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십자가의 도, 새 생명의 삶
06/15목(木) 고후 5:14-17/요 15:4-7
“옛 것이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십자가의 도는 구원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세상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보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할 때 부활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십자가는 믿는 자에게 보혈의 은혜가 있고,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새 생명으로 태어나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살아서 자신의 무덤(자아의 죽음)이 있는 사람에게 십자가 체험이 일어납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나와 함께 죽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이란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요셉에게는 종살이가 무덤이고, 바울에게는 다메섹이 무덤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자아가 죽은 무덤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죽음을 체험하면 병들고 실패한 인생이 끝나고, 새로운 피조물의 인생, 주님이 내 안에 사시는 놀라운 축복의 삶이 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새 생명의 삶의 특징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평생 은혜의 삶입니다.
은혜의 삶이란 절로 사는 삶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요 15:4). 은혜로 산다는 것은 내 삶을 그분이 사시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덤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 15:10)
▣약속이 이루어지는 삶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5). 축복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비밀의 내용인즉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 사람들과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약속을 함께 가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엡 3:6). 언약의 말씀이 ‘~을 하라’에서 ‘믿으라’로 바뀐 것입니다.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평강과 안식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세상 사는 동안 환란은 올 수 있지만 이미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기에 주님 안에 있으면 나도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 16:33). 주님과 연합한 삶은 평강과 안식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안식은 일 속에서 안식입니다. 그 일을 주님이 하시기에 안식할 수 있습니다.
▣사탄을 이기고 예수 증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가 주인인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화의 핵심이 예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행 1:8). 이미 주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할 때 마귀 사탄의 권세를 이겼습니다.
▣지금 여기서 영생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가 나의 주인이고, 나는 그분의 지체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갑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롬 6:23).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하여 내 안에 주님이 사시면 지금 영생의 삶을 살게 됩니다. 현재의 시간이 카이로스로 들어갑니다.
And...
기독교는 십자가 종교입니다. 십자가는 가장 큰 희생과 사랑을 나타냅니다. 십자가의 구속적인 죽음과 부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증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모든 진리는 십자가와 부활 속에 포함됩니다. 부정적인 것은 죽고, 긍정의 생명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부활했으니 부정의 인생은 끝났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내 인생은 불행하다는 것은 속은 것입니다. 이런 부모를 만났다면, 조금만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느 것 하나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설혹 내가 선택했을지라도 그것을 허용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삶의 전반적인 부분은 하나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비록 원치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우리 인생이 불행했지만, 지금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난 존재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으니 이제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어느 것 하나 꿀릴 것이 없습니다. 대통령 자녀만 되어도 경호원이 따라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호위 천사들이 따라붙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환경을 탓하며 산다면 그 인생은 멸망의 지름길로 가겠지만, 환경과 무관하게 주님을 목적으로 산다면 그 인생의 끝은 소망입니다. 주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역경은 나를 죽음에 넘기라는 사인입니다. 자아 죽음이 없는 복음은 더는 복음이 아닙니다.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완전한 죽음만 나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 된 내 속에 주님이 사십니다. 내 안에 그분의 생명이 살고 있습니다. 엄청난 복입니다. 이제 나는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분이 내 삶의 주인이기에 날마다 기도 응답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이유는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내 뜻이 아닌 그분의 뜻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자신을 구하는 것이 본 복입니다. 주님이 내 삶의 전부가 되면 내게 필요한 것들은 채워집니다. 탐욕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 진리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알아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세상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진리는 역설적이기에 하나님 관점에서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내가 죽을 때 예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능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날마다 십자가에서 자아를 죽음에 넘기는 체험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세상은 사단이 지배하기에 우리는 날마다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주변에 참 안타까운 일들을 보게 됩니다. 구원 받은 자녀는 주님과 생명 관계에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살면서 누리면 되는데 자꾸만 행위로 접근해서 응답을 받으려고 합니다. 지금 내가 그토록 바라는 일은 이미 하나님 안에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 문제가 내게 오기까지의 과정에 훈련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결론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려진 결론을 얻기 위해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원리를 알고 삶에 적용하면 오늘의 환경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힘은 이유는 결론을 오늘로 끌어오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내 노력에 따라 결론이 내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결과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지금 몸이 아파 기도하고 있다면 이미 하나님 나라에서는 정상으로 나았다고 믿고 하나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미 나았지만 나은 현상이 내게 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은 상처가 회복되기까지의 시간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은 하나님 기준으로 내게 최고의 결과를 주고 싶어 하십니다. 이것을 믿으면 하나님의 때를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시고,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위로자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때로는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이렇게 힘든 생활을 허락하시는지 원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 세계를 기준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됩니다. 절대자에게 선택을 받았다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의 고난이 징계가 아니라 복을 주기 위한 고난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그 고난은 영광을 얻기 위한 고난임에 감사해야 합니다. 고난 없는 영광은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긍정으로 해석하여 나를 죽음에 넘김으로 새 생명을 소유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로 나는 충분합니다
https://youtu.be/5PJjzWGe89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