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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9 /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5:16-18)
말씀을 전하기 전에 단어 몇 개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깜은, 아산떼, 탁’ ... 이 말들이 무슨 뜻일까요?
같은 뜻으로 이런 말도 있습니다. ‘메르흐씨, 그라시아스, 당케.’.....
모두가 ‘감사합니다.’를 표현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말들입니다.
새해의 교회 표어에 대해 말씀을 전해 오는 중에 오늘은 ‘기뻐하자. 기도하자. 감사하자.’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범사에 감사하자’는 것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잠시 복습하자면, ‘항상 기뻐하자’는 것은 행동에 관한 것이 아니라 외부 요인에 의한 피동적인 상태에 의한 것이기에 마음먹는다거나 결심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기뻐하는 상태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기뻐할 준비를 하자.’는 말로 이해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말씀드렸습니다. 임의로 기뻐할 순 없지만 기뻐할 준비는 얼마든지 의지로써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자’는 것도 원어적인 의미로는 ‘기도하기를 쉬지 말라.’는 뜻이기에, 기도의 시간이나 방법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믿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소개했던 ‘예수의 기도’를 기억하시지요? ‘주여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나를 도와주세요.’
그래서 기도하기를 쉬지 않기 위해서는 매 순간, 모든 상황 속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각자의 소원’ 플러스 ‘예수의 기도’를 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범사에 감사하자.’는 것은 무엇을 교훈하는 말일까요?
‘범사’라는 말의 헬라어는 ‘파스’인데, 영어의 ‘all’과 ‘every’를 모두 포함하는 말로, ‘모든’ 또는 ‘각각의’라는 뜻입니다. 디모데전서 4: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때 사용된 ‘모든 것’이라는 말도 ‘파스’입니다.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살며 맞닥뜨리게 되는 모든 것 또는 각각의 것들에서 ‘감사할 조건’을 내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찾으라는 말입니다.
흐름을 보면 이렇습니다. 우선은 매사에 ‘이것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라는 믿음이 앞서야 합니다.
그 다음 ‘이것들을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들을 통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기쁨’과 달리 ‘감사’는 상태가 아니라 행위입니다.
우리가 안 해서 그렇지 하려고만 하면 우린 매사에 ‘기뻐할’ 수는 없어도 ‘감사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을 쓴 코리텐붐 여사가 있습니다. 네덜란드 사람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 중에 유대인을 숨겨준 죄로 가족들이 모두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그곳에서 부모님은 가혹한 고문을 이기지 못해 돌아가셨고, 사촌 언니도 성적인 학대로 상처를 받아 죽고 말았습니다.
구사일생으로 혼자만 살아남은 여사는 이후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전하며 세계 여러 곳에서 전도 활동을 했는데, 특히 원수의 나라 독일에서 복음을 전하던 중에 큰 충격적인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수용소 때의 살인마였던 나치 감독관을 만난 것입니다. 이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를 용서한 일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수용소 수감 당시 여사는 신앙심 좋은 그녀를 눈여겨 본 한 그리스도인 간호원에 의해 작은 성경책 하나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독일 감시병들의 통제가 심해 맘 놓고 기도한다거나 성경을 꺼내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언니와 함께 감방을 옮기게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그곳엔 벼룩이 들끓어 도무지 사람이 살 수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무척이나 힘들어 하던 그때, 언니가 ‘주님 우리에게 벼룩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을 들으며 여사도 무심코 아멘 했는데, 그로부터 며칠 안가서 여사는 벼룩을 인하여 감사해야 할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벼룩 때문에 그 감방 주위에는 간수도, 군인도 얼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마음껏 성경을 읽을 수 있었고, 심지어 수용소 동료들과 성경공부와 신앙의 교제를 나눌 수도 있었는데, 여사는 이 모든 것이 벼룩 때문이었노라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간증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은혜를 전했습니다.
이처럼 ‘불평의 한복판에서도 감사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감사는 세상이 주는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결과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다 불평하고 낙심하고 분노할 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이런 것들도 감사합니다.’라고 한다면, 코리텐 붐 여사에게는 벼룩이 은혜였듯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는 지금의 어려움과 고충이 큰 은혜가 될 줄로 믿습니다.
때문에 표어의 마지막 문구인 ‘감사하자.’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기도입니다. 감사를 기도했기에 감사한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감사는 기쁨이기에 ‘감사합니다.’라고 하려면 이미 마음속으로부터 ‘기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세요. 만약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기도와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려 하면, 그것이 어떤 것,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곧 우리 모두가 기뻐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듯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는 말씀은 셋이 따로가 아니라, 셋이 하나로 이어지며 나타나야 하는 신앙인의 필수 요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18절을 이렇게 마무리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구약에 기록된 욥을 아시지요? 어느 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많던 재산을 다 도둑질 당했습니다. 그 와중에 열 명의 자녀도 함께 잃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은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죽을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욥이 우리에게 남겨준 믿음의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다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 수 없다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주실지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대해 원망하고 불평하는 대신,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라는 욥의 고백이 살아가는 중에 여러분의 고백이 되게 하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반드시 모든 단련을 견뎌내시고 순금 같이 되는 은혜를 받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번 따라 하세요.) ‘하나님 / 아시지요?’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 꼭 필요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 ‘아시지요?’
