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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로원(요양원)이다. '홍도야 울지 마라'를 누가 색소폰으로 연주하고, 그걸 따라 부르다가 몇몇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여기 형제자매들과 정이 들 대로 들었었다만 거짓말이랄까? 원장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에 충격이 오는 이유가 따로 있다. 밝힐 수는 없고. 원장의 빙모 되는 분이 내 노인 학교 학생이었다. 어느 해 1년 동안 매주 금요일 오후엔 거의 양로원에 다녔다. 비가 오는 날엔, 그 할머니의 방에 둘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곤 했고. 왜 형제 복지원이라 있었지 않은가? 그 시설이 없어지면서 많은 수용인들이 뿔뿔이 헤어졌다. 그 중의 한 할아버지, 요시찰 인물이라 했다. 사복 경찰관들이 와서그의 동향을 살피곤 했다.
만주국이라면 일본이 만든 괴뢰 정권? 그 국가(?)의 100미터 대표 선수가 여기 있었다. 한데 벚꽃 놀이에 그만 빠진 것이다. 나이 들고 보니, 그 옛날 너무 다리를 혹사한 탓으로 관절이 망가진 것. 용인에 올라오기 전 몇 번 들렀었다. 마흔 두서넛에 찾았었던 거기에 예순을 훨씬 넘긴 나이로.>
포토 에세이/ 내 여생 마지막 콘서트
이원우 010-4731-4356
1. 일흔 넷의 새봄도 타관에서 맞는다. 꽃샘에 내 몸이 왜 그렇게 그악하게 반응하는지 나 자신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혼자서 견딜 만하다며 큰소리치지만, 여생이 그리 길지 않음은 보나마나. 그래도 글쎄, 아침 기도의 한 구절이 힘이 될까?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 주소서.
하고 싶은 일 아니 해야만 할 일이 더러 있다. 그건 노욕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내 그걸 감내할 능력을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 세속적으로 표현해서, 마구 설쳐대니 내가 공중에 떠 있다는 느낌이다. 작년까지 옛 일선부대에 내 발로 찾아가서 안보 강의를 스무 시간 해 낸 터, 목표에서 3/5이 남았다. 내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한 일부분라, 제발 그런 체력이 뒷받침해 줬으면 한다. 어제도 사단 부관과 연락을 했다. 6월 18일이 부대 창설 기념일이다. 기념식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그 전에 윤성필 행정 부사단장을 만나야 한다. 다음 주에 간다. 사전 정지 작업? 그래야만 할 정도로 부대와 나 사이가 멀지 않으니, 그저 보고파서 그런다고 하자.
<한때는 색소폰에 매달려 향수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인간은 경망한지 부족한지 피스를 입에 문 지 얼마 되지 않아 색소폰을 들고 가장 번잡한 사거리 바로 옆 간이 의자에 앉았다. 겨끔내기 연주라 맘대로 이름을 붙이고 '사월의 노래' 등을 부르거나(육성에 맞는 음역), 색소폰으로 나머지 음을 내었다(높은 음역). 지나가는 학생들이나 노인들이 내게 몰려오기도 했다. '낭만에 대하여'를 대히면 처절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도 비가 오누나. 김량장동이라고 사람들로 북적대는 시장통에까지 나가서 걸으면서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다. 지금은 색소폰을 놓아 버렸다. 전립선암 수술을 받고 나서 걸핏하면 부끄럽지만, 요실금--.어? 피스를 거꾸로 물었나? 그러면 어때? 소리만 나면 되지.>
2.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책을 두 권 쓰고 있다. 동명(同名), 다시 말해 책 제목이 같은 소설집과 수필집이다. <목포에 간 ‘요동흰돼지(遼東豕(요동시)’>…….혼신의 힘을 쏟아서 탈고했다. 소설집은 350장짜리 중편과 단편 아홉 편을 묶는 것이다. 수필집은 열두 장을 넘기지 않는 80편이고. 출판비가 없다. 그래도 걱정은 않는다. 한 달에 30만원만 모으면 2년 만에 ‘종착역’에 내리게 될 것이다. 두 번 기획 출판을 한 적이 있으니, 누가 아나? 내 감언이설로 포장한 미끼를 어느 출판사 대표가 덥석 물을지 말이다. 그 함수와 난수표(?) 풀이를 위해 여태껏 쏟아 부은 열정도 만만찮다. 아니면 내가 직접 출판사 등록을 하면 절감되겠지, 모든 경비가. 열아홉 번의 경험을 축적해 놓은 상태니 난제지만 결국은 풀리리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스무 곡의 대중가요 가사를 창작하는 것, 이게 또 만만찮은 도전이긴 하다. 그러나 어쩌랴. 내 죽은 뒤에 남는 거라곤 그것뿐일 테니. 주님은 그런 허황된 것을 원하시지 않으리라. 하나 이승을 뒤로하고 휘휘 떠날 때에 그것도 하나의 위안이 될 테니 내 재량껏 몸부림치자. 중언부언한다. 내가 정식으로 데뷔한, 명색이 가수인데 대중의 가슴속에 파고드는 노래를 몇 곡 만들었으면 하는 거, 꼭 손가락질 받아야겠는가?
