 출발했으나 한 커플이 탈락된 것을 몰랐다. 정시에 도착하여 일행이 없는 것을 보고 긴급전화로 상봉이야 했건만, 심기가 불편해진 형수의 눈물바람을 달래기는커녕 되레 화를 낸 남편 때문에 그날 밤 심하게 싸웠다나 어쨌다나. 알려지지 않은 또 한 건의 부부싸움은 아는 사람끼리는 화제가 만발. 당뇨 관리를 잘못해 졸지에 10kg가 빠진 친구가 여전히 속을 못 차려 좋아하는 술을 뻗치자 독이 오른 아내, 호텔이 떠들썩하게 혼쭐을 낸 데 이어 급기야 ‘폭력’으로까지 이어졌다고. 그 친구는 난생처음 ‘매맞는 남편’의 심정을 체험하게 됐다며 씁쓸해 하는 가운데 휴대폰까지 잃어버려 1차 맥주집(쿠바 비어)으로 뛰어가는 등 심야소동을 빚었는데, 호텔 로비에서 보관 중이었다고. 아무리 ‘부부싸움이 칼로 물베기’라지만, 이역만리에서까지 감정을 상할 정도의 말다툼이라니, 삼갈진저.
△“Happy Birthday”: 음력 6월 22일이 마침 13일 일요일. 비엔나 도착한 날. 진짜 생일을 맞은 한 친구는 대박의 날이었다. 식당에서 생일케이크를 가운데 놓고 23명의 덕담과 축가를 한몸에 받았기 때문. 당사자는 하우스와인을 점심에 돌린 후 “태어나 두 번째로 최고의 귀빠진 날이 되었다”며 즐거워했다고. 첫 번째로 최고의 생일은 몇 년 전 구순이 다 된 늙은 아버지가 꼭두새벽에 일어나 미역국을 끓여 아침밥을 대령했다고.
△“공항 드잡이”: 프라하 하벨공항 대기실에서 지루하게 귀국비행기를 기다리던 도중, 일본인으로 보이는 술 취한 손님과 한 친구가 말싸움을 벌였다는데. 외국인이 좌석에 놓인 짐을 손짓으로 치우라며 마구잡이로 의자에 앉는 것을 거세게 밀치면서 대뜸 했다는 말이 걸작이다. “빠가야로 니뽄징 개새끼야. 조까라데쓰다. 씨발놈아”. 자칫 글로벌 싸움이 될 뻔한 사건, 다행히 중재자가 나서 양쪽의 분노를 눅여 위기를 모면했다고.
★우리에게 ‘진정한 여행’은 무엇인가?
여행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한다. 물 설고 낯선 곳이나 나라에서 단 며칠이라도 갖는 달콤한 휴식이 바로 진정한 힐링(healing)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그동안 생업(生業)에 쫓겨 여행다운 여행, 휴식다운 휴식을 한번도 누려보지 못했지 않은가. 오죽했으면 ‘저녁이 있는 삶’을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내걸었을까? 이제껏 살아온 자기의 삶을 성찰(省察)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니, ‘인생 제2막’의 출발선상에 서있는 우리로서는 지극히 바람직한 일일 터. 그래서 서양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는 ‘진정한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운문(韻文)을 썼다. 같이 음미해 보자.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아직 씌여지지 않은 시를 위하여, 아직 불려지지 않은 노래를 위하여, 어느 길로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인, 지금 바로, 우리는 ‘진정한 여행’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친구 그리고 이쁘게 늙어가는 아내와 함께 말이다.
★멤버들의 면면
누가 누가 이 기똥찬 여행에 참여했을까? 가만가만 들여다보자.
△‘왕회장’ 최규록 친구, 역시 강적이다. 짚신 같은 신발 하나만 덜렁 신고와 명품을 사야 한다며 떼를 썼다고. 하루에 최소 아이스크림 5개는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하니, 가이드는 볼 때마다 ‘깜놀(깜짝 놀람)’. ‘Uncle Tom(톰 아저씨)’스러운 모자를 몰다우 강바람에 애석하게 날렸다. 호는 인우(仁雨). 요식업의 귀재이자 골프와 배드민턴에도 능숙하다.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식사 때마다 친구들의 식탁에 와인과 중국술을 올려놓아 우리를 기쁘게 했다. 감사. 그의 어부인은 여행 내내 큰언니도 아니면서 큰언니다운 ‘오지랍의 대모(代母)’ 오경옥 형수, 언제나 주위를 유쾌하게 만든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배려가 몸에 배인 여자. 늘 아픈 몸을 이끌고 빠짐없이 참석해주니 참말로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오산 운천중학교 교장 상암(常菴) 정영우 친구와 그 이름도 유명한 박정희 형수. 첫 기획단계부터 여행하는 동안 윤 팀장과 이것저것 조율하느라 애썼다. 연극 지도로 ‘불량제자’들을 수십 년 동안 수십 명 감화시킨 참교육자로 이름이 높다. 또한 대학로의 좋은 연극을 1년에 몇 차례 주선, 우리들의 문화생활을 풍족하게 해주는 ‘문화대통령’이다. 감사.
