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교자들 -
☆ 2016년 다해 2월26일 금요일 [(자)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수도회] 충실하고 신실한 주님의 종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창세 37,3-4.12-13ㄷ.17ㄹ-28
† 복음 창세 37,3-4.12-13ㄷ.17ㄹ-28
◈ 오늘의 묵상
우리는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가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되는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이집트로 팔려 가지만, 이렇게 해서 요셉이
먼저 이집트로 내려가지 않았더라면 후에 큰 기근이 닥쳤을 때에 야곱
집안은 살길을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화답송 시편에서는
주님께서 역사 안에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여러 사건을 기억하면서,
그분께서 “한 사람을 그들 앞에 보내셨으니”라고 노래합니다. 죽음의 위험을
겪고 상인들에게 팔려 간 요셉은, 가족과 백성을 살리려고 다른 이들의 손에
넘겨진 한 사람이었습니다.
포도밭 소작인들의 비유에서도, 소작인들은 밭 주인의 아들을 죽이지만 그
이야기의 결말은 더 많은 이에게 하느님의 나라가 주어진다는 것으로
끝납니다. “소출을 내는 민족”은, 예수님께서 유다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넘겨지시고 죽임을 당하신 다음, 그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수많은 이,
곧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을 일컫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대로, 그들의
잘못으로 세상이 풍요로워졌고 그들의 실패로 다른 민족들이
풍요로워졌습니다(로마 11,12 참조).
많은 이의 구원을 위해 바쳐진 요셉과 예수님의 목숨!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이 주어진 것은
바로 이 길을 통해서였습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이들의 의롭고 안타까운 죽음, 심지어는 억울하고 기막힌 죽음을 통하여
우리 사회는 발전해 왔고 우리 모두는 그분들의 죽음의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사순 시기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하고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것이라고 전하는 요한 복음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때입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눈에 보이는 부모님의 사랑을 볼 수 있어야
2016년 다해 2월26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저 녀석을 죽여 버리자.>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7,3-4.12-13ㄷ.17ㄹ-28
복음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3-43.45-46
언젠가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 중년의 형제님 고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 모두 저녁 식사를 위해 한우
집을 찾아 갔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향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어~ 한우는 먹네?”
그리고 그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어머니께서 고기를 못 드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고기반찬도 종종 해주셨던 어머니셨는데,
요리를 하면서 얼마나 힘드셨을 지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기 냄새조차 싫었을 것이지만, 가족을 위해서 요리를 하고 간이 제대로
되었는지 맛도 보았을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부모님이니까 자식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자녀를 위해 모든 희생을 마다하는
부모님의 사랑, 그에 반해 자녀들은 그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부모님께 받은 약간의 서운함을 강하게 표시할 때도 참으로
많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어떤 것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도저히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자주 잊어 먹는 우리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즉, 눈으로
볼 수 있는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지 못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께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맡깁니다. 이를 통해
소작인들은 먹고 살 수 있는 터전을 갖게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주인은
소작인들이 해야 할 것들을 당신이 직접 합니다. 소작인들이 직접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워야 하는데, 이 몫을
주인이 먼저 해주고서 멀리 떠나지요.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얻은 은혜를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주인을
우습게보았는지, 아니면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더 많은 것들을 빼앗을 도둑의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인에게 받은 은혜를 전혀 보지 않기 때문에
감사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의 아들마저 죽여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지요.
생각해보면 참으로 많은 것을 받은 우리입니다.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은혜 속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받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받지 않은 것만을 떠올리면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빼앗을 수 있는지를 궁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기도보다는 불평과 불만의 탄원만을 드릴 뿐이지요.
