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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의 시대적 배경
1. 정치적인 배경 신약성경의 주역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적인 인물로서, 그리스-로마의 정치 문화 세계에서, 지역으로는 유대 나라 베들레헴에서, 시대적으로는 로마의 유대지방 분봉왕 헤롯 때에 한 빈한한 목수의 가정에서 탄생하셨다. 세계 지도상에서의 유대 나라 팔레스틴은 아시아와 구라파와 아프리카의 세 대륙을 잇는 중심으로서 온 인류의 구세주가 나시고 그의 복음이 온 세계에 널리 전파되기에 합당한 위치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이 열린 신약의 시대는 유대 나라가 정치적으로는 주후 63년 이래 로마의 압제 아래에 있었고, 문화적으로는 헬라의 영향 아래에 있어, 정치적인 주권도, 문화적인 주체성도 갖지 못한 상황이었다.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형태로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 하나는 지방총독을 두어 다스리는 것이요(행13:7), 다른 하나는 황제 직할로서 예수 당시의 팔레스틴은 빌라도가 대리 총독으로 있을 때였다. 로마정부에 대한 열심당원들의 항거와 마카비 독립운동등으로 로마정부는 유대인을 백안시하고, 그 중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알아 그 박해가 더욱 심하였다. 네로, 도미시안, 트라얀 황제의 통치 아래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한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메시야의 탄생지, 그리스도교의 발상지인 유대 나라는 세속의 역사로 보면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고난의 역정을 겪어온 민족국가였다. 사울-다윗-솔로몬으로 이어진 통일 왕국 시대가 지나간 후 북국 이스라엘과 남국 유다로 분열된 이 민족은, 주전 722년에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586년에는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여 포로생활의 고난을 겪었다. 주전 539년에 바사왕 고레스에 의하여 포로생활에서 본토로 귀환하여 스룹바벨과 에스라-느헤미야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도 하였으나, 다시 333년부터는 헬라의 지배하에 들어가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파괴되고, 주전 167년 이후 일시 마카비 일가에 의한 독립항쟁이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는 주전 63년에 로마에 의해 정복을 당하고 말았다. 막대한 영토를 가지고 막강한 정치권력을 가진 로마 제국의 압제 아래에 있는 유대 나라, 하나님의 선민은 나라 잃은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로서, 사나운 파도에 밀려침몰할 것만 같은 일엽편주와도 같고, 거센 바람 앞에 까물거리는 등불과도 같은 운명이었다. 이러한 고난 가운데서 그들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이 당하는 고난을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시련으로 받아들여, 하나님의 오랜 약속을 믿음으로 마침내는 그들을 로마의 압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이땅에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메시야의 도래를 간절히 대망하는 가운데 있었다. 이러한 때에 그들이 대망하던 메시야가 바로 그 고난의 땅과 고난의 시기에 오신 것이다. 2. 사회적 문화적 배경 로마제국은 이웃 나라를 정복하여 그들의 식민지로 삼고, 피정복지의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서 로마에는 자유민보다 노예 인구가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유대인에 대해서는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하고, 어떤 특별한 유대인에게는 로마 시민권도 수여하였다. 유대인들 안에서는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랍비 또는 서기관 같은 귀족계급도 있었고, 입법 사법 등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의회도 있었으며, 니고데모와 아리마데의 요셉은 그 회원이었다. 주후 1세기의 팔레스틴의 전체 인구는 약 150만명에서 200만명으로 추산된다. 그 중에서 유대인은 50-60만명으로 그들은 대다수가 남부지역인 유대지방에 살고 있었다. 예수께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셨던 북부지역인 갈릴리에는 비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 따라서 종종 이방인의 갈릴리라고 불리었다(마 4:15). 유대와 갈릴리 사이에 위치한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이방시하는 지역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유대인들 중에서 포로기간에 이방인들과 잡혼을 한 사람들이어서 유대인들이 멸시하고 상종하지 않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적 유대인과 개종자들 간에도 민족적인 갈등이 있었다. 