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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알려 준 수행 설명)
《 사성제(四聖諦) 중 도성제(道聖諦) 방법? 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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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사들의 조언 (9) 》
제목 : 사유하고 성찰하면 사라진다 [맛지마니까야]
20241014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Zu8M9Vwdgbs?si=Lk-nHjptiCUKWA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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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들어보세요, 이 안에 해답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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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고 성찰하면 사라진다]
바로 이 제목이 [대념처] 수행 방법의 핵심 내용이랍니다.
특히 나의 성찰(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왜냐하면 자기를 보면서 자기 성찰을 하게 되면 마음이 부드럽게 되고 꺾이게 되고 자기 마음이 꺾이게 되면 마음을 비우고 버리기가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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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 제타숲의 아나타펜디까 승원에 머무섰다.
어느 날 세존께서
"비구들이여"
하고 제자들을 부르셨다. 제자들은
"세존이시여"
하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내가 아직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내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지금부터 나의 사유를 계속해서 두 갈래로 나누어보면 어떻겠는가?'
그래서 나는 한편으로 '이것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매인 사유이다.
이것은 분노에 매인 사유이다.
이것은 폭력에 매인 사유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것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읜 사유이다.
이것은 분노를 여읜 사유이다.
이것은 폭력을 여인 사유이다.'
(이하는 너무 길어서 다 올리자면 너무 길고요. ^^ 나머지는 끝까지 잘 들어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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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해설)
오늘 내용도 요즘 들어 제가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조견오온] 내용인데요.
여기서 말하는?
['이것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매인 사유이다.]
이것이 바로 (조견오온/몸에서 일어나는)에 관한 내용이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분노에 매인 사유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이고요.
어느 수행 방법으로 하시든 수행에 있어서 이 두 가지 사유(생각×바라보기)는 엄청나게 중요하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관찰하는 가운데 "어? 이거구나?" 하는 본성을 알아차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
여기서 말하는 사유란 생각해 보라는 것이고요.
성찰이란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포살(布薩)이랍니다.^^
쉽게 말하면?
여기서 일어나고 여기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일어난 자리에서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안되면 사유해 보고 성찰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내용인 고성제에 들 수가 있다는 것이고요.
그동안 많이 했던 내용들이라 못 보신 분들은 아래 내용들을 잘 참고해 보십시오?^^
오늘도 지면 관계상 바로 도성제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고성제>
https://m.cafe.daum.net/119sh/XASd/273?
<집성제>
https://m.cafe.daum.net/119sh/XASd/274?
<멸성제>
https://m.cafe.daum.net/119sh/XASd/27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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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도성제] 내용인데요.
[도성제]는 (사성제) 중 마무리 단계입니다.
도성제는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불성의 마음이 드러나야 가능하답니다.
그리고 불성에서 그때그때 지혜가 뿝어져 나와야 가능한 것이고요.
그리고 [도성제]는 [집성제]와 [멸성제]와 함게 지금 사람들이 가장 잘 못 해석하고 있고 가르치고 있고 잘못 배우고 있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도성제]는 수행의 시작 단계가 아니라 완전한 소멸로 이르는 마무리 단계라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수행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도성제는 제아무리 깨닫고 증득한 아라한이라 하더라도 아직은 방편 단계(城)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도성제]를 통해 완전한 소멸(해탈/열반)로 이르는 후 공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사리불과의 대화 내용에도 잘 묘사되어 있는 내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도성제]를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닦아야 할 후 공부의 내용이라 하는 것이고요.
매번 말씀드립니다만 불교 공부는 제아무리 서울대 출신이고, 하버드대 출신이고, MIT 출신이고 제아무리 박사 학위를 수십 개씩 가지고 있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상 법이지 부처님 법에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답니다.
왜냐하면 불교 공부는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공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둘 다 좋으면 금상첨화이지요.
제 말은 머리로만 공부하고 마음으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지금 최고 어른들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불교는 [마음공부]라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특히 지식을 쌓는 곳이 아니라 이미 수십수만 억겁 동안을 경험들로 쌓인 지혜를 되찾아서 쓰는 종교이기 때문에 머리로만 외우고 익히면 절대로 안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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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제]는 한마디로 말하면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마지막 완전한 소멸(해탈)을 위한 수행 방법이랍니다.
그래서 깨닫기 전의 분들은 [도성제] 내용들은 그냥 이런 것들이 있구나 하는 것 정도만 보시고 이루려고 애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깨달을 목적으로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깨닫고 나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약발이 먹히니까요.
왜냐하면 아니 어떻게 아직 깨닫지도 못하신 분들이 바르게 보는 [정견]을 할 수가 있고, [정사유] 등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것들을 감당할 만한 지혜가 없는데요.
더군다나 육신통이나 육바라밀 등은 일반 사람들은 손도 못 댈 그런 내용들이고요.
왜냐하면 이런 것들을 감당할 만한 본성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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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제]는 도성제를 통해 깨닫고 증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들이 도성제 수련을 통해 완전한 소멸(해탈/열반)로 들게 하는 후 공부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사람도 저를 포함해 도성제 내용들을 100% 완벽하게 소화해 낸 사람은 부처님 외에는 없고요.
아직 본성 자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불법을 가르치다 보니까 도성제를 잘 해야 깨달음으로 갈 수 있다 하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오늘 내용은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모들에게 부탁을 드린답니다.
