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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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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당 조정육의 그림과 인생 스크랩 “독기(毒氣)있게 독기(獨起)하라” -수묵화가 박대성
무진당 추천 0 조회 395 10.05.31 10:31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3.“독기(毒氣)있게 독기(獨起)하라”

                                       -수묵화가 박대성-

 

두 해 전이었습니다. 부화기에서 병아리가 태어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삼척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부화기의 계란에서 막 탄생이 진행되는 중이었습니다. 슈퍼마켓에 놓인 냉장고처럼 생긴 부화기 안에는 각 칸마다 계란판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생명이 탄생하는 신비스러움이 기계 속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모습을 보고 마치 인조인간이 깨어나는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라 비정함이 느껴졌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사는 것은 힘든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윽고 계란판에 놓인 60개의 계란이 하나 둘 씩 금이 가더니 병아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미닭의 도움도 없이 마늘쫑같이 여린 부리로 계란껍질을 깨뜨리고 나온 병아리의 몸은 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습니다. 단단한 세계를 깨뜨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태어나는 모습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떤 놈은 이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뿐하게 껍질을 깨고 걸어 나오는가 하면, 어떤 놈은 껍질을 깨는 것조차 힘겨워 허덕거리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삶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무게로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요? 아예 부화 자체가 되지 않은 죽은 알을 빼고는 거의 모든 알에서 병아리가 태어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태어난 병아리는 약한 체질인 듯 껍질을 깨는 것이 무척 힘들어 보였습니다. 사력을 다해 껍질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을 때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계란껍질을 깨뜨렸으면 힘차게 껍질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힘이 약한 병아리는 껍질 벽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혼자 힘으로 태어나느라 극도로 지쳐 있는 병아리는 젖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뒤꽁무니에 붙은 탯줄 같은 덩어리가 계란 바닥에 들러붙어 있어 번번이 탈출에 실패했습니다. 수없이 실패하면서도 되풀이하는 탈출시도는 처절해보였습니다.

 

저러다 불쌍한 병아리가 죽겠다 싶어 보다 못한 제가 부화기 문을 열었습니다. 손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떨어질 만큼 아주 간단한 끈끈이라 제 손으로 탯줄을 떼어줄 생각이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만지지 마세요. 병아리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지 사람이 불쌍하다고 도와주면 저 병아리는 곧 죽고 맙니다.”

 

주인이 단호한 음성으로 저의 행동을 가로 막습니다. 사람 눈에는 무의미해 보이는 작업이지만 병아리한테는 그 과정을 통해 날개가 튼튼해지고 다리에 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과정을 생략해버리면 병아리는 날 수도 걸을 수도 없어 곧 죽게 되기 때문에 절대로 사람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병아리한테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큰 장애물이 실은 병아리를 살리는 최고의 훈련이라는 것입니다. 독할 정도로 홀로 서야 살아갈 수 있으니 ‘독기(毒氣)있게 독기(獨起)’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뜻이겠지요.

 

 박대성, <현율(玄律)>, 종이에 수묵담채, 178×383cm, 2006

 

4월답지 않게 초봄 추위가 등등하던 날, 경주에 있는 박대성 작가의 작업실에 갔습니다. 10여 년 전 경주에 터를 잡은 작가의 작업실은 사진작가 배병우의 소나무로 유명한 삼릉골입니다.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는 신라 천 년의 혼령이 서린 특별한 공간이기 때문이랍니다. 옛 선인들이 집을 지을 때 산 좋고 물 좋은 것은 기본이고 혼령이 좋은 곳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하는군요. 신라시대 세 임금의 무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삼릉이야말로 그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곳이겠지요. 역시 작가의 안목이 탁월함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삼릉 소나무 곁에 울타리를 치고 아침저녁으로 솔향을 맡으며 붓을 들고 있을 작가의 모습이 상상이 되시나요?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왼쪽 벽면에 펼쳐진 <현율(玄律)>이었습니다. 장대한 스케일의 자연을 거대한 화면에 구축해놓은 <현율>을 보는 순간 저는 온 몸이 부르르 떨리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우뚝우뚝 세워진 기암괴석을 짙고 강한 먹으로 펼쳐놓은 <현율>은 부감법적인 시각으로 더욱 장쾌하고 웅장합니다. 부챗살처럼 배치된 바위산이 웅대하게 느껴지는 것은 대상을 함축시키고 생략해서 집중시키는 구성 못지않게 여백을 적절하게 활용한 힘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대작 앞으로 다가서는데 어찌나 생생하던지 마치 그림 속 천길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질 것 같아 한 발짝 뒤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작가는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정하면 멀리서 관조하듯 그리지 않고 냄새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끌어 당겨 적극적으로 경작한다고 합니다. 멋진 경치가 아니라 그 대상의 기를 그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에서 발원한 진경산수의 물줄기가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1899-1976)이라는 계곡을 통과하여 박대성이라는 바다에 이르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에 리커란(李可染:1907-1989)이 있다면 우리는 박대성을 가졌구나, 하는 뿌듯함도 느꼈습니다.

