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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그들은 예수를 대제사장에게로 끌고 갔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54.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를 뒤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마당에까지 들어갔다. 그는 하인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55. 대제사장들과 온 의회가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를 고소할 증거를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하였다.
56. 예수에게 불리하게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의 증언은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57. 더러는 일어나서, 그에게 불리하게, 거짓으로 증언하여 말하기를
58. "우리가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내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 하였습니다."
59. 그러나 그들의 증언도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60. 그래서 대제사장이 한가운데서 일어서서, 예수께 물었다. "이 사람들이 그대에게 불리하게 증언하는데도, 아무 답변도 하지 않소?"
61. 그러나 예수께서는 입을 다무시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이 예수께 묻기를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하였다.
6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그이요. 당신들은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63.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고 말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들이 더 필요하겠소?
64.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예수는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정죄하였다.
65. 그들 가운데서 더러는, 달려들어 예수께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고 하면서 "알아맞추어 보아라" 하고 놀려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인들은 예수를 손바닥으로 쳤다.(마가복음14:53-65)
53 Then Jesus was taken to the High Priest's house, where all the chief priests, the elder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were gathering. 54 Peter followed from a distance and went into the courtyard of the High Priest's house. There he sat down with the guards, keeping himself warm by the fire. 55 The chief priests and the whole Council tried to find some evidence against Jesus in order to put him to death, but they could not find any. 56 Many witnesses told lies against Jesus, but their stories did not agree.
57 Then some men stood up and told this lie against Jesus: 58 “We heard him say, ‘I will tear down this Temple which men have made, and after three days I will build one that is not made by men.’” 59 Not even they, however, could make their stories agree.
60 The High Priest stood up in front of them all and questioned Jesus, “Have you no answer to the accusation they bring against you?”
61 But Jesus kept quiet and would not say a word. Again the High Priest questioned him, “Are you the Messiah, the Son of the Blessed God?”
62 “I am,” answered Jesus, “and you will all see the Son of Man seated at the right side of the Almighty and coming with the clouds of heaven!”
63 The High Priest tore his robes and said, “We don't need any more witnesses! 64 You heard his blasphemy. What is your decision?”
They all voted against him: he was guilty and should be put to death.
65 Some of them began to spit on Jesus, and they blindfolded him and hit him. “Guess who hit you!” they said. And the guards took him and slapped him.
아시다시피 마술이란 교묘한 속임수입니다.
마술사는 왼손만 보게 한 후에 오른손으로 딴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이 꼬빡 다 속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 삶을 두고 하는 짓이 그 짓입니다.
사람들로 엉뚱한 것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왼손만 주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딴짓을 하려고.......
“네 삶을 남이 챙겨주겠느냐? 네 삶이니 네가 챙기는 길밖에!”
그렇게 이 일 저 일 쉬지 않고 내 일에만 몰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생을 다 보내고 영원한 죽음을 맞닥뜨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의 술책입니다.
실은 살고 싶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주목해야 합니다.
내가 아닙니다.
내 죄의 짐을 내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구하실 그리스도가 필요한데 그 분은 예수이십니다.
살고 싶은 사람은 내가 아닌 타자 예수님을 주목해야 하며 또 내 일이 아닌 주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생각해 보신 사람이 있습니까?
이 면에서 신앙이란 죄인들에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내 존재의 무게 중심을 타자인 예수께로 옮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타인을 내 생존을 위한 경쟁 대상으로 여겨 왔습니다.
간단합니다.
내가 사는 길은 남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나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는 일은 뭐 모르는 소리입니다.
무지하고 무식한 일입니다.
이 무지 무식한 일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으로 감동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고전12:3)
신앙이란 내 안에서 아주 지진이 일어나버렸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전신마취 시키고 의사이신 예수님 앞에 나를 내놓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맘대로 하세요!
내 존재를 아주 내놓은 믿음을 보인 것입니다.
