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일의 괴로움
3월 4일 밤 아홉시 인천공항에서 리무진을 타고
3월 5일 새벽 한시 30분 쯤 에야 전주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기 전 전주역에서 집에 갈 택시비를 점검해보니
만 원짜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점검해보니 일본 돈 천 엔과 미국 돈 5달라와 십 달러짜리
그리고 천 원 지폐 하나와 5만 원짜리 지폐 3장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심야 택시 기사에게 어떤 돈을 건네야지, 5만 원짜리를 주기도 그렇고, 일본 돈 천 엔이나 5달러 지폐를 줄 수도 없고,
어떻게 하지? 안 되면 근처의 편의점에라도 가서 지폐를 교환 한 뒤에 택시를 타야 되지 않겠는가 하고 망설이는 사이에 리무진 버스는 코아 호텔에 도착하고,
밝은 불이 켜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지갑을 꺼내어 살펴보니
내가 천 원짜리 지폐로 보았던 돈이 만 원짜리 지폐였습니다.
차에서 내려 불 켜진 택시의 문을 열었습니다.
“어디로 가시지요?” 택시 운전사의 물음에
“진북동 우성 아파트로 갑니다.”
하고 대답하자
“아따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가까운 데로 가네요,“
그런 기사들을 여러 번 만났기 때문에 예상 못한 답변은 아니지만 은근히 화가 나서
“그럼 집이 가까운 데에 있는데 기사님을 생각해서 먼데로 가야 할까요.” 하고 말하자, “아니지요, 그냥 해 본 소리에요.”
물론 손님도 없는 시간에 멀리 가는 손님을 태우려고 했는데,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곳으로
가자니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손님들이 가자는 대로 가는게 기사의 약속과 예의가 아닐까요?
집으로 가는 차 속에서 문득 김지하 선생님의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감옥 생활을 끝내고 일산에 사실 적에
서울에 사는 후배들이 매일 자동차로 출 퇴근을 시켜 주니까 미안해서
오늘 부터는 내가 버스로 가겠다고 선언하고 시내버스를 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내버스 요금을 달라고 해서 지갑을 보니
백 만원짜리 지폐 한 장 밖에 는 없더랍니다.
무심결에 그 백만원짜리 수표를 주니,
“지금 누굴 놀립니까?“ 하면서 화를 내었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차에서 내린 김지하 시인은 집으로 그냥 터덜터덜 돌아갔다고 합니다.
나 역시 너무 세상을 어수룩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으로 짐이 무거운 줄도 모르고 계단을 올라서 집에 도착했습니다.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도대체 있기나 할까요.“
알 수 없는 생을 이만큼이라도 살았다는 것이 그저 신기한 일이 아닐까요?
임진년 삼월 초엿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