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길목]황혼의 반란
/백봉기(수필가,전북예총 사무처장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황혼의 반란" 이라는 소설이 있다. 노인 부양에 견디다 못한 젊은이들이 노인문제를 사회화시키면서 시작된다. TV에 출연한 학자들은 노인들 때문에 국가재정적자가 증가한다고 주장하고, 정치인들은 병원에서 노인들에게 너무 쉽게 약을 처방한다고 비난한다. 식당에는 ‘70세 이상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걸리고, 80세 이상에게는 약과 치료비 지급을 제한하는 조치가 떨어진다. 더 나아가 젊은이로 구성된 체포조가 생겨 노인들을 붙잡아 ‘휴식·평화·안락센터’라는 기관에 가두고 독극물을 주사하여 안락사시킨다. 자식들이 부모를 버리는 순간 바로 이 센터의 직원들이 찾아와 노인을 데려간다. 70대의 프레드 부부는 자신을 잡으러온 기관원들의 버스를 훔쳐 타고 산으로 도망간다. 버스에는 이미 붙잡혀온 많은 노인들이 있었다. 프레드 부부는 이 노인들과 함께 산속에서 게릴라전을 펼치지만 결국 숲속에 바이러스를 뿌린 진압군에게 항복하게 된다. 마지막 순간, 자신을 안락사시키는 젊은이에게 “너도 언젠가는 늙을 것이다.”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죽는다.
참으로 씁쓸한 결말이다. 현대판 고려장이나 마찬가지다. 소설 ‘황혼의 반란’을 그저 허황된 이야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어쩌면 이것이 미래의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도 이미 고령화사회로 진입했고, 곳곳에서 황혼의 반란과 같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나이인데도 할 일이 없어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노인정에서 하루를 소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몸을 가누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쫓겨 요양원으로 떠밀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가는 곳마다 요양원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노인병으로 지급되는 의료비가 급상승하고 있다. 소설에서처럼 국민건강보험이 바닥났다며 의료비 지급이 제한될지도 모른다. 가족을 위해 한평생 몸이 부서지라 일한 은혜는 뒷전이 될지 모른다. 심각한 문제는 독거노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거노인은 가족과 고립되어 대부분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서 정부에서 지원하는 생활비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형편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고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진정한 효도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다. 단 하루 식사 대접하고 용돈 챙겨드리는 날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노인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정년퇴임 나이를 높이는가 하면 일정 직업군에서는 노인채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풍부한 경륜을 가진 어르신들의 지혜를 새로운 지식창조와 생산 활동에 접목시키고, 재능기부와 사회봉사활동을 권장하는 캠페인도 벌리고 있다. 문제는 노인은 소비계층이고 젊은이는 생산계층이라는 등식을 깨고, 노인을 미래사회의 큰 가치로 보는 관점의 변화가 우선돼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미래판 고려장을 걱정하는 지금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