눈에 보이는 은혜를 베풀어주고 계시는 부모님의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큰 은혜를 주시는 주님의 사랑도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무리 늙어도 마음까지 회색 빛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랑구랄)
십자가의 길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심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모르면 고생합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크루즈 배에 한 승객이 탑승했습니다. 오랫동안
소망했던 크루즈 여행을 드디어 하게 된 것이었지요. 하지만 비싼 뱃삯을
내느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소비했기 때문에 이 안에서 쓸 돈이
없었기에, 식사시간에도 식당에 가지 못하고 주린 배를 쥐어 잡고 있었지요.
분명히 이렇게 화려한 크루즈이기에 식사비도 엄청날 것이라고 예상한
것입니다.
이렇게 며칠을 굶고 나니 이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먹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식당으로 내려가 무조건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렇게 실컷 먹은 후에 그는 지나가는 승무원을 불러서 말했지요.
“죄송합니다. 돈이 하나도 없지만 너무 배고파서 그냥 먹었습니다. 밥값
대신에 제가 청소라도 하면 안 될까요?”
이 말에 승무원은 이상하게 바라보면서 대답했지요.
“손님, 무슨 말씀이세요? 손님의 뱃삯에는 이미 식대가 다 계산되어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것도 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도 혹시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모르기 때문에 혼자 힘들어하고
절망에 빠져서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모르면 몸이 고생할 수 있는 것처럼, 주님 역시 모르면 우리의 삶이 고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 제5처. 시몬이 예수님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서울] 속세에선 패배 하늘에선 승리
2016년 다해 2월26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속세에선 패배 하늘에선 승리
예수님은 하늘 뜻 어긴다며 권력들을 야단 친 바람에 사형 당했습니다.
오늘도 북한이나 남한의 권력자들이 나름대로 하느님 자리를 범합니다.
평민들도 하느님을 곧 잘 욕합니다. 영어에서 God damn이 그렇지요,
우리도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하늘에 맹세한다는 등 다 유사하다 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오늘도 예수님을 본받아 세상 힘에 그리하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인내하고 용서하니 세상보기에 진듯하나 실은 그게 승리지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마태오 21,43,45-48)”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수도회] 충실하고 신실한 주님의 종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2월26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마태 21,33-43,45-46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마태 21,38)
충실하고 신실한 주님의 종
오늘 독서의 요셉 이야기와 복음의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는 예수님의
수난을 예고합니다. 야곱은 아들들 가운데 늘그막에 얻은 요셉을 특히
사랑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형들은 요셉을 질투하여 없애버리려 합니다.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은 상인들에게 팔려 이집트로 갑니다. 그는 하느님의
섭리로 높은 자리에 올라 이스라엘을 구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포도밭 주인은 밭을 소작인들에게 믿고 맡깁니다.
수확 철이 되자 주인은 종을 보내어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의 은혜는 까맣게 잊고 그 밭을 차지할 욕심으로 주인이
보낸 종들은 물론 그 아들까지도 죽여 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하느님께서 보내신 당신을 외면하고 박해한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를
빼앗기게 되겠지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새로운 백성이 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나 역시 메시야를 고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의미 없는 존재로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 나라는 저 멀리, 그리고 먼 훗날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바로 주님을 뵈올 수 있는 주님의 포도밭입니다.
일상이 바로 주님을 섬기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과 사랑을 키워가야 하는
포도밭입니다. 바쁜 가운데도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기 위해 주님께 시선을
돌려 마음을 집중하고, 그분을 드러내기 위해 이웃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피조물이요 종임을 망각한 채 주인이신 주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나아가 그분을 내 삶에서 몰아내고 죽이려는 착각과 오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질투와 미움, 탐욕과 독선을 버리고 온 힘을 기울여 주인이신
하느님을 충실히 섬겨야겠습니다. 작은 것 하나도 하느님을 섬기듯 사랑을
다하고 정성을 다함으로써 그분을 닮아갈 것입니다.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는 사람이 다른 이들도 진심어린 사랑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은 선물이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고,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마다 이스라엘의 거부와
예수님의 죽음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음을 기억하고
용기를 잃지 말았으면 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희망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예수님을 포옹해야겠습니다.