푸틴과 젤렌스키는 주일 예배드리고 나오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 문턱을 나오면서 첫마디가 K9과 155mm 폭탄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는 군대 깃발을 그림 그려놓고 실재로 예수님의 내용인 십자가가 있을 자리에 폭탄을 가져다 두는 것입니다.
실은 예배 시간에도 대제사장 율법학자 장로 저것들이 헤롯과 함께 그리스도를 죽일 계략을 꾸미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그들에게 동의할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내용에는 내 K9과 155mm 폭탄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는 타인을 위한 십자가가 있을 뿐입니다.
간증을 들어 봅시다.
간증은 가장 먼저 내가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는 고백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발견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유일하신 도움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만 쳐다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꼬빡 속아서 내 손과 내 환부만 쳐다보았다가는 여지 없이 죽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을 질병에 걸려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목사는 두가지를 지적하는 사람입니다.
“첫째 너는 죽을병에 걸렸다.
둘째 유일한 도움은 예수님의 십자가다.”
우리 죽음이 아닌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는 순간 그 사람의 삶은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삶이 되었든지 죽음이 되었든지 모두 그 분 손 안에 있습니다.
그 주님을 인정하는 것이 살길입니다.
내 존재를 결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주님의 수술대 위에 우리를 눕혀 놓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또 우리는 언제 어디로 갈 것입니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동양 철학조차 인명은 재천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교회말로 하자면 인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구원의 사건이란 우리의 생명을 두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이릅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죽을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또다시 더 구체화하겠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주님의 왼손을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주님의 오른손을 보아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일?
오병 이어의 기적?
실은 이런 일에 소망을 둔 사람은 낭패를 당할 것입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7:22,23)
천국문 바로 문 앞에는 방언하고 예언하고 주여주여 종교적인 열심을 쳐다보다가 망한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들이 왼손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볼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의 죽으심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죽음에서 영생으로 구하신 분은 오직 주님이시고 그 주님이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서 하신 일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입니다.
8.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롬5:8)
그래도 이해가 안 갈 것입니다.
하필 죽으심을 통해 우리를 구하셨냐 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을 위해 지금까지 쭉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을 숨 쉬고 맥박 뛰고 말하고 체온 유지하고.......
살게 하기 위해 죽은 소나 돼지의 숫자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닭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알곡이 압력 밥통에서 삶아져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게 죽게 된 생명들이 나이 60 먹은 동안 몇십 트럭이나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잠시의 생명을 보장했을 뿐입니다.
그것은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생의 양식이 되시기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죽으심으로 우리 생명을 보장해 주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제안을 하셨습니다.
너희도 작은 예수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위한 양식이 되어라!
34.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3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막8:34-36)
물론입니다.
이 죽음의 문제가 쉽겠습니까?
그 죽음의 수용 문제는 예수님께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죽음의 일을 두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 딱 한 가지 제목 죽음의 수용이라는 그 제목으로 기도하실 때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일제의 때 일본 놈들이 한 일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731부대, 위안부, 강제 징용......
그 일본것들은 짐승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도 그 일본놈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인에게 그렇게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들은 일본놈을 두고 신음하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대제사장은 그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설교 때마다 주제로 삼았던 것입니다.
일본놈들 눈치를 보면서.......
53. 그들은 예수를 대제사장에게로 끌고 갔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53 Then Jesus was taken to the High Priest's house, where all the chief priests, the elder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were gathering.
그 그리스도가 포승줄에 묶이셔서 등장할 줄이야!
백성들은 대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다름아닌 대제사장이 그 그리스도의 손을 포승줄로 묶어서 끌고 오라고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도대체 지도자들에게 신앙의 진실성이 있는가?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때도 왕 대제사장 율법학자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4.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다 모아 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지를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5.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6. '너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통치자들 가운데서 가장 작지 않다. 네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니,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일 것이다.'"
7. 그 때에 헤롯은 그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캐어 묻고,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하기를 "가서, 그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할 생각이오" 하였다.(마2:4-8)
헤롯 왕은 KBS를 통해서는 그리스도를 경배한다고 해놓고 무슨 경배!
