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라는 스포츠에서 좋은 선수란 그저 골 넣고 세레모니 하는 스타선수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오랜 시가동안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수란 필드위에선 관중들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주고, 필드밖에선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박지성과 롬메달
만남
박지성은 알다시피 2001년 명지대학교 축구부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홀연히 건너가 버린다.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에 2년 반이란 시간동안 교토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특히 J리그의 FA컵이라 할 수 있는 천황배 대회에서 리그 중하위권팀인 교토를 우승으로 이끌기도 한다. 솔직히 난 박지성이라는 선수의 한계가 여기까지 인줄 알았다. 아니 여기까지도 놀라운 이변이라고 생각했다. 허정무 감독이 그를 처음 2000시드니 올림픽호에 승선 시켰을 때 그의 존재는 너무나 미약해 였다. 지치지 않는 체력이 장점이었지만, 볼을 다루는 센스나 기술적인 면이 많이 떨어지고 제일 중요한건 올림픽대표팀에서 자신에 맞는 적절한 포지셔닝 자체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작은 체구는 본선에서 상대해야 할 유럽팀들을 생각하면 가장 문제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2000시드니 올림픽 본선멤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고 올림픽이 끝난 귀 일본에서의 활약. 그리고 히딩크라는 스승을 만나 2002월드컵 이 후 엄청난 클래스로 자신을 향상시킨다. 사실 2002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국가대표 평가전으로 열렸던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그는 자신의 진가를 확인시키며, 입지를 굳히게 되고 월드컵 본선 모든 경기에서 그가 팀의 중심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월드컵이 끝난 뒤 그는 PSV아이트호벤으로 둥지를 튼다. 히딩크의 적극 추천으로 이영표와 함께 네덜란드로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데니스 롬메달 (Dennis Rommedahl)과 만나게 된다.
박지성이 한국의 히어로라면 데니스 롬메달은 라우드롭 (Laudrup)형제 이후 덴마크에서 배출해낸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다. 그는 1997년 박지성보다는 5년이나 먼저 네덜란드 무대에 진출했고, 2000년까지는 팀내에서 입지를 굳히지 못해 임대생활을 전전하였지만, 유로2000을 시작으로 덴마크 국가대표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자리 잡으며 자신의 클래스를 레벨 업 시켰다. 이 후 PSV에서도 주전자리를 굳히게 되고, 네덜란드 리그 오른쪽 날개 최고의 선수로 각광받기 시작한다. 박지성이 아이트호벤에 도착한 2002년. 롬메달과 박지성은 이미 네임벨류나 클래스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지금은
아이트호벤과 네덜란드 무대에 점차 적응하면서 동유럽의 심장 파벨 네드베드 (Pavel Nedved) 못지 않은 체력과 상대 수비수들이 도저히 포지션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활동량, 여기에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보여준 감동적인 공격력까지. 박지성의 브레이크는 이미 고장나버렸다. 롬메달 역시 박지성의 리그 적응에 맞추어 팀에 네덜란드 리그 챔피언, 컵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는 핵심적인 선수로 활약을 한다. 오히려 유럽 전문가들의 눈에는 박지성이 제 아무리 쑥쑥 크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고 롬메달의 그것에는 범접할 수 없고, 오래지 않아 롬메달이 자신의 뜻대로 빅 리그에 진출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은다. 예상대로 롬메달은 2004년 프리미어리그 찰튼애슬래틱으로 이적을 하게 되고, 그의 빈자리는 박지성이 붙박이로 차지하게 된다. 롬메달은 찰튼에서 주전자리를 차지하는데까지는 성공한다. 그만큼 네덜란드 리그와 프리미어리그의 수준 차이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소리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보이지 않는다. 팀은 다음 시즌부터는 프리미어리그를 떠나 디비젼 1 챔피언 쉽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저 그냥 추락해버린 것일까? 반대로 지금 박지성은 06-07시즌 우승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자신이 엄청난 스케일과 가능성으로 가득 찬 선수란 점을 똑똑히 각인시켰다. 자신이 선발 출전한 절반의 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올렸으며, 부상만 아니었으면 긱스의 대체자자리까지도 그의 몫이었던게 분명하다.