각자가 배우고 있는 스승들이나 가르치는 위치에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이 글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그분들의 근기에 맞기시면 될 것 같고요.
제 자신을 드러 내는 것 같아서 이런 이야기는 잘 안 하는 편이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적극성이 필요할 때에는 꼭 하는데요.
제가 비록 지금은 재가자로서 이번 생에는 이 법을 정식으로 만난 지 6년 정도 박에 안 되지만 전생까지 하면 그 어떤 누구보다도 제가 대 선배일 것입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차이로 말이지요.
그만큼 이 법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자주 [불법]이라 하지 않고 [이법]이라 하느냐 하면 우리들이 아주 머나먼 과거 생에 알아차림을 할 때에는 현생의 싯다르타도 없었고 출가도 없었고 그 이전의 이전의 부처님 시대부터 수행을 해오던 수행자 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실)
제가 왜 '우리들' 이란 표현을 썼느냐 하면 현생의 부처님 계열의 줄기가 있듯이 그 이전의 부처님 줄기의 보살들이 지금도 각자의 세계에서 이 법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법을 깨닫기 전에는 저의 과거 생을 전혀 몰랐었지만 지금은 왜 제가 4살 때 그런 일이 있었고, 부모와의 인연 처 자식과의 인연 법우들과의 인연 등을 알게 된 케이스인데요.
지금도 과거 생에 같이 수행을 했던 여기서 말하는 도반들이 자꾸 여기에 있지 말고 그쪽 세계로 오라고 한답니다.
제가 할 일이 많다고요.
여기는 곧 암혹 세계로 접어들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이법의 끝마무리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는 거의 안 하는 편인데요.
[도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러분들이 자극 좀 받으시라고 딱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 드릴까요?
믿건 안 믿건 그것은 여러분들 자유랍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진실로 진실로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드리는 내용이랍니다. (진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은 저희가 과거 생에 했던 재미난 내용들이 아주 많은데요.
그러나 부처님 말씀이 일반 사람들이 들으면 간탐에 빠지기 쉽다고 해서 저도 안 하는 것인데요.
그리고 이 내용은 약초유품(藥草喩品)에 아주 자세히 비유로 나와있기도 하답니다.
내용은 대충 이런 내용이랍니다.
단 한순간에도 빠지지 않고 법비(방법)는 내리고 있지만 법비를 받아들이는 나무(몸/생명체)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고 설령 나무가 있다 하더라도 근기(인식)가 없으면 말짱 꽝이라는 것이고 근기(인식)가 있다 하더라도 자라는 나무의 크기들도 제 각각이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현인류에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이전에 이전에 또 이전에 아승기겁 무량겁 동안 이 법(법비)이 전해지면서 진행되는 과정을 비유로 그린 내용이랍니다.
여러분들? 정말로 지금 이 내용을 잘 세겨들스셔야 한답니다.
저도 그래서 기를 쓰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금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이 법은 깨닫지 못하면 무명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절대로 현재 자기 위치를 모를 수 박에 없답니다.
여러분들 대부분의 위치가 이법을 깨닫는데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 모르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장자)이나 저나 답답해하고 있는 것이고요.
쉽게 말하면 이전 부처님 시대뿐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 한 시대의 인류에만 보더라도?
이 지구에 생명체가 생겨나고 진화하면서 수십억 년을 거쳐 오는 동안에 법비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확률은 0.0000000000001%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진실)
그 0.0000000000001%의 확률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지금 우리들이라는 것이고요. (진실)
왜냐하면 여러분들도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사유(생각) 해 보십시오?
현생 인류에 눈에 보시기 시작하는 생명체들이 생겨나면서 수십수백 억년을 진화해 오면서 과연 이런 내용들(법비)을 받아들이고 소화하기 시작한 시기가 과연 언제쯤부터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구석기, 신석기 사람들이 과연 이러한 법비를 이해하고 납득하고 따라 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의 원숭이 지능(인식) 수준 박에 안되는데요?
구석기, 신석기 시대래봐야 고작해야 지금으로부터 1~2만 년 전 박에 안되는 시기랍니다.
여러분들도 부처님이 하셨던 것처럼 한번 사유를 해보십시오?
현생 인류가 암혹기에서 한 생명체가 생겨나면서 진화해 오는 기간이 과연 얼마나 많은 세월들이 소요되었지는를 말이지요?
아마 정확히는 모르더라도 수백수십억 년 이상은 걸리지 않았겠어요?
그 오랜 세월 기간 동안에도 법비는 계속해서 내렸을 것인데 과연 이 법비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간은 과연 몇 % 나 되었을까요?
아마 모르긴 해도 0.0000000000001%도 안되지 않았을까요?
그렇잖아요?
현생 인류에 생명체가 생겨나고 지금까지 수백수십억 년의 세월들이 진행되는 동안 고작해야 지금으로부터 이 법을 이해하고 따라 한 시기가 고작해야 1만 년 전 박에 더 되겠느냐 이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1만 전 사람들보다도 사유(지능) 능력이 몇십 배는 더 발달되었는데에도 불구하고 이러고들 있으니 얼마나 안타깝고 어리석으냐 이겁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다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현생 인류의 생명체들이 다시 소멸(멸망) 하고 암혹기에 접어들게 되면 현생 인류의 생명체들이 생겨나고 암혹기에 접어드는 세월만큼 또 흘러야 다시 암혹기에서 벗어날 즘에 새로운 인류의 생명체들이 디시 탄생하게 되는데 그 오래 세월을 또 헛 시간으로 보내야 하는데 여러분들이 바로 그 위치에 처해 있는데 부처님이나 저나 왜 안타까운 마음이 안 들겠습니까?
