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강했구나!
오늘 호주로 출국합니다.
인천공항에 나와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중에 주님과 함께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느낌입니다.
마음이 예전과 다른 것이 해외 여행을 떠나는데 어떤 계획과 소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주님 안에만 있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국에서 호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주님 안으로 가는 것입니다.
마치 갓난 아이가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느낌입니다.
한동안 제가 너무 약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웠습니다.
아버님께서 목회하시면서 ‘성자’라는 소리를 들으셨지만 가까이에서 본 아버님은 너무 약해 보였습니다.
할 말도 못하고 늘 참기만 하시고 손해만 보시는 모습이 속상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신 이유도 아버님이 너무 약하신 까닭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하고 싶었습니다.
목사가 되어도 강한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강하고 싶다고 강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목사가 되었으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착하다, 성실하다 영락없는 목사다’ 하는 말을 들었으나 그것은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약하다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너무나 좌절하였고 또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제 생각이 너무나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약한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약한 자를 택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 문제는 너무 강한 것이었습니다.
약한 자였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너무 강해서 문제였습니다.
제 삶이 이런 저런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휘청거렸고, 하나님께서 왜 제게는 어려움을 많이 주시는지 원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사람이 쇠망치로 밀가루를 부수려 하겠습니까?
안 부수어졌기에 쇠망치를 들고 오는 것입니다.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왜 그런 일을 겪게 하시고, 그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을까?’ 그 이유가 깨달아집니다.
제가 너무 강하여 좀처럼 깨어지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지독하게 변하지 않으니 지독하게 변하지 않는 사람을 붙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나이가 드니 너무 바보같이 살았고 바보같이 목회했음을 알 것입니다.
제가 약한 줄 알았더니 너무 강했던 것입니다.
진작 알았으면 불필요한 연단을 겪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한걸음씩 나아가고 싶습니다.
너무 늦었다는 후회가 있지만, 남은 시간이라도 주님으로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