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는 640년(선덕여왕 9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람 면모를 갖춘 시기는 신라 말 보조 체징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는 폐사가 된 채 도둑 떼가 차지하고 있던 것을 고려 중기인 1172년(명종 2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왕명으로 도둑들을 몰아내고 중창해 대가람을 이룩했다.
그렇지만 임진왜란 때 병화로 또다시 60년쯤 폐사가 되는 비운을 맛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는 조계종 6교구 본사로서 계룡산 갑사 등 충청남도 70여개의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정감록은 "유구와 마곡의 두 물곬 둘레가 2백리나 되니 난리를 피할 수 있다"
며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마곡사를 풍수지리적인 10대 명승지의 하나로 꼽는다.
태화산 마곡사의 일주문이다.
남쪽 가람에 위치한 마곡사 해탈문. 해탈문 왼쪽에 영산전이 있다.
해탈문 왼쪽 편에는 왼팔을 들고 있는 금강역사상
마곡사 해탈문 내부에는 오른쪽에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있는 금강역사상과
해태위에 있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동자상이 있다.
흰색 코끼리에 타고 자비를 상징하는 보현동자상이 있다.
해탈문을 지나 극락교를 지나기 전에 위치한 천왕문. 극락교를 지나면 북원으로 향한다.
명부전
명부전 중앙에 있는 지장보살이고 지장보살은 모든 인간을 교화시키는 역할을 맡았으며,
시왕은 염라대왕을 비롯한 10명의 지옥 심판관 이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모시고 있어 지장전·시왕전이 있다.
명부전에서 바라본 마곡사의 가람
산신각으로 이어지는 언덕길
산신각 바로 앞에서만난 꿩은 사람의 인기척에도 전혀 동요됨이 없는 모습이다.
산신각 내부에 있는 산신의 그림
마곡사의 가람 구조는 경내를 가로지르는 개울을 따라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있다. 보물 800호로 지정된 영산전을 중심으로 하는 남쪽 가람과 대광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북쪽 가람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처럼 가람이 두 영역으로 이루어진 곳이 마곡사만은 아니지만 가람 배치 방법만은 마곡사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마곡사 극락천
산신각 왼쪽으로 있는 마곡사 극락천의 돌다리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이 법당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불·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임진왜란 때 폐사되었던 마곡사를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다시 일으킬 때 고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규모는 1층이 앞면 5칸·옆면 4칸, 2층이 앞면 3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 넣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 위에 연꽃을 조각해 놓아 조선 중기 이후의 장식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상층과 하층이 하나로 뚫린 통층구조라서 안이 매우 넓어 보인다. 내부가 원형 그대로 보존된 2층 건물로,
조선 중기 건축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웅보전. 주법당에 모셔진 비로자나불.(1788년 중창) 보물 제 802호
중앙의 석가모니불과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조선후기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는 전통 목조건물 마곡사 대광보전
대광보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이루 어져 있다.
대광보전삿자리
마곡사 대웅보전 안에는 여러 개의 기둥이 서 있는데 이들을 껴안고 한 바퀴를
돌면 6년을 더 산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실물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안
고 돌았던지 기둥에서 윤이 날 정도다.
또 대광보전 마루에 깔린 삿자리는 한 앉은뱅이가 장애의 몸으로 기도중 틈틈
이 짠 것이라 한다. 이 자리는 참나무를 한 끝에서 잇고 또 이어 한 줄로 완성
한 것인데 그는 자리를 짜면서 부처님에게 치성으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백일이 지난 뒤 그가 법당을 나설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 앉은뱅이가
자기도 모르게 법당문을 걸어서 나갔기 때문이다.
대광보전 뒤에 모셔진 관음보살 탱화
보물 799호 라마교 양식의 5층 석탑. 전세계 단 3개뿐이다.
공주 마곡사 5층석탑은 대광보전 앞마당에 서 있다. 이 탑은 기단부부터 상륜부 직전까지는 고려시대 탑 양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상륜부는 우리나라 일반적인 탑과 달리 라마교 양식을 모방한 금속으로 된 라마탑 모양이다. 그러므로 마곡사 5층석탑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고려 말에 조성된 탑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연대는 전해져 오지 않는다. 즉 고려 후기 원 나라와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라마교 계통의 문화도 고려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탑은 그 문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탑 안의 보물들을 거의 도난 당하였으나, 1972년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향로와 문 고리가 발견되었다.
마곡사의 5층 석탑은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있는 몇 안되는 탑중 하나이다.
대광보전을 중심으로 배치된 북쪽 가람(북원)의 전경
탑 앞에서 바라보면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같은 건물로 착각하리만큼 서있는데 설계와 건축양식에 찬사가 저절로 난다.
보물 제801호인 대웅보전은 1층이 정면 5칸, 측면 4칸 2층이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을 자랑하고 내부는 통층이다.
마곡사의 가람 배치와 건물들은 건축학적인 사료 가치가 매우 커 대웅보전(보물 801호), 대광보전(보물802호), 영산전(보물 800호), 5층 석탑(보물 799호)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특히 보물 799호 5층 석탑은 전 세계적으로 단 3개 만이 남아 있는 라마교 양식의 불탑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대광보전 편액(강세황 글씨)
대광보전의 현판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문인 화가인 강세황의 작품이며 대웅보전은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라고 알려져 있다. 또 영산전의 그것은 김시습을 만나러 마곡사에 왔던 세조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며 남긴 글씨라고 한다.
마곡사를 찾아 각 건물의 현판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것도 산사를 찾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겠다.
범종루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신 응진전(應眞殿)
남쪽 가람과 북쪽 가람을 이어주는 극락교.
마곡사는 사찰 사이로 마곡천이라는 내가 태극모양으로 흐르는 국내 몇 안되는 명찰이다.
이를 기준으로 자연스레 교화공간인 북원과 수행공간인 남원으로 나눠져 있는 특징이 있다.
조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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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산전은 일반인들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영산전의 현판(세조 글씨)
산책로가 아름다운 마곡사는 명상 산책길, 황토 숲길, 솔잎 융단길, 백범 김구길 등 6가지 산책코스를 갖추고 있으며
소요시간은 최소 50분에서 3시간 30분 등으로 다양하다.
개천이 흐르는 바깥쪽으로 최근에 지어진 현대식 건물로 지은 요사채들이 있는데,
이 곳에서 템플스테이를 우리나라에서 이른 시기에 시작했다고 한다.
마곡사
041-841-6220~3
조계종 제 6교구 본사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7
◈ 홈페이지 www.magoksa.or.kr
첫댓글 꿩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셨어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