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군 생초면 태봉산 아래에는 고대 가야의 무덤군으로 추측되는 100여기의 ‘산청 생초 고분군(山淸 生草 古墳群)’이 있다.
이 산의 이름은 ‘태(胎)’를 묻었다는 ‘胎峰山(태봉산)’이다.
그러나 ‘두산백과’에서는 ‘台峯山(태봉산)’으로 나와있어 음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뜻의 이름으로 나온다.
이 산자락에는 고분군 외에도 ‘생초국제조각공원’과 ‘산청박물관’이 있다.
‘생초면사무소’의 동쪽 ‘신연리·월곡리’를 가르며 북진하는 산줄기에서 ‘가막산’을 제외한다면 우후죽순 듣보잡의 산이름이 난무한다.
‘안치봉·솔지배기봉·가막산·가마귀산·가늠산·노은산’이다.
연일 폭염경보가 발효되는 찜통더위를 뚫고 듣보잡의 산들을 쫓아가기에는 참 거시기하였다.
궁리 끝에 ‘휴암마을’에서 임도를 타고 올라 ‘가막산’으로 남진하자는 제안에 쾌히 동의하였으며, 마지막 태봉산은 나만의 숙제였다.
버스에서 내린 곳에는 ‘휴암(鵂岩)’이라는 석비가 세워져 있었다.
마침 지나가는 어른께 “鵂(휴)자가 무슨 뜻이에요?” 하고 물었더니 “까마귀여” 한다.
“아하, 그래서 ‘가막산’인가” 하였고, ‘가마귀산’도 생겼나보다 하였다.
나중에 알아봤더니 ‘수리부엉이(鵂)’를 일컫는다.
임도를 구불구불 오르려다 ‘약은 괭이 밤눈 어둡다’는 말처럼 질러가려다 그만 허탕만 쳤다.
산행 초입부터 사서 고생을 하고 만 것.
민가 주인장은 집 뒷편으로 들어서는 걸 한사코 용인하지 않았고, 그나마 찾은 산길은 무성한 가시잡목만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가막산(335.8m)’은 의령 가막산(可莫山)과 음성 가막산처럼 그저그렇게 막 불러왔던 막산이었다.
‘거창·파주·원주’에선 검푸른 빛을 발한다하여 ‘감악산(紺岳山)’이 되어 거룩한 산이 되었으나 산청군 생초면의 ‘가막산’은 그만 까마귀로 둔갑하여 길도 없이 천대받는 산이 되고 말았다.
이쯤되면 가성비를 따져야 했다.
‘산하’와 ‘한덤’님은 가막산에서 식겁을 한 듯 도중에 탈출을 하였고, 저번처럼 ‘구구팔팔칠천봉’의 권형님과 나만 남았다.
여기서 탈출하기에는 땀흘리며 애쓴 게 너무 아까웠기 때문.
‘솔지배기봉(? 294m)’과 ‘안치봉(? 249.1m)’은 출처불명의 듣보잡이지만 같은 산줄기에 있어 이 봉우리들을 넘어야만 트랙이 완성된다.
잡목들을 비집고 ‘솔지배기봉’을 올랐더니 뜬금없는 운동기구들이 녹슬고 있었고, 빛바랜 이정표가 힘없는 날갯짓을 하고 있다.
‘솔지배기’를 내려서자 중장비와 덤프트럭이 먼지를 날리며 공사를 하고 있고, ‘안치봉’ 능선은 가시덤불로 입산을 불허한다.
어쩔 수 없이 아스팔트를 따랐더니 넓은 면적의 시설물 정문.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이 시설물은 ‘정수시설’로 정문 좌측으로 올랐다.
풀숲을 헤치며 듣보잡의 ‘안치봉’에 올랐다.
가성비가 떠올라 배낭에서 작은 백표지기를 꺼내 ‘안치봉 249.1’을 쓴 뒤 걸었다.
‘안치’는 ‘바깥치’도 있는 걸로 봐서 ‘안고개(內峙)’인 듯하나 나는 ‘安治(안치)’하며 힐링하리라 애써 자기체면을 걸었다.
그랬는데 안치(安治)는 개떡, ‘위리안치(圍籬安置)’를 당한 중죄인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가시덤불에 갇혀 ‘정수시설’의 휀스를 한 바퀴 돌게 되었으니, 이런 형벌은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산을 내려와 가만히 생각하니 눈밭과 풀숲만 다를 뿐 서산대사의 ‘답설야(踏雪野)’가 떠올랐다.
이는 우리가 누인 풀숲 발자국을 따라 그대로 따라온 일행이 있었다고 해서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마지막 ‘태봉산’은 그래서 순연(順延)되었다.
코스: 휴암마을-임도-송전탑 고개-가막산-임도-솔지배기봉(?)-아스팔트-정수장 정문-안치봉(? U턴)-정수장-생초면사무소(8km)
궤적.
쌩고생.
고도표.
마지막에 오를려고 한 태봉산은 그만 포기했다.
우리 버스가 A 팀들의 들머리인 '노은마을회관'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우리들은 먼저 내렸다.
