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의 재앙과 상상력의 경고 / 강유정
메타버스(metabus)가 화제다. 메타버스에는 여러 하위 영역이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은 바로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이다. 1999년 영화 <매트릭스>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2018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여기에 속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2045년 그러니까, 24년 후의 미래, 사람들은 ‘오아시스’라는 가상현실 공간에 매료돼 있다. 고글, 장갑, 슈트를 비롯해 게임을 즐길 장비를 착용하고 사람들은 오아시스에 접속해서 게임도 하고, 클럽도 가고, 휴가도 즐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런 새로운 장비나 최첨단 기술보다, 가상 세계를 즐기는 그들의 진짜 현실이다. 미래에도 존재하는 빈민가에 살아가는 주인공의 주거지는 컨테이너다. 컨테이너에서도 세탁실 구석의 오래된 침낭 하나, 그게 바로 주인공의 침실이자 거주지이다. 수직으로 쌓인 컨테이너 아파트를 내려오다 보면, 고글을 끼고, 폴댄스, 발레, 격투기에 매진 중인 사람들이 보인다. 모두 다 가상현실 세계 오아시스에 들어가 실제 삶에서 벗어나 있다. 손에 잡히는 진짜 물건을 다루고 가꾸는 사람은 1층 할머니 단 한 명뿐, 할머니만이 조리개를 들고 화분에 물을 뿌리며 진짜 꽃이 있는 삶을 살아간다.
오아시스로 불리는 이 공간은 일종의 대안 세계이다. 인간이 상상력을 가지기 시작한 이후 언제나 하나쯤 가지고 있었던 2차 세계 말이다. 샹그릴라, 유토피아, 무릉도원과 같은 ‘오아시스’를 인류는 언제나 그려 왔다. 차이가 있다면 이 상상의 이야기를 고전 매체인 문학이 아니라 에뮬레이터를 통한 접속을 통해 경험한다는 것일 테다. 스스로 상상해낸 N개의 오아시스가 아니라 시상하부를 자극하는 하나의 오아시스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대안 세계가 현실 세계와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것은 바로 폐기물처리 과정이 아닐까 싶다. 대안 세계에서는 폐기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에서는 먹으면 싸야 하고, 투입된 것은 배출되며, 필연적으로 폐기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배고프지 않게 먹고, 생산하는 게 1차적 문제였다면 발전 이후 문제는 그 이후의 처리다. 20세기 인류가 급속한 발전의 역사를 거치고 난 이후 21세기의 우리가 겪는 가장 곤란한 문제 역시도 ‘쓰레기’다.
팬데믹 이후 축적 속도가 어마어마해진 속칭 재활용 폐기물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말이 재활용이지, 엄밀히 말해 자연상태에서 썩지 않는다. 플라스틱, 알루미늄 캔, 스티로폼 등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리는 물건들은 사실 처치 불가한 골치덩어리들이다.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그리는 SF영화에서 지구는 쓰레기 처리 장소로 버려지고 다른 행성이 제2의 주거지로 선택되곤 한다. 영화 <승리호>의 주인공들도 우주 쓰레기 수거꾼이다.
영화 <승리호>에서 비밀의 열쇠인 아이 꽃님이는 시도 때도 없이 똥이 마렵다며 화장실에 간다. 연출을 맡은 조성희 감독의 <늑대소년>에서 시도 때도 없이 먹는 장면이 등장한 것과 대조적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시기엔 배불리 먹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면 가까운 미래의 문제는 먹는 게 아니라 버리는 것, 배출 과정이 문제다.
가만 보면, 좀비가 괴물인 이유도 폐기 불가능성과 연관이 있다. 사람은 죽으면 썩어야 마땅하다. 영화 속 좀비들은 죽고 나서도 움직인다. 더 큰 문제는 움직이는 게 다가 아니라 끊임없이 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좀비는 모든 사고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도 식탐에 시달린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물어 전염시키고, 죽지도, 썩지도 않은 채, 먹는 본능만 남아 돌아다닌다. 처치 불가한 재활용품이 쌓이는 것이다. 썩지 않는 유기물들이 쌓이는 것 자체가 생존자들에겐 저주이자 형벌이다.
죽음을 정복하는 것은 인류가 과학적 상상력을 가진 최초의 순간부터 몰두해 온 주제이다. 하지만 죽지 않는 생명체, 완전히 폐기할 수 없는 물질이야말로 재앙이다. 이미 우리는 속도를 위반했다. 초월적 상상 공간인 메타버스와 우주 쓰레기, 좀비가 공존하는 현재의 상상력들은 결국 우리의 예민한 경보 기능의 산물일 테다. 이미 우리는 위험을 알고 있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입력 : 2021.07.30 03:00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730030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