△멀리 광주에서 신새벽 리무진을 타고 올라온 나장수 친구와 문경주 형수. IMF때 독립하여 유한회사 건설업을 하는 신사, 법 없이도 살 듯하다. 건강만 허락되면 앞으로 15년은 현역으로 너끈하단다. 좋은 일이다. 독실한 기독교신자.
△주말부부인지 월말부부인지 소선당(素鮮堂) 정수미 형수는 광주에서, 대한민국 폴리스 우당(友堂) 김택수 친구는 인천공항에서 합류했다. 의사선생님은 여행 중에도 인술(仁術)을 베풀어 미담의 주인공이 되었고, 우당은 동영상 찍느라 바빴지만, 졸지에 당권(糖權․당뇨인이 되었다는 뜻)을 잡아 운동에 더 바쁜 처지가 됐다. 팽팽한 얼굴, 내년이면 정년이라 한다. 한 5년은 너끈할 것같은데.
△군산에서 상경한 심재국 친구와 임경순 형수. 술값도 안 드는 홍안(紅顔)의 청년은 “여보” 소리를 유난히 간드러지게 잘하는 임선생과 ‘베스트금실 1호’이다. 여보는 ‘(사랑하는 옆지기를 언제까지나) 보배(寶)와 같이(如) 모시겠다’는 뜻이니 얼마나 좋은 호칭인가? ‘(배우자의 몸을) 마땅히(當) 자신의 몸(身)처럼 생각한다’는 뜻의 ‘당신’이란 호칭으로 응답해야 하리라. 그들로부터 배운다.
△전주 예수병원에서 30여년 근무한(작년 정년퇴직) 이희선 친구와 긴머리의 이성순 형수. 필자와 1학년 때 같은 반(4반이 이번 여행 12명중 5명이다). 축구마니아인 데다 엄청 성실하다는 주위의 평이지만, 형수의 평가는 ‘느려터진다’며 평가가 짜다. 형수는 요양사로 활약하고 있다.
△‘공로연수’로 팔자가 느긋하다며 여유를 부리는 척하는 달우(達于) 박치원 친구과 수필가 안수당(安水堂) 구영례 형수. 이화주(梨花酒)를 만드는 양조(釀造)의 달인이다. 달우는 2017년 동기회 명사무총장이다. 형수는 한국문인협회 광명지부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목동의 유명 한의원 원장인 이춘근 친구와 윤영선 형수. 동갑내기인 데도 둘 다 동안(童顔)이다. 호는 미암(美巖). 아들과 딸을 출가시켜 느긋하다. 한때는 암벽타기의 달인. 외손자에 이어 내일모레 친손자 출산이 임박. 기대 만빵이라 한다.
△세무공무원 41년이 넘어 내년 6월 퇴직을 앞둔, 언제 봐도 ‘말없는 신사’ 우진(又進) 변만덕 친구와 양주애 형수. 내달이면 할아버지가 된다며 손자 작명을 부탁한다. 내년부터는 남는 게 시간뿐이니 어떤 여행에도 동참하겠다고 호언한다. 이 부부의 금실도 장난이 아니다. 이제껏 한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다니, 어디 믿기는가? 참고로, 필자는 첫 번째 수필집 서문에서 결혼 25년 동안 3000번쯤 싸워 두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썼다.
△2002년 세무공무원을 접고 독립하여 합정동에 둥지를 튼 지 15년. 호주객(豪酒客)으로 소문난 인산(仁山) 강석환 친구와 백덕생 형수. 술도 좋아하지만, 독서도 좋아하는 인산, 요즘엔 눈이 아파 책을 읽지 못한다고 하소연. 형수는 연전까지 합정동에서 삼겹살 식당을 운영, 우리 친구들의 영양보충을 책임져 주기도 했다.
△2017년 회장인 묵직한 사암(史庵) 김명중 친구와 강연숙 형수. 서울시 열성 공무원으로 퇴직, 직업이 ‘학생(學生)’인 듯 공부에 미쳐 있는 게 불만이라는 형수의 볼멘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길을 간다. 서울시 ‘50+아카데미’ 홍보대사인 듯. 남자만 여덟 형제 중 둘째이고, 아들만 둘.
