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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플레비언나비공동체 원문보기 글쓴이: 남산
◇ 1996년 6월 2일 PSCE 졸업식에서, 사라 리틀 교수님과
박사과정의 학생으로 선발되기 위해, 해당 학교에서 요구하는 토플 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함께 공부하던 이 중에 영어학원에서 토플을 지도했던 김준식 전도사님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는 그런 시험을 치를 때 시간이 남으면 분명 함정에 빠진 거라 했다. 두 번째 토플에 임했지만, 문제는 해당 학교에서 내 점수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인가 였다. 나는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로 학교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자신이 박사과정생 선발 위원회의 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더니, 갑자기 “잠깐만요, 당신이 김도일 맞습니까? 지금 옆방에서 사라 리틀, 찰스 맬처트, 리 배럿 등의 교수들이 박사학위 과정 지원생 선발로 회의 중인데 당신의 영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뭔가 좋은 느낌이었다. 그 후 토플에서도 충분한 점수가 담긴 인증서가 날라왔고 나는 그것을 학교에 속달로 부쳤다. 그즈음 학교에서도 “Douil Kim, Presbyterian School of Christian Education의 박사과정 선발 위원회는 귀하를 우리 학교의 박사과정 학생으로 선발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라고 알려 주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져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하나님, 제가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것이 당신 뜻이었군요.” 프린스턴신학교 기숙사(CN Center)에서 함께 지내던 학우들이 조촐한 환송회를 마련해주었다. 매주 모여 같이 기도하고 신학적 토론을 했던 친구들, 가족들을 위해 마련된 수영장에서 함께 수영하며, 자녀들을 함께 양육하고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친구들 모두가 모여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만 여섯 살이 채 안 된 큰딸과 두 살이 안 된 둘째를 데리고 또다시 이사를 가야 했다. 당시 미국에선 대기업의 임원 같은 이들이나 포장이사가 가능했다. 대부분은 자신이 직접 트럭을 빌려 짐을 손수 싣고 이사를 해야 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내와 모든 짐을 박스에 다 싸서 5미터가 넘는 크고 긴 트럭(UHall)을 빌려 트럭은 내가 운전하고 아이들은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따라오게 했다.
1993년 당시에는 핸드폰과 같은 문명의 이기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우리의 여정은 뉴저지주 프린스턴시에서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시까지 쉬지 않고 달려도 7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먼 거리였다. 둘째는 아직 기저귀를 차던 때라 문제가 없었으나 첫째는 화장실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난감했다. 둘째와 같은 방법으로 처리해 주기를 부탁해야 했다. 결국 고생 끝에 리치먼드에 도착하여 PSCE 학교 사무실에 들러 기숙사 열쇠를 받아 짐을 풀게 되었다. 이미 와서 공부하고 있던 고태형, 오덕호 목사님 등 여러분이 나와서 짐을 옮겨 주었다.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지휘 본부가 있었던 도시여서 그런지 프린스턴보다는 거리에 흑인들이 조금 더 많이 보였고, 온건해 보이는 캠퍼스 분위기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곧 치르게 될 입학시험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나는 박사과정에 들어가게 되면 그저 수업을 택하면서 공부가 시작되는 줄 알았다가 입학시험이 있다는 소식에 당황하여 하늘이 노래졌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성서 해석학, 발달심리학, 기독교 교육이론, 교회사, 신학’ 다섯 과목에 대해 시험을 치러야 했다. 당시에는 머리가 비교적 잘 돌아가던 시기였고 영어 및 신학공부도 어느 정도 무르익었던 때여서 그런지 나는 단번에 모든 과목을 패스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성과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떨어지는 과목은 석사과정에서 다시 과목을 수강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험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사라 리틀, 패밀라 미첼 레그, 헨리 시몬스, 리 배럿, 찰스 맬처트, 짐 브레이 슐러 교수님 등 기라성 같은 훌륭한 스승님들에게서 기독교 교육적 소양을 쌓았고, 학문적 깊이를 더욱 추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박사학위 과정생들에게는 약 네 평 정도 되는 방을 캐럿이라는 명칭을 붙여 사용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학교 도서관은 유니온신학교가 관리하고, 식당은 PSCE가 관리했다. 그리고 어린 자녀들 교육은 PSCE에서 책임을 져 주었기에 무척 도움이 되었다. 결혼한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는 방 두 개, 거실, 작은 공부방, 부엌, 화장실이 주어졌고 필요한 가구도 다 제공되어 편리했다. 나중에는 신기형, 김충성, 이근호, 김운용, 고태형, 김은주, 오덕호 목사님 같은 이들이 같이 공부하며 아이들을 키우게 되어 서로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되었던 것 같다.
