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달 열닷새, 흙날.
바람이 붑니다.
물리적 계절은 봄을 피워올려 여름을 준비합니다.
나날이 해가 길어지고
볕 바른 데서부터 새싹들이 올라오며,
새벽이면 겨우내 우리 땅에 와서 살던 오리무리가
하늘에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북쪽 어딘가를 향해 소리치며 날아가는
봄의 한 복판,
그런데 정치와 사회 그리고 문화의 계절은 이와 다릅니다.
사실이 아닌 것들을 이리저리 꼬고 비틀어 만든 허상에 홀린 이들이
이 정치·사회·문화의 표면을 어지럽게 흐트러뜨리면서
국가와 국가의 기반인 법과
그 법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흔들어댑니다.
이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분석하여 답을 내야 할 법의 작동체계가 있지만
그것이 오작동되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드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오늘의 자리에서 보면 법리적인 것들은
일반인으로서는 접근도 할 수 없고
가까이 다가선다고 해서 이해할 수도 없는
아주 복잡하고 까다로운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법이 그렇게 복잡하고 까다롭다 하더라도
법적 판결은 합리적이며 상식적인 자리에서 볼 때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당연한 결론’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결론짓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라고 판결하며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선을 그어주는 것이 법의 책무이고 기능이며 권한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결정이 내려졌다고 해서
법 자체를 부정할 수 없게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하지만 법이 모든 상황을 제대로 읽어내고
정확한 판결을 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법은 언제나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현장을 재구성할 수 있는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재구성을 교란시키는 또 하나의 법적 구조가 있으니
바로 법기술자라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변호사들의 문제입니다.
그래 저래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는
두 개의 바람이 불면서 소용돌이를 일으킵니다.
물리적 계절로서의 당연한 봄과
정치·사회·문화적 계절로서의 겨울,
문제는 바로 이 겨울입니다.
마치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했을 때처럼
해도 뜨지 않아 어두우며
그에 뒤따르는 혹독한 추위,
그 이름은 국가와 국체, 시민이 중심이어야 할 민주주의가
질식하고 있다는 사실,
지금은 헌법재판소의 시간입니다.
자꾸만 엷어지는 기대,
탄핵을 지지하는 집회에서 오가던 수많은 말들이
혹시 김칫국을 미리 들이켠 것은 아닌가 싶은 불안,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민주주의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하기나 한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오늘,
소용돌이치는 회오리바람이 일으킨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것 같은
극단적 불편함과 위태로움을 지켜보아야 하는 불안함,
아직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이 길고 긴 중얼거림,
살아 있다는 것은 꿈을 꾼다는 것,
다시 몸 일으키고 새 날을 맞이해 볼 참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키작은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