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의 시간
『풍요라는 독과 결핍이라는 복』
열왕기하 15:3-4(1-7). 284장
3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4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남유다의 역사는 비극적이었습니다.
요아스 왕과 아마샤 왕 모두 반역의 무리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이런 불안한 정국 속에서 16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아사랴(웃시야)는 오직 여호와를 구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습니다. 역대하 26장을 보면 그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암몬의 조공을 받는 등 유다를 강성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아사랴는 무역의 요충지인 ‘엘랏’을 회복하여 경제적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이 경제적 풍요는 '독'이 든 성배였습니다. 물자와 함께 이방의 혼합주의 문화가 밀려들어 왔고, 어느덧 그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업적에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셨다(아사랴)"는 고백으로 시작한 인생이, "내가 강하다(웃시야)"는 교만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제사장의 권위를 침범하여 스스로 분향하려다 나병이라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열왕기하 15장 4절을 보면 아사랴가 정직히 행했으나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라고 기록합니다. 산당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편리주의입니다.
예루살렘 성전까지 가는 번거로움 대신 가까운 곳에서 내 방식대로 제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둘째, 기복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보다 나의 야망과 길흉화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마음입니다.
세 번째 혼합주의입니다.
나의 야망과 길흉화복을 위해서는 여호와와 다른 이방신도 함께 이용하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결국, 산당은 하나님과 이방 신을 섞어 섬기는 혼합주의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아사랴가 엘랏의 풍요 속에서 무너진 것은, 그의 마음속에 여전히 '산당'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가나안의 풍요를 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매 순간 하나님만 바라봐야 하는 광야의 만나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물질의 풍요가 영적 결핍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 안의 '편리주의라는 산당'을 반드시 허물어야 합니다.
삶의 적용: 오늘 나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보다 '내 편의'를 우선시하는 '산당'은 무엇입니까?
마무리 기도
풍요와 번영이 올 때 그것이 교만의 독이 되지 않게 하소서. 엘랏의 무역로보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기도의 길이 더 넓어지게 하시고, 편리함이 아닌 순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