왜
아이트호벤을 거쳐 빅리그로 가 성공한 선수도 많다. 호나우도(Ronaldo Luiz Nazario De Lima)가 그랬고, 반 니스텔루이(Ruud van Nistelrooy)가 그랬다. 반면 박지성과 이영표와 함께 뛰었던 선수중엔 실패한 케이스가 유독 많다. 먼저 케즈만(Mateja Kezman)은 첼시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프리미어리그에 완전히 적응하는데 실패하며 스페인으로 다시 터키로 떠나버렸다. 22살 때부터 스위스 국가대표 주장을 맡게 된 보겔 (Johann Vogel)은 AC 밀란에서 시즌을 보냈지만, 그 역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스페인으로 자리를 옮긴다. 마지막으로 보우마 (Wilfred Bouma) 는 아스톤 빌라에서 활약하고는 있지만, PSV아이트호벤만큼의 활약은커녕 야프 스탐 (Jaap Stam)이 되기보단 지극히 평범한 선수로 전락해버렸다.
롬메달은 케즈만이나 보겔 같이 적응문제가 아닌 보우마의 경우에 가깝다. 스스로 환경변화. 빅리그의 축구스케일이라든지 좀 더 다양한 선수들과의 경쟁. 스스로 클래스의 한계를 못 넘어서는 선수로 변해버린 것이다. 진정한 좋은 선수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이 어느 곳이라도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능력이 필요하다. 네덜란드에서 잉글랜드로 간 이 후 롬메달은 적응은 했으나, 네덜란드 리그에서 보여주었던 플라잉-덧치맨 오베르마스 (Marc Overmars)에 비견대었던 스피드나 자로 잰 듯한 센터링능력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그저 언제나 필드에서 평점 5점을 받는데 만족하는 것으로 보이는 선수로 인식되었다.
박지성은 달랐다. 사실 맨체스터라는 세계 최고의 팀에 입단을 하고 나서도 박지성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은 내 머릿속에서 떠난적이 없다. 세계의 국가대표들이 모인 곳이기도 하거니와 프리미어리그 최강의 팀이라는 타이틀이 박지성의 네임벨류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것이라 느꼈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기에 만족한 것이 아니라 팀의 주요 선수가 되었다. 아스날, 리버풀, 첼시와의 리그 타이틀경쟁도 그렇고 챔피언스리그까지 소화해야 하는 맨체스터에서 박지성은 퍼거슨의 로스터에 반드시 포함되어있었다.
롬메달과의 비교는 별도로 박지성이 정말 대단한 이유는 마케팅을 위한 선수가 아니었다는 점에 있다. 한때 일본을 넘어 이탈리아를 뒤흔들었던 냉혈 미드필더 나카타 (H.Nakata) 역시 세리에A진출을 위해 자신이 가진 일본 내 마케팅 값어치를 내세울 수 밖에 없었고, 이후에도 조 쇼지 (Jo Shoji) 니시자와 (Nishizawa) 오노 신지 (Ono Shinji) 이나모토 (J.Inamoto)그리고 마밍위 (Mamingwi) 리티에 (Litie) 순지하이 (Sunjihai) 가 그랫듯 모두 아시아 마케팅을 위해 이익을 남겨 구단의 적자에 도움을 주려는 차원에서 이적이 가능했다. 유나이티드가 박지성에 대한 마케팅 값어치를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퍼거슨은 박지성의 마킹이 등에 박힌 유니폼을 한국에 파는데 보다는 그를 필드에서 뛰게 하여 새로운 유나이티드의 영웅이 되도록 만들었다.
다시 얘기로 돌아와서 박지성은 J리그 당시엔 팀의 에이스로 아이트호벤에선 팀의 구세주로 그리고 유나이티드에선 또 프리미어 클래스에 맞는 선수로 자신을 만들었다. 큰 물에서 놀면 놀수록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것. 이것이 바로 좋은 선수의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선수의 황혼기에 접어들더라도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또는 국내로 돌아와 활약을 하더라도 그는 또 변화해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선수이다. 이것이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해버린 슬픈 운명의 롬메달보다 박지성이 한 수위라는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출처 : 축구 이야기 세상 www.banan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