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기식고(偃旗息鼓) - 깃발을 내리고 북소리를 멈추다, 적의 눈에 띄지 않게 비밀리에 작전하다.
[쓰러질 언(亻/9) 기 기(方/10) 쉴 식(心/6) 북 고(鼓/0)]
중국의 三國志(삼국지)는 後漢(후한)이 명맥만 유지할 때 魏蜀吳(위촉오)의 세 나라가 할거한 3세기 때의 이야기다. 잘 알고 있는 대로 晉(진)의 陳壽(진수, 233∼297)가 편찬한 정사 삼국지는 史記(사기), 漢書(한서), 後漢書(후한서)와 함께 중국 前四史(전사사)에 포함되는 비중이지만 너무 위나라에 치우치고 간략하다는 평이다. 여기에 비해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는 元明(원명) 교체기의 사람 羅貫中(나관중, 1330?~1400)이 소설형식으로 재구성하여 흥미진진하게 읽히고 四大奇書(사대기서)에도 들어간다. 우리나라서도 중국보다 더 인기를 끌어 번역본이 수없이 나왔다.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蜀(촉)의 劉備(유비)가 關羽(관우), 張飛(장비)와 의형제를 맺은 桃園結義(도원결의)나 諸葛亮(제갈량)을 초빙하기 위한 三顧草廬(삼고초려)는 모두 알 정도다. 여기에 한 사람 더 매혹적인 장수가 常山(상산) 출신의 趙雲(조운)이다. 자인 趙子龍(조자룡)으로 더 알려진 그는 헌출한 팔척장신으로 사려 깊은 인물이었고 長坂(장판) 전투에서의 활약상은 하이라이트였다. 曹操(조조)군에 쫓길 때 조운은 유비의 어린 아들 劉禪(유선)과 부인 甘氏(감씨)를 보호하며 匹馬單槍(필마단창)으로 백만의 포위를 뚫었다.
이 조운의 작전에서 깃발을 내리고(偃旗) 북소리를 멈춘다(息鼓)는 성어가 나왔다. 적의 눈에 띄지 않게 비밀리에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데 掩旗息鼓(엄기식고)라고 해도 같다. 조운의 병사가 漢水(한수) 부근에 주둔할 때 조조의 대군이 진격해 왔다. 부하 장수들은 성을 사수하자고 했지만 조운은 ‘오히려 성문을 활짝 열어 군기는 눕혀 놓고 북을 치지 말도록(更大開門 偃旗息鼓/ 갱대개문 언기식고)’ 했다. 두려움 없이 버티고 있는 조운을 보고 내닫던 조조군은 복명이 유인하는 것으로 알고 혼비백산 도주했다. 조운이 진격명령을 내리자 북소리와 함성에 쫓긴 위군은 수없이 넘어져 죽고 한수에 빠져 죽었다.
속임수에 능한 조조의 군대가 조운의 위장 전략에 넘어가 참패한 것이다. 유비와 제갈량은 큰 승리를 이끈 조운에게 두려움을 모르는 몸 전체가 담이라며 一身是膽(일신시담)이라 말했다. 막판에 몰렸을 때 위아래가 모두 낙담하면 곤경을 헤쳐 나가지 못한다. 중과부적으로 몰리더라도 장수가 지휘하고 운용하는데 따라 달라진다. 두려움을 모르는 조운 같은 지도자가 나서 이끌면 실의에 빠진 부하들도 심기일전할 수 있다. 리더십과 함께 신뢰가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