이해가 가시나요?
이런 좋은 시간대에 태어난 우리들이 불타는 집에서만 놀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이런 인식 기능(머리/생각 기능/그래서 부처님은 대념처를 해보라 하는 것이고 사유를 해보라 했던 거랍니다)을 가지고 태어났을 때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깨닫고 암혹 세계(어둠)로 다시 빠져들지 않을 것인데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으니 부처님 눈에는 당연히 우리들이 불쌍해 보이고 어리석게 보였던 거랍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이번 인류에 생명체가 생겨나면서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눈에 보이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배로 기어다니는 것, 다리가 많이 달린 것, 하늘을 나는 것 물속에 있는 것, 두발로 다니는 것 등을 통해 수십수백억 년을 통해 윤회(진화) 해 오면서 이제서야 겨우 사유(생각) 하고 대념처(처해진 것에 대한 큰 생각)를 하고 성찰(省察/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는데 이 좋은 시기를 다들 놓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하냐 이겁니다.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이런 좋은 기회에 이것을 눈앞에 가져다 놔도 믿으려 하지 않고 얻으려 하지를 앓고 화택 속에서 노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으니 당연히 부처님(장자) 입장에서는 안타까워서 속이 터지는 것이지요.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법을 깨닫겠다고 출가한 승려들이 저러고들 있으니 더 기가 찰 노릇이고요.
더욱더 기가 막힌 것은 최고 어른 스승들이라 하는 사람들이 저런 간탐(慳貪)에만 빠져있으니 더 기가 찰 노릇이고요.
그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모든 수행자들에게 모든 불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데 어떻게 깨어있는 한 사람으로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을 수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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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그동안 수많은 부처님들이 탄생하면서 당시의 생명체들이 어떻게 소멸(멸망) 되어 갔는지 혹시 아시나요?
지금으로 하면 이 지구의 생명체 들이 어떻게 소멸(멸망) 되어 갔는지 아시느냐 이겁니다?
깨닫기 전에는 저도 몰랐지만 지금은 너무나 잘 알게 된 내용이기도 하답니다.
왜냐하면 저도 다 거쳐온 세계들이니까요.
물론 여러분들도 다 거쳐온 세계들이지만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에 모르고 있는 것뿐이고요. (진실)
그래서 이러한 인연법을 모르고 있다고 해서 무명(無明)이라 하는 것이고요.
아직도 한 치 앞도 못 보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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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든 인류가 소멸(멸망) 할 때에든?
가장 최고의 인류 문명을 꽃피웠을 때에 그리고 이법이 완전히 소멸해 갈 때쯤에 항상 그 당시의 인류는 소멸(멸망) 해 갔었답니다. (진실)
그리고 지금의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체들이 완전히 소멸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이고요.
그리고 눈에 보이는 새로운 생명체들이 다시 탄생하기 까지는 암혹기를 거쳐서?
현재의 생명체들이 처음 탄생해서 소멸할 때까지의 기간의 딱 두 배의 세월이 흘려야 또 이런 법비를 이해하고 소화해 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 암혹 기간 동안은 완전히 불지옥일 것이고요.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시방세계를 설명하시면서 갠지스강의 모든 모래알 수를 가루로 내어 먹물로 만들어 한 방울씩 일렬로 줄을 세웠을 때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있겠느냐? 고 사리불에게 묻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랍니다.
그리고 또 각각의 모래알 수만큼 아승기겁 세월 동안에도 무수히 많은 일월 광명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중에서도 일곱 분의 부처님들을 말씀하시면서 그중에 아들들이 있었으니 이 아들들이 아버지가 부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하여 지금은 팔방으로 흩어져서 각자의 세계에서 이 법을 전하고 있는데 마지막 세계인 시방세계(지구)에 또 한 분의 부처가 있었으니 그분이 바로 나 석가모니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대목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석가모니의 세계의 법비도 곧 생명이 다해가고 있다는 것이고 최고조로 인류 문명이 발전해 있을 때쯤에 이 사바세계도 소멸(멸망) 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 시기가 지금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고요.
소멸한 후 다시 이 땅에 새로운 생명들이 다시 도래하려면 암혹기를 거쳐야 하는데 그 기간이 인류에 생명이 생겨난 후 끝날 때까지의 세월만큼 길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늘 그래 왔으니까요.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이 말이지요.
그래서 부처님은 모든 것을 윤회로 표현했던 거랍니다.
이 내용은 구약과 신약 성서에도 아주 잘 표현되어 있답니다.
1. 태초에 하나님(본성/불성)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바로 이 대목이 암혹기(어떤 생명체도 없음)를 표현한 것이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가 바로 본성(불성/마음)이 운행하고 있다는 뜻이랍니다. 몸으로 들어갈 육체가 존재하지 않으니 그럴 수 박에요? 깨닫지 못하면 여러분들도 곧 그렇게 될 것이고요.)
