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취향 Y 의 헤비죠 씨의 리뷰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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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어스톰(Firestorm)『Amigos Para Siempre』
GMC/Seoul Records, 2008.1
아는 밴드, 잘 아는 음악하다
아주 아주 개인적인 취향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 같은 쓰래쉬 메탈이나 하드코어 펑크를 즐기는 팬들, 시간을 1986년으로, 공간을 뉴욕으로 돌려보자. 기존 헤비메탈이나 펑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초강력 음악이 드디어 뉴욕시와 뉴욕주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미국 전국 배급망을 타고, 아니 한국까지 그 존재를 알리기 시작하던 바로 그 때 말이다. 어그노스틱 프론트(Agnostic Front)는 문제의 『Cause for Alarms』를, 오버킬(Overkill)은 『Feel the Fire』를 앤슬렉스(Anthrax)는 『Armed and Dangerous』를, 뉴클리어 어썰트(Nuclear Assault)는 『Game Over』를 발매했다. 쓰래쉬와 펑크의 구분없이 뉴욕이라는 동네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놀던 젊은이들이 이제 뉴욕의 클럽 밖으로 당당히 나선 것이다. 기존 메탈에 비해 펑크처럼 훨씬 방방 뜨는 느낌(요즘 그루브라는 말로 표현되는)과 동시에 펑크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하게 달려가는 사운드로 무장한 음악들. 나는 1980년대 끝자락이 되어서야 뒤늦게 라이선스와 빽판으로 이 음악들을 들으며 흥분을 했다. 이렇게 거칠고, 이렇게 힘이 넘치는 음악이 존재할 수 있다니?! 미국에 친척을 가진 친구 녀석을 통해 구해본 어그노스틱 프론트의 라이브 비디오는 그저 공포에 가까운 충격과 움찔하게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흥분까지 해가며 왜 이 시절 얘기를 그리도 장황하게 할까? 그것은 이 때가 뭔가 형식이 만들어지던 시기란 얘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즉, 1986년이란 시간은 쓰래쉬 메탈도 뉴욕하드코어(NYHC) 사운드도 모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으로 나아가던 시절이란 말이다. 바로 3년 뒤 데뷔한 씩 오브 잇 올(Sick Of It All)이나 이어지는 매드볼(Madball) 같은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만들어지던 시기와 완성 후의 음악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당연히 씩 오브 잇 올은 무결점의 하드코어 사운드다. 동시에 이들의 음악은 이미 형식적으로 틀이 갖춰져 있다. 형식적 틀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 틀이 갖춰지는 순간, 틀의 기준에 적합하지 못한 음악들은 가차 없이 장르 밖이나 변종으로 치부된다. 어쭙잖게 틀을 깨겠다고 덤볐다가는 평단이고 팬들이고 묵사발을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그 틀은 더 공고해지고, 강력하게 뮤지션을 구속한다. 그 틀에 정말 골수로 반항하는 또 다른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전까지. 그러나 그 틀이 형성되던 시절에는 조금 다름도 인정된다, 아니 그런 다름들이 오히려 힘이 된다.
화이어스톰(Firestorm)의 음악은 바로 그 1986년의 상황이 떠오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정형화 된 하드코어, 요즘 밴드를 예로 들자면 테러(Terror)나 헤잇브리드(Hatebreed)풍의 메탈코어와 닮은 듯하면서 다르다. 화이어스톰의 기타톤은 최신의 그것과 많이 일치하지만, 구조에 있어서 매우 과거지향적이다. 오픈 E를 기본으로 놀랍도록 단순한 리프 진행과 솔로를 그다지 찾기 힘든 기타 구성, 그나마 솔로가 펼쳐지면 속주가 아닌 정통 헤비메탈/하드록이 연상되는 스케일 안에서 짜인 테마가 대부분이다. 바로 기존의 펑크에 싫증난 펑크 마니아가 메탈적인 펑크를, 메탈에 싫증난 메탈 마니아가 펑크적인 메탈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그 시절의 모습이 떠오르게 만든다. 화이어스톰의 태도는 물론 전자에 가깝다. 얄밉도록 영리한 것은 이 친구들의 작법은 그 시기에 초점을 두지만 그를 표현하는 사운드 톤은 올드스쿨이 아니라 매우 현재적이라서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공간감이 풍부한 드럼 사운드나 입자가 잘 뭉쳐졌지만 절도 있게 끊어지는 기타와 베이스 톤은 절대 문제의 1986년에 낼 수 없던 최신 사운드다. 밴드의 센스와 MOL스튜디오의 저력이 녹음부분에서 다시 한 번 느껴진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바로 보컬리스트다. 어떠하길래? 목소리 자질은 그다지 전형적인 하드코어 펑크 스타일과 멀다. 13스텝스(13Steps)나 언리쉬드 앵거(Unleashed Anger)같은 밴드와 비교해보라. 걸걸함은 물론, 날렵한 맛도 영 어색하다. 그렇다고 지구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밴드 멤버들, 그리고 곡명이기도 한 「Hardcore Family」들의 ‘떼창’이라 부르는 싱얼롱 코러스가 단단히 버티고 있다. 또 배경세(나인신, Ninesin)와 같은 후배 보컬리스트가 화끈하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2% 부족한, 어찌 들으면 아마추어의 느낌도 살짝 감도는 보컬이 오히려 싱얼롱을 유도하는 최고의 관객 몰이꾼으로 자리매김 된다. 결론적으로 틀에 박힌 현재의 하드코어 펑크, NYHC 밴드 보컬들과 많이 다르다는 감상에 이르른다. 그러나 밴드는 음반을 듣는 내내 그 보컬이 허전함 대신 개성과 노련함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이는 보컬만의 능력이 아니라 밴드 전체가 뿜어내는 아우라와 같은 것이다.