 

 박대성, <불밝힘굴>, 한지에 수묵담채, 223×144cm, 1996

  

박대성이 시대를 뛰어넘어 정선에서 변관식으로 이어지는 진경산수화의 전통 위에 서 있다고 말하고 보니 마치 그가 정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처럼 느껴지는 군요.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대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7남매 막내로 태어난 그는 6.25때 부모님과 왼팔을 잃었습니다. 그때 작가의 나이 5살이었습니다. 조부모님 슬하에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작가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동네 사랑방에 있는 고서를 보고 묵화를 연습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작가는 어느 날 형님한테 신라의 솔거 얘기를 듣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끝없이 놀림 당하던 학교생활은 중학교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순전히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습니다. 독기(毒氣) 있게 독기(獨起)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정선, <낙산사>, 종이에 채색, 56.0×42.8cm, 《금강산8폭병》, 간송미술관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일어선다는 것! 그것은 처음에는 힘들지만 단련이 되고나면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복잡한 인맥과 학맥에 얽히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서와 초서 같은 글씨연구를 통해 화면 운용과 공간 구성의 묘리를 배웠고 옛 대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화법을 배웠습니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며 도를 구하듯 작가 또한 필요할 때마다 스승을 찾아다니며 공부했습니다. 한 곳에 얽매이지 않는 구도행을 통해 전통 속에서 산수화에 임하는 정신을 배웠고,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실험을 통해 먹의 정통 계승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과 불국사를 한 화면에 담은 <불밝힘굴>은 전통에서 무엇을 배웠고 전통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조감도처럼 펼쳐진 불국사 뒤로 금강역사 같은 토함산이 떡 버티고 있고 산 위에는 석굴암 ‘불밝힘굴’이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토함산의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 석굴암과 불국사는 어느 위치에서 바라봐도 이렇게 그려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작가의 마음과 그림 속에서만 그려질 수 있습니다. 마치 정선이 <낙산사>를 그릴 때 낙산사와 홍련암을 실제와 다르게 한 화면에 배치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정선이 진경산수를 그릴 때 현장에서 느낀 감동을 전하기 위해 실경과 똑같이 그리지 않고 왜곡, 축소, 과장을 서슴지 않았던 이유를 간파했던 것이지요. 이것이 카메라가 대신할 수 없는 그림의 묘미입니다. 추상을 얘기하지 않으면서 추상을 응용한 결과입니다.  

 

적묵(積墨)이 강조된 두 작품을 보고 있으니 마치 그가 강한 먹만을 쓴 작가처럼 느껴지는군요. 그러나 박대성은 괴량감 넘치는 적묵에 앞서 세필 묘사가 장기인 작가입니다. 길이가 9미터나 되는 대작 <불국사 전경>은 치밀하고 섬세하게 표현된 소나무 뒤로 불국사 외경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차분하면서도 꼼꼼한 필치는 강한 먹을 강조하던 ‘대관산수’와는 다른 매력을 보여줍니다. 만약 그가 제도권 교육 속에 스스로를 가뒀더라면 이렇게 독창적이면서도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이 작품은 작가가 문명세상이 보고 싶어 미국에서 1년 동안 서양화를 공부하면서 깨달음을 얻은 후에 제작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지내던 도중, 우리는 외국 작품을 과도할 정도로 많이 알려고 하면서, 정작 우리 것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더랍니다. 다음날 곧장 짐을 싸서 귀국했고, 한걸음에 불국사로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박대성의 경주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박대성, <천년배산-불국사 전경>, 한지에 수묵담채, 240×900cm, 1996 

 

박대성 작가의 살림집에는 ‘不便堂’(불편당)이라는 당호가 붙어 있습니다. 불편하게 살겠다는 뜻입니다. 몸을 불편하게 함으로써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선택한 삶의 방법입니다. 오직 좋은 그림을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자가유배(自家流配)를 선택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홀로 서는 것이 무섭고 불편하게 사는 것이 두려우세요? 박대성의 작품을 감상해보세요.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첫걸음을 떼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힘들 지도 모릅니다. 병아리의 첫걸음이 그랬던 것처럼요. 그러나 힘든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억하세요. 독하게 홀로 걷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나의 길이라는 것을요. 이제 막 껍질 속에서 나와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는 분이 계신가요? 두렵더라도 확신을 갖고 성큼성큼 걸어가세요. 박대성의 작품이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조정육)

 

양희은 - 상록수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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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5.31 20:03

    첫댓글 불편당 좋습니다 ㅎㅎ

  • 10.05.31 23:26

    ()()()

  • 10.06.01 22:15

    ** 독특한 분위기의 수묵화 ~ 사진으로 감상해도 감동적인데, 직접 감상하면 신선한 충격(!)을 받을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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