MBC를 보니까 예루살렘의 두 살 이하 모든 아이를 다 죽여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때에도 그 짓을 하더니 이제 또다시 그리스도를 죽일 음모를 꾸미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마자 한 고민입니다.
27.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성전으로 제사를 드리려고 올라갔다가, 그들의 마음이 그들의 옛 주인인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게 되는 날이면, 그들이 자기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8. 왕은 궁리를 한 끝에, 금송아지 상 두 개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은, 너희에게는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를 이집트에서 구해 주신 신이 여기에 계신다."
29. 그리고 그는 금송아지 상 두 개를, 하나는 베델에 두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왕상12:27-29)
여로보암 왕이 벧엘과 단에 거룩한 성전을 두 개나 지었는데 그의 종교 행위는 철저한 정치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의 곱빼기의 종교 행위는 하나님께 불신적인 정치 행위였습니다.
수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 드는 무리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장로들!
입만 열면 하나님 하나님 했던 무리들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대제사장 한 명과 71명의 지도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이 한밤중이었는데 소집되었습니다.
그 때는 산헤드린이 소집될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70여 명 중에 이것을 문제시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적법성을 따지는 것은 평민에게나 해당되지 그들은 예외였습니다.
그 목적은 너무나 분명했는데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백성이 두려웠던 나머지 명절에는 예수님을 죽일 생각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12명 제자 중에 한 명인 유다가 배신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불법이 뭐고 적법이 뭐냐 한시가 급한데!
그들은 그 밤중에 공회를 소집한 것입니다.
거기에 참여한 모든 공회원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목적과 또한 불법행위들에 동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졸린 눈을 비비면서 대제사장의 집 뜰에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고위층의 청문회를 보니 영수증은 어디로 가고 없었습니다.
화분 몇 개가 수백만 원을 호가했는데 사진 몇 장으로 영수증을 대신했습니다.
증거물로 제출한 영수증에는 매직으로 먹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파쇄기를 사다 놓고 증거물을 갈아버리고 미국 46대 대통령 이름이 질 날리면이고.......
불법이 저들의 일상이었습니다.
그 때 그 대제사장의 뜰을 렘브란트의 성화 한 장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54.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를 뒤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마당에까지 들어갔다. 그는 하인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54 Peter followed from a distance and went into the courtyard of the High Priest's house. There he sat down with the guards, keeping himself warm by the fire.
사방은 어두웠는데 그 72인이 눈 비비면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포승줄에 묶여 대제사장 앞에 서 계셨습니다.
칼 들고 종의 귀를 잘랐던 베드로는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예수와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제 자리를 잡았습니다.
베드로는 제 눈동자 둘 곳이 타오르는 불꽃밖에 없었습니다.
장작 타오르는 불꽃 속에 어른거리는 자신의 삶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 불꽃의 불빛에 사람들의 형체가 드러났다가 감추어졌다가 그것이 좌로 흔드렸다가 우로 흔들렸다가 작은 공간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노려보는 하녀의 눈빛이 베드로의 가슴에 꽂혀 있었습니다.
교회가 술집으로 팔리는 이 세대의 교회 현실을 검은색을 유독 많이 쓰는 렘브란트가 그린 것입니다.
55. 대제사장들과 온 의회가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를 고소할 증거를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하였다.
55 The chief priests and the whole Council tried to find some evidence against Jesus in order to put him to death, but they could not find any.
진리를 사형시키려고 그들은 거짓 증거를 찾는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간첩을 만드는 중이었습니다.
입을 틀어막는 공안 검사들!
그 현장에서 증거물들은 결정적인 속임수였습니다.
요셉의 열 형제의 손에 한 증거물이 들려 있었습니다.
요셉의 피 묻은 옷입니다.
르우벤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옷을 그의 아버지에게 내밀었습니다.
그 옷을 내보이며 요셉이 틀림없이 사자에게 잡혀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두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
한쪽에서는 흑흑 울음소리가 났습니다.
