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이자 미술평론가, 서양화가인 김향안(본명 변동림)은 시인 이상과 결혼했다가 이상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결혼 생활이 4개월 만에 끝났다. 이후 화가 김환기와 재혼해 여생을 보낸 실존 인물
가끔 이상이 "동림이, 우리 같이 죽을까?"라고 속삭이거나 혹은 "우리, 어디 먼 데 갈까?" 하기도 했다. 물론 그 말들은 실천 의지가 의심스러운 공허와 찰나적인 감상주의에서 나온 것이지만 변동림은 그것에 이상이 갖고 있지도 않은 사랑의 윤리성을 더하여 받아들였다. 그 사소한 말들에 이화여전 문과에서 습득한 변동림의 교양주의가 크게 동요되곤 했다.
변동림은 이상이 사귄 첫 모던 걸이다. 이상은 그녀를 연모해서 그 앞에서는 입도 뻥긋하지 못할 정도로 경직되어 있었다고 한다. 처음 만나던 날, 씻지 않은 손으로 설탕통의 각설탕을 자꾸 꺼내 새까매지도록 만지작거려서 여급에게 핀잔을 들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시골 술집의 작부와 놀 때에는 여자의 정조에 대하여 초탈해보였는데, 그의 성적 결벽증을 일깨운 것은, 상대방에 대한 콤플렉스였을까? 아니면 잠재해 있던 가부장적 관념의 부활이었을까? 19세기와 20세기가 동거하는 그의 난해한 여성관 이중성의 연장선상에 이상의 문학 세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