(이하 생략)
그리고 또 요한복음 6장 21절~30절에도?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바로 이 내용이 불교 식으로 말하면 부처님이 죽은 자를 즉 중생들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고 그 깨달은 아들들(제자들) 또한 원하는 자들을 다시 깨닫게 한다는 뜻이고)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바로 이 대목이 진정한 선지식인들은 곤경을 밭을 수 박에 없다는 뜻인데 지금은 아예 깨달은 사람들을 절 박으로 내몰고 있다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이 시기가 바로 말세(소멸/멸망)의 시기라는 것이고요.)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바로 이 대목이야말로 엄청나게 중요한 대목이랍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영생 즉 불성을 증득한다는 뜻이고 심판의 날 즉 지구 소멸(멸망)에 날에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는 뜻인데요. 불교 식으로 말하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도피안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이 내용 또한 불교식으로 말하면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즉 일반 사람들 입장에서 봤을 때 비유를 하면 지금 땅속에 묻힌 모든 본성(불성/마음)이라는 뜻이랍니다. (비유일 뿐 실제로 본성이 땅에 묻힐 수는 없음^^)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즉 부처님의 제자들인 지금의 선지식인들의 가르침을 듣고 견성한 자들은 시방세계가 소멸(멸망) 하더라도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지요.
그 자리는 죽을 수가 없는 자리이니까요.
문제는 지금은 제대로 된 선지식인들이 과연 있겠느냐가 문제이지요?)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이 말도 맞는 말이고요.
제가 자주 비유하는 풍선 내용과 같은 내용이랍니다.
풍선 안에 있던 공기는 언제든 다른 풍선으로 옮겨 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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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사도신경이나 요한복음이나 데살로니가전서 등에는?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하는 내용도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저리로서" 란 "거기로부터" 란 뜻이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기로부터" 란 암호기라는 뜻이고
불교 식으로 말하면 말세(末世/세상의 마지막을 뜻하는 단어)를 뜻하는 것으로 지구의 생명체들의 소멸(멸망)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이때에 죽은 자(못 깨달은 자)와 산자(깨달은 자)로 갈라진다는 뜻이고요.
여기서 말하는 죽은 자는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고 산자는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대가 가까워 왔음을 저는 저의 본성 자리로 지금 분명하고 아주 진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생에 저와 같이 수행했던 도반들이 자꾸 여기에 있지 말고 그쪽 세계로 오라 하는 중이고요.
왜냐하면 이 지구에 다시 생명체들이 생겨나려면 지금 시간대로 계산해도 어마어마한 세월이 흘러야 하는데 여기서 뭐 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도 친구들이 있는 다른 세계로 갈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이고요.
가족들은 어떡하냐고요?
가족이 어디 있습니까?
나도 없는데요?
현재의 나가 나입니까? 그러면 과거 생에 나는요? 과거 생의 가족들은요?
누가 진짜 내 가족들이고 누가 진짜 나이지요?
늘 변하는데요?
늘 모였다가 흩어지는 무상한 것들인데요.
그래서 옛 중국 어른들은 한문으로 본래 나는 없다 그래서 제법무아(諸法無我) 제행무아(諸行無我) 그랬던 것이고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상(諸法無相) 그랬던 것이랍니다.
이것을 공(空)으로 표현한 것이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인 것이고요.
이것을 정확히 보고 느낄 수 있어야 그것을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고요.
이 말의 뜻은 나라는 존재는 물론이고 일체 만물이 없다는 뜻이 아니고 무상하고 공하다는 뜻이랍니다.
왜냐하면 본래 고정된 바가 없는, 실체가 없는 것들이니까요?
가족들만 해도 지금의 부모나 처자식들을 가족이라 하겠습니까?
아니면 과거 생에 같이 했던 수많은 가족들을 내 가족이라 하겠습니까?
모두가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것인데요.
그래서 예수님도 심판(사바세계의 소멸/멸망)의 날에 불타는 지옥불에서 "주여 주여 나를 모르시나이까?" 한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모르느니라" 하는 식으로 말씀을 하셨던 거랍니다.
일반 사람들 눈에야 지금 박에 못 보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가족들이 내 가족이라 하겠지만 깨달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누가 누구를 내 가족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주리반다가에게 "내게로 오지 않겠는가?"
또는 예수님도 "내게로 오라" 와 같은 말씀들을 많이 하셨던 거랍니다.
이 말의 뜻은 몸이 아니라 불성(성령)의 마음으로 들어오라는 뜻이고요.
육체의 나가 아니라 육체의 부모나 처자식이 아니라 불성(성령)의 나와 부모나 처자식으로 들어오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마음(불성/본성/성령) 법이기 때문에 내가 본성의 마음에 있지 않고 가족들에게 마음이 매여 있으면 그 어떠한 것에도 마음이 매여 있으면 또 마음이 그곳에 붙들려서 매일 수 박에 없기 때문에 그동안 같이 했던 수많은 가족들 또한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중생들 입장에서 보면 아주 냉정한 종교라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부처님도 그러셨고 예수님도 그러셨고 지금도 수많은 수행자들과 수도사들이나 저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안 그러면 억지로 이름 붙여진 나도 같이 죽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을 일반 사람들에게 해주면 불교는 가족들까지 버려야 한대? 하면서 자꾸 분별을 하니까 부처님도 사리불에게 근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들은 해주지 말라 하셨던 것이고요.
문제는 이 귀중한 시간에 많은 출가자들이 그것도 최고 어른들이라 하는 사람들이 엉뚱한 곳에 의식들을 두고 있어서 그렇지요.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금 출가자들처럼 아무리 가족들과 떨어져 있으면 뭐 하겠습니까?