그들은 그 증거물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아버지를 속여먹은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손에 요셉의 옷이 들려 있었습니다.
이 여인의 손도 바르르 떨렸습니다.
감히 히브리 종놈이 못된 짓을 하려 했습니다.
요셉의 옷들은 객관적인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러운 죄인들의 범죄 방식이었습니다.
대제사장도 예수님을 죽일 목적으로 예수님의 옷에 염소 피를 바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성경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16. 남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나쁜 증인이 나타나면,
17. 소송을 하는 양쪽은 주 앞에 나아와, 그 당시의 제사장들과 재판관 앞에 서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18. 재판관들은 자세히 조사한 뒤에, 그 증인이 그 이웃에게 거짓 증언을 한 것이 판명되거든,
19. 그 증인이 그 이웃을 해치려고 마음 먹었던 대로 그 이웃에게 갚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너희 가운데서 그런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신19:16-20)
없는 죄로 예수님을 죽이려 했으니 그들은 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짓는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거룩한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56. 예수에게 불리하게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의 증언은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56 Many witnesses told lies against Jesus, but their stories did not agree.
그 열 명의 요셉의 형제들 중 한 명은 요셉의 옷을 벗겼습니다.
다른 형제는 염소 한 마리를 잡아 와서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다른 형제는 세숫대야를 챙겨 왔습니다.
요셉의 옷을 피에 적셨습니다.
비닐루 한 장을 주워와서 거기에 증거물을 담는 다른 형제.......
그의 아버지 야곱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물론 레위는 그의 아버지 야곱에게 그 피가 곰의 것이라고 말했고 므낫세는 아니라고 그것이 늑대 피라고 말했습니다.
지어내다 보니 증언이 맞지 않았습니다.
57. 더러는 일어나서, 그에게 불리하게, 거짓으로 증언하여 말하기를
57 Then some men stood up and told this lie against Jesus:
그 때에 그 열 형제 중에 이렇게 아버지를 속여먹어도 되냐고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나쁜 놈들이라고 분을 내다니!
그랬다가는 요셉의 꼴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 자의 옷도 나머지 아홉에게 벗겨지더니 그 옷에 곰의 피가 발릴 수 있는 노릇입니다.
그들은 오직 요셉에게 보복하는 일에 눈이 멀어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열 명은 공동 운명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그들이 사는 길은 아버지를 감쪽같이 속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렇게 고발했습니다.
58. "우리가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내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 하였습니다."
58 “We heard him say, ‘I will tear down this Temple which men have made, and after three days I will build one that is not made by men.’”
당시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의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성전에 들어가셔서 하신 일입니다.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16. 비둘기 파는 사람에게는 "이것을 거둬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요2:15,16)
물론 당시에도 성전 개혁의 필요성을 느낀 사람이 있었습니다.
분명합니다.
그랬기에 예수님의 그 행위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 의해 성전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데도 그들은 유심히 살피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달려가서 예수님을 막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도자들도 자신들이 한 짓을 모를 리 없었고 그들은 백성들의 저항을 희미하게라도 읽어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하신 일은 상상을 뛰어넘은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어느 선을 넘으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17. 제자들은 '주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요2:17)
그 때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하였다.(요2:19)
19 Jesus answered, “Tear down this Temple, and in three days I will build it again.”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아마 국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맨 앞에 앉은 친구에게 귓속말을 했습니다.
뒤의 앉은 친구들에게 선생님의 말이 전해졌는데 마지막 친구는 선생님의 말과는 다른 말을 전해 들은 것입니다.
모두 들은 대로 전한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인가 조금 다른 말을 전했던 것입니다.
사람마다 들은 대로 전했는데.......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변해 있었습니다.
그들이 증언한 대로 예수님 본인이 성전을 허물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향해서 성전을 허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주어를 바꾸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살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는 것은 자살입니다.