팔레스틴의 주민들이 쓰는 언어는 세 가지였다. 예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의 죄패에 기록된 히브리말과 로마말(라틴어)과 헬라말(요 19:20)이 그것이다. 로마가 헬라를 정복하고 식민지로 병합했으나 헬라의 언어와 문화는 그대로 수용하고 보급하였다. 히브리어는 유대인들의 성경(구약) 언어이요, 라틴어는 로마제국의 정치적인 공용어요, 헬라어는 학문과 문화어였다. 그러나, 팔레스틴 주민의 일상통용어는 이상의 어느 것도아닌, 대다수의 유대인들의 모국어라 할 수 있는 아람어였다. 지식층이 아닌 일반 유대인들에게있어서는 히브리어는 이미 사어(死語)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고향인 나사렛에서 아람어를 사용하시며 성장하셨고, 그의 사역에 있어서도 아람어를 쓰셨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약성경을 기록한 유대인들이 그들의 통용어인 아람어로 기록하지 아니하고 당시의 국제어(오늘날의 영어처럼)라고 할 만한 헬라어로 기록한 것, 그 중에서도 어려운 고전어가 아니고 쉬운 코이네로 기록한 것은 전 세계에 전파되어야 할 복음의 성격에서 비추어 볼 때 참으로 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어라고 기록된 것은 실제로는 아람어이다. 예컨대, 달리다굼, 에바다, 게바, 보아너게, 도마, 엘리, 마라나다 등. 3. 철학적 종교적 배경 신약시대를 지배한 유대 외적인 두 가지 힘을 말한다면, 물리적으로는 로마, 정신적으로는 헬라라고 할 수 있다. 헬라는 그의 깊은 철학사상으로 신약성경을 비롯해서 모든 종교 문화면에 빛을 뿌린 것이 사실이다. 먼저 신약성경에 영향을 끼친 헬라의 주요한 철학사상을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플라톤 사상(Platonism) 플라톤의 철학사상이 그리스도교에 끼친 주요한 점은 그의 이원적인 세계관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진정한 실체는 현상계의 질료가 아니라 감지할 수 없는 본체인 이데아(idea)로서, 존재의 본질적인 것은 이데아이며, 현상계는 그것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전자는 선하고 영원하나 후자는 악하고 한시적이라고 한다. 인간론에 있어서는 감각적인 육체는 다만 영혼의 감옥이라고 말한다. 2) 영지주의 사상(Gnosticism) 이 사상은 헬라철학의 이원론과 바사의 조로아스타교(배화교)의 이원론이 혼합된 것으로서 요한과 바울의 이원론에 영향을 끼친 바가 크다. 플라톤의 이원론이 주로 우주론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영지주의의 이원론은 주로 그리스도론적이요 구원론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영지주의의 구원론은, 신의 세계는 거룩하고 물질 및 인간계는 악하여 신이 인간에게 직접 닿을 수 없어 에온이라는 매체를 방출하는데 인간은 그를 아는 지식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론에 있어서는 성육신을 부정하는 이단사상(가현설)이 나오기도 하였다. 이 영지주의에 대해서는 1945-1946년에 이집트의 나그 하마디(Nag Hammadi)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사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진리의 복음서, 도마의 복음서 등을 포함해서 전체 53편의 문서로 되어 있다. 3)에피큐리안 사상(Epicurianism) 주전 4세기의 에피큐로스가 주창한 사상으로서, 인간의 최고선은 쾌락의 추구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쾌락이란 인간의 감각적인 향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정신적인 행복을 의미한다. 신약에서 한번 나타나는데,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과 토론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행 17:18, 개역성경에서는 에비구레오로 기록됨) 4) 스토아 사상(Stoicism) ]주전 4세기에 제노(Zeno)가 주창한 철학사상으로서, 자연과 물질계 전반을 주관하는 것은 신적인 이성이며, 따라서 인간의 본분은 바로 이러한 이성 곧 자연법에 순응하여 사는 것이라고 한다. 이 사상은 요한의 로고스 그리스도론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나, 스토아 철학에서는 자신을 계시하는 어떤 인격이 없기 때문에 스토아 사상은 철학의 범주를 벗어나 종교의 범주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바울은 아덴에서 이 철학자들과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에 관해 토론을 하였다(행 17:18, 개역성경에서는 스도이고) 5) 견유학파(犬儒學派, Cynics) 헬라철학의 여러 군소 학파 가운데서 유별나게 이색적인 삶을 보여준 한 학파이다. 주전 5세기에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에 의하여 창설된 학파로서, 인간은 극도의 금욕과 근검한 생활을 실천함으로써 외부적인 것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학파 중에서 특히 유명한 디오게네스(Diogenes)는 집 없이 나무통 속에서 짐승 같은 생활을 하면서, 인간이 개처럼 산다면 세상의 인간고로부터 벗어나 낙관적으로 의연하게 살 수 있다고 가르쳤다. Cynics 란 말은 헬라어 kuno 즉 개라는 말에 유래한다. 