단 일회성으로 끝나지만, 정말 목을 매고 싶은 일이 있다. 본론이다. 콘서트, 생애 마지막 콘서트를 열고 싶은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콘서트. 그걸 나는 열다섯 번이나(?) 해냈다. 제 까짓게라는 코웃음 소리도 들었다. 화려한 무대는 아니지만 남백송(KBS 가요무대 최다 출연)과 문정수(전 부산시장), 오순절 평화의 마을 가족 및 초량 시각장애복지관 형제자매, 내 노인학교 학생 들이 우정 출연했었다. 필요하면(?) 그들이 증언하리라.
<노래는 이념으로 죄우되지 않는다. 학교 후배 조갑제 기자(조갑제 닷컴 대표)가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부산일보 대강당에서 강연을 하는데, 시작 전에 내가 노래를 불렀다. 최갑석의 '삼팔선의 봄' 등이다. 이 노래가 국방부 금지곡이라니 한탄할 만하지만, 그만한 근거가 있다. --싸워서 공을 세워 대장도 싫소/ 이등병 '목숨 바쳐 '고향 찾으리라--. 강연회는 언제나 성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400여 명 청중이 대개 나이 든 사람들이어서. 특히 교장 출신이 많았다. 1/10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다. 나 자신 보수? 그렇지 않지만, 서울의 작은 무대에서 나는 '가거라 삼팔선아'/ '전선 야곡'등을 선보인다. 노래가 좋아서다.>
3.그러나 무대가 부산이 아니라 낯설고 물선 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다. 내가 몸과 마음을 의지하고 있는 용인에서도 지리를 몰라 어리둥절해하는데, 서울이라니 가당치는 않고말고. 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자초(自初)만 설명하자. 내가 아는 서울 지리라곤 명동 성당/ 세종 문화회관/ 뱅뱅 사거리 정도일 뿐이다. 그런데 거기서 명당을 하나 발견한 것이다. 바로 명동 성당 옆 ‘문학의 집’이다.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할 수 있는 마침맞은 공간이다. 초대 손님은 100명 안팎! 26사단 사령부 간부와 예하 73여단 장병/ 나와는 깊디깊은 인연이 있는 쟈니리를 비롯한 가수 몇/ 초등학교 동기 동창/ 부산중고등학교 동창회원/ 사범학교 동창/ 대중가요와 문학의 접목 의미를 아는 수필가 ‧ 소설가 ‧ 시인/ 지인/ 가톨릭 교우 등등. 우리 가족 여섯도 합류할 것이다.
<정말 잊지 못할 곳이다. 중학교 3학년 그 명문 부산중학교에서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이 전체 605명 중 모의고사에서 5-6등을 하기 예사였다. 그러나 나 잘못으로 인해 앞을 못 보시는 엄마의 가슴을 찢어 놓았었다. 가출을 하다가 붙잡힌 것이다. 몇 달째 부산역 빈 객차 안에서 하루를 보내기도 예사였다. 돈이 있는 날은 철도문화관이라는 하급 극장에서 영화 2본 동시 상영을 관람하였고. 버트 랑카스터/ 커크 다글라서/ 게리 쿠퍼/ 존 웨인 등의 서부극에 빠져 있었다. 세월이 수십 년 흐른 뒤에 나는 전동기 부산교구 사목지원국장님과의 인연으로 초량 시각장애인 복지관에 다니게 된다. 노래 지도+ 웃음 치료(?)! 그러나 노래는 어느 자매가 나보다 훨씬 잘했다. 아니 그 혼자가 아니라 시각 장애인들은 노래 수준이 보통이 넘을 수밖에 없다. 프로를 뺨치는 자매에게 내가 너무나 놀라 물었더니 옆에서 대답들을 했다. "광주 중심가 육교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활비를 벌었다오. 평생--.이 애덕의 집에서 나는 3년을 보낸다. 그러나 곧 이별을 고해야 했다. >
<중학교 선배가 있다. 나보다 한 살 많은데 군 장교 출신이다. 나는그를 서슴지 않고 형님이라 부른다. 교적은 같은 본당에 두었는데, 그는 주일마다 '애덕의 집'에 다녔다. 내외분이. 참으로 보고 싶다.>
4.이사장을 만나서 대관을 의논했다. 반주자도 정했다. 트럼펫 연주자다. 그는 노래 반주기를 앞에 놓고 무슨 반주든지 해낼 수 있다. 8월 중순 어느 비 오는 토요일 오후 2시 20분! 그게 내가 잔머리를 굴린 일시(日時)다. 점심 대신 다과를 낸다면 욕먹을지는 모르겠다.
