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날마다 나의 구원을 이루어가라
06/19수(水)빌 2:12-13/ 갈 4:22-31/ 눅 9:23-24)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빌 2:12).
우리의 영혼은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의화 구원(과거에 받은 구원)이라고 합니다. 예수 보혈로 받은 구원입니다. 그리고 혼의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격 구원, 성화라고 하며 크기에 따라 천국의 상급이 있고 승리, 열매, 축복이 있습니다. 미래의 구원은 육적 구원으로 주님이 오시거나 주님 앞에 갔을 때 육신이 구원받습니다. 이것을 영화 구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지만 날마다 이루어가야 할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날마다 삶에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날마다 구원을 이루기 위해 바울은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날마다 죽노라’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삶에서 구원을 이루어갔기 때문에 총리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날마다 나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불순물들을 처리해서 예수 생명이 흐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은 자연 생명을 영적 생명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고, 그림을 잘 그리는 그 자체는 귀합니다. 이런 재능을 그냥 두면 저절로 마귀 생명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주님 안에서 재능을 활용해야 합니다. 독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마귀가 지배하면 책을 통해 나쁜 영향력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도 영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마귀의 도구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자연 생명입니다. 사라를 통해 이삭을 낳은 것이 영적 생명입니다. 자연 생명을 영적 생명으로 돌려야 합니다. 자연 생명인 이스마엘을 내쫓아야 이삭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속에 있는 자연 생명이 예수 생명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자연 생명을 키우면 마귀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잘하는 것만 드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드리기 전 먼저 이스마엘을 드렸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잘라내야 합니다. 내가 잘못하는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성화될 수 있습니다. 성화는 하나님이 쓰기 편한 그릇으로 빚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몰면 광야 같은 인생이 가나안처럼 됩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질 때 아브라함은 목동이었습니다. 목동이 목초지를 선택하고 싶은 것은 본능입니다. 그러나 롯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본능을 쫓아낸 것입니다. 롯이 떠난 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헤브론으로 가서 땅을 파니 우물의 수가 많아집니다. 아브라함은 자연 본능을 죽인 것입니다. 자연 생명을 영적 생명으로 바꾸는 과정에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자연 생명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눅 9:23). 자연 생명에서 영적 생명으로 바뀌는 것은 날마다 내가 죽고 예수가 사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And...
삶의 구원을 이루는 과정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자연 생명을 예수 생명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나 자신을 부인’하면 자연 생명이 예수 생명으로 바뀌게 됩니다. ‘나’라고 하는 나는 아담의 DNA를 받은 옛사람입니다. 생명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명이 바뀐다고 하는 것은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으로 살았던 삶을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자신의 위치를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늘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는 임재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 자아는 나를 죽이는 사형틀입니다. 지금의 환경을 붙잡지 말고, 주인이신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지금, 이 상황은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허락하신 환경입니다. 상황을 붙들게 되면 다른 사람을 향해 원망 불평하게 됩니다. 상황을 주님께 넘기고 주님만 바라보면 이 상황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항상 주님을 붙잡았고, 주님은 요셉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적을 허락하셨습니다.
나 자신을 부인하고 내게 맡겨진 십자가를 진 후 주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내가 먼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모든 상황을 주님께 넘기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거할 때 주님은 내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소원을 갖게 하시고, 내 안에서 친히 그 소원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내 뜻일까? 고민하지 마십시오. 내 뜻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뜻은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은 계속 마음에 소원으로 머물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싸움을 통해 적용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한 일입니다.
‘너 자신을 부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의 좋은 상황보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헤브론으로 떠나는 순종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을 기뻐하시니 아브라함이 땅을 파는 곳마다 우물이 생겨 황무지가 목초지로 변합니다. 내 속에 있는 이스마엘(자연 생명)을 죽이고 이삭(영적 생명)이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스마엘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유업을 얻지 못합니다. 이런 삶에는 상급이 없습니다. 내 자아가 날마다 죽을 때 영적 생명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자연 생명을 영적 생명으로 돌려 날마다 삶에서 구원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가네
https://youtu.be/6b8JlpsFtbY?si=7r7rOvv-AZ426f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