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년 만에 아이를 낳고 인생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아이가 재테크에 도움이 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김미현(28) 씨는 지난해 5월 결혼한 ‘새내기 주부’다. 출판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 일을 하고 있다. 출판 작업의 진행 상황을 살펴보고 작업을 독려하거나, 전체 일정을 조율하는 일이 그녀의 주요 업무이다. 출간은 작가와 편집자, 디자이너 등이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하는 공동 작업이다.
출판 업무 프로세스의 한 부분에 이상이 생기면 이른바 병목 현상이 생기게 마련이다. 시간과의 싸움을 늘 벌이며 골치를 앓는 그녀에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네 살 차이가 나는 남편은 모 홈쇼핑에서 프로듀서를 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맞벌이 부부다. 하지만 그녀는 요즘 ‘앞으로 벌고 뒤로는 밑진다’는 말을 실감한다. 전세주택자금 원리금도 상환하고, 2세 계획도 세워야 하는 김 씨는 고민이 적지 않다.
조효남(34) 씨는 결혼 4년차 맞벌이 주부다. 그녀는 친구들 사이에서 ‘재테크의 고수’로 통한다. 결혼할 때 적수공권으로 시작했으나 집을 경매로 장만했으며, 지금은 돈도 꽤 모았다. 기자 남편을 둔 그녀는 하지만 요즘 고민이 적지 않다. 부부의 노후 자금은 물론 어린 딸의 교육비 등을 떠올리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과거와 달리 목돈을 손에 넣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재테크에도 상전벽해식 변화를 불러왔다.
<이코노믹 리뷰>는 요즘 출판시장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 중인 《4개의 통장》의 저자 고경호 알리안츠생명 국제재무공인사(CFP)와 이들 주부의 컨설팅을 주선했다. 기본으로의 회귀를 역설한 이 책은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3위에 올라 있다.
조효남(이하 조) 지출을 통제하고 예비자금을 보유하며 장기간 투자하라는 것이 이번 저서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요즘 이 책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주부들이 주변에 적지 않습니다.
고경호(이하 고) 평소 지출을 줄여 50만원을 추가 저축했다고 가정해 보죠. 지금 정기예금 금리 수준으로 볼 때 목돈 1000만원을 정기예금에 넣어야 일 년에 이 정도를 이자로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50만원을 아끼는 쪽과 정기예금 상품에 투입할 ‘종잣돈’을 버는 일 중 어느 편이 더 쉽습니까.
조 요즘 뉴스를 보면 소비자들이 먹고 마시고 입는 것까지 줄이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다들 한 푼이라고 아끼려고 애쓰지만 돈을 모으기 어려운 게 현실 아닌가요.
고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딱히 지출이 많다고 보기 어려운데 통장에 돈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들을 합니다. 소비 패턴을 진단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야 어디서 줄이고 저축으로 돌릴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신용카드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핸드폰 요금·교통카드 결제용으로만 활용하고, 대부분 체크카드로 지출합니다. 잔고를 확인해 부족하다 싶으면 잔액을 다 인출해 지갑에 넣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에 자동이체로 용돈이 들어올 때까지 일일이 확인하면서 돈을 씁니다.
김미현(이하 김) 남편 용돈을 ‘체크카드’에 넣어 지출을 관리하도록 유도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남편이 한꺼번에 입금액의 60% 이상을 인출해 버려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고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서울역 앞 빵가게 ‘델리만주’에서 6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서울역에는 노숙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하루는 빵을 굽다 떨어뜨렸는데, 노숙자들이 쏜살같이 달려들더군요. 그들은 다 평범한 이웃입니다. 배고픔이 수치를 잊게 한거죠.
직장생활 잘하다 외환위기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많았어요. 모아놓은 돈은 없고, 카드도 더 이상 돌려막지 못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나선 거죠. 가족 중 아픈 이가 있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평소에 대비해야 합니다.
김 남편과 돈 문제로 다투다 보면 속이 상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총각 때 소비 습관을 떨쳐버리기가 참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고 총각 때 쓸 돈이 부족해 보험을 불과 가입 석 달 만에 깬 적이 있습니다. 결혼 초 아내가 지출을 일일이 통제해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았어요. 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
상대방 집안 얘기까지 하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한 적도 있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쓴소리를 하더군요. 돈을 많이 벌고 재테크를 잘해야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아껴야 잘사는 것이라고 제 투자 행태를 꼬집었습니다. 그 말이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었어요.
조 저는 남편을 커피숍으로 불러냈어요. 그리고 자녀 양육비, 집 구매, 은퇴 후 필요 자금 등을 꼼꼼히 적어 보여줬습니다. 다 따져보니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돈이 13억원 정도였습니다. 자녀 유학자금 등을 다 감안한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는데, 결혼전 월급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다 써버리는 예비 남편의 소비 행태가 좀 당황스러웠어요. 지금은 통장 세 개를 통해 지출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태도도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김▶평소 씀씀이는 어떤 식으로 줄이고 있습니까.
고 교사인 아내와 저는 소득의 절반 이상을 저축하고 있습니다. 결혼한 지 6년이 지났고 지금은 25평짜리 아파트에 사는데, 가구나 전자제품이 모두 열 평 남짓한 반지하 방에 살던 신혼살림 때 그대로입니다.
