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우집(俛宇集) 곽종석(郭鍾錫)생년1846년(헌종 12)몰년1919년자명원(鳴遠), 연길(淵吉)호면우(俛宇), 유석(幼石)본관현풍(玄風)개명도(鋾)특기사항이진상(李震相)의 문인. 허유(許愈), 이종기(李種杞), 이승희(李承熙) 등과 교유
俛宇先生文集卷之百四十三 / 銘 / 光州硯銘 並小序○丙辰
昔萬曆癸酉。葛川林先生出宰光州牧。廉約爲理。有氷壺之稱。其歸不以一物自隨。有甞得赤珉一枚於瑞石山中。携之來。琢以爲硯。鐫飾蒲荷魚鳥之狀。充文房之須。子孫世守之。中間被人竊去。貨爲他有。今年秋裔孫苾煕始跡之。以百金償還。硯復爲先生家珍。豈物之顯晦。將有徵於斯道之升沉歟。苾煕君索余銘。銘曰。端溪石出。鬱林舟颺。淸白之遺。斯文之祥。旣琢又磨。迺直而方。蜿翔芬郁。有質有章。或化而羽。亦珠而還。往來不脛。神於其間。豈物是謂。吾道之觀。寶哉无斁。先生有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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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서집 제6권 / 시(詩) / 갈계임형국(林馨國)의 집으로 돌아와 머물다〔回留葛溪林國宅〕
잔나비 떠나 산은 비고 학은 날아갔으나 / 猿去山空鶴已飛
동 이름 천고에 그 명성 낮지 않네 / 洞名千古不低微
이 동이 삼동(三洞) 가운데 으뜸인데 이름이 원학동(猿鶴洞)이다.
갈천에게 또한 이천 아우가 있고 / 葛川亦有伊川弟
율리는 모리로 돌아간 것과 어떠한가 / 栗里何如某里歸
평생 높이 우러르던 뜻 이제야 이루고 / 高景百年酬宿願
한나절 한가히 노는 가운데 석양에 이르렀네 / 優遊半日趁斜暉
모암정(帽巖亭)의 천석을 거듭 돌아보니 / 帽亭泉石重回首
강선대(降仙臺)에 한 번 오르지 못함이 흠일세 / 欠却仙臺一振衣
모암정(帽巖亭)은 형국(馨國)이 지은 것인데 천석(泉石)이 매우 아름답다. 앞의 강선대(降仙臺)가 또한 뛰어난데 해가 저물었기 때문에 오르지 못하였다.
[주-D001] 갈계(葛溪)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에 있는 마을인데 은진 임씨(恩津林氏)의 세거지이다.[주-D002] 임형국(林馨國)의 집 : 원문의 임국댁(林國宅)은 임형국댁(林馨國宅)의 착오이므로 이를 바로잡아 ‘임형국(林馨國)의 집’으로 풀이하였다. 임형국은 임필희(林苾煕, 1878~?)를 말하는데, 형국은 그의 자이다.[주-D003] 삼동(三洞) : 안의삼동(安義三洞)으로, 화림동(花林洞)ㆍ심진동(尋眞洞)ㆍ원학동(猿鶴洞)을 말한다.[주-D004] 갈천(葛川)에게 …… 있고 : 갈천(葛川)은 임훈(林薰, 1500~1584)의 호이다. 이 구절은 갈계 마을에 갈천과 그 아우 첨모당(瞻慕堂) 임운(林芸, 1517~1572)이 있었음을 말한다. 원문의 이천(伊川)은 송나라 때 이정(二程) 형제 가운데 갈천을 명도(明道)에, 첨모당을 이천(伊川)에 비긴 것이다.[주-D005] 율리(栗里)는 …… 어떠한가 : 율리는 도연명(陶淵明)이 진(晉)나라가 망하고 유송(劉宋)이 서자 정절을 지켜 은거했던 곳이다. 갈계 마을 가까운 곳에 동계(桐溪) 정온(鄭蘊, 1569~1641)이 병자호란 후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잊을 수 없다고 하여 벼슬을 단념하고 은거한 모리(某里)가 있는데, 도연명의 율리와 견줄 만한 것임을 말하였다.
ⓒ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 김홍영 정석태 김보경 (공역)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