타살이 자살이 된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고 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18. 그러나 하나님,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땅 위에 계시기를 우리가 어찌 바라겠습니까? 저 하늘, 저 하늘 위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모시기에 부족할 터인데, 내가 지은 이 성전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대하6:18)
그리고 한 1,000년이 흘렀습니다.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을 두고 솔로몬의 그 말을 인용했던 것입니다.
47. 그러나 집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이었습니다.
48. 그런데 가장 높으신 분께서는 예언자가 말한 바와 같이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속에 살지 않으십니다.
49. '나 주가 말한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서 어떤 집을 지어 주겠으며, 내가 쉴 만한 곳이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행7:47-50)
그러자 돌이 스데반에게 날라든 것입니다.
스데반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람의 성전으로 격하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전에다가 슬그머니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수식어를 붙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부인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헤롯 대왕이 이 성전을 짓는데 수십 년 걸렸는데 그들은 그 성전을 삼일 만에 짓겠다는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은유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성전은 예수님의 부활을 두고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59. 그러나 그들의 증언도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59 Not even they, however, could make their stories agree.
죄가 있어서 벌을 주는 것입니다.
없은 죄를 만들어서 엉뚱하게 간첩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사람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은 그들이 내세운 성전 문제로 사형 판결을 내리기에 부족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지금 예수님을 고발할 다른 죄목을 찾고 있었습니다.
간첩으로 부족해서 살인 증거를 만드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상황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신 것입니다.
60. 그래서 대제사장이 한가운데서 일어서서, 예수께 물었다. "이 사람들이 그대에게 불리하게 증언하는데도, 아무 답변도 하지 않소?"
60 The High Priest stood up in front of them all and questioned Jesus, “Have you no answer to the accusation they bring against you?”
그 터무니없는 고발에 대해 예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신 것입니다.
왜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 것인가?
이 일에 대해 성경은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7.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53:7)
하지만 베드로조차 그랬습니다.
자신은 죽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기주장을 했습니다.
주님은 아닐 것이라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는 닭이 두 번 울 때 네 말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주장만 펴는 자들에게 주님은 똑같이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대세사장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에게 설명해 봤자 무의미했으니 주님은 입을 다무셨던 것입니다.
61. 그러나 예수께서는 입을 다무시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이 예수께 묻기를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하였다.
61 But Jesus kept quiet and would not say a word. Again the High Priest questioned him, “Are you the Messiah, the Son of the Blessed God?”
하지만 대제사장으로써는 급한 일이었습니다.
그에게 일단 유대인들의 여론이 문제였습니다.
빌라도에게 사형 판결을 받아내는 일은 다음 문제였습니다.
운전 면허시험처럼 처음에는 필기시험을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전혀 다른 시험을 봅니다.
시험지가 아닌 차를 타고 보는 실기시험입니다.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첫째로 유대인들에게는 종교적인 둘째로 빌라도에게는 정치적인 관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증거물은 캬멜레온 같아야 합니다.
정치판에서는 정치적인 종교판에서는 종교적인 색깔을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 그리스도를 사칭했다고 종교적 고발을 할 것이며 빌라도 앞에서는 시저가 있음에도 자신을 왕이라고 했다고 정치적 고발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가 그리스도라고 고백되었을 때 예수님을 죽을 우리는 생명으로 구했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하지만 지도자들에게는 신성 모독의 죄목이 된 것입니다.
한 명의 역사적인 예수님을 두고 그들은 완전히 상반되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신가?
혹은 참람한 자인가?
거기에는 해석이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에 대한 정보가 오직 민중들에게만 제한되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대제사장도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대한 정보를 모든 사람이 공유한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을 두고 그 해석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해석을 판이하게 가르는 요인이 무엇인가?
이 일은 예수님의 공생애 중 내내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두고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주님은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하셨을 뿐입니다.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31. 이 때에 유대 사람들이 다시 돌을 들어서 예수를 치려고 하였다.
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권능을 힘입어서,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너희에게 보여 주었는데, 그 가운데서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고 하느냐?"
33. 유대 사람들이 대답하였다. "우리가 당신을 돌로 치려고 하는 것은, 당신이 선한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였소."(요10:30-33)
그들에게는 끝없는 의문뿐이었습니다.
