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資治通鑑) 이야기-<제64화>앞날을 생각하는 역사가 순열(荀悅)
후한의 실권은 이미 조조에게 넘어가 있었다. 그래서 천자인 헌제는 한껏 자기 자신을 공손하게 처신하였다. 아마도 목숨을 보전하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비서감(秘書監) 겸 시중인 순열(荀悅)은 달랐다. 그는 역사가로 후대에 ‘한기(漢紀)’라는 역사책을 지어서 유명하게 된 사람이었다. 순열은 당장의 목숨이나 출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좋고 그른 것을 구별하여 제대로 된 정치를 하여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여러 가지 정책을 건의하였지만 채택되지 않자 그 내용을 책으로 썼다. 신감(申鑒)이라는 책이다.
명(明)나라 말기의 사상가이자 역사가인 황종희(黃宗羲)라는 사람은 자기의 조국인 명(明)이 만주족의 청(淸)에게 멸망하자 나라가 멸망하지 않는 방책을 연구하여 책으로 남겨 놓는다.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이 그것이다. 책 이름을 풀면 ‘해가 아직 뜨지는 않은 상태 그러나 곧 들 상태를 말하는 주역(周易)의 명이괘(明夷卦) 같은 자기 시대에, 앞으로 성인이 나타나서 정치의 방법을 찾다가 자기에게 물을 것에 대비하여 그 방략을 기록한다.’는 의미의 책이다.
하여간 순열을 신감을 써 내려 갔다. 그는 정치를 잘하기 위하여서는 걱정거리가 될 것 네 가지가 있는 데 이를 물리쳐야 하고, 숭상해야 할 것이 다섯 가지가 있다고 말하였다. 네 가지의 우환(憂患)은 첫째로 거짓과 풍속의 문란이고, 둘째로 개인을 위하여 법도를 무너트리는 것이며, 셋째로 방탕하여 본래의 궤도를 벗어나는 것이고, 넷째로 사치스러워 제도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비록 근 2천년(정확히는 1,800년) 전에 한 말이지만 오늘날에 가져다 응용하여도 딱 맞는 말이다. 금전만능주의가 풍속을 문란 시키고, 사람들은 개인밖에 모르며, 돈을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리고, 자기 밖에 모르기 때문에 사치하게 되는 것은 오늘날의 현실이고, 순열은 2천 년 전에 오늘의 일을 알고 지적한 것 같기도 하다.
다음으로 그가 지적한 정치를 잘 하는 방법 다섯 가지를 보자. 첫째로 농경과 잠상을 흥하게 하여 그 삶을 부양하는 것이고, 둘째로 선하고 악함을 심사하여 그 풍속을 바로잡는 것이며, 셋째로 학문과 교화를 널리 알려서 덕화를 밝게 하는 것이고, 넷째로 군비(軍備)를 세워서 그 위엄을 잡는 것이며, 다섯째로 상벌을 밝혀서 그 법도를 통솔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다시 해석할 것도 없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건전한 풍속을 만들고, 교육을 제대로 시키며, 군비를 갖추고,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집행되는 상벌을 말한 것이다. 이 말도 근 2천 년 전에 하였지만 오늘날을 위하여 미리 이야기한 듯하다.
역사가는 과거에서부터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까지 인간이 살아 온 모습을 보기 때문에 그 수준만큼 앞으로 필요한 것을 제시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반드시 역사가라는 겉 명칭을 꼭 붙여야 역사가는 아니다. 역사를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면 어느 정도 역사적 안목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이 칼럼을 계속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