△마지막으로 필자 우천(愚泉) 최영록이다. 자칭 생활칼럼니스트. 동아일보 편집부기자 20년에 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 11년을 거쳐, 현재는 교육부 산하 학술기관인 한국고전번역원 홍보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아내는 수경당(秀京堂) 김옥선. 논술지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아들 둘을 출가, 16개월 손자 자랑에 여념이 없다. 1∼2년내 생가마을(전북 임실 봉천)로 귀향(歸鄕)을 꿈꾸고 있다. 문제는 건강(健康). 버킷 리스트 1호가 3000여권의 책을 쌓아놓고 죽을 때까지 읽고자 하는 것이다. 가능할까?
★윤팀장․조연들의 어시스트 “됐구유(thank you라는 뜻)”
윤혜영 팀장은 인천공항 출발에서부터 귀국때까지 우리 일행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 베테랑 인솔자, 경력 16년을 자랑한다. 알고 보니 닭띠 띠동갑, 연식이 같아 같이 늙어간다며 너스레를 떠는데 “썰(說)‘이 장난이 아니다. 딱 한번 미라벨정원의 해프닝이 있었으나, 대과(大過)가 없었기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문학, 음악, 미술, 예술, 역사, 스포츠 등 다방면에 놀라운 내공의 소유자이다. 장시간 버스를 탑승해야 하므로, 지루함을 달래려 ‘사운드 오브 뮤직’ 핵심장면을 보여주는가 하면, 요한 스트라우스1세인지 2세인지 ’다뉴브강의 물결‘ 곡을 틀어주기도 하고, 7080 노래까지 선을 보이는 센스에 우리는 내내 행복했다. 독신주의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마흔아홉 수 싱글이다. 조만간 가슴이 떨리는 상대를 만나리라. 자기 말대로 ‘외모는 이렇게 생겼어도, 강단이 있다’는데, 깡다구가 장난이 아닌 듯하다. 1년에 180여일을 외국나들이로 지샌다니, 그것이 어디 만만한 일이랴. 감사. 행운을 빈다.
현지관광의 규정이 현지 가이드를 동행해야 한단다. 폴란드에서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아우슈비츠의 현장과 ‘소금광산’을 안내해준 배재윤. 헝가리에서 쉔버룬궁전 등을 안내한 미모의 정윤아(문제의 정유라가 아닌 개그우먼 김영희의 판박이다), 오스트리아에서 모짜르트 생가 등을 안내한 콘스탄틴, 체코에서 성 비투스성당과 바츨라프광장 등을 이끈 이우현씨 등에게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7박 9일 동안 안전운행으로 우리를 편하게 모신 폴란드인 운전기사 뮈네스코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야 하리라. 사실은 난폭운전인데, 윤팀장의 거센 어필로 못된 습(習)이 조금 고쳐졌다 한다. 40세 이혼남, 키 192cm, 몸무게 125kg.
★전라고 6회 ‘찰떡 뭉침’의 힘은 무엇?
우리 6회 친구들은 왜 그렇게 단합이 잘되는 걸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먼저 2000년에 처음 개설된 ‘네이버 카페’가 불을 지른 듯하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재경동문회’를 구성, 헌신한 친구 몇몇이 있었다. 홈피에 이런저런 의견들을 너나없이 쓰기 시작한 게 ‘공감대 확산’의 지름길이었을 터. 그해 회장인 친구는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역이민을 했다던가. 홈피는 변신을 거듭하여 현재는 다음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둘째, 고정적인 연례행사의 개최를 들 수 있겠다. 1월 첫째주 토요일 ‘신년교례회’, 3월 중순의 시산제(始山祭), 6월 6일 어김없는 ‘쌍륙절 부부동반 야유회’와 8월말 횡성 주천강의 천렵(川獵), 이미 100회를 넘긴 한 달에 한번 오르는 ‘6山회’산행, 거의 매년 이뤄지는 국내외 여행 등의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 보라. 대한민국의 어느 고등학교 동창들이 1년에 한번 35쌍 부부동반으로 관광버스 2대나 3대를 동원하여 소풍을 간단 말인가. 2008년에는 4대를 동원, 120명이 참석하기도 하여, 일간지(중앙일보 6월 8일자 6면 전체)에 특기(特記)되기도 했다. 셋째, 친구 부인의 호칭을 ‘형수(兄嫂)’로 부르기 시작한 게 10년이 넘다보니 관계가 훨씬 이무러진 듯 하다. 제수(弟嫂) 앞에서는 못해도 형수 앞에서는 웃통도 벗을 수 있지 않은가. 또한, 남자는 호(號) 여자는 당호(堂號)로 부르는 것도 친목 도모에 한몫 한 듯.