'휴암'표석이 있는 '휴암마을입구'다.
곧 '휴암교'를 건너...
나무그늘 아래 쉼터가 마련된 동네어귀에 들어왔다.
진행하는 임도길은 '새실로 60번길'
'휴암마을회관'을 지나자...
멀리 헌걸찬 산줄기.
왕산·필봉산과 더 뒤는 지리의 와불산.
햇볕이 뜨거운 한낮.
갈림길 'Y'로에서 좌측길을 따랐다.
우측길은 구불구불 임도로서 좌측길보다 멀어 보이지만 그늘이 져서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인데...
폐가인 듯한 건물은...
영모재(永慕齋).
뙤약볕을 이고...
농장으로 들어가는 금줄쳐진 사잇길을 지났다. 이는 조금 두르나 좋은 길을 찾기 위해서라는 한덤님의 안내.
그러다가 만난 우측 철망문.
민가로 들어가...
조곤조곤 부침성 좋은 '한덤'님이 주인장을 만났다. "글쎄, 안된다니까요" 민가 뒷편 진입을 불허하는 주인장의 단호한 목소리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조금 위 봉곡정사로 올라 보았으나 '외인출입금지'.
되내려오면서, "마~ 구불구불 조금 멀더라도 임도를 따를 걸"하였다. 그랬더라면 이렇게 햇볕에 노출되지도 않았을 텐데. 쯥.
좌측으로 살짝 내려앉은 저곳이 철탑이 있는 고갯마루라며 또 잔꾀를 부렸다.
길인 듯 가르마가 타진 저곳으로 질러가 보기로 한 것. 그러나 역시 깊은 계곡이 가로막고 있어 돌아 나왔다.
결론은 급할수록 바른 길(正道)을 기야한다는 것이 고금(古今)의 진리.
지형도에 반듯하게 그어진 길 입구에서 줄쳐진 곳을 넘는다.
잡초와 잡목따위가 무성한 길은 누군가 제초작업을 한 듯 어렵사리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뒤돌아보니 뙤약볕 아래 사서 고생들.
다시 내려다보는 모습. 포장된 고갯마루로 올라서려니 초목(草木) 덩쿨이 길을 막았다.
그렇게 임도에 올라서...
송전탑이 있는 고갯마루 가까이 가보았다.
다시 조금 내려선 곡각지점에서 가막산 진입로를 찾아...
잡목의 틈새를 요리조리 비집고 조심조심 올랐다. 잡목더미가 무성한 가막산을 오르는 데 30분 정도가 걸렸다.
준비해간 표지기를 아래에 걸었으나 선답자들의 표지기는 머리 위 높은 곳에 걸려있다.
잡목을 살짝 벗어난 솔숲에서 간단요기를 한 뒤...
주의를 기울여 날등을 내려서다 용도불명한 구덩이가 있는 지점에서 좌측 능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무성히 풀이 자란 무덤은...
'통정대부첨지중추부사동래정씨·配숙부인진양하씨' 묘.
묘지에선 길흔적이 뚜렷.
금세 포장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두 분은 여기서 탈출을 하고, 우리는 임도를 가로질러...
산길을 올라섰다. 길은 오소리가 다녔음직한 오솔길.
한갓진 '솔지배기' 풀숲에 운동기구들이 비치되어 있고...
이정표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88'하신 권형님이 지치는 기색이다.
우리가 올라온 지점의 이정표를 지나...
솔밭길을 이어간다.
무덤을 지나면서...
길흔적은 뚜렷해지더니...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아까도 보았던 왕산·필봉산과 뒷쪽으로 와불산.
와불산을 당겨 보았다.
임도로 내려서면서 돌아보는 모습.
또다시 돌아보는 모습.
나아갈 방향의 나즈막한 봉우리가 안치봉이다.
능선 끄트머리에서 길흔적을 더듬어 보았으나 난공불락(難攻不落)이다.
하는 수 없이 아스팔트를 곧장 따르니...
얼마안가 아스팔트가 끝이나는 정수장 정문을 만난다.
우리는 철망 좌측으로 올라...
삼각점이 있는 잡목 무성한 봉우리에 올랐다.
작은 표지기에다 '안치봉249.1 福'을 써서 매단 뒤...
되돌아 내려섰다. 내려서는 길은 아까 올라간 길로 되내려오는 게 정답.
나는 '통합정수장' 안내판과 '벌방우농원' 표석이 있는 삼거리로 내려서기 위해 능선을 따를려고 하였다.
정수장 휀스 모퉁이에서 능선길을 찾아보았으나 가시덤불로 인해 불가하였고...
휀스를 따라 이어지는 곳에서도 마찬가지. 지형도를 살펴보며 "형님 뒤돌아서 다시 능선을 찾아봅시다"
그랬더니 권형님 曰 "이대로 쭈욱 가면 길이 있어". 평소 열공하는 권형님을 믿었던 게 불찰이었다.
이후 뜨거운 뙤약볕을 이고 탈출로가 없는 울타리를 따라 하염없는 발걸음을 내디딜 수밖에 없었다.