아무튼 제가 여러분들에게 진실로 진실로 분명히 당부드리고 싶은 내용은 지금이라도 어떡해서든지 중생의 몸을 벗어나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100% 이쪽 세계에서 못 벗어나고 지금 사바세계가 소멸(멸망) 하고 다시 생명체들이 탄생하기 까지는 불지옥과 어름 지옥에서 지내게 될 것이니까요.
왜냐하면 지금이야 이런 육신이라도 있겠지만 이 지구가 이번 생을 다하게 되면 이런 육신조차도 없기 때문에 그때에는 어디에 가서 집(몸)을 짓고 지금처럼 살아가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시간대로 계산해도 수십수만억 년 동안을 이 지구는 빙하기로 접어들었다가 다시 태양처럼 불타올랐다가 또다시 빙하기로 접어들었다가 다시 불타는 지구로 접어들었다가 수도 없이 끝도 없이 이런 세월을 반복하다가 수십수만억 년이 흐르고 난 후에야 다시 새로운 생명체들이 탄생하게 되는데 이런 곳에서 꼼짝없이 잡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본성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본성은 알아차림의 결정체인데 그 고통을 뭘로 다 감당하시려 합니까?
죽으려 해도 죽을 수도 없는데요.
여러분들은 믿지 않으시겠지만 이법을 깨닫게 되면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답니다.
말을 안 할 뿐이지요.
친구들이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그렇게도 제잘 제잘 말이 많던 놈이 갑자기 말수가 줄었다고요?
얼굴은 편해 보인다 하면서요.
그렇게 될 수 박에 없답니다.
왜냐하면 모를 때에는 모르니까 말이 많아도 알게 되면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거든요.
물론 깨달았다고 처음부터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부처님의 경전이 필요한 것이고 도성제 같은 길잡이가 필요한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처럼 부처님의 말씀(경전)을 통해 다시 과거 생을 기억하게 해서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 부처님 시대에도 이와 같은 길잡이가 있었었고요. (진실)
아무튼 [도성제]는 [고제]→[집제]→[멸제]를 통해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도제]를 통해 완전한 소멸(해탈/열반)로 이끄는 수행 방법을 기록해 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완전한 소멸]이란 표현을 하셨고 중국 어른들은 [완성(完成)]이란 표현으로 [도제]에 기록해 둔 것이고요.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어떻게 아직 깨닫지도 못한 사람들이 [정견]을 할 수가 있고 [정사유] 등을 할 수 있겠는지를요?
이러한 [팔정도] 내용들은 깨달은 사람들 만이 할 수 있는 지혜(智慧/知慧)를 뜻하는 표상들인데요?
어떻게 깨닫지도 못한 사람들이 [육신통]을 하고 [육바라밀] 같은 것들을 할 수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 마음은 도성제 내용들을 감당할 만한 마음의 힘이 없는데요?
그래서 지금 한국 불교는 가르치는 어른들이나 위치에 계시는 분들이 다들 잘 못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허 선사가 말씀하신 것처럼 이가 빠지듯 절반만 알고 가르치고 있고 배우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고요.
지금처럼 도성제를 통해 깨달음으로 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어른들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당신들께서는 지금 [도성제]의 내용들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계시느냐고요?
그러면 저도 인정을 하겠습니다.
어떻게 자기들도 못하고 있는 것들을 일반 사람들에게 하라고 할 수가 있느냐 이겁니다?
특히 절에 보시바라밀을 많이 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하면서 말이지요?
지금 가르치고 있는 위치에 계시는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해주십시오.
도성제 내용들은 고사하고 점쟁이나 죽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당 노름이나 안 했으면 좋겠다고요.
여러분들이 말을 못 하시겠으면 제가 "그러더라" 하시고요.
이 글을 보여주셔도 좋고요.
그런 행위들은 불 종자를 끊는 행위들이라고요.
천도재만 지내주면 누구나 극락왕생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누가 힘들게 수행을 하겠냐고요?
싯다르타의 불교는 죽은 사람들을 제도하는 법이 아니라고요.
산 사람들을 제도하는 법이라고요.
♡
아무튼 초보자분들은 [팔정도]나 [육바라밀] 같은 도성제 내용들은 사전을 한번 찾아서 내용들만 잘 참고해 보시고요.
지금은 [고성제]와 [집성제]와 [멸성제 ] 알아차림에만 집중을 하십시오.
이렇게 제대로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알아차리고(고~집~멸) 사유(생각) 하고 성찰(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 하면 부처님 말씀대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 자리에서 사라진답니다.]
그러면 도성제 내용들은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하게 되어 있답니다. (진실)
도성제에 관한 내용들 이야기를 하자면 제 경우는 과거 생에 있었던 일들이 훨씬 더 재미난 일들이 많은 편이데요.^^
사실은 도성제 얘기가 나온 김에 과거에 있었던 저의 이야기들을 몇 가지 쓰긴 써두었었는데요.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이야기보다는 여러분들이 깨닫는 것이 더 급하기 때문에 써두었다가 믿을 것 같지도 않고 해서 도로 다 지웠답니다.^^"
아무튼 지금은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내용만 잘 따라 해 보시고요.
그래도 불교 용어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다시 쉽게 정리해 드리면?
1.
평시에는 그냥 나를 알아차리면서 생활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그냥 내가 나를 보면서 생활해 보십시오.
2.