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구들을 먼저 배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막말로 ‘무엇이든 친구들 먼저 못줘서 안달’이라면 말 다했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을 결산해 보는 헤드라인(headline)이다. Happy Europe Tour(행복한 유럽여행), Always our Love & Friendship(언제나 흐뭇한 우리의 사랑과 우정), Forever Joyful Life(영원히 즐거운 인생)로 하면 어떨까? 그리하여 마지막 건배구호는 이렇다. 선창자가 "리멤버(Remember)!"하면 모두 잔을 높이 들고 "이(this) 멤버(member)!"이다. 오래도록 잊지 말자는 이야기이다. 이 졸문의 글뒤풀이도 그런 까닭으로 너저분하게 쓴 것이다. 이제 졸업 40주년도 지나갔고, 환갑을 맞이하여 모두 정식으로 “한 살”이 되었다. 앞으로 몇 살까지 살까? 아무도 모를 일이로되, 최소한 스무살은 넘기지 않을까? 서른 살은 너끈할까? 자, 이제 우리의 ‘인생 제2막’을 어떻게 열까? 골똘히 한번 생각해 보자. 무엇보다 건강들을 챙기자. 연식이 되면 될수록 ‘자식’도 아무 소용 없고 ‘배우자’가 최고라더라. 이쁘게 늙어가는 아내와 손잡고 건강할 때 발품을 팔며 놀러도 다니자. 그것도 친구들과 덩케덩케 가보자.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 될수록 좋다’가 하지 않던가. 그 재미가 은근히 쏠쏠하고 재미있나니. 다음엔 북유럽을 갈까? 서유럽을 갈까? 그리스와 로마를 갈까? 아니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일삼아 갈까? 그것도 아니면 터키, 인도? 어디를 함께 갈까나? 갈 곳은 많고 시간도 이제 남아돌 터인데, ‘그놈의 쩐(錢·money)’이 문제로구나. 그래도 어떻게든 가보자. 남는 것은 사진이 증명해 주는 추억들이 아니겠냐? 친구들아. 시인 김재진의 ‘친구가 좋다’ 는 시구절같은 친구가 되어 우리 모두 다같이 행복하게 늙어가자.
오늘도 찾아주는 친구가 있어서 좋다.
값 비싼 음식점 찾지 않고
순댓국이나 칼국수에 소주 한 잔 마시며
때 지난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좋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좋은 말 나쁜 말 서슴없이 해도
허물없는 농담 한마디로
넘겨주는 친구가 있어 좋다.
나이 들어서 반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좋고
가끔 음담패설 들려주어
웃음짓게 하는 친구가 있어서 더욱 좋다.
겨울 바람에 뼈마디 아프다고
어느 병실에 누워 있는 친구에게
함께 병문안 갈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나는 좋다.
먼 나라, 이웃나라들을 여행하며
“우리 나이에 이렇게 놀러다니는 것도 큰복이야"
서로 위로하며
함께 걷는 말동무, 길동무 친구가 있어서 좋다.
<뒷표지>
처마의 빗물은 똑똑똑 떨어지고
향로의 향냄새 솔솔 풍기는데
지금 두엇 친구들과 소매 걷고 맨발 벗고
방석에 앉아 하연 연꽃 옆에서
참외를 쪼개 먹으며 번뇌를 씻어볼까 하네.
이런 때에 자네가 없어서는 안되겠네.
자네의 늙은 마누라가 으르렁거리며
자네의 얼굴을 고양이상으로 만들겠지만 위축되지 말게.
문지기가 지우산을 받고 갔으니
가랑비쯤이야 족히 피할 수 있을 걸세.
빨리빨리 오시게나.
모이고 흩어짐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런 모임이 어찌 자주 있겠는가.
헤어지고 나면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을 것이네.
- 1608년 7월 어느날 허균이 벗에게 보낸 쪽지글
簷雨蕭蕭 爐香細細
方與二三子袒跣隱囊 雪藕剖瓜 以滌煩慮
此時不可無吾汝仁也
君家老獅必吼 令君作貓面郞 毋爲老瓌畏縮狀
門者持傘 足以避霂霢
亟來亟來 聚散不常
此會安可數數 分離後雖悔可追
- 許筠의 ‘惺所覆瓿藁’중에서
첫댓글 당뇨 관리가 잘 안된다는 친구는 아직도 형수씨의 사랑을 격하게 받는구나!
비결이 머시여~?
이런 집도 있다는데.....ㅎㅎ
납치범이 전화를 걸었다.
납치범: 당신 남편을 납치했다. 돈을 보내지 않으면 남편을 죽이겠다.
부인: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끊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납치범: 당신 남편을 그냥 돌려보내 주겠소.
부인: 무슨 소리예욧? 한번 납치했으면 그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