다음,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종교사상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신약성경과 가장 직접적으로, 그리고 가장 깊이 관련을 맺고 있는 종교는 말할 것도 없이 구약의 종교인 유대교이다. 유대교는 1세기의 로마제국의 여러 종교 중에서 특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유대교는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서 근거하는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를 둔 철저한 일신교라는 데 그 특색이 있다. 주전 6세기에 남국 유다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에 그들은 자신들이 겪는 고난의 생활 가운데에서 자신들의 죄를 통절히 회개하면서 철저히 우상을 배격하고 열심으로 율법을 연구하고 안식일에는 회당 예배를 엄숙히 준수하였다. 포로기의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고난을 포로기 이전과는 달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징벌보다는 필요한 시련으로 생각하였다. 유대교의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의 유일성과 초월성을 믿는 데 있다. 그 신앙은 신 6:4의 셰마(Shema)이스라엘아 들으라에 근거한다. 유대교의 랍비들은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뿐 아니라 성전시대의 제사장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유대교의 경전은 구약성경에다 외경을 포함하였다. 외경(Apocripha)은 주전 450년 경, 말라기와 신약의 중간시대에 기록된 것으로서, 그 대체적인 내용은 외족의 압제에 대한 유대인의 반발, 불안, 희망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히브리어 성경 마소라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칠십인역본에는 포함되어 있어 가톨릭에서는 구약성경과 더불어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외경에는 다음과 같은 책들이 있다. 에스드라 상․하, 도빗, 유딧, 에스더, 솔로몬의 지혜, 벤 시락의 지혜서(집회서), 바룩, 세 아이의 노래, 스잔나의 이야기, 벨과 뱀, 므낫세의 기도, 마카비 상․하 예레미야의 서간 등 15권이다. 유대교에는 여러 절기가 있는데 그 중 신약과 관련이 있는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1) 유월절 - 유대교 최대의 명절로서 출애굽을 기념하며, 누룩 없는 빵을 먹는다고 해서 무교절이라고도 한다. 복음서 등에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 공생애 중에 세 번이나 지킨 것으로 되어 있다(마 26:2, 눅 2:4, 히 11:28). 2) 맥추절 - 수장절, 초막절, 등으로도 불리는 절기로서, 처음에는 추수를 기념하는 절기였으나 후에는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에서의 장막생활을 기념하는 절기도 되었다. 요 7:2에 초막절로 기록되어 있다. 3) 오순절 - 유월절, 맥추절과 더불어 유대 나라 3대 명절 중의 하나로서 칠칠절이라고도 불린다. 신약에서는 이 날에 성령이 강림하여 교회가 탄생된 것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행 2:1). 처음에는 초여름의 맥추를 지키며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려 감사 하는 절기였으나, 후에는 시내산의 율법 수여와 결부되면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신약에서 행 20: 16, 고전 16:8 등에 기록되어 있다. 2) 헬라의 범신론 고대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은 인간이 많은 신들을 섬겼다고 하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고대 국가의 건국 이야기에는 신화가 등장한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는 물론 이집트, 인도, 중국, 일본,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신화 속의 신들은 태양을 비롯해서 자연과 인간을 형상화하고 심지어 미생물까지도 대상으로 하는 인조신(人造神)이었다. 그리스-로마 세계의 신화에서는 신들이 인간처럼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서로 시기하고 싸우는 저속한 속성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였다. 인간이 만든 신의 수는 종족에 따라서는 무수히 많다. 예컨대, 인구 9억 5000만의 인도에는 3억의 신이 있다고 하며, 일본에도 800만의 신이 있다고 한다. 신약성경과 관련을 가진 신화는 헬라의 범신론이다. 바울은 이러한 신화에 대하여 망녕되고 허탄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그러한 신화에 착념치 말고 버리라고 명하고 있다(딤전 1:4, 4:7).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도 신화 내지는 신화적인 패턴을 성경 기록의 한 방법으로 사용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단지 그 신화적인 서술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 안에 감추인 의미를 어떻게 찾느냐는 해석학적인 문제가 있을 뿐이다. 