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블루스
정문숙
저녁 모임이 있어 퇴근 후 잠시 걷기로 한다. 신축 아파트가 즐비한 거리를 지나 건널목에 다다른다. 신호가 바뀌고 메디컬 센터가 있는 번화가를 지난다. 여러 갈래 길로 뻗은 골목길이 나온다.
거리를 지나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도 숨겨놓은 것 같은 골목길을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오래된 세탁소와 낡은 간판의 슈퍼마켓, 양화점, 유흥주점, 칠 방수, 빛바랜 이발소 간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아파트 단지 옆에 개발되지 않은 주택가 골목이다.
키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곳에만 시간이 더디 흐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로 낡고 오래된 집들이 산다. 넝쿨 식물이 벽을 타고 올라 창을 뒤덮을 기세로 번져도 돌보지 않은 티가 역력한 부암동 철길마을이다.
길모퉁이를 돌아서니 추억의 고물상이 오랜 터줏대감인 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라지다시피한 고물상을 도심 주택가에서 만나니 이색적인 풍경에 반가움이 앞선다. 족히 팔십은 되어 보이는 어르신이 폐지를 정리하고 있다. 그 옆 낡은 라디오에서 느렸다가 빠르기를 반복하는 가벼운 비트의 블루스 리듬이 흘러나온다.
좁다란 골목길 위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굴다리가 걸터앉았다. 다리 아래 양쪽 벽에는 근대 산업화의 과정을 전시한 거리 벽화가 길 따라 이어진다. 오래전 보았던 기억 속 풍경이 타일로 꾸며져 있다. 몇 번의 보수를 거쳐 겨우 지탱하고 서 있는 집과 상처 딱지처럼 떨어지는 굵고 거친 껍질의 플라타너스 가로수, 무수한 사람들의 발자국에 닳고 닳아 반질거리는 돌계단, 세월의 더께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십 년 거슬러 올라간 듯 낙후된 거리다.
부산을 대표하던 동명목재, 대동벽지, 다디단 맛으로 유년 시절을 유혹했던 백설표 설탕, 락희화학. 경남모직, 서면 로터리, 서면 극장가, 진양화학 왕자표 고무신, 한국 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경제의 주역들이 나란히 서있다. 중학교 때 교복과 함께 신었던 군청색 운동화도 왕자표였지 싶다. 방사형으로 뻗은 골목길과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외벽을 둘러보며 생각에 젖는다. 오래전 이 거리에 살던 이들을 떠올리며 한가로운 오후 느긋한 걸음을 옮긴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공부하며 학업을 마쳤던 단발머리 여학생들 사진이 인상적이다. 수업을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다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루를 살아냈다는 뿌듯함에 가슴 벅찼을 거다. 일찌감치 맛본 삶의 매운맛에 남모르게 눈시울 붉혔던 날도 부지기수였을 거다.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의 아릿한 숨결이 느껴져 한동안 멈춰 서있다.
벽의 한 면에 별이 가득 채워진 벽화가 눈길을 끈다. 하야리아 부대의 상징이다. 이곳에는 하야리아 부대 부근에서 생업을 이어가던 이들이 주로 살았다. 막내 고모가 살던 곳도 이쯤이다. 하야리아 부대 옆 난전에서 과일을 팔다 작은 가게를 얻어 장사하며 돌아가실 때까지 살던 곳이다. 방학이 되면 쌀과 말린 채소 등 먹거리를 챙겨 아버지와 함께 고모 집에 와서 며칠 머물다 가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쯤 되었을 때였다. 부산에 온 나는 아버지를 따라 집에 가지 않고 보름 정도 고모 집에서 보냈다. 새벽마다 고모를 따라 시장으로 가서 그날 팔 물건을 떼왔다. 5일마다 서는 시골 장터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크고 시끌벅적한 볼거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루는 고모의 심부름으로 혼자서 시장에 갔다. 시장 구경하고 놀다 오라는 말에 신이 나서 시장 골목과 시내 구경에 정신이 팔렸다.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는 골목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집을 나설 때 집 옆에 있던 신발공장의 굴뚝 연기를 보고 찾아올 수 있을 거라는 요량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조급하니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무리 걸어도 집으로 가는 길은 나오지 않았다. 골목과 골목이 이어져 길 따라 걸으면 작은 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가면 막다른 골목이었다. 멀리서 보이는 탑처럼 솟은 굴뚝은 서너 개가 서 있어 고모 집이 어디쯤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또 다른 길로 접어들면 굴뚝은 사라지고, 미로 같은 골목길을 돌아 나오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겨우 빠져나왔다.
빠져나온 좁다란 골목길에서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손바닥만 한 하늘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지붕과 지붕 사이로 비집고 나온 검푸른 하늘과 하늘가에 빨간 까치밥 몇 개 매달고 뻗어있는 감나무를 본 순간 와락 울음이 쏟아졌다. 온몸은 땀에 젖었고 눈물 콧물 쏟은 얼굴에 때 국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줄도 몰랐다. 손에 꽉 움켜쥔 봉지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 헤매던 산골 소녀는 어른이 되었고 이곳에 터 잡은 지 수십 년째다. 아직도 쭉쭉 벋은 고층아파트가 즐비한 번화가의 뒤편에는 미로 같은 길가에 성냥갑 집들이 촘촘히 어깨를 기대며 산다. 인생의 뒷면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인지 언제부턴가 골목길이 있는 이 거리에 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보낼 무렵 직장이 가까운 전포동 산동네로 이사했다. 학교 마치는 아이를 기다렸다가 손을 잡고 좁은 골목길을 걷노라면 서로의 어깨가 부딪치는 소리마저 정다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며 그날의 얘기를 나누다 좁다란 길을 빠져나왔다. 야트막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이은 그 시절 산동네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기억 속 그 시간은 동화 속 풍경처럼 남아있다.
오래된 길가 오래된 집에는 지붕과 담벼락에도 돌담 아래 나무와 풀에도 지나온 시간이 잠들어있다. 키 낮은 벽돌담 판잣집 화단에는 키가 큰 장미 넝쿨이 담장을 훌쩍 넘어서고 하얀 접시꽃이 고개를 뻗어 하늘을 본다. 연보랏빛 수국도 바깥을 향해 부풀어 오른 꽃송이를 터트린다. 좁다란 골목길을 걸을 때면 아이들과 함께 걸었던 작고 소중한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골목이 끝나는 곳이다. 담 너머 마당의 빨랫줄에 널어놓은 꽃무늬 블라우스와 빨간 체크무늬 바지가 바람에 휘날린다. ‘나 여기 살고 있노라.’, 세차게 깃발을 흔드는 것 같다. 지난날 누군가 고단한 하루를 풀어놓았고, 오늘을 헤쳐 나가고, 앞으로 꿈을 키울 거라는 확신에 찬 깃발이다.
길이 끝나는 자리에서 다시 길은 시작되고 오늘도 너와 나의 이야기를 따라 골목길을 걷는다. 오래된 벽에 그려진 낙서와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낡은 간판, 단단한 골목의 역사를 듣는다. 느린 듯 끊어지지 않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나만의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 세상보다 천천히 울려 퍼지는 우리들의 골목길 블루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