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주인공과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
정동식
6월 초여름은 푸르름이 한창 짙어가는 성장의 계절이다.
베란다 관음죽도 쑥쑥 자라고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백일홍, 어느덧 4층 높이까지 키가 큰, 옆 동 은행나무도 성큼성큼 여름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붉은 장미꽃이 지나간 틈새로 가녀린 허리를 곧추세우며 접시꽃 층층이 피는 아침, 우리는 대구수목원으로 나들이하러 갔다.
수목원 서문 초입에 자리 잡은 W농원에 이른 아침부터 아낙네 두 분이 산딸기를 수확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그녀들이 작업 중인 밭둑 모퉁이에 큼지막한 호박꽃이 모처럼 아침 해의 자양분을 마음껏 섭취하며 입이 귀에 걸릴 만큼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내가 울타리를 비스듬히 삐져나온 대추나무를 가리켰다. 처음 보는 연둣빛 꽃이 보일 듯 말 듯 예뻤다. 별사탕보다 쪼그마한 꽃들이 줄다리기하듯 무지개 햇살에 가지런히 빛났다.
대추꽃이 이렇게 앙증맞았었나? 꽃뿐만 아니라 잎도 유별나다. 대부분 나뭇잎은 잎자루에서 가운데로 쭉 뻗은 굵은 잎맥이 하나 있고 양쪽으로 갈매기 모양의 가는 잎맥이 좌우로 갈라져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대추나무는 달랐다. 갈매기 모양이 아니라 잎자루에서 시작된 굵은 잎맥과 같은 방향으로 가늘고 완만한 곡선의 잎맥이 좌우로 한 개씩 간결한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물과 양분을 조금이라도 빨리 잎으로 전해주려고 그랬나 싶었다.
어느덧 유실수 단지에 당도하여 주홍의 석류꽃과 아침 인사를 밝게 나누었다.
석류꽃의 꽃말은 원숙한 아름다움이다. 붉은 자태는 초여름 나무꽃의 대표 선수라 할 만큼 기품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오늘 나의 관심은 꽃이 아니라 나무 아래 고이 낙하한 꽃받침이다. 꽃만큼이나 예뻤다. 꽃을 안고 논개처럼 떨어졌는데도 마치 매미가 허물 벗은 듯 육각형의 별 모양 그대로다. 꽃을 떠나보내고도 상처 없는 꽃받침.
다만 꽃과 분리되었을 뿐 그는 여전히 고고했다.
초여름의 주인공들은 이외에도 많았다. 감나무 꽃잎 진 자리에 갓 생겨난 꼬맹이 풋감, 감과 달리 가지 위로 탱글탱글 살이 오르고 있는 돌배나무, 노랗고 붉은빛으로 벌써 성장을 끝낸듯한 매실과 꽃자두, 잎새 위에 누워 하늘을 향해 순백을 뿜어내는 성스러운 산딸나무 하얀 꽃, 비린내 나는 수꽃들 옆에서 인연을 기다리는 밤 암꽃,
그리고 꽃창포와 원추리 등등. 이 모든 자연의 벗들이 초여름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도중, 서쪽 데크길 주변에서 이름 모를 특이한 꽃 하나를 발견해 사진에 담아 왔다. 집에 도착하여 살펴보니 산수국이었다. 산수국은 모란과 장미가 떠난 계절에 정원을 아름답게 채우는 여름꽃 중의 하나이다.