불트만이 주창한 소위 비신화화론은 신약성경 안의 신화를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존론적으로 재해석하자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헬라의 신으로는 제우스와 헤르메스와 아데미 등이 있다(행 14:8-18, 19:21-41). 3) 로마의 황제 예배 일국의 왕, 군주, 황제 등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거나, 그것을 위해서 보통 인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초월적인 절대자임을 자처하고자 할 때는 흔히 자신을 신격화하는 것이 역사상의 사실이다. 이러한 경우에 그들은 자신의 출생이나 존재나 신분을 신이나, 또는 신성시되는 하늘이나 태양 같은 것에 관련을 짓는다. 예컨대, 애굽의 11명의 왕(바로)에게 붙여진 람세스(Ramses)라는 칭호는 태양신이라는 뜻이요, 그리스 신화의 최고신인 제우스(Zeus)는 밝은 하늘이란 뜻이요, 중국의 왕은 천자(天子) 즉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이요, 일본 왕을 천황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하늘로부터 온 황제라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일왕 유인(裕仁, 현왕의 아버지)은 일본인들에게 현인신(現人神, 아라히도가미) 즉 인간으로 나타난 신이었으며(제2차대전 패전후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으로 자신이 신이 아님을 선포하였다), 티베트 라마교의 달라이라마는 그의 국민들로부터 살아 있는 신으로 신봉되고 있다. 신약시대에는 로마의 황제가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여 백성들에게 신으로 예배할 것을 강요하였으며, 분봉왕 헤롯에게도 유대인들이 신이라는 말을 했다(행 21-23). 역사상의 많은 군주나 왕들이 독재를 할 때에 자신의 절대권력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만들어 낸 것이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 즉 왕의 권력은 신이 수여한 것이라고 하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는 어떠한 위인이나 권력자도 신일 수가 없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4) 여러 가지 밀의종교 그리스-로마 세계에는 동방으로부터 들어온 밀의종교(密儀宗敎)로서, 엘류시스(Eleusis), 미드라(Mithra), 이시스(Isis), 디오니소스(Dionysus), 시벨레(Cybele)등이 있으나 신약성경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므로 언급을 약한다. 4. 유대교 안의 종파, 파당 및 계층 유대교 교인들이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같이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의 종교생활이나 사회생활의 세세한 점에서는 같지가 않아 그 가운데에 여러 종파와 파당과 계층이 있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그 실상의 대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바리새파(Pharisees) 이 분파는 헬라의 셀류시드 왕조가 유대인들을 헬라화 하고자 한 데에 반발하여 마카비 반란 직전부터 시작하여 이 반란이 진전되는 동안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바리새파란 말은 분리된 자들(the separated ones)이란 뜻으로서, 그들의 철저하고 유별한 종교생활의 독선적인 경향에 대하여 붙여진 호칭이다. 그들의 종교생활은 모세의 율법에 대한 엄격한 해석과 문자 그대로의 철저한 준수였다. 그들의 신앙과 생활이 어떠하였는가는 그들과 대조적인 사두개인들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1) 바리새파는 역사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을 믿고 그것이 인간의 자유의지와도 합치된다고 믿었으나, 사두개파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장하고 하나님의 예정을 부정하였다. (2) 바리새파는 인간의 영혼불멸과 육체의 부활을 믿었으나, 사두개인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3) 바리새파는 기록된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전승을 믿었으나, 사두개인들은 히브리어 성경만을 인정했다. 그러나 바리새파의 잘못된 점은, 율법의 조문들을 한 점의 오차도 없이 문자적으로만 지키는, 형식주의적이고 외식적인 신앙생활로서 중심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경건과 헌신의 생활이 아닌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일에 대하여, 예컨대 안식일에 선한 일을 행하시는 것을 비롯하여 사사건건 논난을 함으로 예수의 사역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으나, 예수께서는 도리어 그들의 외식과 위선을 책망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라고 하시고, 그들을 맹인 된 인도자라고 정죄하신 것(마 23:23-24)은 그 한 가지 실례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한 마음 때문에 예수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호된 책망을 받기도 하였다. 2) 사두개파(Sadducees) 사두개란 말은 다윗 시대의 제사장 가문인 사독이란 이름에 유래된 것으로 짐작된다. 