탈출키 위해 휀스 밖 무성한 잡목사이를 기웃거려 보았으나 부지조성을 위해 절개(切開)를 한 듯 절벽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바깥으로 또다른 휀스가 쳐져있어 빠져 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이는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 통제하는 정수장의 특수한 환경 때문이다.
그렇게 숨가쁘게...
정문으로 돌아 나왔으니 완전히 한 바퀴를 돈 셈이다. 퍼질고 앉아 물을 마시며 10분을 기다려도 권형님이 오시지 않는다.
걱정이 되어 뒤돌아 들어가 보았더니 가까이 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셨다.
손짓으로 입구쪽을 가리켰으나 이미 직원들한테 들켜버린 것.
"죄송함다. 아흔이 다 된 어르신이 길을 못찾아 그렇게 됐으니 이해해 주십시요."
A코스를 따라 여러 봉우리를 이어온 준족들이 정수장으로 올라와 안치봉으로 올라갔고, 우리는 털레털레 지친 몸을 끌고...
아스팔트를 내려서다 길 옆 자그마한 두 칸짜리 팔작지붕 기와집을 보았다.
샘이 깊어 심천재(深泉齋)인가? 살짝 걸어놓은 문을 열어 보았더니 사람이 기거한 흔적은 오래되었다.
통합정수장 안내판과 '벌방우농원' 표석이 있는 삼거리 능선 끝자락이 내려서려 하였던 곳.
이제 경호강을 따라 아스팔트를 걸으며...
숙제로 남겨둔 태봉산을 올려다 본다.
경호강변을 지나다 지난번 완주 고성산을 산행한 뒤 식사를 한 쏘가리 전문점 '남원 식당' 앞을 지난다.
'늘비물고기 공원'은 생초물고기마을.
푸른 하늘 아래 팔딱 뛰는 물고기를 형상화하였다.
傳구형왕릉, 동의보감촌, 황매산, 생초국제조각공원이 주변 관광명소이다.
강 아래 우리 일행들이 발을 담그고 있다. '상수원보호구역'이다.
윤슬이 번쩍이는 은빛물결.
생초면사무소에서 대기중인 우리 버스를 찾아가며 길건너 '생초버스정류소'를 지난다.
생초면사무소.
그리고 대기중인 우리 버스.
마른 자갈밭의 방아개비.
차량이동하여 함안까지 내려와...
가정식점심뷔페인 '예촌뷔페(055-585-4558)'로 왔다. <경남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1604-27>
☞ 예촌가정식한식뷔페
우리들의 시간.
배는 그리 고프지 않았고, 버스에서 몇잔의 막걸리를 연거푸 마신 뒤끝이라 술배도 얼추 불렀다.
마지막 술잔을 나누고 계시는 권형님과 '모아'님.
‘산이란 무엇인가?’.
1) 등산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오를 수 있는 곳.
2) 지리학적으로 평지보다 고도가 높은 지형인데, 인간이 산이라고 이름 붙인 곳.
3) 평지보다 높이 있는 곳이며, 그 기준은 사람이 정하기 나름.
4) 산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모두 산은 아니고, 동일한 역사문화적 영역이자 사람의 삶 속에서 대대손손 살아온 터전의 의미에 가깝다.
산림청이 지난 2007년 12월 국토지리정보원의 자연지명 자료를 기초로 현장 숲길조사, 수치지형도 분석, 지방자치단체/ 지리·지형학계/ 산악단체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최종 집계한 남한의 산의 개수를 4,440개라고 발표했다.
당시 산통계의 기초자료로 활용한 국토지리정보원 자연지명 자료에 따르면 ‘산, 봉, 재, 치(티), 대’ 등 산으로 분류될 만한 자연지명은 총 8,006개였으며, 이 가운데 ‘재, 치(티), 고개’는 지리적 성격상 통계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반면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2017년 성과를 발표하면서 남한의 산을 7,414개라고 공개했다.
고시가 된 산 및 과거지형도로부터 명칭이 부여된 산을 대상으로 했다고 밝혔다.
즉, 산이란 이름이 붙은 숫자의 총합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높이 10m 이하 산에서부터 남한 최고 높이 1,950m인 한라산까지 산이란 이름이 붙은 산을 총망라했다.
깊은 산 속 이름 없는 봉우리는 포함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1만 개의 산에 올랐다거나 1만5,000여 개의 산에 올랐다고 주장하는 등산꾼들이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산의 개념은 “산이란 이름을 갖고 있든 없든 봉우리로 솟아 있으면 무조건 하나의 산으로 계산했다”고 한다.
지리산에조차 아직 이름 없는 봉우리가 있지만 그 봉우리도 하나의 산으로 인정하고 계산했다는 의미다.
그렇게 보면 지리산에는 수십 개의 산이 있으며, 산(mountain)이 아니고 산권(mountain range)인 셈이다.
그들은 이름 없는 봉우리에 자체적으로 이름을 붙여 올랐다고 주장한다.
공식 지명은 아닌 것이다.
- <월간산> 박정원 편집장 -
☞김복현의 산이야기<산의 정의가 무엇인가?>
첫댓글 수고했습니다.
행복한 토요일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