요한은 예수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이 비둘기와 같이 내려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그 요한조차 예수님을 의심했습니다.
2.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감옥에서 듣고, 자기 제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시켜서,
3. 예수께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어 보게 하였다.(마11:2,3)
그 때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셨습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5. 눈먼 사람이 보고,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마11:4,5)
“요한아, 네가 해석해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정보를 듣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수용하는 문제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3.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으로 감동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고전12:3)
우리의 그리스도 고백 뒤에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일은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발견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세력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16:17,18)
예수님께 대한 그리스도 고백은 성령께서 사탄의 의지를 압도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기독교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상에 앉혀두고 5분 만에 그리스도의 고백을 학습시킬 수 없습니다.
3년의 예수님과의 동행을 통해서 끌어내는 것이 신앙 고백입니다.
바로 그 그리스도의 고백을 끌어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즉 선교를 바라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삶을 즉 작은 예수님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삶이 선교의 방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질문을 합니다.
이 한 그리스도를 두고 판이한 해석을 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십자가를 즉 희생을 부인하느냐 인정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부정할 것이 많은 관리들과 부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라고 의도적으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예수께서 침묵을 깨시고 그들의 질문에 답하실 것인가?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한 주님의 답의 결과를 미리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죽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미 그의 질문에 답하시기로 겟세마네에서 결정하셨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잔을 마시기로 정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과제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시는 일입니다.
문제는 그 고백을 끌어내는 방식입니다.
사탄은 주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자 바로 그 일 주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보이라고 계속 요구했습니다.
3.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마4:3)
예수님을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는 방식이 틀렸다고 지적하시며 마귀의 그 요구를 거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입니다.
돌이 떡이 되는 방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교활한 책략에 넘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 십자가를 스스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의 질문에 답하셨습니다.
6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그이요. 당신들은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62 “I am,” answered Jesus, “and you will all see the Son of Man seated at the right side of the Almighty and coming with the clouds of heaven!”
주님의 대답은 불친절하셨습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다.(I’m)”
그리고 빌라도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말한 대로다.(So you say)”(막15:2)
닭이 두 번 우는 대신에 대제사장들은 주님께서 구름 타고 오실 그 현장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대제사장도 닭이 두 번 울 때 자신의 잘못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닭이 울고 회개할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들은 그들의 손에 묻은 그리스도의 피를 씻을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이 대제사장들은 관리들은 지도자들은 부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기회를 왜 계속 놓치고 있는 것인가?
사마리아 여인도 바로 주님의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25. 여자가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압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하니
26. 예수께서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다" 하고 말씀하셨다.(요4:25,26)
그랬더니 이 여인은 물 담아둔 물동이도 다 버리고 마을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이 물길르러 우물가에 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입니다.
물통이 엎어지든지 말든지 마을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다른 목적이 생겼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셨습니다.
얼마나 간단하게 그리스도를 수용했는가!
그런데 부자들은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심의 증거를 듣고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20층 빌딩을 뒤로 두고 달려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의 생명을 보는 시각입니다.
그들은 없는 증거를 만들기 위해 한 사람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제 주관적인 판단이 아닙니다.
성경은 당시 로마의 총독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9. 빌라도가 말하기를 "여러분은 내가 그 유대인의 왕을 여러분에게 놓아 주기를 바라는 거요?" 하였다.
10. 그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겨 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막15:9,10)
빌라도는 대제사장이 죄 때문이 아니라 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2,000 명의 신생아들도 시기 때문에 죽이는 작자들이었습니다.
사람 죽이는 것을 예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독재자들이 경제 발전을 위해 혹은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며 제 동족도 죽일 수 있다는 식입니다.
자신의 희생은 절대로 피하면서.......
그들은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확고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제 옷을 찢으면서 자신의 영혼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63.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고 말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들이 더 필요하겠소?
63 The High Priest tore his robes and said, “We don't need any more witnesses!
자신의 옷을 찢은 것은 종교적인 행위이며 또한 공적 행위였습니다.