그리고 어? 내 마음에서 화든,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두려움이든, 서두는 마음이든 그 어떠한 마음이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있으면 100% 내 몸에서도 같이 일어나는 것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찾아서 몸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무상(곧 변하다) 한 것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들은 곧 사라질 것이다 하면서 바라보고 사유(생각) 하고 성찰(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 하면서 관찰해 보십시오.
단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루도 거르지 마시고 하셔야 한답니다.
제 경우는 거짓말이 아니라 법화경을 보기 시작한 날로부터 지금까지 10년간 단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답니다.(진실)
♡
음..
저를 내세우는 것 같아서 이런 이야기는 잘 안 하는 이야기인데요.
[도성제] 얘기가 나와서 큰 도인들이라 하는 분들을 그동안 보면서 있었던 내용 중 하나만 이야기하고 끝을 내겠습니다.
지금 이 내용은 이 스님을 비하 하기 위해서 하는 내용이 절대로 아니고요.
다만 우리 모두가 정신들 좀 차리자는 의미에서 이야기해 보는 내용이랍니다.
이번에 불교 뉴스를 보니까 남쪽과 북쪽도 모자라서 중간 쪽도 나왔더라고요?
참으로 우리나라는 큰 도인 어른들이 많아서 좋겠습니다?
세분 식이나 있으니 말입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이법을 알게 된 초기였는데요?
제 경우는 혼자서 사전을 특히 네이버 사전을 뒤지면서 공부를 한 경우랍니다.
그런데 이법을 알고서 네이버 사전을 보니까 너무 잘못된 해석들이 많은 거예요?
네이버는 지금은 한국 사전과 같잖아요?
그래서 하루는 한 고명하신 스님에게 이러한 잘못 해석된 내용들을 고치려면 누구를 찾아가야 하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이 분의 말씀이 북쪽에는 누구? 남쪽에는 누가? 하면서 이분들을 찾아가면 될 거라 하기에 마침 남쪽에는 한 행자님이 요양 중이라 가는 김에 가보았고
북쪽은 그나마 가까운 편이라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런데 남쪽에 있는 큰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은 친견비를 3~50만 원을 달라고 하고 북쪽에 있는 늙은 사람은 가보니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때 마침 엄청 크게 천도재를 지내고 있더라고요?
저는 정말이지 그때까지만 큰 스님들은 모두 다 고승들인 줄 알았답니다.
그때만 해도 이 두 사람들을 정말로 대단한 어른들로만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완전히 깡통들만 있었다는 것인데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날 이후 큰 무당의 모습으로 천도재에 푹 빠져있는 모습들을 보고서 그 뒤로는 스님들이라 해도 수행승들 말고는 지금은 가려서 만나고 있는데요.
괜히 이런 쓸개 빠진 스님들을 만나봐야 수행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그래서 그 뒤로는 한심한 한국 불교의 현실을 보고서 저 혼자 경전을 보면서 지금도 후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인데요.
정말이지 저는 지금도 제대로 된 수행승에 목말라 있답니다.(진실)
그래서 그동안 수도 없이 고승이라 하는 분들을 찾아가 보았던 것이고요.
유치하게 선문답을 해보고 싶어서 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고요.^^
제 경우는 정식으로 불교를 배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도 하나 더 배워보려고 지금도 이 나라 저 나라 승려들을 기웃거리고 있는 중인데요.
오로지 제 목적은 그쪽 나라 승려들은 수행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특히 사성제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어떤 식으로 수행에 적용시키고 있는지 등이 궁금해서 찾아다니는 것인데요.
그래서 얼마 전에는 달라이라마 밑에서 30년 넘게 수행을 하고 있다가 잠시 한국에 들어온 스님이 있다고 해서 쏜살같이 이분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강원도 어느 산골까지 찾아간 적도 있었는데요.
저는 이런 분들을 찾아뵐 때에는 꼭 영가 스님이 육조 혜능을 찾아뵙을 때 선물한 고급 월병을 중국 회사에 얘기해서 꼭 들고 가거나 시간이 없을 때에는 양봉장에서 가서 진짜 꿀단지를 하나 구입을 해서 들고 가거나 이것도 시간이 없어 준비를 못 하면 식사 대접이라도 하고 오는 편인데요.
그런데 달라이라마 밑에서 30년 넘게 수행을 하셨다는 분을 찾아갔는데 수행 이야기는 안 하고 봉사한 얘기만 잔뜩 하기에 수행 이야기 좀 해 달라고 했더니 이 스님도 깡통인 거예요?
제가 미쳤다고 힘들게 스님이 봉사한 이야기나 들으려고 강원도 그것도 깊은 산골까지 찾아갔겠습니까?
그래서 들고 갔던 꿀단지를 도로 뺏어서 들고 왔던 적도 있었답니다.
오면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 한 청주에 어느 선원에 들려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배꼽을 잡고 웃더라고요.
그래서 그 선원에 꿀단지를 드리고 차 마실 때 나눠 드시라고 하고 온 적도 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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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3년 전쯤 되었나요?
[법구경]에 이런 구절이 있답니다.
(가사를 수 했을지라도 깨끗하지 않고 절제하지 않고 진실하지 않은 자 그는 가사 입을 자격이 없다. 【9게송】)
라는 내용의 구절이 있는데요.
이 내용도 도성제에 해당하는 내용이지만 지금 말씀드릴 이 큰스님도 이 법구경에 나오는 가사 입을 자격이 있겠는지?
