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나팔꽃
성전의 출입구에 나팔꽃이 활짝 피었다. 2년 전 이금례(李金禮) 권사가 집에서 잘 키워서 하나님께 바친 천사의 나팔꽃이다. 지난해는 그렇게 화려한 자태를 볼 수 없었으나 올해는 만개하여 꽃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마치 힘차게 행진하는 군사 행렬에 반주하는 군악대 그것처럼 말이다. 천사의 나팔은 가지과에 속하는 유독성 식물이며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나팔꽃은 다투라(Datula)와 브루그만시아(Brugmansia arborea) 등 두 종(種)이 있다. 다투라는 꽃이 기울어졌거나 똑바로 하늘을 향해 피어있다. 밤에는 달빛에도 활짝 핀다 하여 일명 ‘달빛 꽃’이라고 한다. 열대 아메리카가 원산이며 우리나라에 귀화된 꽃이다. 브루그만시아는 나무에 가깝지만 꽃이 종(鐘)처럼 아래로 핀다. 우아한 자태의 초롱 같은 꽃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신비와 희망, 꿈이란 꽃말이 잘 어울린다. 이 두 종류의 나팔꽃은 미국에서는 그냥 천사의 나팔(Angel's Trumpet)로 통용하고 있지만 굳이 우리나라에서는 ‘악마의 나팔’과 ‘천사의 나팔’로 구별하고 있다. 아마 다투라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있어서 교만하게 보여서 붙인 이름 같고, 브루그만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겸손해 보이기에 천손 민족인 대한 사람들은 굳이 이렇게 구별하여 이름 했을 거라고 짐작된다. 활짝 피었는데 겸손히 고개 숙여 땅의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선물한다. 좌절과 절망의 나락에서 아파하는 이에게 하늘의 메시지로 용기를 북돋는 예수님을 닮았다. 성전 입구에서 활짝 핀 꽃이 브루그만시아 아르보레아 즉 천사의 나팔꽃이다.
이 꽃은 달콤하기는 하지만 독말풀이란 이름처럼 마취성 독성이 있어서 마취, 진통, 진정, 기관지, 천식 등을 황화(黃化)하는 데 사용한다. 원산지는 남미 열대 지방으로 주로 콜롬비아 남부,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서부, 칠레 북부, 안데스 산맥에 서식한다. 더운 지방에서 잘 자라며 노지(露地)에서 5~7m까지 성장하는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월동하기 때문에 화분에 키우다 보니 2~3m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다. 유독 올해는 이 꽃이 활짝 피어나서 천사의 나팔을 한껏 뽐내는 시간이 많았다. 예년에 비해서 무척 더웠던 지난여름 탓이었으리라.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동일할 정도로 열대야 현상이 기록을 갈아치울 만큼 대단한 더위를 떨쳤던 터라 사람은 더위에 허덕였지만 이 꽃은 제 고향 땅에 온 듯이 그렇게 활짝 피어난 것 같다. 성전을 출입하며 이 꽃을 볼 때마다 이 시대에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의 진수를 떠올리게 된다.
나팔(喇叭)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악기다. 숫양의 뿔이나 청동, 구리, 은, 금으로 제작하지만 때로는 바다고동과 나무로도 만든다. 구약 시대 이 나팔은 성전에서 찬양하는 데 사용되었다.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불었다(대하 16:6). 또한 음악으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사용하였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시 150:4). 그리고 나팔은 일상에서 알림 역할을 톡톡히 했다. 속죄일, 절기와 월삭 때,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릴 때, 신년의 때에 나팔을 불어 알렸다. “초하루(월삭)와 보름과 우리의 명절에 나팔을 불지어다”(시 96:6). 광야 길을 걸어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팔은 매우 중요한 신호수단이요, 거대한 군중을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이는 최고 지도자의 명령이었다. 잠을 깨우는 기상나팔, 가나안을 향하여 진군을 명하는 행군나팔,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행군 중 쉴만한 물가에 다다를 때 쉼을 알리는 휴식나팔, 그때마다 나팔은 소리 높여 온 누리에 퍼져 나갔다. 특히 전쟁의 위험이 다가왔을 때 모두가 깨어서 대비하도록 더욱 큰 소리의 경고나팔은 다급함과 긴박성을 알려 주었다. 한 번, 두 번 불 때 의미가 달랐다. 짧게, 길게 불 때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전쟁을 준비하고, 말씀을 선포하고, 집회의 시작을 알릴 때 어김없이 나팔을 불어서 알렸다(민 10:1~2, 9~10). 신약시대의 나팔은 마지막 심판의 때 경고 메시지를 날릴 때도 사용되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천사들의 나팔 소리가 화려하고 아름답게, 웅장하고 거대하게 전 세계에 들리도록 울려 퍼진다고 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살전 4:16). 그리스도인에게 이 나팔 소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반드시 들어야 할 생명의 소리다. 그래서 그랬을까? 교회 출입구에 풍성하게 꽃망울을 터뜨린 천사의 나팔꽃은 마치 이 시대를 향하여 오늘 우리 교회가 감당할 사명을 알려주는 나팔수처럼 보였다.
교회는 주님이 오실 때 천사장의 소리를 담은 이 천사의 나팔을 어떤 일이 있어도 제 때 들리게 해야 한다. 어둠으로 치 닿는 이 마지막 시대에 부여된 교회의 사명이다. 종교개혁은 바로 모두가 잠자고 있는 때에 천사의 나팔로 깨우쳐준 시대의 영적 거장들이 깊은 호흡을 모아다가 크게 불어댄 천사의 나팔이었다. 이 소리에 생사가 결정되었고 멸망과 영생이 갈라졌다. 주의 성전을 찾는 성도들에게 천사의 나팔꽃은 그 소리를 들려주는 듯하다. 천사의 나팔을 보면서 세상을 향하여 하늘의 소리를 분명하게 들리도록 힘차게 그리스도인의 나팔수 사명을 가슴 깊이 되새겨 본다.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들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이사야 58:1).
하늘의 소리를 힘차게 알려주는 듯이 활짝 핀 성전 출입구 앞 천사의 나팔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