하나님이 아실 것을 믿기에, 도우시고 역사하실 것을 믿기에, 우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안 믿고 못 믿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로인한 괴로움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매순간 하나님을 믿으니 또 예수님만 믿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려고 하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바울이 본문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을 연이어 언급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문맥상 ‘감사하자.’는 ‘기뻐하자와 기도하자’의 "실천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있어 감사하지 못하겠다면, 그 힘든 부분은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우선은 감사할 수 있는 것들부터 감사하세요.
살다보면 많은 일들을 겪게 되지만 간단하게 보자면 그것들은 다 '감사할 만할 일'과 '감사하지 못할 일'의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문제에만 연연하느라 잊고 살아서 그렇지 '감사할 만한 일'들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뻤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선은 그런 것들부터 ‘기뻐하려’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감사는 ‘기뻐하는 연습’입니다. 범사에 감사해서 항상 기뻐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럼, '감사하지 못할 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바울은 권면하기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 것입니다.
살면서 '감사하지 못할 것'들에 대해서는 기뻐하기 이전에 우선은 ‘기도 제목’으로 옮겨 놓으세요. 그리고 기도하세요.
그런 의미에서 감사는 ‘기도하는 연습’이기도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하는 연습을 하셔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이고, 그리되면 '감사하지 못할 일'들도 결국엔 ‘항상 기뻐할 일’들이 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이 되기 전에 동독 사람들이 쓰레기를 트럭에 싣고 와서 서독 땅에 갖다 버리곤 했답니다.
서독 사람들이 화가 나서 똑같이 해줄까 하다가 오히려 동독 사람들에게 필요할 각종 통조림들을 잔뜩 실어다가 동독 쪽에 쏟아 놓고는 쪽지를 한 장 남겨 놓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놓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에 내어 놓는 것들은 어떤까요?
우리 마음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어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게 될까요?
‘감사하는 마음’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한 일을 잊지 말고, 하나님을 향해, 또 세상 밖으로 기쁨을 드러내려고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하지 못할 일들로 인해서는 근심 걱정이 아닌, 하나님께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속에 있는 열 가지 중, 아홉 가지 감사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한 가지 그렇지 못한 일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이 묻히게 됩니다.
마치 고속도로에서 사고로 앞차들이 막혀 있으면 뒤에 있는 차들이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마음속의 열 개중 한 가지 걱정이 다른 아홉 가지의 감사하는 마음을 꽉 틀어막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할 일은 여러분의 마음을 '믿음으로 교통정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꽉 막힌 심정을 뚫어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감사를 막고 있는 불안, 걱정, 염려, 두려움, 분노... 등일랑은 이제 기도 쪽으로 옮겨 놓으세요. 그러면 감사가 뚫립니다.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경험해 보셨겠지만 어머니가 아이에게 ‘밥 먹어라!’ 그럴 때에는 이미 밥상을 차려 놓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하실 때에는 이미 우리를 위한 ‘감사의 밥상’을 다 차려 놓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 명령하시면서 이미 번제에 쓸 양을 미리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을 여호와 이레라고 합니다.
이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하셨으니, 우리가 순종할 때면 그에 따른 여호와 이레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게 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복음성가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왜 이런 슬픔 찾아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잃은 것보다 주님께 받은 은혜 더욱 많음에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다면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잖아요.’
이 찬양의 가사가 오늘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고백이요 기도요 확신되기를 소망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말엔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늘 원망하고 불평하면, 원망하고 불평할 일만 생깁니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면, 매사에 감사할 일만 생길 것입니다.
잊지 마세요. 우리에게서 되어지는 일들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럼에도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원망할 것인가? 감사할 것인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라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원망입니까? 감사입니까?
이 선택에 있어서 예수님은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힌트를 주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하든지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
또 바울은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러니 범사에 감사를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를 선택하는 것은 예수님을 선택하는 것이고, 곧 믿음을 선택하는 것이기에, 결국엔 행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중세의 한 수도사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감옥과 수도원은 환경 상 매우 비슷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무엇인가? 감옥에서는 불평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수도원에서는 감사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만일에 수도원에 있는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리면 이 수도원이 지옥으로 변할 것이고, 감옥에 있는 자들이 감사를 발견한다면 그 감옥이 오히려 천국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과 일터에서, 그곳을 어떤 곳으로 만들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처지가 지옥이 아니고, 장소가 천국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감사가 여러분이 살아가는 그곳을 천국 되게도 하고 지옥 되게도 합니다. 그래서 우린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어디서 어떻게 사시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 뜻대로 되든, 되지 않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올 한 해, ‘기뻐하자. 기도하자. 감사하자!’는 표어를 늘 마음에 품고, 감사할 일을 찾아 범사에 감사함으로, 항상 기뻐하는 연습을 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하지 못할 일들에 대해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는 훈련을 통해, 결국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