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느헤미야 5장 6-11절『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그런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부자들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경제적 가혹 행위, 즉 고리 대금을 통한 재산 및 자녀들의 탈취 사실을 듣고 크게 노했다는 것이다. 산발랏 일당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쌓는 일에 대해서 가졌던 것과 동일한 감정이다. 일치 단합이 요구되는 때에, 느헤미야가 그것을 깨뜨리는 부자들의 횡포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깊이(레브) 생각하고(말라크)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리브) 그들에게 이르기를”
말라크 레브는 심사숙고 하다 라는 의미다. 가난한 유대인들의 불쌍한 형편을 반전시킬 수 있는 방도와 고리 대금을 한 유력한 자들을 거기서 돌이키게 할 방법을 동시에 강구하는 것이다. 경제적 횡포를자행하는 부자들을 향해 분노의 감정이 솟구치는 중에서도 차분하게 사태의 해결책을 강구하는 느헤미야의 주도 면밀하고 냉철한 성품을 볼 수 있다.
리브는 논쟁하다, 꾸짖다, 변론하다 등의 의미다. 여기서는 고소하다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나샤) 하고 대회(케힐라)를 열고 그들을 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나샤는 고리로 빌려주다, 이자를 받다 등의 의미다.
느헤미야의 일차적 꾸짖음이 귀인과 민장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음을 암시한다. 이에 따라 느헤미야는 공개적인 모임에서 그들을 책망할 수밖에 없었다. 케힐라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공동체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카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카나는 획득하다, 도로 사다, 소유하다 등으로서, 여기서는 속량의 의미를 갖는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있었을 때 이루어졌던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즉,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동토 중 가난한 사람이 그 땅의 이방인에게 노예로 팔렸을 경우 율법의 명령에 따라 그 속전을 지불하고 거기서 해방시켜 주었던 것이다.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이것은 느헤미야 등이 페르시아에서 자신의 동족을 노예 생활 중에서 속량한 것과는 너무나도 대조되는 야만적 행위이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동족의 종살이를 했던 히브리인들도 제7년 째 되는 해에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으며, 동족인 유대인을 이방인에게 노예로 파는 일은 율법상으로 엄금되었다. 느헤미야는 귀인과 민장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도록 시도하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 가롯유다 역시 예수님을 유대지도자로부터 돈을 받고 팔아버렸다. 그런데, 예수님은 속량의 제물이 되셨다. 기롯유다는 예수님을 돈으로 받고 팔아서, 신성모독죄로 죽는 것에 앞장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속량되므로, 모든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죄로부터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내가 또 이르기를”
고리 대금을 한 귀인과 민장들이 느헤미야의 논리에 설복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그들의 죄악이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에 아무런 변명의 여지도 없이 다만 침묵했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그들을 직접적으로 책망한다. 귀인과 민장들은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이미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소극적 인식으로는 그들을 완전히 악행에서 손떼게 하기에 심히 미흡하였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처럼 자신의 책망을 계속하는 것이다.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의 부도덕 혹은 무자비함에 대해서 이방인들의 비방이 실제로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경외함에 행할 것은 최소한 노예에 관한 율법 규정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과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일은 불가 분리의 관계라는 점에서 그렇다.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형제는 느헤미야의 친 형제들을 뜻하고, 종자들은 느헤미야의 측근 혹은 그의 직계 부하들을 의미한다.
동족들을 도우려는 동기에서 돈 등을 꾸어줄 것을 강조하는 권면이다. 이처럼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인식하고, 또한 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솔선하여 이행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의 권면은 더욱 큰 호소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재물을 꾸어주고 그에 따른 정당한 이자를 받는일 자체는 정죄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이윤을 추구하는 탐욕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책망한다.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느헤미야는 이자를 기대하지 말고 꾸어줄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들은 본래 가난한 채무자들의 것이었으나, 그들이 빚을 갚지 못해서 채권자에게 넘어간 담보물이었다.
백분지 일은 그 당시 채권자가 자기들이 준 빚에 대해서 적용했던 월리였던 것 같다. 이 같은 금리는 사실상 당시 페르시아의 금리가 연 20% 이상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별로 높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가난한 자에게서 이자를 취하는 일을 율법으로 금했으며, 그 당시에는 흉년과 성벽 재건하는 일로 백성들의 경제 형편이 대단히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월 1% 금리는 매우 가난해서 먹을 것조차 없는 백성들에게는 과중하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영적으로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강압적으로 탈취하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1장 12절『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라는 말에서 지금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세례요한의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라는 말로서, 하나님 나라는 침노당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 천국을 마음대로 휘젖고 들어가서, 천국이 침노당할 수 있는가?
이 땅에서 천국은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천국이 침노당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된 자는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천국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3장 2절에서『회개하라 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했다.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헬라어 성경에는 폭력으로 하나님나라를 빼앗아간다고 되어있다. 천국을 강제로 폭력적으로 빼앗으려는 자가 있는 것이다.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제사장 등 종교지도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여버렸다. 그들은 율법의 조문을 지키므로, 스스로 천국을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