옳거니 증거를 찾았고 옷을 찢으며 자신 목표를 성취했습니다.
그들은 경건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가장 경건한 명분으로 그리스도를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모순은 대제사장이 자신의 영혼을 향해 사형을 선고한 것입니다.
이런 모순들은 지금 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들
그리스도의 희생의 내용은 사라지고 엄청난 대형교회를 건축하는 목표
곱빼기로 교인을 늘리는 목표
교회를 수영장으로
알통 만드는 헬스장으로
내 교리를 절대시하며 사람에게 화형을 집행하고
십자가의 깃발을 들고 학살했던 임진왜란의 왜군 장수처럼
그것은 성전 안에서 거룩한 제사를 이유로 양 팔고 소 팔고 동전 바꾸어 주던 일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64.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예수는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정죄하였다.
64 You heard his blasphemy. What is your decision?”
They all voted against him: he was guilty and should be put to death.
사형 판결을 내린 후 가장 먼저 백성들의 동의를 구한 것입니다.
64.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오?"
64 You heard his blasphemy. What is your decision?”
거기 모인 사람들 중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 신앙 체험의 감격에 눈물 젖은 도시락 얻어먹은 사람들도 그 자리에 있었을 것입니다.
삼촌이 나병에 낫고
아버지는 예수님을 통해 눈을 뜨고
그런데 대제사장의 질문 앞에서 “아니오”라고 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 권력자의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지자 일어난 일입니다.
6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예수는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정죄하였다.
64 They all voted against him: he was guilty and should be put to death.
그들은 그 자리에서 아니오 했다가 당할 일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목이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앵무새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내 신앙 고백이 아니라 대제사장 신앙을 대신 고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죽이라는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그 고백이 우리의 영원한 삶과 영원한 죽음을 판가름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그리스도 고백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고백으로 우리 육신의 목이 날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65. 그들 가운데서 더러는, 달려들어 예수께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고 하면서 "알아맞추어 보아라" 하고 놀려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인들은 예수를 손바닥으로 쳤다.
65 Some of them began to spit on Jesus, and they blindfolded him and hit him. “Guess who hit you!” they said. And the guards took him and slapped him.
불법적인 이 심야의 모임에서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사형의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얼굴에 침 뱉은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주님 앞에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얼굴에 주먹질했습니다.
눈을 가리고 알아 맞추어 보라고 희롱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손바닥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이 고백했던 그 신앙 고백의 무게가 그대로 드러났던 것입니다.
그것은 깃털처럼 가벼웠던 것입니다.
바로 전 대제사장조차 두려운 질문이었습니다.
대제사장조차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습니다.
61. 대제사장이 예수께 묻기를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하였다.
61 Again the High Priest questioned him, “Are you the Messiah, the Son of the Blessed God?”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묻는 이 질문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그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병이 나으며
눈먼자가 눈을 뜨며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그 예수님을 신성 모독으로 모는 일이 대제사장이라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질문에는 최소한 10%라도 갈등의 내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그에게 사형 판결 내릴지 그를 그리스도로 신앙 고백 할지.......
무덤에 묻혀있던 나사로가 살아 나왔습니다.
46. 그러나 그 가운데 몇몇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47.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의회를 소집하여 말하였다. "이 사람이 표적을 많이 나타내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요11:46,47)
의회는 대단히 종교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철저히 정치적 내용으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이 아닙니다.
48. 이 사람을 그대로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요, 그렇게 되면 로마 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요11:48)
거기 모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 고백을 버리고 대제사장의 신앙 고백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버리고 세상의 번영을 택한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세상 권력에 신앙 고백을 따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나오더니 예수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달려가서 예수님의 뺨을 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희롱하고.......
이제 예수님은 얼마 후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손과 발이 못에 박히는 일만이 아닙니다.
그 육체적인 고통만이 십자가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엄청난 모독을 이미 참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구원의 십자가를 감당하고 계셨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