아울러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요셉과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연대의
몸짓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동생을 질투하여 죽이려 했고,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하나같이 단절과 분열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반생명적인
악행마저 이겨내시고 사랑의 연대를 이루십니다. 우리도 단절이 아닌
일치를, 분열이 아닌 연대를 이루어나가야겠습니다.
오늘도 요셉의 형제들과 소작인처럼 하느님을 무시하고 내 삶에서 몰아내지
않도록 깨어, 주님의 뜻을 충실히 실행하며 모든 것을 기꺼이 되돌리고
나누는 사랑의 연대를 이룰 수 있길 바랍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2월26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창세 37,19)
여러분은 꿈을 많이 꾸시나요?
꿈을 꾸되 뒤숭숭한 꿈은 오히려 숙면에 방해가 되지요.
사람은 기억을 잘 못하지만 거의 매일 꿈을 꾼다고 하네요.
그렇게 보면 우리 모두는 꿈쟁이랍니다.
그 꿈이 얼마나 선명하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이지요.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희망도 없는 사람이지요.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나요?
한번 멋지게 살아보고 싶은 꿈은 있나요?
그 멋지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살아야 멋지게 사는 걸까요.
오늘 멋진 꿈을 꾸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꿈 때문에 참으로 행복한 오늘 되소서.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마태 21, 39)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2월26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마태 21, 39)
아직도 많이 추운 우리의 세상입니다.
추운가운데서 새봄을 기다립니다.
우리를 춥게하는 것은 날씨때문만이 아니라
분수를 모르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사순시기는 모두를 춥게하는 교만에서 깨어나는 시간입니다.
포도밭을 먼저 차지하려고 사람을
죽이는 세상을 분명 하느님께서는 원하지 않으십니다.
포도밭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결코 이러한 짓을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이 하느님까지도 죽이게 됩니다.
모든 것을 다 차지하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소작인들의 교만입니다.
교만에 눈이 멀어버리면 가장 더러워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밭입니다.
하느님마저도 우리 마음대로 잡아두려 합니다.
정작 무서운 것은 바로 우리자신입니다.
하느님 무서운 줄을 아는 사람으로 새봄을 맞이해야 합니다.
포도밭의 질서는 멸시와 미움이 아니라
존중과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워지라고 새봄이 얼었던 우리마음을 뚫고 주님처럼 찾아오십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언제나 당당하라|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다해 2월26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 마태오 21,33-43.45-46
언제나 당당하라.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서 주신 포도밭이고, 우리는 그 밭의 일꾼입니다.
일꾼은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일꾼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고
주인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열매를 맺어 그 열매를
주인께 바쳐드려야 합니다. 만약 일꾼이 주인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일을 한다면 아무리 많은 일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는 이미 일꾼으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이미 하느님의 일꾼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느님께서 주신 포도밭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훌륭한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통해서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롭지 못한 삶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군중이 두려워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왜 군중이 두려웠을까요? 자기들이 의롭게
살았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의인은 아무도 겁내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옛 말이 있듯이 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한 것은 곧 자기들이 하는 일이 옳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당당하셨습니다. 바리사이나 수석 사제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하시는 일이 아버지의 뜻에
의합하고 당신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요한5,1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당신을 보내주신 아버지의
뜻만을 추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아버지 안에 머무는 만큼 당당히 가실 길을 가야만 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걸으신 그 길을 당당히 걷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신상옥씨의 ‘내 발을 씻기신 예수’를 묵상합니다.
그리스도 나의 구세주, 참된 삶을 보여주셨네.
가시밭길 걸어갔던 생애,
그분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네.
죽음 앞둔 그분은 나의 발을 씻으셨다네.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
그 모습, 바로 내가 해야 할 소명.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이 아파하는 곳으로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 손길 필요한 곳에
먼 훗날 당신 앞에 나설 때
나를 안아주소서.
주님께서 걸으신 길, 기쁨으로 걸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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