동네 분들이 집에 놀러와 집이 넓어 보인다며 같은 평수가 맞느냐고 물어볼 정도입니다. 세탁기도 구형 제품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요. 아내에게 신제품을 사줄까 하다 포기했습니다(웃음).
김 솔직히 이런 조언들이 피부에 잘 와닿지는 않습니다. 결혼 후 주택구입이나 전세자금을 상환하다 보면 살림살이가 참 빠듯한 편입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해봐도 아이 낳기가 두렵다는 고충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고 자녀 교육비를 비롯한 양육비 부담을 떠올리다 보면 아이 낳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결혼 4년 만에 딸아이를 낳고 인생의 의미를 비로소 찾았습니다.
김 부모들이 자녀를 더 좋은 여건에서 키우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아이를 나중에 갖는 것도 열심히 돈을 벌어 넓은 집에서 키우고 싶고 좋은 교육도 제공해 주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요.
고 20년 후 대학에 진학하는 딸의 교육비를 위해 금융 상품(주식형 펀드)을 구매했습니다. 아이가 재테크에 도움이 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출산을 미루다 정작 아이가 안 생겨 병원에 돈을 쏟아붓는 커플도 적지 않습니다.
고대 바빌론 부자들의 재테크 노하우를 다룬 《바빌론 부자들의 돈 버는 지혜》를 보세요. “번 것보다 덜 써라”, “수입의 일할 이상은 꼭 저축해라”와 같이 부의 비결이라는 게 간단한 원리에서 출발합니다. 바로 이러한 ‘실행’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바로 자녀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조 많은 이들이 재테크를 하면서도 왜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노후나 자녀 양육 방안, 자신의 비전 등을 치밀하게 따져보고 여기에 소요되는 자금은 얼마인지를 산출해야 균형잡힌 생활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 전세대출자금 상환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빨리 갚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고집값 원리금 상환에 목을 매는 분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소득을 거의 모두 저축해서 3개월, 6개월 단위로 빛을 갚아나갔어요. 그분들은 과연 행복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마음을 비울 필요가 있습니다. 대출원리금이 급여의 30%를 넘지 않아야 합니다. 부채를 갚아 나가면서도 지출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김▶ 지출은 전체 소득 중에서 어느 정도여야 합니까.
고월 급여로 100만원을 받아도 저축 여력은 다르기 마련입니다. 재테크 서적들은 대개 소득의 일정 비율 이상 저축해야 한다고 특정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비자금은 매월 지출하는 비용의 석 달분 정도를 보유하라는 게 교과서의 처방입니다다. 저는 2~3개월 정도 생활비를 예비자금으로 MMF에 확보하고 있어요.
김 주부들에게 4개의 통장을 만들어 효율적으로 지출을 관리하라는 주문을 해오셨는데요. 평소 염두에 두어야 할 재테크의 불문율은 없을까요.
고 가계부를 쓰는 분들도 정기적으로 결산을 해보아야 합니다. 저도 매년 10월이면 쉬는 날을 잡아 하루 종일 계산기를 두들깁니다. 순자산은 얼마나 남았는지 저축은 얼마인지 등을 철저히 따져봅니다. 그리고 펀드를 비롯한 운용자산의 ‘포트폴리오’를 다시 조정합니다.
조 연말에 투자 성적표를 꼼꼼히 검토한 뒤 ‘포트폴리오’를 다시 짠다는 말이군요. 저는 신흥시장에 운용자금 대부분을 투입하는 펀드 상품에 투자했다 손실을 꽤 보았습니다. 펀드 상품은 운용하지 않습니까.
고 저도 손해를 보았습니다만, 주가 급등기 차익을 함께 저울질한다면 손실 규모는 크지 않습니다. 2007년 하반기부터 인덱스펀드로 갈아탔습니다.
예전에는 펀드평가 홈페이지에 들어가 각 상품의 베타계수, 표준편차, 젠센의 알파 등을 하나하나 따져볼 정도로 여기에 집착했습니다. 한때 10여개에 달하는 펀드 상품에 가입한 적도 있습니다.
조 저는 지금도 하루 1시간 이상 인터넷에 접속해 주가 흐름이나 관련 뉴스 등을 살펴봅니다. 주식시장의 대세 상승기에 대비해 이 부문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을까요.
고 성장형 펀드, 가치 펀드는 펀드 운용팀의 역량에 따라 성과가 차이가 납니다. 인덱스펀드는 해당 인덱스를 좇아가는 게 기본 목적입니다. 어떤 펀드를 선택해도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이 별다른 고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장형, 가치형 펀드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장기간 시장수익률 이상을 가기는 어렵습니다.
조▶ 돈관리가 중요하긴 합니다만 지출을 줄이는 데 집착하다 보면 자기계발에 소홀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고 2007년 5월,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들어갔어요. 조리원을 방문한 작명가 할아버지에게 딸아이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는 사주를 풀어주고 작명의 배경은 물론 부모의 자녀 양육방식 등을 컨설팅해 주었습니다.
저도 현업에서 은퇴한 뒤 이 할아버지 정도의 나이에 딸아이 또래의 젊은 사람들을 상대로 돈 관리법을 컨설팅해 주고 싶습니다. 도서 구입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