◇ 1996년 6월 2일 PSCE 졸업식, 친구 최영걸 부부와
정확하지는 않으나 첫 수업은 사라 리틀 교수의 세계적 정황으로 살피는 기독교 교육(Christian Education in the World Context)이었던 것 같다. 이 과목은 패밀라 미첼 레그, 리 배럿 교수에게 연결되어 기독교 교육 이론사 외 철학사 그리고 교육과 신학 과목으로 식견을 넓히게 되었고, 다시 사라 리틀 교수와 조지 앨버트 코우, C. 엘리스 넬슨, 존 웨스터 호프, 랜돌프 크럼프 밀러 등의 현대 기독교 교육학자들의 삶과 사상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하게 되었다. 이 기간에 나는 신학자이자 미장로교 총회장을 지낸 닥터 이지의 조교로서 섬기게 되었는데, 그의 깊고 넓은 신학적 견해를 많이 배울 수 있었다.
1995년 1월에는 악명 높은 종합시험과 프로포절 디펜스를 치르느라 몸무게가 졸지에 4킬로그램 이상 빠졌던 것 같다. 종합시험은 네 과목에 대해 치렀는데 종교교육 이론과 철학, 기독교 교육사, 성인교육, 성경(해석학)을 커버했으며 깡통 노트북 컴퓨터만을 소지한 채로 일주일 내내 독방에 갇힌 채 시험을 치러야 했다. 어떤 과목의 시험을 치르던 중에는 수십 장의 답을 노트북으로 써 내려가다가 갑작스럽게 정전이 되었다. 잠시 후에 다시 전기가 들어왔지만, 그동안 작성한 답안이 다 지워지는 불상사도 있었다.
아무튼 기적적으로 전 과목을 패스했고, 곧 다가올 프로포절 디펜스를 준비할 수 있었다. 이때 사라 리틀, 패밀라 미첼 레그, 잭 시모어 교수 세 분이 논문 심사를 하였고 앞서 언급한 기독교 교육학 교수들과 유니온의 신학 및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모든 PSCE 교수들과 박사과정 학생들이 다 모여 구술시험에 참여하였다. 좋은 교수님들의 지도는 나의 공부를 알차게 만들어 주셨고 나는 만 3년이 되던 1996년 5월에 논문을 마치고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다.
1993년~1994년 사이에는 4일의 공부, 3일의 사역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참길 교회”를 개척하여 학교 기숙사와 미국 침례교 건물을 무상으로 얻어 개척 사역을 하였다. 교인 수보다 교역자 수가 더 많았던 교회였지만 문서선교를 중심으로 하여 무척 보람 있었던 시절이었다. 1995년~1996년 사이에는 목사 안수와 더불어 청소년 사역을 위해 워싱턴 서울 장로교회(김재동 목사 담임)에서 재밌고 유쾌하게 사역하였다. 매 주말, 차에 아이들을 싣고 160킬로미터씩을 달려 할러데이인에 내려놓고, 나는 담임목사님과 다음 세대 및 어른 세대를 돌보는 사역을 하였다.
청소년들을 위한 사역과 주일 성인 사역을 더불어 경험하는 교육목회 실습에 여념이 없었던 때였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적인 부족함이 상존하던 시기였기에 주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그러자 나성영락교회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왔던 최영걸/애나 부부가 물질적 지원을 해줘서 살아가게 하셨다. 그들의 도움은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어 나는 그들에게 사랑의 빚을 크게 졌다.
기독교 교육의 소양과 교육목회자의 자세에 대한 훈련은 캘리포니아의 바이올라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다질 수 있었고, 신학적 훈련은 뉴저지 프린스턴신학교에서 경험했다면, 기독교 교육학의 깊이와 넓이는 버지니아 리치먼드의 PSCE에서 맛을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결국 나는 1986년에 학부로부터 시작한 미국에서의 정식 공부를 1996년 박사과정으로 마치게 되었다. 10년 동안 열심히 달려온 공부의 여정에 나의 주님은 세밀하게 함께 하셨고 구체적으로 인도해 주셨다.
김도일은 장신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로 한국기독교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다음 세대를 세우고, 가정교회마을연구소 공동소장으로 이 땅 위에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 힘쓰고 있다. 이 지면을 통해 삶 속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며 이끌어 오신 그분의 발자취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출처 : 주간기독교(http://www.cnew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