이 꽃은 보는 순간부터 다른 꽃과 확연히 달라 보였다. 상하좌우에 네다섯 송이의 꽃이 피었고 각각의 꽃은 4장의 꽃잎을 달고 있었다. 특별히 눈길을 사로잡은 건 사방에 핀 꽃 안쪽에 엄청 많은 수의 작은 봉오리처럼 생긴 존재들이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북하게 뭉쳐 피어 아직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것들은 대체 무엇일까, 산수국에 엄청난 비밀이라도 숨어 있다는 것인가? 얼핏 암술이나 수술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바깥쪽에 핀 꽃은 누가 봐도, 아니 다음날 봐도 진짜 꽃모양을 하고 있었다.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지만 이 식물은 가짜 꽃과 진짜 꽃을 동시에 피운다고 한다. 내가 진짜 꽃이라고 생각했던 가장자리 꽃은 가짜였다. 이 화려한 가짜 꽃은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존재하며 안쪽의 진짜 꽃이 수정을 마치면 가짜 꽃은 고개를 숙여 본연의 임무를 끝낸다. 진짜 꽃은 연녹색을 뛴 흰색으로 피었다가 꽃이 피는 동안 안토시아닌이 합성되면서 푸른색으로 변하며, 꽃이 활짝 필 때는 붉은색이 된다고 한다. 꽃의 색깔은 흙의 산성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니 이 얼마나 오묘한 자연의 섭리인가? 오늘 내가 우연히 만난 산수국 가장자리에 핀 꽃은, 가짜 꽃이며 흰 꽃이었다. 진짜 꽃은 푸른빛이 도는 흰색 꽃봉오리였다. 알면 알수록 신비한 자연의 세계!
수목원은 이렇게 언제, 어느 곳에 방문해도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기대감에 부풀게 해 주니 늘 신비롭다.
초여름은 한여름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무슨 일을 하거나 어떤 목표를 추진할 때 출발이 좋아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좋은 출발을 하려면 시작단계부터 충분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인생같이 먼 여정은 물론이거니와 가깝게는 연중 환절기에도 계절에 맞는 적절한 준비가 필요하다. 초여름 단계의 준비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여름은 사계절 중 물이 가장 많은 시기인 만큼 치수에 관한 대응은 꼭 필요하다. 다가올 장마와 태풍에 대비하여 물이 흘러야 할 곳은 막히지 않게, 물을 막아야 할 제방과 댐은 유실과 붕괴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집 안팎으로 아파트 베란다와 세탁실의 배수구 점검, 주택가 주변 도랑과 축대의 위험요인을 미리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가정생활에서도 여름 준비가 필요하다. 창고에 있는 선풍기를 꺼내 닦아야 하고 손부채와 휴대용 송풍기, 에어컨과 방충망 점검도 해야 할 것이다. 집은 물론 우리의 애마에 대한 사랑도 잊어서는 곤란하다. 차량의 에어컨 작동여부와 냉매가스 확인, 에어컨 필터교체 등은 입하준비의 기본이라 할 수 있겠다.
초여름은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계절이 바뀌면 옷가지 정리는 필수 항목이다. 봄옷은 세탁 후 정리해서 깊숙한 곳으로 들여보내고 여름에 입을 얇은 옷, 잠옷, 속옷, 양말을 준비하여 갈아입기 편리한 곳에 정리해 둔다. 손수건과 신발, 장화, 양산 등도 교체하거나 수리할 게 있으면 맡기고 정돈할 필요가 있다. 야외활동에 필요한 토시나, 모자, 선크림, 선글라스, 모기방어에 긴요한 홈 매트, 모기장 등도 찾아서 정리해 두면 금상첨화다.
최근 일기예보에 의하면 올해는 7월 한 달 중 사흘을 제외하고 내내 비가 오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기상청에서는 과학적 증명이 안 되므로 예보로서 큰 의미가 없다고 하나 3년 연속 라니냐 현상이 있었고 올해도 엘리뇨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는 등 기상이변 확률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봄이 역대 가장 더웠던 만큼 다가올 한여름의 폭염과 태풍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도 높게 다가올 수 있다.
자연재해는 설렁설렁 대비하는 것보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대비함이 좋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봄과 여름, 초여름과 한여름의 구분도 모호하게 되었으나 한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조치해야 할 일들을 미리 점검하고 준비한다면 후덥지근한 여름 나기를 기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2023.6.15.)
첫댓글
22 하반기 수필창작교실 6월 글제가 '초여름'인데 시기를 놓치면
몸에 맞지 않는 글을 올리게 될 것 같아 초여름이 가기 전에 부랴부랴 올립니다.
이쁘게 봐 주이소!!!
다음에 글을 쓰실 때에는 촛점을 하나로 잡아서 쓰세요. 앞 부분 꽃 이야기만 써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네 ~ 교수님 지도에 감사드립니다.
앞 부분 꽃 얘기에 촛점을 잡아 하나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