여러분들이 이번에는 저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 보시고 직접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분이 종단에 최고 수행자들의 방장으로 적합한지도 판단해 보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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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한 도반이 대한민국 최고의 선승이 있는데 이 분을 한번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아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반가워서 귀가 번쩍 뛰었답니다. (진실)
이런 것이야말로 제가 바라는 것이거든요.
최고의 고승과 만남 말입니다.
저야 땡큐지요.
그래서 얼마나 많은 기대를 하면서 당시에 이 분의 자료들을 찾았는지 모른답니다.
실제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서로 나눌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큰 기대를 하고 자료들을 찾아본 것인데요?
그런데 자료를 찾다 보니까 고향이 제 부모님들과 같은 고향분이라 더 반가웠답니다.
진짜로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불교 쪽 사람들은 별로 모를 때라 진짜로 고승들을 만나보고 싶었거든요.
저만큼 이름난 스님들을 많이 찾아다닌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은데요?
그런데 실제로 유명한 스님들을 찾아가 보면 전부가 천도재에 빠져 있는 무당 승려들이었다는 것인데요.
아무튼 대한민국 최고의 선승이라는 분을 찾아 가기에 앞서 그 선원에 전화를 먼저 해보고 가려고 전화를 했었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저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생년월일은 무엇이냐?
태어난 시간은 언제냐?
얼굴은 크냐 작으냐 길쭉하냐 둥그냐?
키는 얼마나 되냐?
등을 말이지요?
그리고 끝에는 큰 스님 용돈으로 3~50만 원 정도를 준비하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이때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남쪽에 누구라고 하는 어른을 찾아가려고 했을 때에도 친견비 조로 3~50만 원 정도를 준비하라고 해서 놀라지는 않았었는데요.
아무튼 그때까지만 해도 불교 쪽 사람들을 아는 것이 적을 때라 속으로
"뭐 이런 날 도둑놈들이 다 있나?"
했었답니다. (진실)
대한민국 최고 무당 들도 친견비가 5만 원인데 불교계에 최고 큰 스승이라 하는 사람들이 50만 원씩을 요구하니 저로서는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들 수 박에요?
그렇잖아요?
닭털도 안 뽑고 날로 먹으려 드니 그럴 수 박에요?
무슨 말이냐 하면 만나기도 전에 돈 얘기부터 하니 저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답니다.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선승이라는 큰 스님이요?
저는 그때 단박에 "이 사람은 100% 가짜다" 했었답니다.
왜냐하면 도성제 내용에 하나인 육신통에 해당하는 신통력이라는 것은 사주나 관상 따위로 알아차리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보면 "척!"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그럴 것 같으면 유명한 점쟁이나 큰 무당들을 찾아가서 공부할 것이지 왜 부처님 옆에서 부처님을 팔아가면서 이런 저급한 행위로 영업을 합니까?
여러분들도 생각을 해보십시오?
이것이 어떻게 점쟁이 모습이지 선사의 모습이겠습니까?
그래서 안 가려고 했는데 이 스님을 만나보라고 한 도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래서 일부러 찾아간 것인데요.
도반의 마음은 내가 이 사람을 찾아가서 이 점쟁이가 제 입을 막아주길 바랐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 도반 분의 마음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저는 보고 있고요.
그렇잖아요?
어디서 이상한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불법이 어떠니 저쩌네 하고 있으니 당연히 이분들 입장에서는 "이놈 뭐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저부터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아무튼 갈 때부터 저는 이 대한민국 최고 선승이라는 분을 별 볼일 없는 스님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차를 몰고 그 먼 길까지 갔었는데요.
갈 때는 그래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부모님들과 같은 고향분이셨고 깨닫고 못 깨닫고를 떠나서 스님들을 만나서 법담을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이거든요.
제 본적과도 같은 지역 스님이라 법을 떠나서 인사도 드릴 겸 그래도 기분 좋게 찾아갔었답니다.
갈 때에는 정말로 외삼촌이나 큰 형님을 만나러 가는 그런 기분이었고요.
가서도 기분 좋으면 제 기질은 50만 원이 아니라 500만 원이라도 선 듯 내놓는 그런 놈이기 때문에 그까짓 50만 원이 문제겠습니까?
아무튼 그래서 만나 뵙고 큰 절을 세 번 올리면서 제가 이런 말을 했었답니다?
"오는 길이 참 좋았습니다. 가는 길 또한 참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스님..^^~"
하면서 절을 했더니 이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지요?
그런데 그 흔한 중국차는 고사하고 만나자마자 거만한 모습으로 선문을 하기에 대답을 해 주었답니다.
그랬더니 또 선문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대답을 해 주었지요.
그랬더니 고개를 가웃 거리면서 뭔가가 잘 못된 얼굴 표정으로 또 선문을 꺼내는 거예요?
이렇게 연달아 세 번을 선문을 하시기에..?
"이 양반이 나를 어떻게 해서든지 굴복을 시키려 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이 어른에게 제가..
"저도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큰 스님.."
했던 것인데요.
그러고는 제가 이렇게 그 스님에게 물었답니다.
[제가 큰 스님께 절을 하면서? "오는 길이 참 좋았습니다. 가는 길 또한 참 좋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 말이 스님에게는 어떤 마음으로 다가왔었습니까?"
하고 물었답니다.
쉽게 말해 "오는 길이 참 좋았습니다. 가는 길 또한 참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가 무슨 뜻이냐 이거지요?
