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가을, 예수전도단 홍천 DTS에서 처음으로 예배에 관한 강의를 했습니다. 그때가 홍천 DTS에서 간사로 2년간 섬기는 마지막 기간이었습니다.
간사로 섬기기 위해 다니던 신학교를 자퇴할 무렵엔 주변에서 염려와 걱정의 소리가 많이 들려왔어요. 부모님의 반대가 가장 심했지요. 하지만 저는 마음을 확정하려고 바울 흉내를 내며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르고는 홍천 산골짝으로 들어갔습니다.
홍천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다음날이면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향하는 마지막 날 밤, 마치 영화처럼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이었어요. 정신없이 병원에 가보니, 아버지는 미미한 뇌경색이 왔다며 저를 웃으면서 맞아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녁부터 뇌경색 쇼크가 수차례 오더니, 아버지는 아주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지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봤더니, 아버지가 투자를 잘못해서 모든 재정을 탕진한 거였어요. 결국 아버지는 여생을 오른쪽 마비인 채로 지냈고, 언어 장애까지 와서 “어”, “아니” 정도만 말할 수 있었습니다.
홍천 사역을 마치면 하나님께서 큰 격려를 해주실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제 앞에 펼쳐진 건 광야였습니다. 이후 신학교에 재입학했기에 낮에는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병원에 있고, 주중에는 선교단체 지부 사역을 하고, 주말에는 교회 전도사로 섬기며 지냈습니다.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보면 눈물이 흘렀어요. 집안에 돈이 없는 현실을 마주하면 커다란 두려움이 저를 짓눌렀어요. 믿음이 있던 어머니마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지요. “태재야, 네가 하나님께 그렇게 헌신하고 순종하며 나아갔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니….”
제가 할 수 있는 건, 같이 우는 것뿐이었어요. 그렇게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제 안에 쓴물 같은 고백이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하나님, 이게 뭐예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순종했는데, 지금 이 상황은 뭔가요!”
마음이 정말 힘들었어요.
게다가 제가 섬기게 된 교회는 막 개척해서 성장하는 상가 교회였어요. 당시 다른 교회들은 빔프로젝터를 사용해 예배를 진행했는데, 이 교회는 여전히 OHP 영사기를 사용했지요. 악기도 조율이 안 된 피아노가 전부였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더 힘든 상황과 환경으로 몰아넣으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어느 주일 아침에 1부 예배 찬양 인도를 하기 위해 예배당 앞에 섰습니다. 그날따라 예배당에 앉아있는 회중의 수보다 얼마 되지 않는 찬양팀의 수가 더 많은 거예요. 이건 경험해 본 사람만 알 거예요. 찬양이 시작돼도 찬양팀과 회중이 서로 어색해서 시선을 75도 위 먼산만 보며 찬양하게 됩니다.
그때 부른 찬양이 〈내 평생 사는 동안〉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너무도 분명한 성령의 감동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태재야, 지금이야! 네가 그렇게 외쳤던 다윗과 바울의 고백을 올려드릴 때가 바로 지금이야!’
저는 찬양을 인도하던 중에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지요.
“하나님! 여전히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여전히 하나님은 찬양 받기 합당하십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선포와 함께 내면이 정리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상황은 그대로였지만 제가 변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하는 어머니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선포했어요. 온 가족이 영광 받으셔야 할 하나님을 높여드렸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바뀌자 가족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돈이 아닌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믿음의 중심을 잡았고, 술을 섬기던 아버지는 인생에 찾아온 가장 큰 어려움을 겪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고, 믿음의 삶을 살기 시작했지요. 그때부터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순간까지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예배 자리를 놓치지 않았어요.
지금도 가족이 모이면 그때의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그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했는지를 나누는 은혜를 누립니다.
찬양은 고난의 자리에서 빛을 발합니다.
광야에서야말로 찬양이 충만하게 울려 퍼져야 합니다.
꼭 그렇더군요. 어려움이 찾아오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어려움이 또 몰려옵니다.
바로 그때가 예배의 꽃을 피울 때입니다.
주님 안에서 담대하게 ‘그러하여도’의 신앙으로
예배 자리를 지키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만 바라보는 시간, 이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