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성을 내려와 주교관을 지나 조금 걸으니 커다란 광장 저 쪽에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우뚝 솟은
두개의 첨탑이 보입니다.
소금광산으로 시작된 이 날의 순례는 알차게 꽉 짜여져 있는 느낌입니다.
500여년간 폴란드 문화의 중심지였던 크라코프 시장광장, 리네크 글로브니(Rynek Glowny)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이곳은 유럽 최대급 규모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마르코 광장 다음으로 큰 광장이지요.
주로 귀족들의 사교장 역할을 했던 광장의 중앙에는 수키엔니체(sukiennice)라는 직물회관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길이가 100m에 이르는 긴 건물입니다.
아래층은 기념품 가게, 윗층은 조각과 회화를 전시하는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요.
폴란드의 셰익스피어라는 민족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Mickiewicz)의 동상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둘러 앉아 있습니다.
수도복을 입은 수녀님과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인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일상의 시간을 떠나 순례의 길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들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닌
순례자로 비추일뿐입니다. .
폴란드는 전쟁의 피해가 컸던 나라이지만 크라코프는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주둔지가 있었던 곳이기에 공습을 피해
옛 동유럽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광장 한켠엔 꽃을 파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제라늄꽃들로 장식이 된 카페도 그렇고 폴란드로 들어서면서 보았던 자그마한 시골집들 창가에도 꽃이 가득했던 걸
보면, 이곳 사람들의 정서가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모습입니다.
두개의 첨탑 중에서 더 높은 쪽의 탑은 원래는 파수대 역할을 하였다고 해요.
적의 침입을 알리던 나팔수가 13세기 타타르족의 활에 맞아 목숨을 잃은 것을 기억하기 위해
지금도 매 정시마다 그 파수병이 불다가 다 못마친 부분까지만 나팔(헤이나우)이 울립니다.
성당 중앙의 문입니다.
순례객은 옆문을 통해서 출입이 가능하기에 저희는 이 문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지요
내부는 2유로를 내고 사진 촬영이 가능했습니다.
아름다운 성당 안의 중앙제대는 특히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입니다.
피아트 슈토스(Wita Stwosza)가 12년에 걸쳐 완성한 이 제대는 고딕양식으로는 가장 큰 제대로 세계 문화유산이며
폴란드의 국보입니다.
Mary's Altar라고 이름지어진 이 제대는 성모님의 일대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좀 자세히 보기로 합니다.
먼저 중앙부분의 아래쪽은 열두 사도가 성모님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이고 윗쪽은 성모님의 승천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양쪽 각 세 패널을 보면 왼쪽은 제일 위에서부터 성모님의 예수님 잉태, 예수님 탄생, 동방박사의 방문이며
오른편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성령강림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패널을 접으면 뒷쪽에도 성모님과 예수님의 생애가 묘사된 또 다른 여섯 패널이 있습니다.
위의 두 사진에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프레임 바깥 제일 윗 부분의 조각은 승천하신 성모님의 대관식 모습을
표현했지요.
참나무, 라임나무, 낙엽송의 줄기로 만들어진 이 제대 위 조각그림들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천장 모두가 아름답습니다.
지진으로 성당이 파손되었을 때는 시민들이 모금을 하였다는데 수시간 안에 시의 일년 예산보다 많은 성금이
모아졌다고 하니, 이곳 사람들의 신앙의 열정이 얼마나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지요.
물론 재물의 나눔이 신앙의 척도라고 단정지어서는 안되겠지만요...
벽에 새겨진, 성모님께서 천상 모후의 관을 쓰시는 모습입니다.
칼에 찔리는 아픔을 느끼시는 성모님의 그림과 십자고상이 반갑다고 하면 잘못된 표현이겠지만
캐더린님이 지난번 유럽 순례기에서 보여주셨던 터라 그 통고의 아픔 너머 성모님이 더 가까이
느껴졌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박물관 성당을 배경으로 분장을 한 사람이 꽃바구니를 들고 동상이 되어 있습니다.
분수 앞에서 꼬마 아이가 물장난을 하고 있는 뒷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요....
직물회관을 중심으로 성당과 반대편에 구시청사탑이 서 있습니다.
탑 바로 앞에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사람의 머리만 거대하게 작품이 되어 있습니다.
언뜻 보기만으로는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드는 작품입니다.
관광객들을 위한 마차들이 광장엔 많았는데요,
어린 꼬마 손님들의 마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볼거리요, 탈거리입니다.
직물회관의 실루엣입니다.
성당에서 나와 직물회관을 구경하고 각자 광장 주변으로 흩어져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카페에도 기웃거리고, 그림 가게도, 레코드 가게도, 또 앤틱샾에도 들르니 시간이 잘도 갑니다.
형제님이 같이 다니시다가 여자들이 가게에서 시간을 지체하자 슬그머니 사라지셨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죄송했지요...
해가 조금씩 기울고 직물회관에도 상가에도 불이 켜집니다
어둑해오는 시간 불이 켜진 성당이 아름답네요.
설명만 너무 장황하니 쉬어가는 마음으로 시 한 편 나눕니다.
우리 수채화 같은 꿈꾸면 안 될까 / 이기철
들길 걸으면 어느덧 내 발이 향기로워진다
햇빛 밝은 날은 눈감아도 보이는
다년생 풀의 초록빛 생애
꽃들은 한 송이만 피어도 들판의 주인이 된다
그리울수록 얼굴 환해지는 풀꽃들
세상은 결코 재가 된 것 아니다
부르면 달려와 은빛 단추가 되는 삶도 있다
햇살의 매질이 아픈지
풀잎들이 자주 종아리를 흔든다
어린 벌레들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물소리가 먼저 일어나 들판의 길을 연다
풀꽃 말고는 숲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사람 없다
숲을 나는 새는 부리마저 초록이다
나는 신발에 몸을 얹고
무참히도 쉰 해를 걸어왔구나
계절이 다하면 꽃들은 차례로 순교한다
나비와 벌들의 주소가 거기 있다
풀잎이여
이제 우리 수채화 같은 세상 꿈꾸면 안 될까
우리 한번 시내 같은, 놀 같은 삶
꿈꾸면 안 될까
하루 종일 걷고 설명 듣고 하다 보니 어느새 크라코프에도 캄캄한 어둠이 몰려오고,
많은 사람들이 수도인 바르샤바보다 이곳을 더 찾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어둠 속에서 성모 마리아 성당을 바라보자니 우뚝한 첨탑이 생의 방향을 가리키는
등대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성당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속에서 위안을 얻었을지요.
늦은 시간 광장에서 시내로 나오는 문인 플로리안스카 문 (Floriańska Gate)을 지납니다.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이 순례객의 발걸음을 한없이 따라올 것 같은 밤이 깊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