그런데? 대답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답니다.
방 안과 주의에는 이분의 제자들과 대중들이 가득했었고요.
한참 동안 답변이 없으시기에 제가 다시 조용한 목소리로?
"그 뜻이 무슨 뜻으로 스님께 드린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했더니 큰 스님 이번에는 눈동자가 주의를 살피는 거예요?
주의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속으로 "이놈 봐라.." 하면서 좀 더 기다리다가 조용히 다시 이렇게 물었답니다.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아시겠습니까? 스님?"
그래도 대답이 없기에?
그래서 제가 바로 손바닥으로 바닥을 크게 내리치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답니다.
"답을 해 보라고!"
제 경우는 사채업을 전문적으로 해서 밥을 먹고 산 사람이라 웬만한 사람들은 제 거칠게 파고드는 입을 감당해 내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큰 소리로 버럭 소리를 친 것이고요.
법 앞에서는 현생의 나이 따위는 필요 없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그랬더니 기껏 한다는 답변이?
"좌삼 우오"
라는 답을 내놓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못 알아들은척하면서
"작아서 못 알아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크게 말씀해 주십시오?"
했답니다.
그랬더니 다시
"좌삼 우오"
그러시기에 이번에는 제가 더 큰 목소리로?
"뭐라? 좌삼우오? 나는 생과 사를 묻고 있는데 뭐? 좌삼우오?"
했더니 그제야 알아듣는 눈초리로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기에..
그래서 제가 바로 손가락으로 그 스님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너는 가짜야?"
하면서 고래 고래 소리를 질러댄 것인데요.
그러고는 문을 박차고서 나오려고 하는데 주장자까지 들고 따라 나오면서 저를 때리는 시늉을 하는 거예요?
"이놈이.. 이놈이.."
하면서 말이지요?
물론 실제로 때리려 했겠어요?
아무튼 그래서
"하실 말씀이 더 있으시면 해보십시오?"
했지요.
그랬더니 계속 ..
"이놈이.. 이놈이.."
만 하시기에 제가 이 어른에게 이렇게 답변을 드렸답니다.
"오늘 스님의 살림살이는 잘 보고 갑니다. 저는 비록 차도 한잔 못 얻어먹고 돌아가지만 언제 시간이 나시면 평택 길을 지나는 기회가 있으시면 종무소 보살에게 제 전화번호를 남겨 두었으니 한번 찾아오십시오."
"그러면 오늘 일도 사과할 겸 비록 칼국수 한 그릇이라도 어른께 대접하면서 저의 살림살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하고 나오려는데 이번에는 문밖에까지 따라 나오시더라고요?
주장자로 저를 때리려 하면서 "이놈이.. 이놈이.." 하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요.
오면서 종무소 보살의 폰에 문자로 이런 글을 남겼답니다.
[오늘 본의 아니게 제가 큰스님에게 버릇없이 구렀습니다. 매우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그럴 뜻으로 온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네요? 그러나 제가 부득이 그랬던 이유는 큰 스님은 저에게 세 가지의 큰 실수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큰 도인이라는 분이 사주나 관상 따위로 저를 알아차림을 하려고 했던 것이고 친견비로 50만 원을 요구를 하시다니요?
보살님은 이런 분이 큰 스님으로 보이십니까?
그리고
두 번째는 선문이란 한두 번만 시험해 보시고 끝을 내야 하는데 세 번까지 하려고 하니까 저로서는 그렇게 할 수 박에요?
저 같은 애송이를 선문답으로 이겨봐야 뭐 하겠습니까?
차라리 차나 한 잔 내주시면서 어른으로서 저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리고 큰 스님의
세 번째 실수는 제가 드렸던 선문을 모르시면 그냥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계셨어야 했답니다.
나는 [생 과 사]를 묻고 있는데 거기다가 [좌삼우오]라니요?
이것이 분별심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거기다가 이 까짓것 하나 대답을 못했다고 주장까지 들고 밖에까지 끌려 나오시다니요?
그러고도 그를 선승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저 같으면 부끄러워서라도 그것도 제자들 앞에서 주장자까지 들고 저에게 끌려 나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혹시 이 어른이 주장자의 뜻이나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장자는 저 같은 애송이 입에 끌려 나올 수 있는 그러한 물건이 아니랍니다.
아무쪼록 불교계의 큰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송구하고요.
그래도 보살님이 제게 내어준 믹스커피라도 한잔 얻어 마셨으니 저는 이것으로 됐습니다.
건강하시고 성불하십시오.. ()]
라는 문자와 함게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선문답이란 깨닫고 못 깨닫고를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기 위함이지요.
아무리 인천 어느 소금밭에서 돌아가신 어느 어른처럼 선문답을 잘 하면 뭐 하겠습니까?
결과물들은 고작해야 무당들 소굴인데요.
제가 왜 오늘 이런 내용까지 들고나왔느냐 하면?
[도성제]에 나오는 [도]의 세계란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주 관상 따위로 알아차림을 하는 사람을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도성제]에 나오는 [도]의 세계란
본성(불성)의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성의 마음이랍니다.
본성(불성)의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혜의 마음인 것이고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스승이 점쟁이면 제자들도 점쟁이들 박에 더 나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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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날씨가 새벽에는 제법 쌀쌀합니다.
다들 건강관리 잘 하시고 꼭 성불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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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꼭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