자, 무슨 노래를 할 것인가? 전제 하나. 누가 사이에 끼어들면 초점이 엉뚱한 곳으로 퍼져 버린다. 내가 노래하고 거기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섞는다. 그래 몇 곡만 적어 보자. 모두가 화합의 메시지는 담긴 곡들이다. ‘애국가’가 최우선이다. ‘내 발을 씻기신 예수’(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사박걸음으로…(찬불가)’// ‘전우야 잘 자라’/ ‘26사단가’(진중가요 및 군가)// ‘노랫가락’ 등(우리 민요)와 O Sole Mio 등 (외국민요 혹은 가곡)/ ‘목포의 눈물’/ ‘해운대 엘레지’(영남) 트로트/ 트로토가 아닌 ‘낭만에 대하여’//I Can't Stop Loving You 등 (올드 팝송) 등등. 열다섯 곡. 26사단 병사들과 제창할 경우가 있으리라. 가사를 전부 유인물로 만들어 청중에게 제공하고.
모두를 당장이라도 부를 수 있으니, 염려하지 않는다. 물론 외국 노래의 발성엔 문제가 있다. 해서 흘리는 땀이 만만찮아야 하리라. 그러나 이제 와서 어찌 뒷걸음치겠는가? 저잣거리로 나서면서도(가끔 그런 신세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잡문을 만들면서도 노래를 흥얼거려야 한다. 근래 부쩍 성당을 찾는 것도 성가를 부르면 발성 연습이 되기 때문이다.
김후란 이사장도 걱정했었다, 백 명 안팎의 청중을 동원하느냐 하는 게 문제다. 걱정이라는 정서가 빼딱이 고개를 내밀지만, 일과성이리라. 그보다 무대복 한 벌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머지않아 내 생일이니 그날 만찬 때 이 모든 계획을 가족에게 고백하자. 심시일반, 다섯 구성원이 약간씩만 보태면 까짓(?) 경비 백만 원쯤 못 만들겠는가? 야호!
* 14장
덧붙임: 지금부터 초청자 100명의 명단을 만들어야 한다. 무순으로 싣는다. 100명 안팎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시면(모으면) 그걸로 목표는 달성이다. 입장료? 물론 없다. 한국 가톨릭 문협 회원 5-10명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001.이원우 아우구스티노(본인)/ 002. 배경숙 모니카(아내)/ 003. 박정규 돈보스코(사위)/ 004.이지현 클라라(딸)/ 005. 박종빈 바오로(외손자)/ 006. 박종서 베드로(외손자)/ 007. 이병관 트럼펫 연주자/ 008.쟈니리(가수-뜨거운 안녕)/ 009. 정희웅(고향 삼랑진 친구-전 회사 교사 -간부) /010. 복수미 체칠리아(남백송과 듀엣으로 KBS 가요무대 '전화 통신' 출연/ 011-021 신외성(부산사범 15회 동기회장) 외 동기 10명 / 022. 서성식(전 외환은행 경납 부산 본부장 사범 동기)/ 023. 김강미(부산사범 동기-서울 동기회 총무)/ 024. 추태균 아마토(용인 삼가동 성가대 지휘자)/ 025. 구양우(부산 사범 친구)/ 026. 李翁(어릴 때부터의 이름/ 명상가)/ 027-031. 조만기(부산교대 서울 동창회 고문) 032. 노윤길(삼랑진 친구)/ 033-040 윤성필 대령(26기계화 보병사단 행정 부시장)외 병사 7명/ 041. 이명숙(부산시범 동기)/ 042.이성태(숭진초 안와 함께 재직 중 제자)/ 043. 이종웅(숭진초 제자)/ 044. 권철우(숭진초 제자)/045. 김지수(숭진초 제자)/ 038. 김진영( 감전초 제자)/ 046. 하준영(감전초 제자)/047 박창모(감전초 제자)/ 041. 김수진(동백 성요셉 성당) 교우/ 042. 심상옥(도예가-수필가)/ 043. 윤행원(수필가)/ 048. 김의배(수필가-실버넷 편집국장)/ 049. 김진영(전 인천시 부시장-타진 중)/ 050. 윤준서 이카엘 어머니/ 051. 이문열(57전차대대 전 소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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