도대체 화이어스톰은 어떤 밴드이기에 능수능란하게 혹은 아슬아슬하게 하드코어 펑크라는 음악의 틀거리를 들락날락할까? 아마 해답은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인 Kyono(이하석)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GMC레이블의 수장이기도 한 이하석이 브레인이라면 당연하게도 하드코어 펑크를 그냥 허투루 듣지 않았을 것. 음악을 워낙 많이 접했던 그이기에 보컬로서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가장 하드코어스럽게 만회할 방법을 찾아낸 것 일지도 모르겠다. 2002년부터 즐기기 위해 결성한 밴드이다 보니, 이하석을 비롯한 멤버들도 음악적으로 가장 흥겨운 것을 찾아낸 것이리라. 그 즐거움의 귀착점은 정형화 된 하드코어의 틀이 모양은 점차 잡혀지되 아직 말랑말랑하던 그 과거의 어디로 튈지 모르던 시절로 귀결되었다. 멤버들도 자신이 편한 연주, 즐기는 연주가 하드코어로 모여지는 음악이 바로 그 과거에 시도되었기에 자연스럽게 따른 것이다. 기타 연주의 하드록적 성향, 완벽하지 않지만 기운찬 보컬의 에너지의 근원도 바로 이런 멤버들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이렇게 그들은 에너지와 즐거움으로 음악을 빚어냈고, 덕분에 음반을 통해서도 공연장 못지않은 힘과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멤버 교체가 많았다는데, 그 과정도 이 밴드에게 이렇게 나름대로 유연성을 지닌 하드코어로 나아가게 만들었을 것이다.
혹자는 화이어스톰의 음악이 그다지 정제되지 않았다거나 뭔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듣기에 이 밴드의 최고의 장점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유연함과 조금 정제되지 않은 듯한 분위기 덕분에 얻어진 에너지 공간의 극대화! 또 광고와 홍보 문구들에는 힙합과 펑크를 섞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귀에는 초창기의 통통 튀던 하드코어 펑크의 맛을 현대적인 음색으로 참 영리하게 되살렸다는 느낌이다. 지금의 하드코어 펑크가 너무 틀에 사로잡혀 잃어버린 과거의 스타일을 제대로 혹은 어쩔 수 없이 발굴해 낸 것! 음악이 너무 즐거워서 가만히 앉아서 듣고만 있거나 앨범 발매를 돕는 것으로는 참을 수 없어서 결성한 밴드, 그래서 첫 정규 앨범의 제목도 ‘인생의 친구’이지 않은가? 현재의 멤버들 중에는 GMC밴드인 나인신(Ninesin), 49몰핀스(49Morphines)을 비롯, 펑크 밴드 썩스터프(Suckstuff), 패이션스(The Patience)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도 보인다. 정말 하드코어한 펑크 프로젝트이자 밴드인 것이다. 가사도 줄곧 하드코어 펑크를 추구하는 친구들과의 우정, 결속에 맞춰져 있다.
재밌다. 들으면서 흥이 솟는 강렬한 음악을 만났다. 그리 무지막지하지도, 휩쓸어버리지도 않는다. 대신 같이 몸을 흔들게 만든다. 반갑다. 즐겁게 연주하는 것이 청자에게도 전달되는 펑크의 매력을 아는 밴드다. 11곡 30분. 어느 곡을 찝어서 말하기 힘든 울끈불끈 30분 모슁 타임. 아는 밴드의 아는 음악이 담긴 음반이다. (20080215 헤비죠)
★★★☆
공식 홈페이지 http://club.cyworld.com/xxfirestormxx
● 수록곡
01. On The Street
02. Big Time Hustler
03. 30360
04. Hardcore Family
05. One Scene Unity
06. Snowballer
07. Terry In Tha Bass Drum
08. Faith For Our Life
09. We Are In To Win
10. Amigos Para Siempre
11. Break Off
● 멤버
Mission Commander : Kyono
6 Strings 4 Moshing : Myul9
6 Strings 2 Dance : Sean
4 Strings 4 Groove : WookSe
Hammer Thrower : M.Hoon
● 음반정보
Exucutive Producer : Kyono Da GMC
Album Directed By Moock
Produced By Moock,Sacho Cho And Firestorm
Recorded And Mixed By SangHyun Cho
Sub-engineered By SungHo Kim & IlHo Choi
Recorded And Mixed At MOL Studio From October to December,2007
Mastered By Chae Seung Gyun
Mastered At Sonic Korea In January,2008
Back Ups By HyungGoon Kim(MAZE),KyungSe Bae(9CN),SangHyun Cho(Knockdown), IlHo Choi(MOL) With FIRESTORM
Art Direction And Design By WookSe
Web Design Supported By Bluce666
All Songs By FIREST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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