셀류시드 왕조에 의하여 강요된 팔레스틴의 헬라화 운동에 동족들의 반항에 동조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헬라화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수적으로는 많지 않았지만 종교와 정치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들은 교육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로나 상당히 고위층에 속한 사람들로서,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이요, 정치적으로는 타협적인 자유주의자들이었다. 3) 에세네파(Essenes) 유대인 종파 중 3대 종파 중의 하나인 에세네파는 신약성경에 직접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 그들의 수는 약 4000명이 되었다고 한다. 에세네라는 말은 로마 정권에 대해서 항거를 했던 하시딤(경건한 무리)의 수리아어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보다도 더 경건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하였다. 쿰란 부근에서 수도원 생활과 같은 공동생활을 했는데, 공동재산제를 실시하고, 3년 간의 수련기간을 가지며, 성경 읽기와 기도생활에 성전 예배에 전념하고, 엄격한 사람은 결혼도 하지 않았다. 1947년 발견된 사해사본 중 훈련 편람(Manual of Discipline)이란 문서는 그들의 생활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4) 열심당(셀롯당, Zealots)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주후 6년에 로마인들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켰던 갈릴리 사람 유다가 창설한 조직체이다(행 5:37 참조). 과격한 민족주의자들의 애국단체로서 반로마적인 항쟁으로 독립운동을 계속했으나, 주후 66-70년의 전쟁 끝에 결국 예루살렘은 멸망하고, 그들은 최후의 보루인 마사다(Masada)에서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의 결심으로 3년 간 항쟁 끝에 모두가 순사를 하였다. 예수님의 제자 중 가나나인 시몬(막 3:18)이 바로 그 열심당원이다(가나나인은 아람어에서 온 말로 열심당원이란 뜻이다). 5) 헤롯당(Harodians) 대다수의 학자들에 의면, 이들은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처럼 어떤 종교적인 종파나 정치적인 단체를 기리키는 것이 아니고, 로마정부에 동조하는 헤롯 왕가를 지지하면서 사는,시세에 영합하는 온건주의자들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사두개인들과 유사하고, 애국 독립운동을 하는 열심당원과는 전적으로 반대적인 입장에 서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적하는 점에서 바리새인과 야합하기도 하며(막 3:6), 바리새인과 더불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일이 옳은가의 질문을 함으로 예수님을 곤혹하게 하기도 하였다(마 22:15-22; 병행). 6)암 하레츠(Am Ha-aretz) 이 호칭은 히브리어의 음역으로서, 땅의 백성들이란 뜻이며, 팔레스틴 유대인들의 대다수를 가리킨다. 이들은 통치자 및 귀족들과 구별되는 의미에서의 평민을 가리켰는데, 신약시대에는 특별히 무지 또는 무관심으로 모세의 율법과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여러 규례들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을 의미하게 되고,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과 같은 귀족층 사람들로부터 멸시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다(요 7:49 참조). 그러나,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들 무식하고, 가난하고, 천한 신분의 사람들을 목자 없는 양으로 여기고(마 9:36),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요 15:14 참조). 이상으로, 유대교 안의 종파, 파당 및 계층을 보면 거기에는 내용상으로는 종교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구별이 있는가 하면, 그들의 신앙과 사상 및 생활에 있어 과격파와 온건파의 구별을 볼 수가 있다. 즉 종교적인 것으로서는 바리새파, 에세네파, 사두개파 등이 있고, 정치적인 것으로서는 셀롯당과 헤롯당이 있으며, 과격파로서는 바리새파, 에세네파 및 셀롯당이 있고, 온건파로서는 사두개파와 헤롯당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과격파이든 온건파이든, 모두가 예수님에 대해서 대적하는 관계나 무관한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위의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암 하레츠(평민층)야 말로 특별한 신분 없이, 특별한 활동 없이 예수님을 도왔던 예수당이라 할 만하다. - 창골산 봉서방에서 가져 온 글- 프로스원어 성경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