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를 모으는 소설가 김영하가 5년만에 펴내는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등 특유의 감수성과 속도감으로 일상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한 8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생생하게 묘사되는 현실, 유쾌한 상상력과 유머감각, 섬뜩한 아이러니와 날렵한 글솜씨가 빛난다.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에서 함께 작업한 바 있는 만화가 이우일이 본문 일러스트를 그렸다.
표제작 '오빠가 돌아왔다'의 화자는 열네 살 먹은 하층민 소녀. 소녀의 가족은 다음과 같다. 술주정뱅이에 고발꾼인 아빠, 아빠와 헤어지고 함바집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 미성년자 동거녀와 집에 돌아온 오빠.
평론가 황종연은 "그 서술에서 신선함과 당혹감을 아울러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김영하는 삐딱하고 되바라진 소녀의 상스러운가 하면 장난기 많고, 도발적인가 하면 생기발랄한 말을 재치있게 모방한다. 가족관계를 버릇없이 묘사하고 가족생활에서 모든 윤리적 의미를 제거하려는 소녀의 냉소주의는 어느 순간 가족의 사랑을 표현하는 반어적 화법이 된다. 이러한 반어법의 연출자는 물론 작가이다"라며 말을 다루고 부리는 작가의 재능에 주목한다.
바로 '지금 여기' 어딘가에서 벌어질 법한 사건들이 치밀하게 계산된 구조 속에서 경쾌하게 그려진다. 냉소와 열정 사이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김영하의 작품세계가 한결 깊고 성숙해졌음을 발견할 수 있는 책.
감상
1.김영하가 돌아왔다.
나의 기억속에서 김영하는 랄랄라 하우스의 주인이자 20대에 이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외쳤던 작가이자, 아랑은 왜? 라고 물었던 소설가이며 만화가 이우일과 함께 영화 이야기를 했던 만담가였다.
그는 확실히 일상적 표피의 세계를 건드려 그 안에 숨겨진 속살을 바탕으로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김연수에 비해 쉽게 읽히는 이야기를 구성해내고, 이야기의 묘미에 빠져들게 하는 작가이다.
그것은 읽기의 속력과 연관되고 동시에 이야기꾼으로서의 김영하의 자질과 이어진다.
특유의 우울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흡입력 있는 문체와 이야기는 그만의 매력으로 빛난다.
그래서 <오빠가 돌아왔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 나는 그가 내게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2.
오빠 생각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귓들 귓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고, 소식도 없던 오빠가 돌아왔다.
근데 돌아온 오빠의 곁에는 비단구두도, 동생을 기쁘게 해 줄 멋진 선물 대신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미성년자 여자애가 서 있었다.
더구나 오빠는 돌아오자마자 예전에 자신을 때리던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거꾸로 마구 패기까지 한다.
그것을 말리지도 않고 가만히 지켜보는 여동생.
표제작 '오빠가 돌아왔다'는 진정한 콩가루 집안의 표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존의 통념과 거리가 먼 가족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가치관과 거리를 두는 그들의 해학적인 삶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품고 있던 가족관을 왜곡하고 비틈으로서 당대의 현실이 이상과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지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이 소설집은 일단 거기에 방점을 찍고 소설들이 전개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권선징악을 설파하는 동화들과 정당하고 바른 삶을 권고하는 교육의 이념이 말하는 이상과는 다른 살벌한 태도가 지배하는 현실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혼란과 이중적 태도를 김영하는 특유의 술술 읽히는 이야기로 풀어가고 있다.
첫번째로 소설인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이다. 그는 냉소적인 소설가로 신부가 된 대학 동창생 바오로와 미경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신부로서의 이상과 여성의 육체에 대한 욕망으로 괴로워하는 바오로. 꿈과 열정을 현실의 무게 때문에 가슴에 묻은 채 살다가 자연발화로 죽은 미경의 남편 정식. 그리고 그 때문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친구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미경. 열정과 이상도 사라지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냉소적이지도 못해서 현실과 이상의 틈바구니에서 회색인으로 살아가는 나.
그들은 모두 그림자를 판 사람들이 아닐까?
<이사>. 주변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던 이사라는 행위가 이삿짐 센터 직원들의 횡포로 악몽으로 변함을 보여줌으로서 언어와 관념으로서의 개념이 현실과 다름을 보여주는 이야기.
<너를 사랑하고도>. 사랑에 대한 저마다의 꿈을 품고 있지만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너를 사랑하고도' 모욕당하고 실패하는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젊은 날의 성적인 욕구 때문에 한 여자와 모두 성관계를 가진 세명의 대학 동창생.
시간이 흘러 갑자가 그들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 그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평온한 삶이 무너질까 두려워 '그녀를 죽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들은 그녀가 살해당했음을 알게 되고 서로를 의삼하게 되는데...
평온한 일상에 감추어진 이중성과 이상과 다른 우리 삶의 추악함을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다.
<너의 의미>. 영화감독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모델, 연기자, 연기자 지망생과 성의 향연을 벌이던 한 영화감독이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작가에게 꼼짝없이 사로잡힌다는 이야기. 꿈을 꾸는 한 작가가 그 이상적 에너지로 현실적인 한 남자를 옭아매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보물선>. 이순신 동상이 친일파의 음모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파괴해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상주의자 형식과
적당히 운동권에 몸담고 있다가 졸업 후에 펀드매니저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재만. 그둘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이상의 이중주를 김영하 특유의 냉소적인 해학으로 풀어가는 소설.
'그제야 재만은 자신의 동업자들에게 철저히 냉소적인 조지 소로스의 심정을 속속들이 이해하게 되었다.'
'수천 명의 재산을 간단하게 꿀꺽하고도 아침이면 호텔 식당의 메로구이를 발라먹는 저 놀라운 식욕. 추악한 욕망'
3.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울고 웃고 파멸하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어느새 나는 내가 책을 다 읽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순간. 나는 소설이 아닌 현실에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내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틈에 살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우리는 완벽하게 현실적이지도, 그렇다고 완벽하게 이상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현실과 이상의 그 어디쯤엔가 걸치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순적인 행동과 고민을 하며 힘겹게, 꿈을 꾸며 살아가는 셈이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이란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힘들더라도, 어렵더라도 꾸역꾸역 버티며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히 걸어가야 할 것이다. 꾸역꾸역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한걸음 한걸음 차분히 걷다보면 멋진 꿈의 대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 그것은 이 리뷰에서 소개하지 않은 소설인 <마지막 손님>의 이야기와 이어진다.)
첫댓글 항상 감동을 주는 글을 쓰시는 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